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3일 중국 게임회사 넷이즈는 잠실에서 ‘해외 퍼블리싱 설명회’를 열었다. 같은 날 엔씨와 넥슨가 실적을 발표했다. 스마일게이트는 베일에 싸였던 <로스트 아크>를 최초로 공개했다. 산업지나 게임전문매체 모두 정신없이 바빴다. 넷이즈 설명회는 조용히 지나갔다.
그렇게 가볍게 넘길 행사가 아니었다. 넷이즈는 텐센트에 이어 중국 게임시장 점유율 2위다. 2013년 매출액이 약 1조 7,600억 원이다. 이런 회사가 한국에서 기지개를 켰다. 놀랐다. 좀 들여다 봤다. 개인적인 스토리와 주관적인 생각이다. 가볍게 읽어주기 바란다. /디스이즈게임 시몬(임상훈 기자)
넷이즈와 첫 만남 : 황당함
넷이즈에 대한 내 첫인상은 ‘황당함’이었다. 5년 전이다. 차이나조이 때 상하이를 갔다. 황푸강이 내려다보이는 고층빌딩에서 하는 파티에 초대됐다. 내로라하는 중국 게임업계 관계자들을 만났다. 넷이즈 사람을 접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넷이즈 C레벨(Chief가 앞에 붇는 임원) 인사가 있었다. 나는 넷이즈가 무척 궁금했다. 다른 중국 대형 퍼블리셔은 한번 쯤 가봤다. 아는 사람도 꽤 있었다. 넷이즈에는 도무지 연락이 안 닿았다. 넷이즈는 당시 더나인과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서버 이전을 놓고 분쟁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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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가 인사했다. 대개 그런 경우, 피드백은 우호적이었다. 당시엔 한국 게임 소식을 무척 궁금해 했다. 한국 기자 만나기도 힘들었을 거고.
넷이즈 인물의 피드백은 딴판이었다.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 관련 입장을 듣고 싶었다. 한국에는 더나인 의견만 전해지던 때였다. 그에게도 한국에 자사 입장을 알릴 수 있는 기회였다.
냉담한 답변이 왔다. 홍보팀을 통해 들으라고 했다. 한국 게임에 대해 궁금한 게 없냐고 물었다. 없다고 했다. 왜 그러냐고 되물었다. “넷이즈는 최고를 추구한다. 자체 개발과 블리자드와의 소싱만 집중하고 있다”는 답변을 얻었다. 마음에 생채기가 났다.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많은 중국 업계 관계자들을 만났다. 이런 경험은 유일하다. 이 임원은 그 후 만난 적이 없다. 얼마 안 돼 회사를 그만 뒀다고 들었다.
넷이즈의 배경 : 근거 있는 자부심
이 짧은 만남을 회사의 공적인 기조로 일반화하는 것은 성급하다. 하지만, 넷이즈의 이력을 살펴보면 이 임원의 ‘프라이드’가 뜬금없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2008년 4월 넷이즈의 창업자인 딩레이 대표(아래 사진)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
“중국 시장에서 한국 게임은 저물고, 일본 게임은 아예 설 자리조차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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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부적절하다. 중국 정부 기관에서 주최하는 자리였다. 넷이즈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소싱을 하고 있었다. ‘꽌시’가 더 없이 중요한 때였다. 정부 기관에 어필하는 발언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넷이즈의 위상은 다른 메이저 퍼블리셔와 태생부터 달랐다. 샨다나 더나인, 나인유 등은 한국이나 미국 게임을 통해 성장했다. 넷이즈의 다른 방식으로 컸다.
넷이즈는 <대화서유>(2001년) <대화서유2>(2002년) <몽환서유>(2004년) 등 자체 개발 흥행작을 통해 성장했다. <대화서유>는 중국 게임으로 처음 성공한 타이틀이었다. <몽환서유>는 2009년 동시접속자 200만을 돌파했다.
넷이즈의 자부심은 회사의 역사를 들여다 보면 더 뚜렷해진다. 1997년 설립한 넷이즈는 중국 최초의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열었다. 한국의 ‘다음’처럼 ‘163.com’이라는 무료 이메일 서비스를 시작했다. 2000년대 내가 만난 중국인의 명함에는 대부분 163 메일 계정이 적혀 있었다. 압도적인 포털이었다.
이 기세를 몰아 2000년 미국 나스닥에 등록했다. 주가는 계속 올라갔다. 수익은 포털보다 2001년 시작한 게임에 의존했다. 게임에서 90% 가량의 수익이 났다. 이후 행보는 ‘엔씨소프트’를 연상시킨다.
넷이즈는 2009년부터 <월드오브워크래프트>를 서비스했다. 이후 대부분의 블리자드 타이틀을 잡았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가 있기 전 북미에는 두 개의 MMORPG 기둥이 있었다. <울티마 온라인>과 <에버퀘스트>다. 2000년대 초반 이 두 IP와 관계를 맺은 아시아 회사는 엔씨소프트였다.
