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팀에서 10만 명 이상의 동시 접속자를 기록하며 크게 유행한 게임들이다. 특히 <리썰 컴퍼니>와 같은 경우에는 스트리머의 방송을 통해 '보는 게임'이 일상화된 시대에도 크게 유행하며 아직도 많은 사람이 플레이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1인 개발로 만들어졌고 게임이 간단한 구조로 되어 있기에, 사람들이 스트리밍만을 즐길 뿐 게임까지는 구매하지 않을 수 있음에도 크게 흥행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스트리머의 클립만이 아닌, 일반 게이머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영상이 유튜브나 틱톡 등지에서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점은 <헬다이버즈 2>도 같다.
이 게임들은 왜 이렇게 잘나가는 걸까? 사실, 게임을 하나씩 살펴보면 묘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쉬운 난이도와 멀티플레이, 협동, 가시적으로 보이는 협력 플레이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경쟁 시스템 같은 것은 일절 없다. 멀티플레이의 맛을 살리면서도 쉽고 직관적인 시스템을 가지는 것이 요즘 게임의 흥행 공식으로 보이는 상황이다.
<헬다이버즈 2> (출처: SIE)
최근에 보드게임 카페에 간 적이 있다. 몇몇 보드게임 카페는 메뉴판과 함께 어떤 보드게임이 구비되어 있는지 안내해 주는 책자를 준다. 책자에서 보드게임을 구분하는 방법은 '설명 시간'이었다. 쉽고, 빠르게 설명을 읽고 플레이할 수 있는 보드게임은 책자 앞단에, 최대 20분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 보드게임은 책자 마지막에 배치되어 있었다.
보드게임은 여러 명이 함께 즐기는 게임이다. 모두가 보드게임의 룰을 숙지하고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이런 정보의 차이가 있으면 보드게임을 100% 즐겁게 플레이하기 어렵다. 당연히 먼저 해본 사람이 노하우가 있으니 더욱 쉽게 승리할 수 있고, 노하우를 전수해 주려 해도 쉽지 않다. 이런 게임은 시스템이 복잡하기에 재미있지만, 접근성은 낮다고 여겨진다.
게임에서도 같다. 친구와 게임하면 재미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문제는 게임 이해도다. 친구와 게임하려 하는데, 게임의 시스템에 대해 길게 설명해야 한다면 아무래도 같이 하기 어렵다. 내가 느끼는 즐거움을 친구가 똑같이 느끼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친구는 곧 흥미가 떨어지고 원래 하던 게임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리썰 컴퍼니>는 이 부분에서 강점이 큰 게임이다. 게임 구조가 단순하다. 버려진 행성에서 고철을 주워 우주선으로 복귀하면 된다. 사실 행성에는 회사에서 말해주지 않은 위험한 생물로 가득하지만 ‘공포게임’이기에 모를수록 더 즐거운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온갖 특성을 가진 괴기 생명체와 만나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된다.
<리썰 컴퍼니>
<헬다이버즈 2>도 어렵지 않은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고난이도 클리어를 위해서는 게임 내에서 설명해 주지 않는 여러 노하우를 익혀야겠지만, 스토리를 포함해 기본적인 플레이와 게임의 서사는 단 몇 분의 튜토리얼로 깨우칠 만큼 간단하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사악한 외계인들이 있으니 헬다이버즈가 되어 모조리 죽여야 한다. 게임에서 특정한 방향키를 입력하면 '스트라타젬'을 사용해 강력한 폭격이나 무기를 호출할 수 있다. 더 이상 설명할 게 없다. 게임 내 UI부터 상당히 심플하다.
<그랑블루 판타지 리링크>(이하 리링크)도 기존 액션 게임에서 난이도를 많이 낮춘 게임이다. 대표적으로 게임에 타이밍을 맞춰 버튼을 클릭해야 하는 ‘저스트 액션’이 많은데, 이 저스트 액션의 판정이 상당히 넉넉하다. 보스의 공격을 뒤늦게 회피해도 저스트 판정이 발동하는 경우가 있으며, 발동에 성공했을 때마다 효과음으로 성공했다는 느낌을 전달한다.
각 캐릭터가 가진 고유한 조작 방식도 페이지 하나에서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편이다. 게임 한 판 한 판에 걸리는 시간도 5분 내외로 짧다. 어려운 난이도의 퀘스트에 처음 도전했을 때만 10분 정도가 걸린다.
