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그러나 안타까운 행보를 보인 게임의 개발진을 만나 '그때 왜 그랬냐'고 직접 물어볼 수 있다는 건 분명 게임 기자의 드문 특혜다. 개발진이 머나먼 스웨덴 땅에 살고 있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지콘 2024 연사로 찾아온 샴스 조르자니 CEO, 요한 필레스테 CCO를 인터뷰한 건 그런 관점에서 큰 행운이다. <헬다이버즈 2>는 2024년 가장 핫한 게임이자 가장 논란적인 게임 중 하나다. 연초의 <헬다이버즈 2>는 말 그대로 글로벌 히트작이었다. 기존 협동 슈터 장르와 차별화하는 하드코어·리얼리티 감성, 창발적 플레이를 가능케 하는 시스템적 정교함, 그리고 다크한 유머 감각은 대체되기 힘든 매력을 선사했다.
그러나 이후 운영에서 플레이어들의 정서와 동떨어진 방향을 추구하면서 게임의 인기는 빠르게 식어갔다. 팬덤과의 격렬한 갈등 끝에 사과와 복구를 선언한 개발진은 다행히 정말로 게임의 재미를 상당부분 되살려냈고, 유저 반응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예전의 인기를 되찾는 것은(만약 그럴 수 있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와, 당시 개발진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들은 앞으로 어떤 철학으로 게임을 끌어나갈 계획일까? <헬다이버즈 2>의 가까운 미래엔 무엇이 찾아올까? 직접 들어보자.
(왼쪽) 샴스 조르자니 CEO, 요한 필레스테 CCO
Q. 여러분의 소개 먼저 부탁드린다.
A. 요한 필레스테 CCO(이하 필레스테): 나는 애로우헤드 CCO 요한 필레스테다. <헬다이버스 2>의 창작 디렉터이자, 이전에는 애로우헤드의 창립자 겸 CEO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A. 샴스 조르자니 CEO(이하 조르자니): 나는 지난 5월 20일부터 CEO를 맡고 있는 샴스 조르자니다. 이전에는 패러독스 사에서 12년간 일했다. 비즈니스 개발부 헤드로 일하다가 임원급으로 승진했었고, 전략 게임 퍼블리셔인 후디드 호스에도 관여했었다.
패러독스 재직 당시 첫 번째로 했던 일이 애로우헤드의 첫 작품인 <매지카> 마케팅이다. 애로우헤드의 두 번째 게임에서도 협력했고, 이후로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A. 필레스테: 함께 일해보자는 얘기를 계속해 왔었다. <헬다이버스 2> 흥행 이후 나는 기업 대표로의 경험은 충분하다고 느꼈고, 또한 열정적으로 기업을 성장시킬 새로운 리더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특히나 150명의 개발자, 50~70명가량의 외부 개발자까지 두게 된 상황에서는 더욱 그랬다.
Q. 개인적으로 <헬다이버스> 1편 팬이다. 2편을 처음 했을 때, 전편과 너무나 다르면서도 특유의 격렬한 플레이는 똑같이 펼쳐지는 점이 흥미로웠다. 1편의 재해석 과정이 구체적으로 어땠는지 설명해 준다면?
A. 필레스테: 2편의 시작부터 설명해 보겠다. 1편 출시 당시 우리 팀은 PS 산하의 개발사 지원 프로젝트 소속이었다. 프로젝트의 목적은 멋진 작품을 만드는 인디 스튜디오와 계약하여 장기적으로 큰 개발사가 될 때까지 지원하는 것이었다. 애로우헤드는 해당 프로젝트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다.
<헬다이버스>가 출시된 이후 우리는 PS와 함께 다음 단계를 논의했다. PS는 우리에게 더 큰 게임을 바라고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무얼 만들지가 관건이었다. 그렇게 선택된 것이 <헬다이버스>였다. 전편의 핵심을 살리면서도 이를 삼인칭 게임으로 바꿔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이후 실제 게임 디자인 및 개발에 돌입했을 때, 1편의 핵심 원칙은 고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아트 스타일은 물론, ‘스트라타젬’과 같은 핵심 기능은 분명히 계승되어야 할 터였다. 대신 1편의 ‘철학’만을 계승한 뒤 이를 중심으로 2편을 새로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1편의 기능들을 그대로 가져와 여기저기로 옮겨 놓는 대신에 말이다.
