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서 소리는 잘 들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장시간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넥슨 신규개발2본부 사운드솔루션팀 이윤재 책임연구원은 2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NDC)에서 ‘게임 사운드의 조건, 사운드는 무엇을 위해 디자인돼야 하나’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이윤재 연구원은 입사 초기부터 게임 사운드의 특징이 무엇인지 고민이 많았다. 초기에는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나 배경에 맞는 사운드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5년 이상 일하면서 ‘사운드는 게임이라는 가상의 공간에 공기를 만드는 작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는 여전히 사운드를 만들고 수정하는 일을 반복하는 중이다. 왜 그럴까? 이윤재 연구원은 그에 대한 답변으로 몇 가지 이유를 설명했다. /디스이즈게임 남혁우 기자
넥슨 신규개발2본부 사운드솔루션팀 이윤재 책임연구원.
■ 독창성보다 중요한 것은 재미
넥슨은 청소기를 소재로 한 <우당탕탕 대청소>, 물총을 소재로 한 슈팅게임 <버블파이터>, 우주를 배경으로 한 횡스크롤 슈팅 <배틀스타: 리로드> 등 독특한 게임을 개발해왔다. 그런 만큼 그 게임의 콘셉트에 맞는 사운드를 제작해야 했다. 특히 기존에 없는 사운드를 만들기 위한 고민이 많았다.
<버블파이터>의 경우 물총이 소재라 물을 소재로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기존 총소리와 물총의 소리는 너무나 차이가 심했다. 물총 소리를 넣으면 게임이 너무 밋밋해지고, 반대로 기존 총소리를 넣기에는 이질감이 너무 심했다.
적당한 사운드를 찾지 못해 고민하던 이윤재 연구원은 총소리의 파형을 확인해 보면 어떤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총소리를 확인해 본 결과, 폭발음이 크게 들린 후 길게 여운이 남는 것을 확인하고 이 파형을 그대로 물소리에 적용했다. 결과는 만족스럽게 나왔고, 이렇게 만들어진 총소리가 <버블파이터>에 적용됐다.
기존에 없던 소리를 만드는 것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재미다. <우당탕탕 대청소>의 경우 청소기 자체의 소리와 먼지를 빨아들이는 소리는 실제로 녹음하고, 빨아들인 먼지를 발사하는 소리를 만드는 것으로 상대적으로 간단하게 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실제 소리라도 게임에 적용됐을 때 재미가 없다는 반응이 많아서 결국 3주 동안 끊임 없이 수정한 끝에 게임에 적용할 수 있었다.
이윤재 연구원은 “새로운 소리를 만들 때는 기존 상식에 맞추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어 어떤 물체가 커질 때는 소리도 커지고, 반대로 작아진다면 소리도 작아져야 한다. 이런 상식을 거스를 경우 유저들은 어색함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 한꺼번에 많은 소리를 담지 마라
게임은 실제로 존재하는 모든 소리를 담을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 만약 모든 소리를 넣는다고 해도 모든 소리를 제대로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에어라이더>다. 에어라이더는 초기에 뒤에서 공격을 받으면 기체의 소재에 따라 소리가 다르게 났다. 그런데 기체가 한두 개의 소재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당히 다양한 소리가 동시에 나오면서 유저에게 오히려 불쾌감을 주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윤재 연구원은 “많은 사운드가 유저에게 동시에 들리더라도 결국은 자신이 듣고 싶은 소리만 듣는 칵테일 파티 효과가 일어난다. 즉 총을 쐈으면 명확하게 맞았다고 알려줄 수 있는 사운드를 표현해주면 된다. 디테일을 위해 너무 많은 소리를 한번에 제공하는 것은 오히려 좋지 않다”고 말했다.
사실성을 살리기 위해 모든 소리를 넣다 보면,
오히려 안 좋은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특히 파티플레이의 경우 유저에 따라 플레이가 다른 만큼 들어야 하는 소리도 다르다. 또한 자신에게 필요한 소리가 상대에게는 방해가 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파티플레이로 몬스터를 사냥하던 중 자신이 몬스터를 너무 강하게 공격해서 어그로를 높였다면, 이제 몬스터가 자신을 공격한다는 경고음이 들리게 된다.
하지만 그 경고음은 다른 파티원에게 방해만 된다. 이외에도 다양한 정보의 사운드가 동시 다발적으로 나오면 소리가 겹치면서 제대로 들리지도 않고 플레이하는 유저의 피로도도 높아지게 된다.
이윤재 연구원은 “게임에서 소리는 오랫동안 듣고 있어도 편안한 것이 목표다. 소리가 안 들린다고 무조건 소리를 키우는 것은 피곤함을 늘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보다는 주변 사운드를 낮추는 것이 오히려 나은 선택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잘 들리는 선명도와 편안하게 오래 들을 수 있는 안정성 중 선명도를 우선으로 미리 기획자와 작업해야 한다. 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잘 들리도록 작업하면 점점 소리가 커지고 안정성이 떨어지게 된다. 그보다는 차라리 전체적으로 밋밋한 사운드가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쏘면, 맞는다.’ 행동에 대한 정확한 피드백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사운드는 충분히 제 역할을 한다.
■ 소리를 통해 표현하고 싶은 것만 강조하라
주로 캐릭터의 원화를 보면 그 캐릭터의 성격과 분위기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디아블로 3>의 야만용사의 터질듯한 근육을 보면 그가 힘이 세고, 칼과 도끼 등 다양한 무기를 보면 근접전투에 특화돼 있고, 수많은 상처를 보면 숱한 전투를 거친 베테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그의 인상을 보고 성격을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게임 플레이에서 야만용사는 갑옷을 두르고 있고 작게 표현되는 만큼 원화처럼 한눈에 야만용사의 성격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대신 야만용사의 목소리를 통해 캐릭터성을 함축해서 표현할 수 있다. 힘 있는 기합은 그가 전투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전사라는 점을 알려주고, 카랑카랑하고 쉰 듯한 음성은 그가 이미 많이 함성을 질러왔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 또, 그의 높은 목소리 톤은 그가 분노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렇듯 하나의 음성으로 수많은 내용을 유추할 수 있으므로 캐릭터에 맞는 성우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성우에게 캐릭터 원화나 특성을 전달해 개발진이 어떤 목소리를 원하는지 알리고, 성우가 그런 연기를 할 수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션 사운드는 물리정보를 담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발자국 소리가 둔탁하고, 쇳소리가 나고, 소리의 간격이 길다면 발자국의 주인이 무게가 많이 나가고, 몸이 단단하며, 속도가 느리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유저에게 소리를 들려줘서 미리 예상하거나 대비하게 만들 수 있다.
이외에 아이템이나 시그널 사운드 역시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카트라이더>에서 물파리가 날아오는 ‘웽~’ 하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유저는 ‘잠시 후에 물방울에 갇힌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
사운드는 유저의 감정을 흔들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예를 들어 <배틀스타: 리로드>는 게임의 콘셉트에 맞춰 총을 쏘고 상대를 밟는 쾌감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안정성보다 선명도를 더 강조했다.
이윤재 연구원은 “전투의 쾌감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터 밸런스 조금 어긋나게 했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 게임 사운드의 밸런스가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무조건 강조하겠다고 소리를 키우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예전에 은하계를 표현하는 사운드를 만든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팀원은 호러게임을 만드냐고 하더라. 그만큼 사운드 작업은 주관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 만큼 개발팀 안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이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강연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