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당의 불쾌한 골짜기
게이머와 게임 노동자들이 이들 자신을 대변하겠다던 정의당 류호정 후보의 등장을 반기지 않고 있다. 류 후보의 존재를 '불쾌한 골짜기'처럼 여긴다. 왜 그럴까?
먼저 기자가 취재한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대리게임을 싫어했다. 어떤 의도였든간에 대리게임 이력은 류 후보에게 원죄처럼 남게 됐다. 이 원죄는 대속되지 않기 때문에 류 후보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류호정 후보는 여러 차례 자신의 과거에 대한 사과를 했다. 하지만 제기된 의혹에 대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따라서 그 사과에 "ㅇㅋ 앞으로 잘 하세요"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3월 14일, 후보 측은 "소명 자료가 있다"라고 밝혔고 같은 날 정의당 전국위원회의 재신임을 받았다. 그러나 후보가 정말 떳떳하다면 이제 게이머와 게임 노동자의 신임을 받아야 할 것이다.
믿음을 얻으려면 진정성을 입증하면 된다. 24일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류 후보가 펄어비스의 노동 환경을 문제삼은 것은 "IT, 게임 업계 모든 노동자를 위한" 정치인으로 진정성을 보여주려는 시도였다. "대리게임 논란을 물타기하려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기자는 정당의 정치인이 이슈를 포착하고 움직임을 만드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 대리게임보다 더 큰 문제
그런데 바로 여기서 결정적 문제가 드러났다. 정의당은 IT와 게임을 핵심 아젠다로 삼은 듯하지만, 그 정책 전문성이 떨어진다. 의제를 짜는 정당과 정치인의 이해도가 낮다는 것이다. 이것은 6년 전 대리게임보다 더 큰 문제다.
류호정 후보는 펄어비스가 평균 근속연수도 짧고 기간제 근로자 비율도 높다고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펄어비스는 비교군과 놓고 보면 생긴지 얼마 안 된 기업이고, 그래서 평균 근속이 짧을 수밖에 없고, 2017년부터 직원 규모를 확장했다는 점은 논하지 않았다. 자회사를 운영하는 회사들과 달리 기간제 근로자를 직접 고용하고 있다는 점도 말하지 않았다. 모르고 있었다면 전문성 부족, 알고도 그랬다면 아전인수다.
고용 안정을 꺼내는 관점도 다분히 제조업 중심적이다. IT 업종에 이직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 이유는 IT 노동자가 대체로 평생 직장보다는 더 좋은 커리어를 위한 양금택목(良衾擇木)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알아주는 나무를 골라서 둥지를 트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정경인 대표가 인정했듯, 펄어비스는 그 과정을 회사 차원에서 강하게 밀어붙였기 때문에 문제가 됐다.
기본적으로 펄어비스가 아니라 그 어느 곳이든 사람을 기계로 보는 태도는 옳지 않다. 권고사직을 쉬운 해고 방법으로 남발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직이 많은 업계의 경향성은 짚어볼 필요가 있다.
# 패치에는 패치노트가 필요하다
류 후보는 십여 명의 펄어비스 전·현직 직원의 증언을 구글 설문조사로 확보했다. 기자는 그 안에 거짓 증언이 존재할 확률이 낮다고 본다.
그렇지만 최소한 자료에는 몇 명을, 어떤 방식으로 조사했고, 누구나 대답을 남길 수 있는 구글 설문조사 툴의 한계는 어떻게 극복했고, 증언 간의 크로스체크, 팩트체크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설명은 담겨있어야 한다. 자기 자료의 신뢰성을 담보하는 것은 사회조사방법론의 기본이다.
2016년, 정의당은 노동건강연대와 '넷마블 전현직 게임개발자 대상 노동조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넷마블에 과로가 얼마나 어떻게 있는지 조사하는 설문이었고, 당시 500명 넘는 개발자가 설문에 참여했다고 알려졌다. 넷마블은 반박했다. 당시 서장원 부사장은 "구글독스 플랫폼은 답변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어 신뢰하기 어렵다"라는 메시지를 냈다.
2020년 정의당은 똑같이 구글 플랫폼을 이용한 전략을 수립했다. 그런데 공개된 자료에는 이전 빌드(2016년)에서 생겼던 문제를 어떻게 디버그했는지 나와있지 않았다. 기자가 물어본 뒤에야 정의당 측은 "직접 만나서 명함을 교환했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회사에서 근무한 적 있는지) 진위 여부를 알 수 있어 거짓 증언은 없을 것으로 본다"라고 설명했다.
