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 게임은 많습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18년 역사의 게임 전문지 디스이즈게임에서 어떤 게임이 맛있는지, 맛없는지 대신 찍어먹어드립니다. 밥먹고 게임만 하는 TIG 기자들이 짧고 굵고 쉽게 여러분께 전해드립니다. TIG 퍼스트룩!
민담은 늘 매력적인 창작 소재입니다. 같은 문화권의 소비자에게는 익숙함과 반가움을, 타 문화권의 소비자에게는 이국적 정취를 선사하면서 손쉽게 매력을 끌어올립니다. 대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공재’에 가까운 이야기인 만큼 남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참신한 접근이 있어야만 시장에서 두드러질 수 있습니다.
3인칭 호러 액션 어드벤처 <브램블: 더 마운틴 킹>(이하 브램블)은 스칸디나비아 지역 민담에 기초한 타이틀입니다. ‘트롤’과 같은 비교적 익숙한 존재들도 등장하지만, 지역 외 사람들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는 지역 설화들 또한 모티브로 삼고 있습니다.
직접 플레이해 보면 소재의 독특함보다도 여러 이야기를 전에 없던 방식으로 꿰어낸 창의력과 뛰어난 기술/구조적 완성도가 더욱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동화, 혹은 민담의 공통점 중 하나는 이야기가 현실성을 심각하게 결여하더라도 너그럽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입니다. 지나가던 구렁이가 선비에게 말을 걸어도, 과자로 만든 집에 마녀가 살고 있어도 동화나 민담이라면 누구 하나 따지지 않는 법입니다. 민담을 각색한 <브램블>의 이야기도 그러한 스토리텔링 방식을 따릅니다.
어느 날 집에서 눈을 뜬 어린 주인공 올레는, 옆 침대에서 자고 있어야 할 누나 릴리모어가 자리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걱정에 빠집니다.
누나를 찾으려 집을 박차고 나온 올레는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서 누나를 찾지만, 좀처럼 제자리에 있을 줄 모르는 누나는 다시금 흥밋거리를 찾아 실종되고 맙니다. 그런 누나를 쫓는 과정에서 유저들은 자연스럽게 <브램블>의 몽환적 세계로 인도됩니다.
<브램블>의 세상은 주인공 키보다 큰 버섯, 주인공의 무릎 높이밖에 오지 않는 노움, 왕관을 쓴 거대 개구리 등이 아무렇지 않게 공존하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동화 같은 첫인상을 심어주는 와중에도 이면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긴장과 불안이 자연스럽게 조성되는데, 여기에는 질감 풍부한 화면 연출들이 매우 큰 역할을 합니다.
<브램블>의 아트는 다양한 자연물을 질료로 주인공의 여정을 채색합니다. 미끌한 안개, 거친 물살, 빽빽하고 차가운 진흙의 감촉은 화면 너머로 만져질 듯 생생합니다. 덕분에 안락한 침대를 떠나 갑자기 생사의 가운데를 누비고 있는 주인공 올레의 막막한 처지도 실감 나게 다가옵니다.
또한 상당수 장면에서 빛을 평범하지 않은 방식으로 활용하는데, 삼림을 뚫고 빗발치는 햇살이나 밤공기에 산란하는 랜턴, 어둠 속에 빛나는 이름 모를 생물의 안광 등으로 다른 게임에서 쉽게 경험하기 힘든 심미적 만족감과 긴장감을 동시에 줍니다.
다채로운 화각도 특징적입니다. <브램블>의 카메라는 추적 방식과 고정 방식을 혼합하여 사용하는데, 이때 보기 드문 앵글들을 적극 활용해 올레의 처지와 심정을 강조하고 유저에게 강렬한 심리전을 걸어옵니다.
예를 들어 낡은 오두막을 뒤지는 올레의 모습을 창밖의 제삼자 입장으로 훔쳐보거나, 수풀을 헤쳐 나가는 올레를 정수리 위에서 조감하여 미지의 공포를 증폭시키는 식의 재기 넘치는 장면이 줄을 잇습니다. 평범한 장면을 찾기가 오히려 어려울 듯한 고도의 연출 노력은 그 자체만으로 게임플레이 가치를 크게 높여줍니다.
<브램블>의 게임플레이는 크게 플랫포머, 퍼즐, 잠입, 보스전 등으로 구성되는데, 이중 어느 하나의 비중이 과도하거나 빈약하지 않게 안배되어 있습니다. 다만 중반 이전의 플랫포머 구간은 다른 구간에 비해 다소 늘어지는 기분을 줍니다.
