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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 (안정빈 기자) [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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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막혔다고? ‘영웅담’을 찾아보라

NDC 2012: 영웅담, 조셉 캠벨의 영웅의 여정

이야기는 경험의 정제다. 간접적인 경험이든, 직접적인 경험이든, 경험이 많을수록 이야기의 폭도 넓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신화, 즉 영웅담은 최고의 이야기다.

 

영웅담은 수 만 년 동안 인류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공동체에 전파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경험이 녹아들었다. 쉽게 전달하기 위해 내용에는 군더더기가 사라졌고, 길이는 적당해졌다. 글을 쓰는 작가가 수 십 년의 경험과 글솜씨를 녹여내는 것과 비할 바가 못 된다.

 

넥슨 신규개발3본부 이원 수석연구원은 영웅담의 ‘전형(아키타입, Archetype)’에 주목했다. 영화부터 게임까지 이미 많은 이야기들이 영웅담의 전형을 따른다. 복잡한 이야기가 사실은 같은 형식을 띠고, 제각각인 등장인물도 알고 보면 정해진 역할 속에서 행동할 뿐이다.

 

유명 신화학자 ‘조셉 캠벨’의 연구를 바탕으로 이원 수석연구원이 말하는 영웅담의 전형과 그 응용법을 들어보자.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넥슨 신규개발3본부 이원 수석연구원.

 


■ 보통세상부터 묘약과의 귀환까지, 영웅의 12단계

 

모든 영웅담은 여행을 떠난 주인공이 온갖 역경을 물리치고 무언가를 찾아 자신의 세상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이 난다. 신화학자인 조셉 캠벨은 이런 영웅의 여정 12단계로 구분했다.

 

1. 보통세상: 관객들이 영웅을 만나는 시점이다. 보통세상은 말 그대로 평범한 장소로, 이후 만나게 될 특별한 장소와 대조를 이룬다. 영웅은 주로 이 보통세상에서 평온한 때를 보내고 있다.

 

2. 모험에의 소명: 보통세상에 살던 영웅은 어떤 이유로든 모험을 떠나게 될 이유를 얻는다. 단순한 도전욕구부터 피할 수 없는 문제까지 다양하다. 또한 이 시기에 자신이 살던 보통세상 외에도 다른 특별한 세상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3. 소명에 대한 거부: 영웅은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한 번에 받아들이지 않는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 혹은 책임져야 할 사람 등. 영웅이 쉽사리 떠나지 못하도록 붙잡는 존재들이 등장하는 단계다.

 


4. 스승과의 만남: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거절하던 영웅에게 조언자가 나타난다. 특별한 세상의 능력을 보여주는 그는 영웅을 독려하거나 그의 두려움, 거부감 등을 없애고 특별한 세상으로 가야 할 계기를 만들어 준다.

 

5. 관문통과: 마음을 먹었어도 영웅이 특별한 세상으로 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별한 세상으로의 진입을 가로막는 관문이 영웅 앞에 나타난다. 물론 영웅은 이 과정에서 시련을 이겨내며 관문을 무사히 통과한다.

 

6. 시험, 협력자, : 특별한 세상에 온 영웅은 다양한 시험을 통과하며 적과 아군을 만난다. 영웅에게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는 시점도 이때다.

 

 

7. 심연에의 접근: 특별한 세상의 법칙에 적응하고 피아식별도 끝낸 영웅은 자신을 가로막는 심연에 접근한다. 그의 앞에는 커다란 변화가 기다리고 있다.

 

8. 시련: 심연에서 영웅은 시련에 부딪힌다. 이야기의 핵심적인 위기다. 영웅은 커다란 변화를 맞으며 시련에 대항하고 이겨낸다.

 

9. 보상: 시련을 이겨낸 영웅은 보상을 얻는다. 동료나 물건 등 그 과정에서 자신의 소중한 것을 잃을 때도 있다.