1편은 탑뷰였지만 TPS를 참고하면서 하드코어해졌다. 원래부터 TPS인 2편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주는 방법을 개발진은 고민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헬다이버스> 1편부터가 애초에 ‘TPS의 게임 메카닉을 트윈스틱 슈터로 만들자’는 기획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보여주는 숨겨진 요소로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1편에서 컨트롤러의 오른쪽 트리거를 누르면, TPS 게임에서 정조준 버튼을 눌렀을 때처럼 정확한 조준을 하면서 캐릭터가 느려진다.
이러한 정신으로 게임을 만들었기 때문에, <헬다이버스>는 탑뷰 시점 치고 매우 정교한 게임이 되었다. 하지만 <헬다이버스 2>는 이미 TPS 게임이니, TPS 장르에 영감을 받아 정교하게 만든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그렇다면 적어도 일반적인 외계인 TPS 게임들보다는 조금 더 정교하게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스쿼드>,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 <아르마> 같은 밀리터리 슈터에 조금 더 가깝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헬다이버스>와 똑같은 (정교하고 어려운) 게임플레이 톤을 2편의 삼인칭 시점에서도 구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헬다이버스> 1편의 정체성 해당하는 많은 것들, 이를테면 스트라타젬을 호출하는 방법부터, 적 무리, 절차적 생성 등을 유지 혹은 바꿀 것인지 실험해 나갔고, 이것들이 2편의 기둥이 되었다.
그렇게 2편으로 와 TPS로 바뀌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시야 공유 개념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1편에서는 모두가 같은 화면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협동하기가 쉬웠다. 예를 들어 ‘오른쪽 위’에서 적이 온다’고 하면 모두가 그걸 볼 수 있었다. 하지만 2편에서는 되도록 카메라를 멀리 잡아서 주변을 볼 수 있게 하더라도 그러한 인식 공유가 어려웠다.
그래서 결국 유저들이 자신의 위치를 잘 인식할 수 있도록 UI를 조금 수정해야 했다. 또한 스트라타젬을 불렀을 때도 그 위로 광선이 생겨서 다른 유저들이 위치를 알 수 있도록 했다.
Q. 방금 이야기한 대로 <헬다이버스 2>는 전편에서 규모를 확 키운 게임인데, 그만큼의 기술적 도약이기도 했다. 이에 필요한 전문성은 어떻게 확보했으며, 소니는 어떻게 도움을 주었는지 알고 싶다.
A. 필레스테: <헬다이버스 2>는 지금과 비교하면 훨씬 작은 프로젝트였다. 개발 기간은 3년으로 잡았고, 20달러~30달러 가격대로 판매할 예정이었다.
그런 목표에 맞춰 첫 버전을 만들었을 때, 보기에도 좋고 재미도 있었다. 그랬더니 PS가 혹시 게임을 더 키워볼 생각이 없냐고 물었고, 우리는 당연히 환호했다. 그렇게 예산 규모를 키우고 사람도 더 뽑아서 새 버전을 그럴듯하게 만들었더니 소니가 더 키워 보겠냐는 거다.
그러자고 했지. 문제는 기업 규모가 너무 빨리 커져서 제대로 된 지원 조직이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거고, 그러다 보니 개발이 지연되고 또 지연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다행히 소니가 매우 적극적으로 우리를 지원해 줬고, 특히 PS쪽 임원진이 우리의 개발력에 강한 신뢰를 표해줬다.
기술적 전문성 확보에 있어서는 <헬다이버스> 1편에서 쓰던 엔진을 아직도 쓰고 있는데, 그래서 엔진 대부분을 손수 고쳐야만 했다. 우리 스튜디오는 이만한 퀄리티의 게임을 만드는 법을 지난 8년에 걸쳐 학습했다.
더 빠르게 만들 수는 없었을 것 같다. 그만큼의 능력이 안 됐기 때문이다. 물론 스톡홀름 게임 산업의 뛰어난 베테랑 인재들을 끌어들이기는 했지만, 원래의 <헬다이버스> 팀과 통합되었을 때에야 그들의 도움을 제대로 받을 수 있었다.
A. 조르자니: 여러 시기에 걸쳐 많은 시니어 엔지니어를 영입해 도움을 얻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진 소니의 지원이 없었다면 <헬다이버스 2>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다.