각각의 메카닉은 평범한 편이지만 그래도 지루함을 느낄 겨를은 크게 없는데, 그 비결(?)은 워낙 짧은 플레이타임입니다. <브램블>은 약 4시간 정도면 엔딩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같은 메카닉이 과도하게 반복될 여지가 원천적으로 적습니다.
하지만 경험의 밀도는 낮지 않습니다. 이 또한 다채로운 연출 노력 덕분입니다. 이를테면 같은 잠입 메카닉이더라도 한 장면에서는 거인의 랜턴 빛을 피하는 상황, 그리고 다른 장면에서는 인간형 괴수들의 추적을 피하는 상황을 제시하는 등 서로 다른 시나리오를 제공, 별도의 감각으로 플레이될 수 있도록 고려했습니다.
<브램블>의 이야기는 ‘스산함’으로 시작해 잔혹과 기괴로 꾸준히 치닫습니다. 배경과 주인공은 같지만 구간별로 서로 다른 원전을 각색, 각각의 챕터로 만들어 이어 붙이면서 일종의 피카레스크식 구성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때 배경이 되는 이야기의 성격이 점차 개인적인 것에서 사회적인 것으로, 고전적인 것에서 중세적인 것으로 변화하면서 이전보다도 더 삭막해지는 양상이 흥미롭습니다. 인간들의 아름답지 못한 본성을 주제로 한 오싹한 이야기들이 판타지적 감성으로 재해석돼 전달되며, 이는 게임의 시각적 톤과 보스전의 게임플레이에 밀접히 연관되어 몰입감을 강화합니다.
한편 여러 관통하는 이야기의 톤과 주인공의 태도는 동화 같은 면모를 고집합니다. 주인공은-흔한 동화에서와 같이-인과가 뚜렷이 설명되지 않는 어떤 운명이나 힘의 작용에 따라 사건을 접하며, 그 와중에 누나를 향한 사랑이라는 순수한 가치를 고수합니다.
다만 그 동화의 디테일은 ‘어른용’입니다. <브램블>은 동화의 클리셰뿐만 아니라 일반적 게임 문법까지 비틀며 시종일관 잔혹함을 추구합니다.
이를테면 구해준 아기 노움들이 주인공을 따라 집으로 향하다가 주변의 함정에 죽어버리는 등 허를 찌르는 장면이 종종 연출됩니다. 아기를 죽이는 장면을 다루지 않는 미디어 전반의 금기를 깨버렸을 뿐만 아니라, ‘이미 구출된 NPC’가 예고 없이 죽는다는 점에서 게이머적 감수성에도 당혹감을 선사합니다.
중후반부 보스전 끝부분의 QTE 시퀀스도 비슷한 감상을 안깁니다. 쓰러진 적 보스에 올라타 주인공이 검을 얼굴에 겨냥하면, 때맞춰 QTE UI가 출력됩니다. 그리고 X 버튼을 누를 때마다 주인공은 한 번씩 칼을 내려찍는데, 아무리 여러 번 눌러도 UI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실 이 QTE 구간은 플레이어가 스스로 멈추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습니다. 이상함을 깨닫고 손을 뗐을 때는 이미 홀린 듯 십수 번의 칼질을 가한 뒤입니다. <브램블>에는 이처럼 플레이어의 행동을 예측해 다양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영리한 장면들이 심심치 않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브램블>은 세련된 연출 기법과 긴장감 있는 게임플레이, 흥미로운 보스전, 웅장한 음악, 잘 짜인 레벨 디자인 등 다양한 장점을 갖춘 호러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시청각적으로 이채로운 장면들과 타이트한 메카닉으로 4시간의 여정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습니다.
동화를 모티브로 삼은 만큼 다소는 모호하고 무작위적인 스토리텔링에서 호불호가 갈릴 만합니다. 반대로 몽환적 잔혹동화 감성을 선호한다면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다소 비직관적일 뿐, 인간적 나약함과 후회, 극복 등 일련의 테마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일부 구간에서의 비직관적 조작감은 다수의 유저가 단점으로 꼽았습니다. 4시간여의 게임플레이 역시 구성상으론 알차지만 가격을 고려했을 땐 다소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 추천 포인트
1. 눈이 즐겁고 마음이 졸여지는 연출
2. 따로 찾아 들을 만한 사운드트랙
3. 몰입감 높은 보스전
4. 탁월한 그래픽
▶ 비추 포인트
1. 다소 짧은 게임플레이
2. 가끔 이상한 조작감
3. 초반부의 느슨함을 잘 넘겨야
▶ 정보
장르: 호러 액션 어드벤처
가격: 32,000원
한국어 지원: O
플랫폼: PC
▶ 한 줄 평
<위쳐>를 <리틀나이트메어>에 싸서 드셔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