 

 

10: 귀환: 보상을 얻은 영웅은 귀환길에 오른다. 여정은 끝나는 듯하지만 순조롭지는 않다. 특별한 세상에서 힘들게 얻어온 보상도 의미가 없는 물건이다. 사회부적응이나 아직 끝나지 않은 적, 시련과정에서 지불한 무언가에 대한 대가 등 남은 시련들이 영웅을 찾아온다.

 

11. 부활: 영웅이 최고조의 시련을 겪는다. 그리고 이를 이겨내고 진정한 영웅으로 변화한다.

 

12. 묘약과의 귀환: 결국 영웅은 두 번째 시련까지 끝낸 후 다시 보통세상으로 돌아온다. 새로운 묘약과 함께. 묘약은 영웅이 여행길에 나설 때 바라던 보상과는 다른, 시련을 겪는 과정에서 얻은 새로운 어떤 것이다. 묘약은 영웅의 보통세상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이야기는 끝난다. 여기까지가 조셉 캠벨이 주장하는 영웅담의 12단계다.

 



영화로 보는 영웅담의 적용 사례

 

그렇다면 영웅담은 과거의 신화에서만 사용되는 전형일까? 이원 연구원은 어떤 이야기도 영웅담의 전형을 완전히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웅담의 12단계는 최근 나온 영화에 대입해도 그대로 맞아떨어진다.

 

영웅담을 유명한 영화인 <스타워즈>에 대입해 보자.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커는 한 행성에 살고 있는 평범한 젊은 농부다(보통세상). 루크는 어느 날 한 중고로봇에 들어 있던 동영상을 보게 된다. 영상 속의 레아 공주는 오비완이라는 인물을 찾고 있다. 영상을 본 루크는 오비완이라는 사람을 찾아 나선다(모험에의 소명).

 

하지만 루크는 지금까지 키워준 삼촌 일가의 농사를 돕기 위해 행성을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여기에 순응한다(소명에 대한 거부). 그런 루크를 움직인 것은 영상 속의 인물 오비완과의 만남이다. 오비완은 포스와 라이트세이버 등 특별한 세상의 물건을 보여주며 루크가 포기했던 꿈을 다시 불러 일으킨다(스승과의 만남).

 


여기에 루크가 행성을 떠나는 것을 반대하던 삼촌 일가가 전쟁에 휘말려 죽는다. 루크가 살던 터전도 파괴된다(관문통과). 행성을 떠나 앨더란으로 향하던 루크는 스톰트루퍼와의 전투에 휘말리고, 요다를 만나 포스의 힘을 넘겨받는다(시험, 협력자, ).

 

한창 적과 싸우던 루크 일행은 결국 적의 본거지인 데스 스타 내부로 끌려간다(심연에의 접근). 루크 일행은 데스 스타에서 레아 공주를 구출하는 데는 성공하지만 쓰레기장에 갇힌다. 사방에서 밀려오는 벽에서 루크 일행은 분열되며 공포에 직면한다(시련).

 

쓰레기장에서 탈출한 루크는 결국 공주를 구출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스승 오비완이 죽는다(보상). 루크는 공주를 데리고 반란군과 합류하는 데 성공하지만, 이내 최대의 적인 다스베이더에게 추격당한다(귀환).

 

 

루크는 다스베이더와 치열하게 싸워서 승리한다. 데스 스타에 의해 격추 직전까지 몰렸던 루크는 한솔로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남는다(부활). 루크는 적진에서 돌아오고, 우주의 평화에 기여했다는 뜻으로 훈장을 받는다(묘약과의 귀환).

 

비단 <스타워즈>만이 아니다. <매트릭스> <더 락> <인디아나 존스> 등 다른 영화에도 영웅담의 12단계 전형을 적용할 수 있다. 편의상 영화로 예를 들었지만, 소설이나 게임도 마찬가지다. 여정에 나선 주인공이 시련을 겪고 보상과 함께 돌아온다. 영웅담에 해당되는 이야기는 이 전형을 벗어나기 어렵다.

 

 

 

영웅담을 구성하는 캐릭터의 7가지 전형

 

영웅담에만 전형이 있는 건 아니다. 영웅담을 구성하는 캐릭터에도 전형이 있다. 조셉 캠벨은 영웅담을 구성하는 캐릭터 역시 7종류로 구분했다.

