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이 3월 29일 미국 완구 회사 해즈브로, 다양한 엔터 계열사를 보유한 반다이남코 홀딩스, 코나미 홀딩스, 세가-사미 홀딩스에 투자한 사실을 밝혔다.
M&A 방식이 아닌, 전에 없던 규모의 투자. 넥슨은 물론 한국 게임 생태계 역사에서도 이례적인 규모와 방식이다.
이번 투자를 어떻게 볼 것인가? 넥슨 사정에 정통한 A와 투자 사업을 하고 있는 B에게 물었다. 자유롭고 솔직한 대화를 위해 익명으로 인터뷰했음을 밝힌다.
넥슨에 밝은 A 씨는 이번 투자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는 "3자 배정 증자도 아니고, 비상장 주식을 산 것도 아니고, 내일이라도 당장 팔 수 있는 주식을 산 것"이라며 "단순 재무적 투자일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해즈브로는 나스닥에 상장했고, 반다이 남코 홀딩스와 세가 사미 홀딩스는 도쿄 증권거래소(TYO)에 상장했다. 코나미는 홀딩스의 자회사 '코나미 디지털 엔터테인먼트'가 TYO에 상장했다. 넥슨코리아가 네 곳의 기업에 획득한 지분은 많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넥슨은 보도자료에서도 "피투자사에 대한 인수 및 경영참여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A 씨는 "코로나19로 호황을 맞은 게임 업계에 주식을 나눠서 담았을 것"이라는 재무적 투자 관점에서 설명했다. 마이너스 금리 때문에 현금 자산을 그대로 놔두는 것은 손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 2월, 넥슨은 2020년 연간 실적 발표에서 "예금성 자산의 환손실 때문에 순이익이 감소했다"고 소개한 바 있다.
넥슨이 해즈브로 등 4개 사에 투자했다는 사실은 29일 주주총회를 통해 공개됐다. 일본어로 공개된 자료에는 넥슨이 4개 사에 투자한 금액이 엔화로 나와있다. 이 금액 수준은 IP 홀더들에게 실질적인 파트너십을 이끌어내기 위함보다는, 단순 재무적 투자로 보는 게 합당하다는 분석이다. 가장 큰 규모의 투자를 받은 해즈브로의 시가총액은 약 15조 3,217억원이다.
해즈브로 539억 1,500만 엔 (약 5,572억 원)
반다이남코 홀딩스 298억 5,900만 엔 (약 3,086억 원)
코나미 홀딩스 205억 2,500만 엔 (약 2,121억 원)
세가사미 91억 7,900만 엔 (약 948억 원)
* 이해를 돕기 위해 일반 환율을 적용하고, 천만 원 이하 단위는 절사했습니다.
2020년 4분기 8억 7,400만 달러를 투자한 넥슨은 현재까지 약 2억 7,900만 달러의 미실현이익을 거두고 있다. 네 곳의 콘텐츠 기업에 투자해 짭짤한 수익을 거두고 있는 셈. 이 돈을 엔화로 들고 있었던 것보다 현명한 결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넥슨 역시 "4분기 투자로 확정된 IP 라이선스 계약은 없다"고 답변했다.
투자 업계에 몸담고 있는 B 씨는 "넥슨이 실제로 최근 플랫폼 및 콘텐츠 기업 투자처를 알아보고 있었다"며 실제로 여러 IP를 거느린 기업들에 투자한 사실을 지적했다. "단순 재무적 투자라고 해도 IP 확보에 대한 욕구를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B 씨는 "일본에서도 IP 홀더들이 직접 게임을 만들지 않고 대부분 외주를 맡기는 것으로 안다"며 "이렇게 OEM(위탁 생산)에서 ODM(업체 개발 생산)으로 넘어가는 흐름이라면, 넥슨이 관계 형성을 위한 투자를 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주가 된다는 것은 그 회사와 관계를 맺고 싶다는 신호이고, 앞으로 사업적 여지를 만들기 위한 밑천으로 쓰일 수 있다는 것.
실제로 넥슨 일본법인은 작년 6월 3일 "글로벌 IP 확보를 위해 15억 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고, 29일 그 결과가 이번 투자라고 명시했다. 작년 6월에는 "누구나 들어 알고 있는 대형 IP에 투자하거나 유망한 기업에 나누어 투자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는데, 그때도 오웬 마호니 CEO는 "회사의 비전을 반영하는 주요 IP 포트폴리오 확보 차원의 투자"라면서 "훌륭한 IP를 만들고 유지해 온 능력 있는 회사들에 투자하고 장기적 관계로 발전하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최근 확률형 아이템 이슈 등이 불거지면서 게임사의 매출원 다각화를 위한 움직임이 바빠졌다"고 이야기한 B 씨는 "넥슨이 단기성 수익을 위해 그런 돈을 투자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넥슨은 전에 없던 포트폴리오가 생긴 것이고, 다른 회사들도 IP 확보를 위한 태핑(Tapping, 사전 시장 조사)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전망이다.
넥슨은 일본산 IP를 빌려서 게임을 만들려 한 적이 여러 번 있다. 이번 투자를 지렛대로 또 다른 IP 게임 개발을 할 수 있다는 분석의 근거로 삼을 만한다.
스퀘어 에닉스와 협업한 <파이널 판타지 11 모바일>은 개발을 취소했고, 도호로부터 IP를 구매해 만든 아케이드 게임 <고질라 디펜스 포스>는 현재 서비스 중이다.
넥슨은 코에이테크모와 하나 이상의 IP 게임 계약을 맺었는데, <삼국지조조전 온라인>은 서비스를 종료했지만, 2019년 3월 맺은 <진·삼국무쌍 8> 모바일 계약은 아직 유효하다. 넥슨 관계자 역시 "<진·삼국무쌍 8> 모바일은 현재 개발 중"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넥슨이 일본 3사의 IP를 빌려온다면, 국내 생태계에는 어떤 도움이 될까? B 씨는 "IP 게임을 만든다고 해도 넥슨 인하우스 조직이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라며 "생태계 차원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