소니는 우리 프로젝트에 항상 믿음을 가져줬다. 소니 내에서도 (우리를 지원한 팀은) 진정한 승자다. <헬다이버스 2> 흥행은 우리에게도 좋은 일이지만, 큰 스윙을 해서 홈런을 낸 그 팀에게도 호재였다. 크게 휘둘렀는데 히트를 못 하는 게임도 있으니 말이다.
소니의 모든 AAA게임이 성공을 거두지는 못한다.
Q. ‘60일 패치’라고 불리는 장기 업데이트를 통해 게임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개발진의 주된 의도는 무엇이었는지, 유저 반응은 어떤지 이야기해달라.
* <헬다이버스 2>는 지속적으로 게임플레이를 어렵게 만드는 패치 방향성으로 인해 유저 반발을 샀던 바 있다. 이에 유저의 9할가량이 게임을 떠난 것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이에 애로우헤드는 60일에 걸쳐 게임을 고치겠다는 계획을 선포하고 최근 완수했다.
A. 필레스테: 60일 패치를 하겠다는 약속은 첫 대형 업데이트였던 ‘자유의 확대’ 업데이트 이후 이뤄졌다. 해당 시점 우리는 화염 무기가 많이 들어 있는 ‘자유의 불길’ 전쟁채권(배틀패스)을 출시했는데, 그래 놓고 화염 무기를 크게 너프했었다.
이에 쌓였던 유저들의 분노가 폭발했고, 조르자니는 전사가 집중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방침을 내놓게 됐다.
60일 패치 계획의 목표는 게임을 초기 상태로 돌려놓는 것이었다. 그전까지 우리는 재미를 위한 밸런싱이 아니라 밸런싱을 위한 밸런싱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A. 조르자니: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들 하지 않나. 게임 표지에 그려진 로망, 트레일러에 나오는 로망이 실제 게임에도 구현되어야 한다고.
원래는 <헬다이버스 2>도 그런 게임이었다. 광고에 나온 대로 외계인의 머리를 박살 내고 동료와 하이 파이브를 하는 게임이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점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고, 원래의 로망은 사라지고 말았다.
60일 패치는 게임을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기 위한 것이었다. 나침반을 리셋해서, 유저들이 ‘헬다이버’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밸런스도 좋지만 재미있게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또 다른 중요한 목표는 유저 커뮤니티가 지적하는 문제와 페인포인트(pain point·불편한 지점)를 정확히 해결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래그돌이 되는 문제 ▲테스트 서버 문제 ▲‘차저’ 밸런싱 ▲화염방사기 계열 무기 밸런싱 ▲기타 안정성 문제 등 7개 문제 해결에 나섰고 그중 6개 해결에 성공했다.
그런 문제들을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며, 해결 계획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해당 시점 이후로는 이를 전면에 내세우고 중심으로 삼기로 했다. 이것들을 해결하기 전에는 다른 건 전혀 안 하겠다는 계획이었고, 덕분에 일부 다른 계획이 밀리거나 취소되기도 했지만, 게임이 하락세였기 때문에 잘 내린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60일 계획에 대한 유저 반응은 긍정적이다. 사진은 스팀 커뮤니티 페이지에 올라온 개발진의 말.
Q. 변경의 방향성을 더 정확하게 설명해 준다면?
A. 필레스테: 밸런싱 변경을 위해 일단 게임 디자이너들을 한군데 모아 일종의 사고 실험을 진행했다. 디자이너들에게 특정한 적을 죽이기 위해 필요한 탄환 수는 몇 발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본 거다. 예를 들어 ‘차저’를 죽이기 위해 몇 발의 무반동포가 필요하다고 느끼는지 물어봤다.
그런 뒤 해당 수치를 게임 속 실제 수치와 비교해 봤다. 디자이너들은 피격 부위에 따라 다르겠지만 4발 정도면 테르미니드(벌레형 적)를 잡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 게임을 보니 6~8발은 써야 테르미니드를 잡을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우리는 개발진 스스로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수치와 비교해서도 두 배에 달하는 탄환을 쓰라고 유저들에게 요구해 왔다. 그러나 이건 게임 속 세상에 형성되어 있는 현실감과도 불일치하고, 게임의 비주얼과도 불일치하며, 게임 속에 묘사되고 있는 상황과도 불일치했다.