<그랑블루 판타지 리링크>
무엇보다도 일정 수준으로 캐릭터를 육성하면 ‘대미지가 차고 넘치는’ 게임이다. ‘대미지 상한’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무한히 강해지지 못하도록 게임에서 제약을 걸었음에도 그렇다. 적들의 기믹과 공격도 상당히 단순하기에, 최종 보스 몬스터에 도전하기 위해 A4용지 수 장이 넘어가는 ‘패턴 공략법’을 읽을 필요도 없다.
PC 버전은 얼마나 자신이 대미지를 많이 넣었는지 알 수 있는 비공식 ‘딜 미터기’ 모드가 있음에도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관심이 없다. 굳이 미터기로 아군을 평가해야 할 만큼 보스의 체력이 많은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능이 좋은 캐릭터와 나쁘지 않은 캐릭터도 굳이 따지면 나눌 수 있겠지만, 밸런싱이 그렇게까지는 지적받지 않는다.
만약 게임의 난이도가 높아 최종 난이도 콘텐츠를 클리어하기 위해 ‘강력한 조합’과 '숙련도'가 필수적으로 요구됐다면 달랐을 것이다. <리링크>가 MMORPG 장르에서 볼 법한 ‘레이드’의 재미를 간편하게 느낄 수 있다는 평가도 많은데, 게임 자체가 쉽기 때문에 그런 평가가 자주 나오지 않았나 싶다. 최종 보스인 ‘프로토 바하무트’도 장판을 피하고, 수정을 파괴하는 직관적인 기믹만이 존재한다.
이펙트 자체는 화려하지만, 단순하고 직관적인 패턴이 많다.
<리썰 컴퍼니>는 ‘재미있게 죽는 것’을 모토로 삼은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모르면 온갖 창의적인 요소로 무장한 괴물에게 당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이것을 잘 보여준다. 플레이어 캐릭터는 연약하고, 조금만 달리면 헉헉대며, 괴물에게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은 극히 제한적이다.
예상치 못한 괴물의 습격으로부터 친구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죽는 것을 보며 깔깔대는 것이 게임의 핵심이다. 먼저 죽더라도, 죽은 사람끼리만 보이스 채팅을 하며 살아남은 친구가 공포 속에서 벌벌 떠는 모습을 관전할 수 있기도 하다.
<리썰 컴퍼니>의 재미있는 순간들
덕분인지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지나치게 효율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없다. 주어진 할당량만 채우면 된다. 게임 한 판 한 판의 시간이 짧아 금방 부활할 수 있고, 사망하더라도 약간의 자금 만 얻을 뿐이며, 게임을 효율적으로 잘 플레이해 돈을 많이 모은다고 해서 엄청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리썰 컴퍼니>에서 돈을 많이 벌기 위해 팀원에게 최대한의 생존과 등장하는 적에 대한 수준 높은 대응을 요구하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다. 물론, 파티의 목적에 따라서는 다를 수 있다.
<헬다이버즈 2> 역시 마찬가지로 전작의 요소를 이어받아 죽음에 큰 페널티가 없도록 했다. 증원이 무제한이었던 전작과 비교해 정해진 횟수만 증원할 수 있도록 했지만, 한 번 죽는다고 해서 낮은 난이도에서조차 게임이 크게 흔들릴 만큼 페널티가 크지 않다. 아군이 죽더라도 증원 스트라타젬을 불러 주면 금새 복귀한다.
더불어 인터넷 등지에서 <헬다이버즈 2>의 플레이 후기나 동영상을 찾아보면 온갖 다양한 상황에서 플레이어가 사망하는 재미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무기를 호출하려고 스트라타젬을 던졌는데 ‘우연히’ 앞을 지나가던 아군이 깔려죽거나, 폭격 스트라타젬을 던졌더니 지형에 튕겨 나와 플레이어 쪽으로 폭격을 호출해 버린다거나, 거대한 몬스터를 잡았더니 버그로 인해 갑자기 내 쪽으로 날라와 치여 죽는다거나.
<헬다이버즈 2>는 <리썰 컴퍼니>와 다르게 명확한 목표가 있고, 목표를 잘 완수했을 때의 추가 보상과 성장 시스템이 있는 게임이다. 그럼에도 이런 어이없는 사망을 겪어도 플레이어는 불쾌해하지 않고, 오히려 ‘웃긴 장면’이 되면서 커뮤니티에 적극적으로 공유한다. 심지어 어이없는 버그로 인해 사망해도 유저들은 웃으며 동영상 클립을 공유한다.
