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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자수첩] 에픽세븐 확률 조작 의심 해프닝과 ‘불신의 시대’

모바일 게임 무작위 뽑기(가차) 운영에 대한 유저들의 불신, 이대로 방치해도 될까?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현남일(깨쓰통) 2018-09-28 17:59:06

# 추석에 불타 오른 에픽세븐

 

한창 추석 연휴가 진행중이었던 지난 9월 24일, 스마일게이트메가포트가 서비스하는 모바일 게임 <에픽세븐>은 한 유저가 어떤 커뮤니티에 올린 게시글 하나 때문에 말 그대로 ‘불타 올랐다’. 

 

그 유저는 <에픽세븐>의 캐릭터 소환(일명 무작위 뽑기, 혹은 가차)을 4224회 시행하고 통계를 내본 결과, 게임 내 최고 등급인 ‘5성’ 캐릭터가 공시된 확률인 1.25%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0.47%. 즉 20개밖에 나오지 않았다며 운영사의 확률 조작 의심을 제기했다. 이에 수많은 게이머들이 호응하면서 공식 카페를 비롯해 게임의 거의 모든 커뮤니티가 운영사의 해명을 요구하며 하루 종일 소란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해서 이 유저의 의혹 제기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무엇보다 해당 유저가 제기한 0.47%의 ‘근거’는 게임을 하는 스크린샷과 본인이 소환 결과를 정리했다고 주장하는 엑셀(Excel) 화면 캡처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해당 데이터가 실제로 4224회의 뽑기를 정확하게 기록했다는 명백한 증거나 보증은 없었다. 

 

결국 객관적으로 보면 애초에 신빙성 없는 자료로 제기된 의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유저들이 손쉽게 선동 당한 것이었고, 이 때문에 일대 소란이 벌어진 것이다. (물론 중간에 운영사의 미숙한 대처도 소란을 키우는 데 한 몫 했지만, 이 부분은 문제의 본질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니 이 자리에서는 넘어가자) 

문제의 의혹 제기글.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의혹 제기에 사용한 근거 자체가 애초에 신빙성이 없었다.

(뽑기 확률에 대한 유저들의 대표적인 오해)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많은 유저들이 확률이 1%라고 한다면 100번 뽑으면 정확하게 1번 원하는 캐릭터가 뽑힌다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수학적으로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만든 표현일 뿐. 실제로 가차에서 확률은 그렇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가차에서는 유저가 뽑기를 시도할때마다 1/100의 확률이 적용되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자면 100번 뽑기를 하는 동안 한 번도 캐릭터가 나오지 않아도 '정상'의 범주에 들어간다. 그렇기에 설사 위의 4223번의 데이터가 사실이라고 해도, 이것이 게임사가 표기된 확률을 조작했다는 명백한 근거가 되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운영사에서는 문제가 제기되자 즉시 해명 공지를 올렸지만, 처음에는 명확한 해명을 하지 않고 “검증이 필요하면 회사에 찾아오면 데이터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유저들의 화를 부채질해 소란이 더 커진 감도 있다.

 

결국 추석 당일 늦은 밤, 운영사에서 특정 기간의 소환(뽑기) 통계 데이터를 공개하고 나서야 이번 소란은 진정될 수 있었다.

사실 이 소란 자체는 그냥 한 게임의 작은 ‘해프닝’ 이었다고 가볍게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게임사. 아니, 게임업계에서는 “근거도 미약하고 신빙성도 없는, 이 작은 의혹 제기글 하나에 유저들이 왜 이렇게 손쉽게 선동 당했나”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고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 모바일 게임 가차, 확률 공개 다음의 사후 모니터링은 제대로 되고 있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무작위 뽑기(가차) 같은 BM은 ‘공정’이 생명이다. 지금도 수많은 게이머들은 게임사가 공개한 미약한 확률에 기대서 적게는 수 만원, 많게는 수 십, 수 백만원의 돈을 쏟아 부어서 자신이 원하는 캐릭터를 뽑으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공정’ 이라는 대원칙이 무너진다면 어떻게 될까? 사실 공개된 확률대로 캐릭터가 뽑히는 것이 아니었다면? 무언가 유저는 모르는 어떠한 수치에 의해 확률이 변동된다면?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 뒤에 불어 닥칠 후폭풍은 게임을 하는 유저에게나 게임사에게나, 모두에게나 상상하기 싫은 재앙일 것이다. 그렇기에 게임사와 업계는 가차의 개발이나 확률 공지 뿐만 아니라, 가차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주의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현재 업계 차원에서 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한국 게임산업협회(K-IDEA)가 공을 들이고 있는 ‘자율규제’ 활동을 보면 대부분이 무작위 뽑기의 ‘확률 공개’에만 집중하고 있다. 반면 공시된 확률에 의해 가차가 실제로도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모니터링이나 사후 감시를 하지 않고 있다. 