A. 조르자니: 출시 트레일러에서는 바일 타이탄의 머리를 한 방에 날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게임에서는 5발을 쏴야 한다니 말이 안 되지 않나. 그러나 게임 디자이너들에게 그 탓을 돌리고 싶지 않다. 그런 방향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리더들의 책임이다.
A. 필레스테: 그런 철학에 따라 우리가 고친 핵심적인 시스템 중 하나가 대전차 무기들이다. 우리 게임에는 단단한 갑옷(장갑)을 두른 적에게는 약한 무기가 소용 없어지는 시스템이 있다.
문제는 그 시스템을 통해 우리가 구현하려고 한 바가 무엇이었냐는 것이다. 플레이어 데이터와 온라인상의 관련 글들을 살펴보니, 일정 난이도 이상에서는 유저들이 특정 유형의 스트라타젬만 사용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는 자문했다. 이게 정말 우리가 원하던 게임플레이 경험인가?
트레일러에서 광고한 '판타지'를 게임에서도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개발진 생각이지만, 회사 내에서 이 비전이 제대로 얼라인되지는 못했었다.
아니었다. 내가 원래 의도했던 것은 대전차 무기가 없는 상태에서 단단한 적을 만났을 때, ‘연장을 잘못 가져왔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이었다. 대전차 무기가 없으면 무조건 지게 만들 생각이 아니었다.
패치 이전까지는 대전차 무기를 가지고도 기술이 좋아야 단단한 적을 해치울 수 있었고, 대전차 무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우리가 원하는 새로운 방향성은 대전차 무기를 가진 팀원이 단단한 적을 삭제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 여전히 동료들과의 협동은 필요하겠지만, 어딜 맞추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미 대전차 무기를 가지고 왔다는 사실 자체가 옳은 결정이기 때문에, 거기에 추가적인 사격 실력까지 요구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반면, 대전차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때부터는 어려워진다. 특별한 사격 기술이 필요해지거나,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하거나, 맵에 떨어진 적절한 도구를 찾아야 한다.
어쨌든 이런 변화 덕분에 더 상위 난이도에서도 다양한 스트라타젬 활용이 가능해졌다. 덕분에 팀원 간의 다양한 장비 조합도 가능해졌다. 이전에는 모든 유저가 대전차 무기를 착용해야 했는데, 이제는 한 명이 무반동포를 착용하면, 다른 유저들은 기관총 등 다른 무장을 선택할 수 있다.
Q. 아까 게임이 다른 방향으로 잘못 흘러갔었다고 말했는데, 그 구체적인 원인은 뭐였나?
A. 조르자니: 별로 대단한 문제는 아니었기 때문에, 이 얘길 하면 우리가 바보 같아 보일 수 있겠다.
어쨌든 얘기해보자면, 스웨덴 사람들은 1년에 6주를 쉰다. 스웨덴 겨울은 미친 듯이 길기 때문이다.
이 게임은 8년 동안 개발되었다. 상당히 긴 기간이다. 원래 애로우헤드는 여름이 되면 직원들에게 ‘필요한 만큼 휴가를 가라. 다만 여름 내내 사라지지는 않아 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휴가가 기니까, 스웨덴 사람들은 보통 여름 내내 사라진다.
게임 출시가 다가오던 올해 초, 마감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고충이 있었고 5월쯤 되지 직원들은 매우 지친 상태였다. 다들 휴가가 절실한 상황이었고, 그래서 어서 휴가를 가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임원진까지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갔다.
그렇게 회사에 남은 사람들은 게임의 방향성을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대답해 줄 사람도 많지 않았고, 답이 될 문서도 충분하지 않았다.
출시 이전이라면 새로 개발된 요소가 잘못되었더라도, 돌아보고 고칠 시간이 충분히 있다. 그런데 라이브 게임에서는 신규 요소가 바로 드러나 버린다. 출시 직후까지만 해도 전 직원이 새 콘텐츠를 검토해 문제가 없었지만, 해당 시점엔 그럴 사람이 회사에 많이 없었다. 그렇게 충분히 검토받지 못한 시스템과 콘텐츠가 나왔다.
