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가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82조라는 거금을 말 그대로 현금으로 인수를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수많은 전망을 다양한 시선으로 분석하고 있는 중이죠. 다만 확실하게 어떻게 될 것이다라는 확신은 아직 없습니다.
인수는 했지만 계약이 마무리되는 시점이 아직 멀었고, 당장 눈에 띄는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마이크로소프트가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왜 인수했는가라는 견해도 “잘했다”와 “왜 했냐?”로 나뉘기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원초적인 시점에서 우리는 왜 마이크로소프트가 역대급 자금으로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인수했고 여기에는 어떤 노림수가 있는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사업- 망한 Xbox와 성공한 게임패스
누구나 알다시피 마이크로소프트는 생산성 소프트웨어인 오피스와 OS인 윈도우를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하는 초거대 글로벌 기업입니다. 게이머들이야 Xbox라는 콘솔 게임기로 잘 알고 있겠지만 정작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점에서 본다면 게임 부문의 사업은 꽤 미약한 수준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빌 게이츠가 주도했던 Xbox와 Xbox360 사업은 그들의 시점 그리고 주주들의 시점에서 본다면 망한 사업이기도 합니다. 사례를 들어보면 삼성에서 과거에 게임사업을 진행했을 때 월 매출 100억 원을 넘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게임사업부는 역대급 성과에 찬치집 분위기였지만, 정작 삼성 그룹차원에서는 “그래서 어쩌라고?”의 수준이었죠.
그런데 삼성이 게임사업을 접은 반면에 마이크로소프트는 Xbox 사업을 꾸준하게 이어갔습니다. Xbox One, Xbox 시리즈 X까지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사업과 경쟁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습니다.
물론 단순한 콘솔 게임기 판매량과 점유율 부분에서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에 계속 밀리고 있습니다. 실패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성공이라고 하기엔 실패에 가까운 모습이었죠.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가 꾸준히 힘을 실어온 부분에서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바로 게임패스 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수익이 어마어마한 상태니까요. 현재 게임패스 이용자는 2,500만 명을 넘을 만큼 압도적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사업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주주들도 게임패스에 대해서만큼은 긍정적입니다. 이미 이런 구독모델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마이크로 365(구 오피스365) 그리고 Azure(애저)라는 구독 서비스로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원천 노하우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게임의 구독모델에 있어서 게임패스의 성과는 말 그대로 놀랍습니다.
검색 엔진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구글(스타디아), 모바일 앱 생태계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애플(애플 아케이드), 콘솔의 거대 포식자인 소니 플레이스테이션(PSN), 온라인쇼핑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아마존닷컴(루나, 프라임 게이밍), 그래픽카드의 엔비디아(지포스 나우) 등의 게임구독 모델은 이제 시작하거나, 망했거나, 망해가고 있는 중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패스는 이들과 무엇이 달랐기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AAA급 게임을 신작을 포함해 아낌없이 제공했느냐 아니냐로 구분됩니다.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인수한 배경에는 이런 전략도 포함된 것이죠. 즉 <디아블로> 시리즈, <콜 오브 듀티> 시리즈 등 일반 퍼블리셔들이 60달러에 팔아도 문제없는 패키지를 15달러에 제공하는 과감함을 이번 딜을 통해 한 발 더 앞서서 보여준 셈입니다.
이렇게 주요 AAA급 게임을 독점으로 가져가게 되면서, 게임패스가 반독점법에 걸릴 수도 있는 이슈가 되어버린 셈입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게임사업이 아니라 사업 모델 중 하나라서 큰 변수는 아니지만요. 다만 미국 법무부의 반독점국이 이를 딴지 걸 수는 있다는 점은 생각할 부분입니다.
여기에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를 통해 글로벌 1위 게임 IP(콜 오브 듀티 등)를 다수 확보했다는 점과 이 IP들이 게임패스로 제공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점입니다. 즉 이제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사업은 콘솔이라는 하드웨어 판매와 개별 게임 패키지를 통한 수익이 아닌 구독 모델을 통한 수익과 이를 유지하기 위한 계속된 콘텐츠 공급, 유지라는 부분에 배팅을 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초거대 글로벌기업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게임에 있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중소기업은 아니지만 거대기업도 아닙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독점이라고 할만한 규모가 게임부문에서는 아니라는 거죠.
마이크로소프트는 OS와 오피스 소프트웨어 부분 등에서는 독점, 또는 매머드(혹은 공룡)급 기업이겠지만, 게임부분에서는 닌텐도, 소니, 스팀, 텐센트 등에 밀려서 따라가고 있는 힘겨운 사업부문입니다(물론 마이크로소프트의 거의 모든 자금을 게임부문에 쏟는다면 모르겠지만...).
