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라는 호칭의 배경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서로를 ‘오타쿠’라고 부르는 이 청년들이 특이해 보였을 거예요. 사람들은 서로를 오타쿠로 칭하는 이들 전체를 ‘오타쿠’로 인식하기 시작했어요.
[덕후론_01] '오타쿠'는 상대를 존중하기 위한 호칭었다
‘오타쿠’라는 호칭, 유행하기 시작하다
SF와 로봇에 열중하는 사람들을 부르던 오타쿠라는 호칭은 점차 다른 영역에도 확장됐죠. 취향이 어린아이 같다는 인식과 함께 1989년 ‘미야자키 츠토무의 유아납치 살해사건’ 때문에 주류 문화에서 오타쿠에 대해 극히 부정적인 인식이 퍼지고는 있었지만, 남들이 크게 관심 가지지 않는 분야에 열중하는 이들을 지칭하기에 이보다 좋은 용어는 없었을 거예요.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열광하는 것에 어마어마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죠. 오타쿠라는 용어는 그 취향에 덧붙여 특정 분야에 매우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이 더해졌어요.
그런데, 이러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오타쿠들의 직업이 딱히 이 관심사와 크게 관계되는 것은 아니었어요. 연구직이나 전문직인 오타쿠도 많았는데, 정작 이 관심사를 연구하거나 그 분야 전문직이 아니었던 거예요. 생계와 아무 관련이 없는데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 이상으로 연구하고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오타쿠들이었어요.
기본적으로 오타쿠라는 용어가 널리 퍼진 후 일본에서 오타쿠는 ‘생계가 아닌 이유로 대중문화가 아닌 특정 분야에 심취하며 상당한 지식을 갖춘 사람’이란 것에서 벗어나지 않았어요. 종종 해당 분야 지식이 쌓여 취미에서 직업으로 발전하기도 하죠.
‘오타쿠’라는 호칭, 의미가 달라지다
그런데, 이 의미가 점차 달라지게 되죠.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본래 한 사람의 인생에서 최고의 한 순간을 찍었다는 의미의 인생샷을 어디 놀러갈 때마다 찍더니, 이젠 그냥 좀 잘 나온 사진은 다 인생샷이죠.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이야 예전엔 정말 그런 위인도 있었다’고 전해지는 전설 아닌 레전드는 예전엔 서구의 비틀즈나 우리나라의 조용필, 야구라면 최동원, 선동렬 급을 지칭하던 것이 지금은 왕년에 좀 인기있어 본 모든 분들을 위한 칭호가 되었어요. 일상에서 놀랄만한 일이 있으면 사용하는 감탄사가 되기도 했어요.
본래 ‘아파트 단지 안에 초등학교가 세워진’ 잠실의 엘스나 리센츠 같은 대형 아파트 단지를 지칭하던 초품아를 초등학교가 인근에 있으면 붙이고 있고, 맨션은... 본래 귀족들이 살던, 만화나 미드에서나 보는 대저택을 의미했었죠. 그랬던 용어가 지금 우리나라에선...
이건,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사람들은 점점 더 강한 용어, 혹은 자극적인 용어를 찾아 자신이 느끼고 있는 생각을 강조하고 싶어 해요. 기업은 좀 더 좋게 포장하기 위해 ‘더 상위 느낌’의 용어를 사용하죠.
비슷한 이유로 ‘장애인’이나 ‘흑인’ 등의 단어에 대해 "아, 이거 너무 비하하는 느낌이니 단어를 순화해서 바꾸자"라는 주장을 들으면 다소 공허한 느낌이 들어요. 시간 좀 지나면 순화해서 바꾼 그 단어가 또 비하하는 단어가 되어 있을 것이거든요. 비하하는 사회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한 단어를 바꾸는 건 그냥 끝없이 돌아가는 수레바퀴가 되겠죠.
아무튼, ‘오타쿠’ 혹은 ‘덕후’는 유사한 원인으로 의미상 변화를 겪기 시작해요.
1차 변화는 멸칭으로의 변화예요.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좋아하는 (나쁜 의미로) 괴짜’ 뉘앙스로 바뀐 것이예요. 미야자키 츠토무 사건으로 오타쿠라는 단어가 매스미디어에 크게 오르내리며 일본 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어요. 그런데 하필, 미야자키 츠토무가 로리콘이자, 애니메이션 오타쿠이자 히키코모리였던 것이죠. 이 때문에 억울하게도 오타쿠가 안 좋은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고, 로리콘이나 광팬, 그리고 히키코모리라는 대중적 이미지가 덧칠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