"스웨덴 사람들은 1년에 6주를 쉰다"
A. 필레스테: 작년에는 많은 직원들이 휴가를 반납했다. 그런 상태에서 게임은 출시됐는데, 출시 이후에도 우린 너무 바빴다. 여름쯤에는 다들 너무 지쳐서 말 그대로 앉아서 졸고 있을 정도였다.
회사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회사에 새로 합류해서 아직 지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문제는 새로 합류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른 개발자들과 충분한 얼라인(align)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함께 게임을 만들 때는 얼라인이 중요하다. 무엇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의견을 통일하고, 같은 스타일을 유지하고,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추구하는 바를 일치시켜야 한다. 불행히도 우리는 그러지 못한 상태였다.
Q. <헬다이버스 2>에서 내가 좋아하는 점은, 게임에 아주 여러 층위의 메카닉이 숨어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화염방사기를 장착한 적(헐크)의 팔을 쏘면, 화염 공격을 순간 저지할 수 있다. 이는 게임에 깊이와 흥미를 크게 더해주는 요소지만, 단순 게임플레이로는 깨닫기 매우 힘들다는 문제가 있다. 이런 요소들을 안 보이게 숨겨 둔 디자인적 의도가 무엇인가?
A. 필레스테: 그 점을 언급해 줘서 기쁘다. 왜냐하면 내가 <헬다이버스 2>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유를 설명하자면, 유저들을 더 고차원적인 게임플레이로 끌어들이기 위함이다.
비교적 시스템이 단순한 <레프트4데드>를 플레이하던 유저가 <헬다이버스 2>를 플레이하는 상황을 가정해 설명해 보겠다. 처음에는 다른 외계인 슈팅 게임과 똑같이 단순한 게임플레이 방식을 즐길 것이다. 그런데 이 유저는 난이도를 계속 높여 가면서 플레이를 반복하던 끝에 하나의 패턴을 발견하게 된다.
벌레(테르미니드)들을 계속 쏘다 보니, 어느 시점에는 적들이 천천히 기어 오는 것이다. 유저는 대체 무슨 영문인지 생각해 보다가 깨닫게 된다. ‘아, 다리를 쏴서 느려지게 만들 수 있구나.’ 이후 그 유저는 다른 숨겨진 요소들은 뭐가 있을지 궁금해하며 게임 플레이를 이어 나가게 된다.
이러한 ‘발견의 기쁨’을 주는 시스템이다. 다른 게임에서는 주로 ‘장소’를 발견하는 것과 달리, 우리 게임에서는 ‘메카닉’을 발견하는 것일 뿐. 그런데 장소 발견이 중요한 어드벤처 게임에서 상세한 맵을 유저에게 주지는 않는다. <헬다이버스 2>의 여러 메카닉이 숨겨져 있는 것도 똑같은 이유다.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유저 간 소셜 요소가 될 수 있어서다. 소셜 요소란 게임을 두고 벌어지는 유저 간의 모든 상호작용을 얘기한다. 여기에는 게임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것도 포함된다. 옛날에는 게임을 플레이하다가 못 깨는 보스가 나오면 학교에 가서 어떻게 깨는지 물어봤었지 않나? 몰랐던 비밀을 그렇게 전수받아 시스템을 파악하면서, 조준 실력이나 사격 실력 이외의 방향으로 자기 실력을 키울 수 있다.
A. 조르자니: 우리는 퀘스트나 스토리라인을 직접 부여해 주는 게임보다는 유저들이 만들게 유도하는 게임을 좋아한다. 그런 시스템적(systemic) 게임에서는 게임플레이에서 발생하는 로망이 대부분 유저의 머릿속에서 창작된다.
이런 유형의 게임에서는 유저가 발견한 시스템의 작동 원리가 게임 내의 여러 곳에서 먹힐 때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게임 속 로직이 내적 일관성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과도 일치할 때의 경험은 환상적이다. 가령 게임 속에서 총알이 적 장갑에 맞아 도탄 되는 모습을 보고, 수면에도 총을 쏴봤는데 총알이 튕겨 나가는 상황 같은 것 말이다.
A. 필레스테: 어떤 <헬다이버즈 2> 플레이 영상에서 본 장면이 생각난다. 한 유저가 금속 표면에 예각으로 레일건을 발사해서, 탄환이 굴절됐다. 그런데 그게 공교롭게도 뒤에서 날아들던 적 수송선에 맞아 수송선이 추락했는데, 그 수송선이 또 하필 파괴 목표 위에 떨어져 목표가 완수되는 장면이었다. 그런 상황들은 우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헬다이버즈 레딧에서는 150만 유저들이 활동 중이다.