어쨌든 마이크로소프트는 게임사업에 있어서 계속된 실패와 성공하지 못한 결과를 받아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뭔가를 시도했습니다. 막대한 자금력으로요. 그리고 슬슬 천장을 찍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갈 듯 보입니다.
2. 소니의 스파르타쿠스와 게임패스 그리고 액티비전 블리자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사업부서도 게임 구독모델 부분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에 압도적인 차이로 밀리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소니의 PSN 모델은 더 이상 게임의 디지털 다운로드 플랫폼 외에는 큰 의미를 부여하기도 힘들죠.
그래서 소니도 클라우드 게이밍으로 구독 모델을 준비 중입니다. PSN 플러스와 PS NOW를 합쳐 스파르타쿠스라는 브랜드 명으로 서비스를 개편하겠다는 전략이죠.
여기서 잠깐 소니의 스파르타쿠스의 전략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서비스의 핵심은 3가지 정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 기존 PSN 플러스의 혜택 유지
2. PS1, PS2, PS3, PSP 등의 과거 플랫폼 게임의 서비스
3. PS4, PS5의 게임 라이브러리 서비스
뭔가 Xbox의 게임패스와 비슷해 보이지만 분명한 차이를 보이기도 합니다.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소니의 스파르타쿠스는 정확히 말하면 새로운 서비스가 아닌 기존 서비스 브랜드의 통합 정도로 볼 수 있죠.
특히 게임패스가 압도적인 구독자를 유치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전략인 AAA급 신작의 동시 서비스는 소니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멀티플랫폼(Xbox와 PC 동시 론칭) 서비스도 스파르타쿠스에서는 찾아볼 수 없죠.
이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은 콘솔에선 압도적인 점유율과 타이틀을 가지고 있고 여기서 독점 타이틀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막대하기에 구독 서비스라는 부분에서 이를 포기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소니에 대한 조커 카드를 손에 넣었습니다. 바로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IP라는 큰 카드입니다.
<콜 오브 듀티>라는 IP를 가지고 Xbox 독점으로 서비스를 하게 될 것인가?라는 부분은 아직 미지수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막강한 카드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을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시간이 되면 따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간략히 언급한다면 Xbox, 혹은 게임패스 독점을 풀어줄 테니 소니도 독점 IP를 게임패스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게 한다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콜 오브 듀티>를 향후에도 플레이스테이션에 발매하게 할 테니, 소니도 게임패스에 들어오라는 협상안을 제안한다면 말입니다.
물론 직접적인 참여가 아닌 사이드 로딩 방식으로 접근할 수만 있게 서로 협의만 잘 한다면 서로 득이 될 것이니까요. 사이드 로딩 방식은 EA 엑섹스나 UBI의 유플레이처럼 플랫폼에 구애받지 않고 계정만으로 다운로드 서비스를 즐기는 걸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애플의 앱스토어를 통하지 않고 앱을 다운로드 받아 서비스할 수 있는 것을 말하죠. 물론 애플은 허용하지 않지만, 안드로이드에서는 허용하는 방식이죠. 마이크로소프트는 닌텐도와 소니에게 원한다면 XDK를 지원하겠다며 계속 의향 타진을 해왔던 일이기도 합니다.
3.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는 고급인력의 확보도 목적
이번 인수 건으로 마이크로소프트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습니다.
자신들이 Xbox 사업을 통해 유지했던 콘솔 부문에서는 액티비전의 IP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게 되었고, 블리자드 IP를 통해 PC 부문에서는 마찬가지가 됐습니다. 더불어 블리자드가 인수했던 킹닷컴을 통해 모바일에서도 IP를 확보하게 됐습니다.
역으로 콘솔과 PC 부문에서 어디에 집중할지 애매했던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인수함에 따라서 콘솔, PC, 모바일 사업을 분산해 각자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정비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를 위해서 그동안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사업부가 아닌 마이크로소프트 게이밍이라는 신규 법인이 설립되고, 필 스펜서가 CEO를 맡아 이를 진두지휘하게 됩니다.
즉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업문화와 필 스펜서라는 뛰어난 사업 전략가가 초거대 IP를 가진 게임 업체로 게임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또 중요하게 봐야 할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이 있습니다.