 

1. 영웅: 영웅은 주인공이자 감정이입의 대상으로 여정을 통해 성장해 나간다. 초반에는 수동적으로 환경에 끌려가다가 후반에는 능동적으로 변하는 특징이 있다. 반드시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다.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와 <스타워즈>의 루크 등이다.

 

2. 조언자: 영웅을 보조하는 존재다. 영웅이 강해지는 계기를 만들고 동기를 부여한다. 때로는 사람이 아닌 그 시대의 덕문이나 가치일 때도 있다. <매트릭스>에서는 모피어스가, <스타워즈>에서는 오비완이 대표적인 조언자다.

 

3. 관문수호자: 영웅을 시험하는 역할을 맡는다. 특별한 세상으로 가는 길을 막고 영웅의 자격을 판단한다. 영웅이 반드시 극복해야 할 첫 상대다. <매트릭스>의 모피어스는 조언자이자 관문수호자다. 그는 주인공에게 현실을 보는 알약과 모든 것을 잊고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알약을 제시한다.

 

<스타워즈>에서는 삼촌 일가가 특별한 세상으로 가는 관문을 지킨다. 루크는 결국 삼촌 일가가 폭격으로 숨진 후에야 특별한 세상으로 가게 된다.

 


4. 전령: 모험에의 소명을 알리는 역할이다. 동기를 부여하며 후반에는 새로운 사실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매트릭스>에서는 오라클이, <스타워즈>에서는 처음 영상을 보여주던 레아 공주가 전령 역할을 맡는다.

 

5. 변신자재자: 영웅을 속이는 존재다. 아군인 줄 알았더니 배신하거나, 적인 줄 알았던 존재가 힘을 합치는 경우를 말한다. <매트릭스>에서는 주인공들이 가상세계에 진입한 사이에 목숨을 노리던 사이퍼가, <스타워즈>에서는 초반에 돈에 눈이 멀었지만 나중에는 태도를 바꾼 한솔로가 변신자재자다.

 

6. 그림자: 영웅을 파멸시키는 존재다. 최고의 적이며 주인공의 콤플렉스, 두려움의 상징이다. 때때로 주인공이 잘못된 길에 빠졌을 때를 상징하기도 한다. <매트릭스>의 그림자는 스미스 요원이다. <스타워즈>에서는 루크의 아버지인 다스베이더가 그림자 역할을 맡는다.

 

7. 트릭스터: 마지막으로 트릭스터는 상황을 복잡하게 꼬는 존재들이다. 말을 바꾸거나 기괴한 행동들로 혼란을 일으킨다. 변신자재자와 비슷하게 볼 수도 있지만, 트릭스터는 누구를 배신하거나 본질이 바뀌지 않은 채 상황만을 복잡하게 만드는 존재들이다.

 

<매트릭스>에서는 모호한 예언으로 주인공 일행을 헷갈리게 만들던 오라클이, <스타워즈>에서는 사고뭉치 3PO와 츄바키가 트릭스터 역할이다.

 




 

다만, 한 명의 캐릭터가 하나의 역할을 맡는 건 아니다. 반대로 두 명 이상의 캐릭터가 한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 조합을 통해 얼마든지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이원 연구원은 캐릭터 한 명이 다층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다. 그 다층적인 역할이 만약 인과관계로 얽혀 있다면 오히려 매력적인 캐릭터가 될 것이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영웅담의 12단계는 어떤 속도로 진행돼야 할까? 영웅담에서는 특정 상황이나 인물이 언제 나오는지도 중요하다. 아래의 그래프는 이원 연구원이 생각하는 영웅담의 캐릭터 배열이다. 적어도 이 시기에는 이 정도 단계가 진행되고, 이런 캐릭터가 나와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다만 영화의 경우에는 그 특성상 초반의 긴장감이 매우 높다.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기대감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원 연구원은 영웅담의 기본구성을 알고 있으면 이야기가 막혔을 때 무엇을 어디에 넣어야 할지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며 강연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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