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에 계신 분들도 기자와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을까?" 취재를 하다 보면 자주 드는 생각입니다. 매일매일 이슈가 쏟아지는 세상에서, 잠시 차 한 잔, 술 한 잔 기울이며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멋진 게임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분들을 만나, 뜨거운 현안들로 담소를 나눠보는 코너 '인디 한 잔'입니다.
횡스크롤 장르의 초석을 쌓은 작품 중 하나인 <록맨> 시리즈를 기억하시나요? 클래식, X, 제로, ZX, EXE, 대쉬 등 현존하는 <록맨> 타이틀은 모두 해봤을 정도로, 기자의 '인생게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록맨 11> 이후로 이렇다 할 정규 신작이 없어, 게이머들 사이에서 <록맨> 시리즈는 '고인' 취급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간간이 티셔츠와 피규어 같은 굿즈 소식만 들려오고 있는 상황이죠.
에그타르트가 개발 중인 <메탈슈츠>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반가운 작품입니다. 맨몸으로는 적에게 스치기만 해도 사망하는 '물몸'이지만, 각기 다른 '슈트'를 입을 때마다 새로운 기술과 필살기를 사용할 수 있는 독특한 횡스크롤 액션 게임입니다. <록맨>, <메탈슬러그>를 좋아했던 분이라면 <메탈슈츠>의 탄탄한 재미와 액션에 금세 빠져들 것입니다.
<메탈슈츠>는 이런 매력을 필두로 게임스컴, TGS, 방구석인디게임쇼, 경기게임오디션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전 세계 게이머들의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게임을 플레이해보면 표지 아트에서 느껴지는 상남자스러운 이미지 외에도 꽤나 섬세한 컨트롤을 요구하는 '반전매력'을 가지고 있는데요. 에그타르트 박진만 대표를 만나 정식 출시 이전부터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메탈슈츠>의 디테일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4373년. 과거 전쟁 영웅으로 칭송 받았던 '케빈'은, 요양함선에서 사랑스러운 강아지 '엔디'와 함께 노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외눈박이 외계인 '골리다'의 침공으로 함선이 폭발하면서, 강아지와 자신의 신체 대부분을 잃으면서 평화가 깨지게 되죠. 기계로 신체를 대신하면서, 케빈은 여러 전투 슈트를 활용하게 됩니다. 이제 '골리다'에게 피의 복수를 할 시간이죠.
이름을 날렸던 영웅이 강아지를 잃고 복수에 나서는 모습은 영화 <존 윅>을 연상케 합니다. 박진만 대표도 "짧고 간결한 스페이스 <존 윅>"을 의도했다고 하죠. 지구와 유사한 행성을 보고 헬리오스를 찾아가는 과정이나, '골리다'에 저항하는 세계관을 모두 담은 더 복잡한 서사였다고 하는데, 액션 안에서도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임팩트 있는 스토리로 축약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를 빡치게 하지 말아야 했다"로 시작하는 스팀 페이지처럼 게임도 강렬합니다.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비하인드도 들을 수 있었는데요. 헬리오스 내 9개 행성을 탐험하는 구성과 강아지 '엔디'가 아홉 조각으로 부서지는 연출이 연결되는 것 아니냐는 유저들의 합리적(?)인 추측이 나왔던 것이죠. 매우 흥미로운 추론이지만, 사실 개발사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박진만 대표는 "영화를 보는 것도 좋아했지만 취미로 연극을 하면서 배운 게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연기 대본처럼 게임도 정보, 감정, 액션 전투의 재미 등 장면별 목적을 더 잘 정리하면, 유저와의 의사소통도 더 원활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며, <메탈슈츠>의 방향성도 이런 과정을 거쳐 더 정리가 됐다고 합니다.
