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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론_10] 덕후들이 외롭지 않음을 알게 된 곳, PC통신이에요

비덕이 쉽게 이야기해 주는 덕후 이야기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스카알렛 오하라(scarletOhara) 2022-08-08 15:22:35

 

<원신>과 <우마무스메>가 세계적 인기입니다. 우리는 이미 서브컬처 시대에 살고 있어요. 덕후와 덕질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가 보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 소통되고, 덕후가 인정받는 사회가 되길 희망합니다. 지금 저희는 '덕후의 탄생 배경'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많은 관심과 지도편달 부탁드립니다.​  /스카알렛 오하라&디스이즈게임

   

# 불매운동까지 벌어진 총서 시리즈에 서브컬처 팬들이 열광한 이유는?

 

1990년대 중반 ‘그리폰 북스’라는 SF 총서 시리즈가 발행된 적이 있어요. 시공사라는 출판사에서 출간했는데, 이 출판사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 씨가 창업한 회사예요.

 

당시 SF 장르의 주 소비층이었던 젊은 세대들은 환호했죠. 90년대 당시의 젊은 세대는 대체로 진보적 색체가 강했어요.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매우 센 세대예요. 심지어, 그리폰 북스가 출간되던 시기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민주화운동 관련하여 구속된 시기였죠.

 

당시 PC통신, 인터넷에서는 시공사에서 나온 책에 대한 불매운동까지 벌어졌어요. 시공사가 급성장한 배경도 논란이 됐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SF팬들은 전재국 씨의 회사인 시공사에 호의적이었고, 그리폰 북스에 열광했어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죠.

 


 

SF는 한국에서 대표적인 서브컬처 중 하나예요. 매우 ‘서브’하죠. <스타워즈>는 전 세계에서 굉장히 성공한 SF 판타지 스토리지만, 한국에서는 그다지 흥행하지 못했어요. <스타트랙>은 <스타워즈>와 함께 세계 양대 스페이스 오페라이지만, 한국에서 팬을 찾기 정말 힘들었죠.

 

이런 척박한 한국에서 SF 소설 시리즈를 낸다면 반드시 적자가 날 거라는 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고, 실제로 그랬었죠. 그런데 시공사는 그리폰 북스를 출간했고, 심지어 번역 수준도 매우 훌륭했어요. 그냥 출간한 것이 아니고, 제대로 투자해 출간한 거죠.

 

한국의 SF팬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었죠. 그만큼 목이 말랐던 거예요. 오죽하면 1999년 ‘불법인 건 알면서도’ 고전 SF 서적을 모아 공유하는 ‘직지 프로젝트’까지 추진되었을까요?

 

 



 

# 그 시절 서브컬처 콘텐츠가 퍼질 수 없었던 사정은?

 

대세 혹은 보편적인 취향의 콘텐츠는 관련 정보를 얻기가 쉬워요. 책으로 출판되거나, 영상매체에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있기도 해요. 관련한 상점도 흔히 찾아볼 수 있고요. 교육기관에서는 관련 강좌도 하고, 대학에 전공이 생기기도 해요.

 

덕후는 서브컬쳐를 취향으로 하고 있어요. 서브컬쳐를 취향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이들의 취향이 대세 혹은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 즉, 이 문화를 향유하는 인구가 적다는 것을 뜻해요. 인구가 적으면 관련된 상품이 만들어지기 어려워요. 책을 내도 읽을 사람이 적기 때문에 적자 가능성이 크죠. 어느 출판사든 선뜻 나서기 어려워요.

 

영상 매체에서도 시청률이 낮아 광고수익을 얻기 어렵기 때문에 방송 송출이 어려워요. 관련 상품을 사기 위해서는 자신의 거주지로부터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야 할 거예요. 광역시 혹은 전국 규모의 인구를 커버하는 상점을 찾아가야 해요.

 


 

서브컬처 관련 정보 역시 마찬가지예요. 일상에서 찾기 어렵기 마련이에요. 정보를 얻거나 찾으려면 잘 알고 있는 누군가를 찾아가거나, 전국의 서점을 기웃기웃해야 했어요. 혹은, 서브컬처 정보가 많은 국가(대부분의 경우 일본)의 서적을 구해 번역해 정보를 얻죠.