 

K-IDEA는 매달 정기적으로 자율규제 사후 관리 차원에서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자료 어디에도 무작위 뽑기 시스템이 공시된 확률에 의해 제대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후 감시 결과를 찾아볼 수 없다.

 

업계 차원에서 각 게임의 가차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한 감시 활동은 지금까지 거의 없다 시피했다. 제도적인 안전장치나 규제 또한 마련된 것이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심지어 확률을 조작했다는 것이 드러난다고 해도 업계나 협회 차원에서 무언가 제제를 할 수 있는 방법이나 근거 또한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는 극단적으로 말해서 게임사가 나쁜 마음을 품고 확률을 조작한다고 해도 이를 적발하기도, 또 처벌하기도 쉽지 않다.  

 

K-IDEA의 자율규제 항목을 보면 '확률 공개' 외에 가차의 실제 운영이나 사무 모니터링 관련된 사항은 찾아볼 수가 없다.

  

# 모바일 게임 가차, 여러분은 신뢰하십니까? 

 

결국 현재 국내 게임 업계에서 무작위 뽑기(가차) 시스템은 어떠한 제도적 장치나 유저 보호장치 없이 오직 게임사가 공정하게 해당 시스템을 운영할 것이라는 믿음과 ‘신뢰’ 하나만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게임사에서는 가차 시스템이 공개된 확률대로 공정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신뢰를 유저들에게 심어줘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국내 게임사들은 유저들에게 신뢰를 심어주기는커녕, 오히려 신뢰에 금을 가게 하는 사고가 수 차례 발생한바 있다. 

 

일례로 몇몇 게임에서는 공시된 확률과 다르게 뽑기가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 밝혀져서 뒤늦게 사과하고 이를 바로잡는 소동이 벌어진 적이 있다. 그것도 일부 핵과금러(과금에 아낌없이 돈을 투자하는 유저를 지칭하는 속어)들이 적게는 수 백 만원에서 많게는 수 천 만원을 쏟아 부은 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밝혔다는 점에서 이들은 더더욱 모양새가 좋지 못했다.  

 

확률 공개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2015년 이래 실제로 몇몇 게임들에서는 공시된 확률과 실제 뽑기 확률이 맞지 않다는 것을 ‘유저들이 밝혀내고’, 게임사가 뒤늦게 이를 바로잡고 사과하는 사태가 수차례 벌어진바 있다.

 

결국 이번에 <에픽세븐>에서 한 유저의 근거 부족한 의혹 제기에 수많은 유저들이 ‘낚여서’ 일대 소란이 벌어진 것 또한, 유저들이 그만큼 게임사들의 가차 시스템에 대한 운영을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소란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어느 특정 게임사 하나의 문제라고 치부하기는 힘들다. 게임사는 물론이고, 협회를 비롯해 업계 전체가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 

 

모바일 게임의 뽑기 시스템이 공정하고 문제없이 운영될 수 있도록 제도가 되었든, 자율 규제가 되었든 다양한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또 문제가 생겼을 때의 처벌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 나아가 유저들의 신뢰를 얻기 위한 방법이나 활동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지금처럼 방치만 한다면 이것이 추후 어떠한 부메랑이 되어서 업계로 돌아올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확실한 것은 ‘뽑기’ 시스템이 있는 모바일 게임에서는 이번 <에픽세븐>처럼, 앞으로도 게임사를 믿지 못하는 유저들과 게임사가 충돌하는 사태가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당연하지만 이는 그대로 게임사와 업계 전체에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당장 위에서 언급한 확률에 대한 유저들의 대표적인 오해에 대해서조차 게임업계에서는 이를 제대로 알리는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다. 

이런 것이 누적되어 유저들의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지면 게임사가 아무리 제대로된 뽑기 확률을 공개한다고 해도 이를 곧이 곧대로 믿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이건 유저와 게임사 모두에게 재앙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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