<헬다이버즈 2>의 재미있는 순간들
<헬다이버즈 2>의 지구가 스토리 상 ‘민주주의의 탈을 쓴 파시즘’(통제민주주의)이라는 콘셉트로 희화화됐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사소한 '찐빠’(실수를 의미하는 은어) 정도는 언제든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헬다이버즈 2>가 콘셉트도 진지했고, 아군의 죽음에 큰 페널티를 주는 일반적인 협동 게임의 구조를 취하고 있었다면 이런 모습은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버그로 인해 플레이어가 사망할 때마다 "못 해 먹겠네"라는 말이 나오며 게임의 평가는 깎여나갔을 것이다.
<리링크> 역시 죽음에 대한 페널티가 약하다. 아군이 몇 번 죽었다고 해서 곧바로 ‘퀘스트 실패’를 알려 주며 마을로 돌려보내지 않는다. <리링크>는 횟수로 아군의 죽음을 세는 대신 ‘이머전시 게이지’라는 시스템을 사용한다. 아군이 체력이 다해 ‘행동 불가’ 상태가 되면 시간이 흐를 때마다 이머전시 게이지가 감소하고, 그 전에 아군을 빠르게 일으켜 세워 줘야 하는 식이다.
이머전시 시스템
이머전시 게이지가 가지고 있는 시간은 넉넉하다. 여기에 더해 게임 내에서 ‘진’이라는 특수한 장비를 활용하면 곧바로 일어날 수 있는 ‘부활약’이라는 아이템을 최대 세 번 사용 가능하며, ‘자동 부활’이나 쓰러져야 할 대미지를 받으면 체력 1로 한 번 버티게 해 주는 ‘근성’ 같은 패시브 스킬을 갖출 수 있어 실수하더라도 부담이 적다. 아군이 도와 주기 어려운 상황이라도 아무 버튼이나 빠르게 누르면 혼자서도 금방 부활할 수 있다. 회복 포션도 버튼 한 번 누르면 곧바로 사용된다.
덕분에 의도적으로 계속 죽는 것이 아니라면 멀티 플레이에서 숙련도가 적은 사람을 만나, 툭하면 적의 패턴을 맞고 누워 이머전시 게이지를 소모하더라도 스트레스가 덜하다. 첫 문단에서 말했듯이 ‘딜이 차고 넘치는’ 게임이기에 한 두 명이 잘 못 한다고 해서 퀘스트 클리어가 극단적으로 어려워지지 않고, 몇 번 죽었다고 곧바로 마을로 파티를 돌려보내지도 않기 때문이다.
협동의 즐거움. <헬다이버즈 2>의 가장 큰 흥행 요인이기도 하다. <헬다이버즈 2>는 플레이어의 행동에 대한 피드백이 강한 편이다. 벌레 둥지가 위치한 곳에 적절하게 폭격을 요청하면, 화끈한 폭격 이펙트와 함께 목표를 달성했다는 UI를 출력해 보여 준다. 적들을 공격하면 벌레의 팔다리가 찢겨나가거나, 로봇의 몸이 부서지는 등 시각 효과에도 충실하다.
이 부분은 멀티플레이 요소와도 연관된다. 아군이 적들에게 몰려 위기에 처한 순간 적절한 위치에 포격을 요청함으로써 구해 주거나, 2인이 함께 사용하는 무기를 통해 거대한 적을 쓰러트릴 수 있다. 이럴 때마다 시각적으로 확실하게 성과를 표현해 주는 것은 게임이 주는 원초적인 재미와 직결된다.
거대한 벌레가 다가오는데 2인이 함께 사용하는 무기를 들고 눈치를 주면, 대부분은 곧바로 알아채고 협력해 준다. 적을 쓰러트린 후 둘이서 함께 사용하는 감정 표현을 사용하면 대부분 받아 준다. 민주주의를 운운하는 보이스와 함께라면 더욱 완벽하다. 원초적인 재미에는 국경이 없다.
(출처: SIE)
<리링크>도 쉬우면서도 직관적으로 깨우칠 수 있는 협동 플레이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적의 스턴 게이지를 모두 감소시키면 즉시 모두가 ‘링크 어택’을 사용할 수 있고, 스턴 게이지를 감소시킨 캐릭터가 별도의 대사를 언급한다. 원작 <그랑블루 판타지>가 그랬던 것처럼 모두가 연이어 궁극기를 사용하면 ‘풀 체인’ 효과가 발동함과 함께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리썰 컴퍼니>는 위 사례와 조금은 다르지만, 게임의 특성과 결합시킨 멀티플레이 요소를 잘 살려낸 편이다. 매우 제한적이지만 아군과의 협동을 통해 몇몇 적은 쓰러트릴 수 있도록 만들거나, 플레이어로 위장한 적이 은근슬쩍 다가와 기습하거나, 특정 플레이어에게만 보이는 괴물 등이 있다.
풀 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