한쪽 팔이 '버스터'로 교체된 주인공 '케빈'의 모습과 도트 그래픽, 횡스크롤 디자인만 봐도 느낄 수 있지만, <메탈슈츠>는 <록맨> 시리즈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입니다. 대쉬와 벽차기의 존재, 가시와 낙사에 의한 즉사 등 플레이의 밑바탕에서도 그 향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메탈슈츠>는 횡스크롤이 주는 안정적 플레이와 <메탈슬러그>로 대표되는 런앤건의 시원시원한 재미를 결합한 게임입니다. 슈트 없는 케빈은 적에게 스치기만 해도 사망할 정도로 매우 약하지만, 슈트를 입는 순간 체력 바도 생기고 슈트마다 다른 다양한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개틀링건, 세이버, 폭탄 같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버전부터, 표창을 던지는 닌자, 전기를 쏘는 일렉트릭기타, 드론을 조작하는 슈트까지 각양각색의 액션 연출도 화려합니다.
재밌는 점은 하나의 스테이지 안에서도 여러 슈트를 계속 바꿔가며 사용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맨몸일 때보단 슈트를 착용하고 있을 때가 훨씬 낫지만, 슈트의 내구도도 그리 높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생존을 위해서 계속 다음 슈트를 찾아나서야 합니다. 슈트는 공중에서 지정된 자리로 보급되기도 하고, 파괴 가능한 지형 안쪽에 숨겨져 있기도 하죠.
또한 필살기도 슈트마다 확연히 다른데요. 슈트를 자주 교체하는 플레이 패턴에 더해, 하나의 슈트 안에서도 필살기를 여러 차례 사용할 수 있게 만든 덕분에 전체적인 플레이가 매우 화려한 게 특징입니다.
박진만 대표는 <배트맨>과 <아이언맨> 등의 히어로물에서 초기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악당, 범죄자들과 맞서 싸우며 보여주는 인간적 고뇌, 트라우마 극복 과정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한데, 이 작품들에서도 '슈트'가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죠.
서문에 소개한 것처럼, 상남자스러운 외견과 다르게 게임플레이의 디테일은 매우 섬세합니다. 적과의 충돌, 공격에서 받는 대미지는 매우 위협적이고, 조금만 방심하면 금세 슈트 내구도가 다 떨어지거나, 케빈이 사망합니다. 특히 필드 곳곳에 폭발하는 장치를 비롯한 함정이 많아, 무작정 돌진하는 플레이는 통하지 않는 편입니다. 이는 <메탈슈츠>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인 파괴 가능한 지형과 맞물려, 긴장감 속에서 곳곳을 탐색하는 재미와 액션의 시원함이 섞인 구조가 됐죠.
이런 섬세한 플레이가 도입된 이유는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초기엔 화끈하게 공격만 하고 부수는 방식으로 만들었는데, 강강강강으로 이어지니 어느 순간 재미가 없어졌고, 전투를 안 하고 적을 피해가는 것만으로도 깰 수 있게 돼버렸다고 하죠. 그렇게 지금의 형태처럼 여러 긴장감 있는 플레이와 맵마다 다른 여러 기믹을 도입하게 됐다고 합니다.
이런 어려운 난이도를 보완해주는 건 벽 속에 숨겨진 아이템들입니다. 필연적으로 여러 차례 죽을 수밖에 없는 <메탈슈츠>에서 핵심적인 '라이프'도 구할 수 있고, 본편에서는 숨겨진 에이리어에 영구적으로 생명을 늘려주는 아이템 등도 있다고 하죠. 본편에선 총 10개의 챕터, 10종의 보스, 50개의 스테이지가 등장할 예정입니다.
▲ <메탈슈츠>의 프로토타입은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스테이지를 만들 수 있었던 배경은 '에디터'를 베이스로 한 개발이었다고 합니다. 기자가 직접 본 에디터 사용 과정에서는, 클릭 드래그로 그림을 그리는 듯한 조작만으로 쉽게 벽과 요소를 배치할 수 있었습니다. 적은 인원이 다양한 맵을 만들기 위해 '에디터'부터 만드는 방향을 설정했다고 합니다. 정식 출시 버전에서는 2인 플레이도 지원될 예정입니다. 다른 플레이어 옆에서 리스폰되어 더 빠른 진행을 맛볼 수 있다고 하네요.
한편, <록맨> 신작이 없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만, 횡스크롤 및 런앤건 장르의 재미 자체는 여전해도 생각보다 성공하기 어려운 장르라고 합니다. 에그타르트 또한 <메탈슈츠> 개발 초기에 주변에서 걱정 어린 반응이 많았다고 하네요.