2016년 정의당과 설문조사를 기획했던 게임개발자연대 김환민 대표는 "정의당의 IT, 게임 관련 연구 전문성이 매우 떨어진다"라며 "게임 개발환경이 뭐가 문제고 무슨 문화가 바뀌어야하는지 정책을 연구하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 그런데 패치는 됐을까?
그래서 가장 중요한 '무엇을 할 것인가' 파트를 살펴보자.
류호정 후보는 해결 방안으로 ▲ 포괄임금제 폐지 제도화 ▲ 재량간주근로시간제 운영 가이드 폐지 ▲ IT노동자 신고센터 운영 ▲ 고용노동부 근로 감독 ▲ IT 노동조합 설립 지원을 제시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어떻게'가 따라오지 않았다. 그래서 기자는 정의당이 아젠다 세팅은 했지만, 아마추어리즘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포괄임금제는 이미 고용노동부 중심으로 폐지 절차를 밟고 있다. 펄어비스의 사례로 재량간주근로시간제의 가이드를 폐지하자고 하는 것은 그 근거가 부족하다. 제도가 아니라 가이드를 폐지하자는 뜻인데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제도의 회색지대에서 발생하는 부당 노동행위를 없애기 위해 가이드가 보다 촘촘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옳다.
고용노동부의 근로 감독은 정당의 일이 아니니 '요구' 수준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대상의 필요성, 정당의 역할, 수립 계획이 나오지 않아 'IT노동자 신고센터'와 'IT 노동조합 설립 지원'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 "2016년 (본인이) 정의당 게임 정책 수립에 일조했다"라고 밝힌 김환민 대표는 "4년 전 정책에서 달라진 게 거의 없다"라고 주장했다.
# IT를 논하는 정의당에 없는 것
'어떻게'가 없는 사례는 또 있다.
3월 22일, 정의당은 '텔레그램 n번방 방지 및 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면서 2019년 윤소하 의원이 발의한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을 소개했는데, 현재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아 누락된 법 개정안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 내용을 실현시키기 어렵다. 개정안에는 "온라인서비스 제공자가 불법촬영물을 발견하기 위한 조치를 해야 하며, 발견 즉시 기술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라는 의무 조항이 포함되어있다. 기자가 만난 한 현직 프로그래머는 "유튜브 같은 곳이라면 가능하겠지만 대부분의 업체들이 이런 필터링을 할 역량이 안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모든' 온라인서비스 제공자가 불법 촬영물에 대한 정보를 미리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를 바탕으로 올라오는 콘텐츠를 전부 스캐닝하는 막대한 시스템 리소스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 방법은 소개되어있지 않다.
무슨 일이 있어도 불법촬영물을 찍거나 유포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규제의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그 해결 방안에는 마찬가지로 '어떻게'가 빠져있다. 정의당은 규제를 이야기하면서 그것을 뒷받침하는 기술이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 설명하지 않고 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그랬다. 기자는 코딩엔 젬병이지만 개발자가 어떤 사람들인지는 안다. 짧은 취재 경력이지만 기자들이 만난 개발자들은 정합성의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틀린 것을 못 참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긱(Geek)이다. 사전적으로 '괴짜'를 의미하는 긱은 자기 분야에 탁월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 분야에 애정을 쏟는 사람을 일컫는다.
정의당에는 자신의 진보적 아젠다에 필요한 기술을 논증하는 싱크탱크가 없다. 쉽게 말해서 긱이 없다. 지금 개발자들에게 정의당의 IT 정책은 '모던하고도 클래식한 디자인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잘 해주세요'처럼 이해될 것이다.
# 당사자 정치도 좋지만
세계 최고의 게임사로 꼽히는 블리자드의 본사 앞에 세워진 오크 동상 아래에는 회사의 핵심 가치 8개가 새겨졌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문구는 '내면의 긱을 받아들여라'(Embrace Your INNER GEEK). 요즘 블리자드는 그 핵심 가치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블빠'라면 왜 그런지 알고 있을 것이다.
정의당에도 긱이 있다면 이 이야기를 왜 꺼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긱에게 구체적인 실현 방법 없는 해결 방안이란 허언이나 다름없다. 이것이 많은 게이머와 업계인이 정의당에 불쾌한 골짜기를 느끼는 이유다.
정의당 총선 득표율이 3% 미만으로 내려가지 않는 한 류호정 후보는 국회에 들어갈 것이다. 국회는 다양한 계층의 민의를 대변해야 한다. 그러니 청년, 여성, 게임 노동자 국회의원이 탄생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런데 입법 활동은 당사자성 하나로 하는 게 아니다. 정의당과 류호정 후보에게 당사자 정치 이상의 전문성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