넷이즈가 자체 게임 개발의 필요성을 주창했던 것처럼, 엔씨소프트도 해외 퍼블리셔와의 관계에서 자부심이 무척 강한 회사였다.
넷이즈의 변화 : 최근의 심상치 않은 행보
넷이즈가 바뀌었다. 한국에 부사장까지 보내 ‘해외 퍼블리싱 설명회’를 열었다. 내가 겪었던 과거의 모습과 완전히 다르다.
변화의 조짐은 지난해 말부터 보였다. 지스타에 B2B에 부스를 차렸다. 이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렇다. 무척 대단한 일이었다. 넷이즈는 그 때까지 해외 게임쇼에 한 번도 참가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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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지스타에 이어 올해는 E3, 게임스컴, 도쿄게임쇼 등 주요 해외 게임쇼에 전부 참가했다. 올해 지스타에도 다시 온다.
한국에는 올해 3월 사무실을 열었다. 해외에 차린 첫 번째 사무실이다. 8월 한국 지사가 설립됐다.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는 의미다. 미국은 올 여름 사무실을 연 상태다. 아직 지사는 아니다. 넷이즈가 해외에 진출한 나라는 이렇게 둘이다.
송기영 사업 총괄 이사가 넷이즈 한국 지사의 역할을 설명하고 있다.
작년까지 넷이즈가 한국 게임을 소싱한 경우는 두 번 있었다. MMORPG <프리스톤테일>(2002년)과 <프리프>(2004년)였다. 그 뒤 10년 동안 한국 게임을 소싱한 적이 없다. 그런 회사가 이번 행사를 통해 온라인 하나와 모바일 3개를 계약했음을 공개했다. 이 외에도 계약을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곧 다가올 지스타에서도 행사를 할 예정이다.
넷이즈는 왜 이렇게 확 바뀌었을까?
넷이즈의 변화의 배경: 텐센트의 무서운 부상
2003년 10월 중국판 포브스(미국 메이저 경제잡지)로 불리는 ‘후룬리포트’는 넷이즈 CEO 딩레이를 ‘중국 최고 부호’로 발표했다. 그 때만 해도 텐센트는 넷이즈의 비교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텐센트는 QQ 메신저를 기반으로 성큼성큼 성장했다. 게임 쪽으로도 진출했다. 한국 캐주얼 게임과, 그것과 비슷한 풍의 게임을 기반으로 급속도로 유저풀을 늘려갔다. 매출도 늘어났다.
넷이즈의 시각은 바뀌지 않았다. 텐센트는 여전히 ‘게임회사’가 아니었다. 게임을 제대로 만들 줄 몰랐다. 텐센트는 외국 게임을 수입하거나 베껴서 돈을 벌 뿐이다. 자부심과 검증된 개발 역량을 지니고 있었던 넷이즈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 설명회에서도 넷이즈는 '게임 매니아'임을 강조했다. 텐센트는 대중에게 어필할 귀여운 펭귄을 마스코트로 삼는다. 넷이즈의 로고는 불꽃이다.
웹게임에 그랬던 것처럼 모바일게임도 신경쓰지 않았다. 작은 시장이고, 수준 낮은 게임이 노는 영역이었다. 그 사이 텐센트는 한국 온라인게임을 통해 쑥쑥 커나갔다. 위챗을 기반으로 모바일게임 시장까지 쭉 앞서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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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회사의 시가총액이 역전된 것은 옛날이다. 그 격차는 계속 벌어졌다. 넷이즈 주가도 계속 올랐지만, 텐센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올해 초 텐센트의 시가총액이 넷이즈의 5배 가량 됐다. 11월 현재는 10배 수준이다. 중국 게임시장 2위의 입지는 굳건하지만, 기분 좋을 리 없다.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을 느꼈을 법하다.
변화를 결심한 넷이즈는 화끈하게 달려들었다. 늦게 모바일게임에 들어선 것을 단번에 만회할 심산인 듯 올해 한꺼번에 30~40개 팀을 세팅했다. 한국에서의 행보도 무척 빨라졌다. 한국은 텐센트 등 중국 업체에게 가장 중요한 게임 소싱 국가다.
넷이즈 최초의 해외 지사가 설립됐다. 사업총괄로 네오위즈 시절 <크로스파이어>의 세일즈와 PM을 맡아 성공시켰던 송기영 이사가 임명됐다.
넷이즈의 행보: 텐센트 벤치마크와 차별화
한국에서 퍼블리싱 설명회를 하는 중국 회사는 많지 않다. 매년 행사를 갖는 건 텐센트가 유일하다. 13일 넷이즈의 ‘퍼블리싱 설명회’는 많이 봐왔던 텐센트 행사의 형식을 많이 따르고 있었다.