박진만 대표는 "극복하는 재미"를 강조했습니다. <메탈슈츠>에는 '이지 모드' 없이 '보통', '어려움', '지옥(?)' 난이도만 있는데요. 그는 "인생도 마찬가지지만 고난을 해소했을 때 주는 카타르시스가 게임이 주는 재미라고 보며, 난도 높은 구간의 긴장감과 그렇지 않은 구간의 조화로움을 신경 썼다"고 합니다.
에그타르트의 의도가 통했는지 게임스컴, TGS, 플레이엑스포 등 여러 게임쇼에서 유저들이 플레이하는 과정을 직접 지켜봤을 때도, 케빈의 죽음에 스트레스를 받기보단, 더 도전하고 싶어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고 하네요. <메탈슈츠>는 이런 매력을 바탕으로 경기게임오디션에선 1등의 영예를 얻기도 하고, 퓨처 게임쇼, 스팀 넥스트 페스트에서 소개된 게임 목록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메탈슈츠>의 본편 개발은 거의 완료된 상태라고 합니다. 현재 스팀에서 데모를 플레이할 수 있고, 얼리 액세스 과정을 거쳐 피드백을 반영하고 정식 출시할 예정이라고 하네요. 이미 콘텐츠 개발이 거의 완료된 만큼, 얼리 액세스 단계에서도 완성도는 놓치지 않을 계획이라고 합니다.
박진만 대표는 상대적으로 게임 개발에 늦게 진입한 편에 속합니다. 대학원 졸업 후 아모레퍼시픽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2010~2011년 앱 개발에 도전해보면서 자녀들을 위한 한국어 학습 앱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때 좋은 피드백을 받아, 창업을 하고 실패를 맛보기도 했다고 하죠. 이후 DeNA에서 마케팅 총괄로 일하며 게임 업계와 연을 맺고, 2019년 마흔에 가까운 나이에 1인 개발에 도전하게 됐죠. 컴퓨터 공학 전공이었던 그가 개발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던 셈입니다.
1인 개발 시기와 2020년 에그타르트 설립 이후 모바일게임 3종을 냈던 초기 과정을 통해, 박진만 대표는 "익숙함 안에서 어떤 차별점을 주는 것이 가진 힘"을 느꼈다고 합니다. 당시 애플 글로벌 피쳐드를 3개월 내내 받는 등 좋은 기회도 있었지만, 모바일게임 시장이 게임 제작의 비중보단, 서비스 사업이 커져가는 측면도 있어, 게임 제작에 집중하는 '유료게임'을 만드는 방향으로 마음을 굳혔다고 합니다.
게임 또한 종합 예술이고 사람이 모인 집약적 예술인데, 영화나 음악 쪽에선 유료 시장이 활성화된 것과 달리, 모바일게임 시장은 여전히 F2P 게임이 많은 편이죠. 애플이나 구글의 특정 서비스를 우리가 작품이라 부르진 않지만, 게임은 엔딩까지 보는 과정에서 하나의 작품으로 부르곤 합니다. 그런 단일화된 콘텐츠, 작품성을 이어갈 수 있는 형태가 F2P 게임보단, 유료 패키지 게임에 가깝다는 판단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개성 있는 스팀 도전작으로 만들게 된 게임이 <메탈슈츠>였습니다. 에그타르트는 <메탈슈츠>를 시리즈화 하는 것 또한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한편, 에그타르트의 차기작은 <메탈슈츠>의 정규 시리즈는 아니지만, 같은 세계관의 몇 백 년 전을 다루는 메트로배니아 기반의 횡스크롤 게임이 될 예정입니다. 현재 관련 이미지를 공개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기자가 엿본 차기작의 모습은 같은 도트 그래픽 기반이긴 해도, <메탈슈츠>의 마초적인 이미지와 달리,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인 더 섬세한 느낌의 게임이었습니다. <메탈슈츠> 마무리 후 1~2년 내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하네요.
횡스크롤 액션 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 중 한 명으로서, <메탈슈츠>처럼 독특한 콘셉트의 게임을 좀 더 자주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메탈슈츠>의 정식 출시 버전을 기대하며, 에그타르트의 신선한 도전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