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 11인이 게임법 전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의 쟁점은 자율규제다. 기자는 이 법을 사실상 자율규제를 위한 법으로 본다. 내용을 보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 법에서 정한 사항 외에는 게임관련사업자와 게임이용자 등 게임과 관련한 자율규제를 최대한 장려하고 존중하여야 한다"
"협회 등은 건전한 게임문화를 확립하고 게임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게임 자율규약을 정하여 시행할 수 있다"
현행 법률을 전부 고치자는 이 법안에 확률형 아이템에 관한 내용은 하나도 없고, 아예 '확률' 단어가 없다. 법안에는 자율규제의 강화 내용만 여러 차례 들어있다. 그러므로 이 법안은 지금 국회에 제출된 전부개정안과 평행선을 달린다. 이대로 의사일정이 흘러간다면 굉장히 지난한 토론 과정을 거칠 것으로 전망된다.
법안에는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의 분명한 근거도 빠져있다.
그나마 쓸 내용은 "그 밖에 자율규약의 준수활동을 지원·확인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에 대해 자율규제를 지원한다는 부분밖에 없다. 그러나 오늘날 게이머들은 확률형 아이템을 결코 '그 밖에' 수준으로 여기지 않는다. 연초 게임사 앞에 갔던 트럭과 메시지를 기억하자.
게이머들은 "
건전한 게임문화를 확립하고" 자신을 "
보호하기 위하여" 자율규제가 아닌, 명확한 정보 공개와 감시를 바라고 있다. 작년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이 게이머 3,57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73%가 확률형 아이템의 자율 확률 공시를 믿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문체부도
자율규제의 한계가 명확하기에 손을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율규제는 무조건 나쁘고, 국가가 전부 나서서 문제를 고쳐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과 일본의 게임산업도 분명 자율에 맡기는 부분이 있다. 다만 한국은 '고양이한테 생선 맡기는 격'이라는 비유가 나올 정도로 자율의 신뢰자본을 상실했을 뿐이다. 한국의 자율규제 기구인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GSOK)의 현행 자율규제는 준수 권고, 경고, 공표의 기준만 담겨있다. 가장 센 조치가 '공표'이니 슈퍼셀의 <브롤스타즈>가 32번이나 자율규제를 어겨도 게이머들은 '슈퍼셀이 잘못했네' 하지 않는다.
GOSK의 자율규제 미준수 게임물 공표
이미 신뢰를 상실했는데 새 법안에 따르면, 게임사가 만들어서 게임사가 지원하는 GSOK이 자율규제의 열쇠를 쥐게 된다. 그마저도 확률형 아이템 부분은 불분명하다. 지난 6월 발표된 GSOK의 자율규제안은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정의를 넣은 뒤 그 범위와 적용 방법 등을 분명히 했지만, 위반한 회사에 책임을 묻는 내용은 딱히 없다. 그래서 그 책임을 분명하게 묻자고 법제화에 나선 것이다.
기업들이 자율규제를 잘 지키다가도 어느 순간 변칙을 꾀해서 자율규제의 망을 벗어날 수 있다는 문제도 존재한다. 한국 게임사 사업팀에는 비즈니스모델(BM)의 최고 전문가들이 포진해있지 않나? 기업의 경영활동에 태클을 거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신뢰를 얻어가면서 장사를 할 수 있도록 정보를 밝히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 주장에 협회는 '
영업 기밀'을 꺼내 들었다.
GSOK 발표에 따르면, 한국 게임 생태계는 90%에 준하는 자율규제 준수율을 자랑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성난 게이머들은 회사 앞에 확률을 제대로 공개하라며 트럭과 버스를 보냈다. 이제는 언제 어디서 트럭시위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시절을 살고 있다. 과연 이번 법안으로 게이머의 깊은 분노와 불신을 종식시킬 수 있을까? 지난 10년의 역사를 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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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형 아이템에 대해 명기한 이상헌 의원 전부개정안(위)와 자율규제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이용 의원 전부개정안(아래)
국민의힘 의원 11명이 서명한, '자율'이라는 단어가 65번이나 들어가는 이 법안에는 누군가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간 것으로 추측된다. 다시 한번 추측하건대 그 '누군가'가 게이머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게이머들의 입장을 대변해왔다"는 허은아 의원은 어떤 근거로 이 법안에 찬성한 걸까?
국민의힘이 틀렸고, 더불어민주당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국민의힘 하태경, 김승수, 김예지, 최승재 의원 등은 '
확률조작 국민감시법'을 발의했다. 기자는
셧다운제 폐지 토론회에 참석해 끝까지 이야기를 듣던 이준석 대표의 모습도 기억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게이머의 깊고 오랜 여망을 저버리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