바로 고급 개발자의 인력 확충을 한 번에 끝냈다는 점입니다. 물론 미국, 그리고 전세계에 개발자는 많습니다. 하지만 AAA급 게임을 개발했고, 개발하고 있는, 개발할 수 있는 개발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를 통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AAA급 개발자를 한 번에 확충했습니다. 콘솔, PC, 모바일을 망라해서 말이죠.
단순히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순위를 매긴다면 게임업체 중에서는 텐센트와 소니에 이어 3위에 불과하지만, 고급인력을 기준으로 따진다면 역으로 1위로 올라가는 상황입니다. 이런 인력이 마이크로소프트의 문화에 안착한다면 인력 유출도 거의 없을 것이라 전망하고 있는 상황이죠.
짜잔 형도 이젠 없지만, 게임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개발자들은 남아있죠.
이런 인력이 AAA급 IP를 이용해서 멀티플랫폼으로 수많은 게임 서비스를 만들어가고, 그 기반에 게임패스를 이용하고 이를 주도하는 곳이 마이크로소프트라면 엄청난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전망하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게다가... 경쟁사들이 앞서나갈 수 있었던 게임을 만들었던 주요 개발자들이 이제는 마이크로소프트 소속이 되어버렸습니다. IP확보에 이어 그 아이피를 만들던 인력까지 확보한 전략은 82조라는 거금을 쏟아부은 이유가 됩니다. 어떻게 보면 이 금액보다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갔다고 볼 여지도 있습니다.
물론 지금의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소송을 비롯해 수많은 스캔들에 연루되었습니다. 과거에 비해 얼굴마담도 할 수 있는 스타 개발자들도 이 스캔들에 연루되어 블리자드를 떠났습니다. 하지만 이런 스캔들 덕분에 액티비전 블리자드 주가는 오르지 않았고, 이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생각보다 저렴하게(?) 인수를 할 수 있었겠죠.
스캔들은 한 순간이지만, IP와 고급인력은 계속 남는다고 판단한 것이 아닐까요?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CEO 바비 코틱은 퇴직금 수천억 원을 받고, 더 많은 주식 이익금을 남기고 사라진 전망이지만 말입니다.
사족. 이번 인수가 반독점법에 걸리게 될까?
이번 인수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반독점법에 걸려서 계약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전망을 하기도 합니다. 물론 가능성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라는 기업의 법무팀 소속의 변호사들이 이런 가능성을 검토하지 않았을까요? 실제로 이번 인수가 완료되어도 규모 면에서 따지면 중국 기업인 텐센트는 일단 제외해도 마이크로소프트 게이밍은 3위에 불과합니다.
PC 플랫폼에 있어서는 스팀이, 콘솔에 있어서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훨씬 앞서가고 있습니다. 닌텐도 역시 마이크로소프트의 앞에 있으니 독점이라고 하기엔 규모가 독점이 아닙니다. 향후 법인이 분리될 마이크로소프트 게이밍도 콘솔 분야에서는 소니의 뒤에, 모바일과 PC에서는 텐센트의 뒤에 있게 됩니다.
개인적인 추측임을 전제한다면 메타버스의 언급도 현재의 시점에서는 립 서비스라고 봅니다.
물론 상징성을 가지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CEO는 메타버스를 언급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액티비전 블리자드가 메타버스를 핵심 사업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티아 나델라가 그동안 메타버스를 꾸준히 언급하고 관심을 표명하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이와 관련된 기술을 확보한 건 맞습니다.
그런데 정황만으로 본다면 이 양사가 그동안 메타버스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겠다고 말한 건 없습니다. 이번 발표도 대략적이고 일반적인 개념 상에서의 메타버스를 언급했을 뿐이죠.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수준의 메타버스를 꿈꾸는 게 아니라면 현 시점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메타버스는 현 시점에서는 실체가 없는게 아닐까요?
※ <레디 플레이어 원>에는 <오버워치>, <헤일로>, <마인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등의 캐릭터가 모두 등장합니다. 이제는 모두 마이크로소프트의 식구입니다.
이 역시 메타버스를 언급함으로서 해당 분야를 선점하고자 하는 메타(구 페이스북)과 경쟁해 반독점법을 피해가려는(1위가 아닌 후발주자임을 강조하는), 그리고 주주들에게 미래의 가치를 심어주기 위한 마케팅 적인 수사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메타버스라는 키워드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기술과 파괴력 강한 콘텐츠, 자본과 플랫폼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양사의 대표가 메타버스를 언급했다는 점은 분명이 허언은 아닐테니까요.
당장은 마케팅적인 수사일 가능성이 높지만 미래에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페이스북이 이름마저 메타로 바꾸고 주도하던 아젠다가 마이크로소프트로 넘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