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입혀드린 점 고개 숙여 죄송하단 말씀을 드립니다."
롤드컵 디펜딩 챔피언 담원기아가 한 스트리머에게 고개를 숙였다. '베릴' 조건희와 '고스트' 장용준이 서포터로 최상위권에 진입한 '순당무'에 남긴 코멘트가 논란을 불러온 탓이다. 결국 담원기아는 공식 SNS를 통해 입장을 전하는 한편, 스트리머에게도 사과를 건넸다. 순당무 역시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유저들의 공기는 심상치 않다. 몇몇 커뮤니티에서는 '아마추어 무시'와 '프로 의식 결여'라는 매콤한 단어까지 쏟아지고 있다. 순당무와 담원기아에겐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상황을 정리하는 한편, 현 상황에 얽힌 전·현직 프로 선수들에 대한 솔직한 생각도 담아봤다. / 디스이즈게임 이형철 기자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트위치 여성 스트리머 '순당무'는 지난 1일 <리그 오브 레전드> 솔로 랭크 천상계에 해당하는 챌린저 티어를 달성했다. 오늘(3일) 기준, 한국 서버에서 챌린저 티어에 속한 유저는 300여 명에 불과하다. 따라서 순당무의 챌린저 진입을 바라본 유저들 역시 그녀의 노력에 진심 어린 박수를 보냈다.
문제는 이를 확인한 전·현직 프로게이머들의 반응이다. 특히 리브 샌드박스 소속 '프린스' 이채환의 개인 방송에서 흘러나온 베릴과 고스트의 코멘트는 유저들의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두 선수는 순당무에 대해 "룰루 서포터 하는 사람인데 뒤에서 실드밖에 안 준다. 반짝반짝 창(스킬명) 레벨만 올린다", "나도 뒤에서 실드만 줘야겠다"라며 해당 스트리머를 강하게 비판했다.
나진과 킹존에서 생활했던 '오뀨' 오규민과 '폰' 허원석의 발언도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폰은 "남자건 여자건 서포터는 절대 인정 안 한다"라며 서포터로 챌린저를 달성한 순당무를 향해 날 선 발언을 날렸다. 오뀨 역시 "기대 안된다"라며 폰에 동의하는 멘트를 던졌다.
이를 확인한 팬들은 분노했다. 팬들을 존중해야 할 전·현직 프로 선수들이 아마추어의 플레이를 비하하는 듯한 멘트를 쏟아냈기 때문이다. 결국 베릴과 고스트는 순당무에 직접 사과의 뜻을 전했고, 소속팀은 두 선수의 소양 교육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폰과 오뀨 역시 SNS를 통해 사과문을 게시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는 많은 챔피언이 존재한다. 그 숫자만 해도 150개를 훌쩍 넘는다. 따라서 어떤 챔피언을 플레이할지는 온전히 해당 유저의 몫이다. 스킬이나 플레이 성향 역시 정답은 없다. AI를 통해 추천 빌드를 확인할 순 있지만, 아마추어 게임에서는 자신의 손에 맞는 게 정답에 가깝다고 평가된다.
물론 순당무를 둘러싼 평가가 프로 경기에 관한 내용이었다면 유저들의 반응도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순수한 아마추어의 솔로 랭크에 해당한다. 누구도 아마추어의 플레이를 폄하하거나 비하할 권리는 없다. 설령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프로 선수라 해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해당 스트리머는 자신이 챌린저를 달성했다고 자랑하거나 속칭 '부심'을 부리지도 않았다. 그저 골드나 플래티넘을 달성한 뒤 주먹을 불끈 쥐는 우리들처럼, 오랜 시간 꿈꿔온 목표에 도달해 기쁨을 표했을 뿐이다.
모든 프로 선수는 팬을 존중할 의무가 있다. 과거 연세대학교 농구부를 왕조로 이끈 최희암 전 감독은 이상민, 우지원 등 스타 선수들을 향해 다음과 같은 멘트를 던진 바 있다. 정리하자면 '팬 없이는 프로도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다.
너희들이 볼펜 한 자루라도 만들어봤냐? 너희들처럼 생산성 없는 공놀이를 하는 데에도 대접받는 것은 팬들이 있기 때문이다. 팬들한테 잘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프로의식 결여'에 대한 아쉬움으로도 연결된다.
그간 e스포츠는 타 종목에 비해 팬들과의 거리가 유독 가까운 스포츠로 꼽혔다. 대패 후 팬들의 하이파이브를 지나친 KBL(농구) 선수들이나 애타게 이름을 부르짖는 어린 팬들을 뿌리친 KBO(야구) 선수들과 달리 e스포츠는 '팬서비스'에 대한 잡음이 거의 없었다. e스포츠 선수들은 팬들을 진심으로 대했다. 팬이 존재해야 스포츠가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순당무를 둘러싼 상황은 더욱 씁쓸하게 느껴진다. 세상 어디에도 팬을 뒷담화하는 프로는 없다. 월드 클래스 공격수 손흥민도, MLB 최고의 투수 류현진도 자신의 종목을 즐기는 아마추어를 향해 날 선 멘트를 던지진 않는다.
현 상황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
베릴, 고스트, 오뀨, 폰 등은 일찌감치 사과의 뜻을 전했고 순당무 역시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팬들은 이미 상당한 실망감을 내비치고 있다. 그중에서도 베릴과 고스트는 낮은 자리에서 온갖 역경을 뚫고 세계 챔피언에 오른 선수들이다. 특히 고스트는 저평가 속에서도 꾸준히 제기량을 펼쳐온 선수다. 누구보다 저평가에 민감할 선수가 아마추어의 플레이를 폄하한 만큼, 팬들이 느낀 실망감도 클 수밖에 없다.
부디 이번 일을 통해 선수들이 다시 한번 팬들에 대한 마음가짐을 바로잡을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팬이 없는 스포츠는 없다는 걸 절대 잊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