 

만렙덕후가 어렵게 생산해 낸 정보가 다른 덕후에게 전달, 유통되기도 어려웠어요. 주로 대학, 고교 등지의 관련 동아리 정도가 있었고, 이런 그룹에 속해 있지 않다면 개인에서 개인으로 전달 공유되는 것이 다였어요.

 

그런데, 이들이 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정보를 찾을 수 있게 되는 사건이 벌어졌어요. BBS 시대가 시작된 거예요. BBS를 통해 이들이 만들어 내는 정보가 모이고 전파되는 중심지가 처음으로 생겨났어요.

 



 

 

# ‘붉은 악마’가 시작한 곳에서 잉태된 서브컬처 커뮤니티

 

1986년, 한국경제신문에서 ‘프레스텔’이란 서비스를 시작했어요. 한국경제신문 기사를 단말기 상에서 보여주는 서비스였어요. 1989년에는 이를 바탕으로 ‘케텔’이라는 서비스가 시작되었는데, 뉴스와 함께 BBS, 즉 전자게시판과 전자게시판 시스템을 이용한 동호회, 전자우편서비스, 채팅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한 거예요. 대한민국에서는 최초로 제공된 온라인 커뮤니티 서비스였죠.

 

2년 후 한국통신, 그러니까 지금의 KT와 합작회사를 만들어 1992년부터 ‘Kortel’로 이름을 바꾸었고, 곧 이어 우리가 기억하는 ‘하이텔’로 다시 개명해 서비스했어요. 한국통신은 당시 유일한 유선전화 사업자였고, 그 덕에 전화가 있는 집은 별도의 단말기 없이 하이텔에 가입하고 이용할 수 있었어요. 하이텔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많은 이용자를 확보할 수 있었죠.

 

그리고 별도의 단말기를 통해 통신망을 구축하고 정보서비스를 하던 데이콤도 ‘천리안’이라는 정보제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지만, 일반인이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기업용 인프라에 가까웠죠. 1993년, 데이콤이 한국통신과 통신망을 함께 이용하는 계약을 맺으며 천리안도 일반인이 이용할 수 있게 되었어요. 유선전화가 그래도 한 집에 하나는 있는 때였으니까요.

 



 

당시 최초의 온라인 커뮤니티 서비스인 하이텔을 기획해 만들어가던 젊은 직원들이 얻은 노하우를 가지고 1994년 창업해 새로운 BBS를 만든 것이 나우누리였어요. 이렇게 PC통신을 통해 여러 BBS가 만들어지고, BBS 내에 동호회들이 조직되었죠. 이곳에는 기존 대중문화 동호회도 있었어요. 

 

등산 같은 친목모임인, 각 지역모임 등도 있었고요. 음악모임도 매우 컸어요. 물론 정치모임도 있었죠. 인기있던 프로야구, 농구 등의 프로 스포츠 동호회도 있었어요. 당시 하이텔의 축구동호회가 ‘붉은 악마’였어요. 네, 지금 축구팬의 상징인 바로 그 붉은 악마는 PC통신 동호회에서 출발한 거죠.

 

이 새로운 네트워크 환경에서 기존에 없던 동호회도 출현했어요. 정보에 목이 말라있던 사람들, 서브컬처 팬 들이었죠. ‘개오동’, ‘애니동’, ‘과소동’, ‘나모모’, ‘미연사모’ 등이 이 시기에 생겼고, 많은 회원들로 북적였어요. 

 



 

나중에 대통령 후보가 되는 안철수나 <마비노기> 시리즈의 데브캣 김동건 PD 등도 하이텔에서 다른 팬들과 교류했다고 해요. 음악적으로도 서브컬처에 해당하던 힙합, 랩 등의 뮤지션들은 주로 PC통신을 통해 성장했어요. 실생활에서는 만나기도 힘들었던 동호인을 이곳에서 어렵지 않게 만나고 서로 정보를 나누며 함께 즐길 수 있었어요.

 

이렇게 1990년대를 주름잡았던 PC통신 BBS는 웹서비스라는 강력한 경쟁을 만나며 힘을 잃기 시작해요. PC통신은 정액, 종량 서비스였는데, 웹서비스는 인터넷만 연결된다면 무료였고 무엇보다 HTML이라는 문서이동 구조가 워낙에 강력해 덕후들이 정보를 타고 다니는 데 너무나 좋은 환경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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