A. 조르자니: 그런 시스템하에서는 온갖 영화적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실제로 우리 게임에는 시네마틱 컷씬은 거의 없는데, 영화 같은 장면은 자주 나온다.
A. 필레스테: 유저들이 자기 취향대로 게임을 가지고 놀게 해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어떤 레딧 유저는 모든 벌레들의 다리를 사격해서 전부 기어 오게 만들고는 ‘나 싸이코패스일까?’라고 올렸더라(웃음).
A. 조르자니: 많은 AAA 게임이 아주 훌륭한 스토리, 그러나 정해진 스토리를 전달한다. 하지만 우리는 유저들이 이야기를 만들기를 원한다.
Q. 나도 그런 이유로 여러분의 게임을 좋아한다. 그런데 60일 패치 이후로, 미안한 얘기지만 그러한 메카닉 중 일부가 조금 무용지물이 된 것 같다. 예를 들어 적들이 이제 별로 위험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팔다리를 자를 필요가 없어졌다. 이런 상황에 팀원들 모두가 완전히 만족하고 있나?
A. 필레스테: 사실 어떤 것에도 완전히 만족하지는 않고 있다(웃음). 언제나 개선의 여지는 남아 있기 마련이다.
당신 말처럼 실제로 스튜디오 내에는 그런 요소를 살리고 싶은 니즈가 남아 있다. 새로운 적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그런 메카닉들을 더 활용할 방안을 논의하고는 한다. 특히 팔다리 절단이나 적 장갑의 특정 부위를 사격하는 메카닉 등을 살리고 싶어 한다. 혹은 어쩌면 적들의 위험성을 조금은 재조정해야 할 수도 있겠다.
A. 조르자니: 새로운 시스템이나 무기를 게임에 더하다 보면, 이전의 시스템이 조금 덜 의미 있게 될 수 있다. 그럴 때면 다시 돌아가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도 팔다리는 자를 수 있기는 하지. 하지만 메카닉적으로 봤을 때 그러는 게 유의미한가? 그렇지 않다면 개선 사항을 찾거나, 해당 시스템의 용도를 바꾸거나 해야겠지.
A. 필레스테: 어쨌든 우리는 최소 10년은 이 게임을 서비스하고 싶다. 진정한 라이브게임의 최대 장점은, 게임이 계속 진화해 나간다는 점이다. 4년 뒤에 우리 게임을 플레이한다고 가정할 때, 지금과는 전혀 다른 게임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의 궁극적 야심은 <헬다이버스 2>를 그대로 진화시키면서 <헬다이버스 3>, <헬다이버스 4>처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A. 조르자니: 가끔 우리끼리 그런 얘기를 한다. 오늘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2년 뒤에 깨어나서 <헬다이버스 2>를 다시 플레이한다면 어떨까? 그런 상황이 된다면 너무나 많은 것이 추가되어서 놀랄 수 있기를 바란다.
Q. 그렇다면 게임의 처음과 비교해서 지금의 <헬다이버스 2>에서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변경 사항으로는 무엇이 있나?
A. 필레스테: 좋은 질문이다. 나는 유저들이 ‘은하계 전쟁’에서 더 많은 주도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좋다. 처음에는 은하계 전쟁이 다소 피상적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유저들이 뭉쳐서 ‘민주주의 우주정거장’을 가동시킨 뒤, 행성에 세 가지 중 하나의 효과를 적용시킬 수 있다. 행성에 보호 효과를 부여하거나, 아군 화력을 높여 점령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이 도입되자 유저 커뮤니티에서 정거장 배치 위치를 정하는 투표가 이뤄지고 있다.
이전까지는 행성이 공격당할 경우 직접 방어하거나, 병력 원천이 되는 행성을 치는 두 가지 선택지만 있었다. 지금은 우주 정거장 덕분에 대처방안이 늘어났다. 이것은 우리의 향후 목표와도 일치한다. 우리는 유저 커뮤니티에게 더 큰 주도권을 줘서 더 많은 도박을 할 수 있게 만들고 싶다.