중국 시장에 대한 설명과 넷이즈에 대한 설명, 그리고 넷이즈와 계약한 회사 인물들을 무대에 불러 좌담회를 하는 모습은 모범적인 사례에 대한 벤치마크하는 것처럼 보였다.
방패연에 서명 후 넷이즈와 한국 회사 관계자들. 왼쪽부터 김은일 크레이브몹 대표, 김정훈 피닉스게임즈 대표, 오영훈 넷마블 게임즈 전략실 부장, 이딴 넷이즈 부사장, 송기영 이사, 더웨이 이사. 방패연은 전략적인 소통과 커뮤니케이션을 의미한다.
하지만 행사 내용은 텐센트와 차별화를 염두에 둔 듯한 내용이 눈에 띄었다.
첫 번째 세션에 나선 이딴(Ethan) 부사장은 넷이즈에 대해 ‘엣지 있는 게임 매니아’로 포지셔닝했다. 중국 유저 설문조사 결과 50% 이상이 넷이즈 게임을 선호한다며, 넷이즈가 (플랫폼 성격이 강한 텐센트와 달리) 진정한 게임 매니아 회사임을 자랑했다.
블리자드의 거의 모든 타이틀을 서비스한다는 점을 언급하며, 넷이즈의 ‘명품 정신’을 강조했다. 변화하기 했지만, 넷이즈가 지닌 게임 개발사로서 자부심이 묻어났다.
두 번째 세션의 더웨이(Dewei) 이사는 넷이즈가 지닌 운영 및 마케팅 역량을 강조했다. 2001년 이후 데이터 분석을 통해 다양한 유저의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로컬라이제이션과 마케팅 역량을 지니고 있음을 자랑했다.
모바일 영역에서도 (위챗 플랫폼 기반의 텐센트와 달리) 넷이즈는 200여 개 플랫폼의 고객군을 분석해 다양한 장르의 게임도 플랫폼별 선호도에 따라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지막 세션에 나선 송기영 이사는 중국 시장에 대한 세 가지 ‘오해’를 거론했다.
◆ 규모의 경쟁이 시작되었다? (자금력이 있는 회사만 중국에 진출할 수 있다고 하는데...)
◆ 현지화 작업은 전부 개발사가 한다?
◆ 미들코어급 이상의 RPG만 찾는다?
세 가지 오해는 모두 연결돼 있다. 미들코어급 이상 RPG는 콘텐츠 규모가 클 수 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회사의 자금이 충분해야 한다. 중국에 가려면 현지화 과정에 리소스가 클 수 밖에 없다.
텐센트와 계약이 해지된 모바일업체들은 대부분 현지화와 관련된 요청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송 이사는 발표 내용이 텐센트와 관계없다고 부인했다. 내게는 왠지 그렇게 읽혔다.
마치며: 한국 게임계에 미칠 영향
한국 게임 개발사로서는 반길 만한 일이다. 그 동안 냉담했던 중국 메이저 퍼블리셔가 ‘Win in China’ 하자며 한국 게임에 대한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냈으니 손해날 게 없다.
넷이즈의 적극적인 행보는 다른 중국 퍼블리셔의 국내 게임에 대한 경쟁을 더욱 부추길 큰 변수다. 넷마블 모바일 타이틀은 텐센트가 가져갔다. 텐센트는 4:33에도 투자했다. 넷이즈 외에 다른 중국 퍼블리셔가 움직일 영역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넷이즈의 눈높이가 높다는 점은 염두에 둬야 한다. 넷이즈는 행사 내내 ‘명품’을 강조했다. 소싱이나 투자에서 이 기조가 바뀔 리 없다. 10월 31일 론칭한 자체 모바일게임 <난투서유>는 다운로드 2위, 매출 7위를 기록했다. 모바일에서도 자체 경쟁력이 있음을 증명했다. 송 이사는 “소싱이나 투자 규모에 대한 목표는 따로 없다. 퀄리티 좋은 게임은 언제든 투자의 길도 열어 놓았다. 퀄리티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퍼블리셔의 입지는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자금력과 시장 사이즈를 앞세운 중국 퍼블리셔가 소싱은 물론 투자 영역까지 진출하는 건 반가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넷마블이나 4:33처럼 중국 대형 퍼블리셔와 '빅딜'을 하는 업체가 등장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이었던 대목을 옮겨놓는다. 텐센트와 차이나는 점에 대해 이딴 부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게임회사로서 오랫동안 자리잡아온 회사다. 가장 오래된 퍼블리셔다. 게임을 코어로 놓고 생각한다. 장기적으로 게임 업계에서 뿌리를 계속 내릴 회사다.
우리가 돈 버는 것에만 급급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가장 큰 차이다. 우리는 게임으로 중국에서 최고다. 게이머를 잘 파악하고 있고, 연구 개발에서도 좋은 솔루션을 제공한다. 이런 차이가 한국 업체가 중국에서 장기적으로 수익을 거둘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