또한 무기와 스트라젬이 증가한 것도 마음에 든다. 새 장난감이 정말 많이 추가됐다. ‘해방의 날’ 이벤트로 주어진 ‘컨스티튜션’이 내 ‘최애’ 아이템이다. 컨스티튜션은 ‘밈 무기’인데, 이것만 가지고 난이도 7 깨기에 도전하거나, 대검 돌격을 맞추려고 해보거나 하는 게 재미있다.
A. 조르자니: 하나를 콕 집어서 말하기는 힘들다. 대신 이 그림을 봐줬으면 한다.
조르자니가 보여준 이미지
보면 꼭짓점이 하나씩만 늘어나도, 각 꼭짓점을 잇는 선은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우리 게임도 이런 과정을 밟고 있다. 무기, 성장, 적, 미션 등에 시스템을 하나씩 추가하고 있는데 이렇게 늘어나다 보면 이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수많은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도 요소가 많아 다양한 상황이 펼쳐지지만 앞으로 더 추가되길 바라고 있다.
Q. 게임의 앞날에 대한 계획을 물어봐야 할 것 같다.
A. 조르자니: 당장 추가될 것들에 대해서는, 유저들의 재미를 위해 비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자세히 말해주기는 힘들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너무 멀리를 바라보고 계획을 세우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커뮤니티의 반응을 확인해 가면서 결정하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가 온라인상에서 유저들에게 어떤 요소에 대해 반복적으로 의견을 구한다면, 그건 우리가 해당 요소의 추가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뜻이다.
전반적인 스토리와 콘텐츠 방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황을 보면서 유연성을 발휘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다른 유저들을 사살하는 데만 관심 있는 유저들이 나타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3개월 단위로 대형 업데이트를 하고, 몇 주 뒤에 후속 콘텐츠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것이다. 기본 업데이트 주기는 6주 단위라고 보면 된다. 그런 체계를 유지하면서 점점 게임의 덩치를 키우고, 이후로 게임이 어디로 나아갈 수 있을지 살펴볼 것이다.
약 2년 간의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건 모두 변할 거다. 왜냐하면 유저들이 변화를 바랄 것이기 때문이다.
A. 필레스테: 앞서 조르자니가 이야기한 시스템의 진화는 다시 두 가지 방향성으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첫째는 유저들에게 진척도 시스템에 있어 더 많은 자유도를 줘서 다양한 방식으로 플레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는 유저가 게임플레이를 통해 계속 놀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게임이 처음 나왔을 때는 모든 것이 유저들에게 새로웠고 신선했다. 우리가 절차적 맵 생성을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다. 맵을 미리 파악할 수 없으니,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정확히 예측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제 유저들은 맵은 미리 파악할 수 없더라도, 미션에 대해서는 잘 파악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임기응변’의 판타지가 조금 감쇄한 것 같다. 예를 들어 ICBM 미션을 발견하면, 그것이 어떻게 플레이될지 정확히 알 수 있다.
A. 조르자니: 그런데 ICBM 미션인 줄 알고 가다 보니 갑자기 중간에 미션이 바뀐다면 어떻게 될까?
A. 필레스테: 그렇다. 그렇게 두 가지 목표를 세우고 있다. 진척도 시스템의 자유도, 변칙적 미션.
A. 조르자니: 꽤 큰 변화가 될 것인데, 비교적 빨리 달성할 수 있는 목표이기도 하다.
A 필레스테: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다음 업데이트에서 커다란 세 가지가 찾아올 것이다. 유저들이 정말 좋아할 것 같다.
A. 조르자니: 자세히 얘기는 못 하지만, 우회적으로 말하자면, 플레이어들이 그간 계속 바라던 것이고 일부는 아주 놀라울 것이다. 새로운 큰 요소의 시작이 될 거다.
Q. 마지막은 뻔한 질문이다. 한국 팬들에게 한마디씩 한다면?
A. 필레스테: 재미있는 현상 중 하나가, 은하계 전쟁에서 미국인들이 자러 간 뒤에 가장 열심히 싸우는 것이 바로 한국인들이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유저가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A. 조르자니: 한국인들은 유럽과 중동 사람들이 접속할 때까지 계속해서 싸움을 이어간다. 이런 요소가 은하계 전쟁에 도입되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 커뮤니티나 유저 간 경쟁이 펼쳐져서 유저들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면 재미있을 것 같다.
A. 필레스테: 한국인들이 이렇게 열심히 싸워주는 것이 우리에게 응원이 되고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