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PC 게임 플랫폼 '스팀'에서 중국 게임의 성과가 주목할 만하다. 스팀의 인기 게임 순위는 1, 2위를 제외하면 수시로 변동되지만, 최근 가장 많이 플레이되는 게임 TOP 10에 중국 게임의 비중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넷이즈의 <마블 라이벌즈>, <원스 휴먼>, <나라카: 블레이드포인트>와 텐센트의 <델타 포스>, 게임사이언스의 <검은 신화: 오공>이 2024년 스팀 TOP 10에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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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은 게임의 동시 접속자를 항상 공개하고 있는데, 최근 중국 게임이 TOP 10에 들어가는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출처: steamDB)
물론, 중국 게임이 스팀에서 완전한 주류로 자리 잡았다고 보기는 아직 이르다. 특히 인디게임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더라도 대부분 자국 시장에서 이루어진 경우가 많으며, 스팀 리뷰의 대다수가 중국어로 작성되어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대형 게임사의 게임 위주로 살피면 2024년 중순 이후부터 스팀 인기, 매출 차트에는 중국 게임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2024년 1월 경 정점을 찍었다. 1월 14일부터 21일까지 스팀에서 최고 매출을 올린 중국 게임을 살펴 보면 <마블 라이벌즈>, <델타 포스>, <나라카 블레이드포인트>, <원스 휴먼> 4개가 존재한다. 해당 게임들은 출시 시점에도 높은 동시 접속자를 기록하며 글로벌적인 주목을 받았던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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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 인기 순위 TOP 10에 들었던 중국의 게임
(왼쪽부터) <델타 포스>, <마블 라이벌즈>, <원스 휴먼>, <나라카 블레이드포인트>
중국 내에서 개발된 게임은 아닐지라도, 모회사가 중국 게임사인 경우를 따질 경우에는 6개까지 늘어난다. <패스 오브 엑자일 2>를 개발한 그라인딩 기어 게임즈와 <워프레임>의 개발사 디지털 익스트림은 텐센트가 최다 주주기 때문이다.
중국 매체 '게임룩'은 위와 같은 사실을 보도하며 "중국 게임 개발사가 스팀에서 역사상 가장 좋은 성과를 냈다"고 했다. 게임룩은 춘절 직전 중국 게임이 대부분 대규모 업데이트를 진행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무시할 수 없는 상과라 언급하며 "가까운 미래 '모바일 게임의 힘'은 과거의 유물이 되고, 중국 게임 산업이 다양한 플랫폼에서 꽃을 피우며 도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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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넷이즈의 <마블 라이벌즈> (출처: steamDB)
소규모, 인디게임 씬에서도 중국 게임의 성과가 조금씩 보이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점은 중국의 소규모, 인디 개발사에서 시도하는 '3D 그래픽 게임'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2023년 출시돼 언리얼 5를 통한 퀄리티 높은 그래픽으로 스팀에서 인기를 끌었던 <파티 애니멀즈>는 상하이 소재의 개발사 '리크리에이트 게임즈'의 작품이다.
발전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거대 게임사의 자본이 투자되고 있기도 하다. 소니는 2016년부터 '차이나 히어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중국의 중, 소규모 콘솔 게임 개발사를 적극 지원하고 있고, 2022년에는 계획에 맞춰 선정 게임과 지원액을 크게 늘렸다. 차이나 히어로 프로젝트의 선정작들 다수는 콘솔 환경에 맞춘 고품질의 3D 그래픽을 시도하고 있다.
이런 추세가 계속해서 유지된다면 중국 게임사가 3D 그래픽 게임 개발에 여러 노하우를 획득해 평균적인 퀄리티 자체가 크게 높아질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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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 애니멀즈>
이 게임이 스팀 파티 게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래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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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컬처 엘든링'이라는 별칭으로 알려져 있는 <언엔딩 던>
차이나 히어로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아 개발되고 있다. 해당 프로젝트에서 개발 중인 게임은 대부분 3D다.
중국의 인디 혹은 소규모 개발사가 일본의 유명 IP와 협력함으로써 시너지를 낸 사례도 있다. 일본의 유명 IP <동방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해 스팀에서 2만여 개의 긍정 평가를 얻은 <동방야작식당>은 중국에서 오랜 기간 <동방프로젝트> 팬게임을 만들어 온 팀의 작품이다.
비슷하게 일본의 격투 IP <블레이블루>를 원작으로 만들어져 2만여 개의 긍정 평가를 받은 <블레이블루 엔트로피 이펙트>는 중국의 개발사 '91Act'가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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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야작식당>
이렇게 중국 인디게임이 스팀에서 호평받으면서 평균 1천 개 이상의 긍정적인 평가를 다수 받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물론, 이 점은 중국 게이머가 '자국의 게임'을 적극 플레이하고 호평을 남기기 때문이라고 파악할 수 있다. 실제로 몇몇 게임은 해외 게이머 평가는 거의 없고, 자국 유저의 호평이 대부분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스팀에서 소비자가 게임 구매를 고려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이 '유저 평가'임을 생각하면 하나의 강점이 되는 셈이다. 적어도 평가 숫자가 많아서 나쁠 것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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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적이긴 하지만, 스팀에서 약 19만 개의 유저 평가를 받은 <귀곡팔황>
여기서 영미권 유저의 평가는 3,500개다. (출처: 스팀)
중국 스팀 이용자도 현재 증가 추세에 있다.
설문조사를 통해 집계한 스팀 언어 통계에 따르면 '중국어 간체'를 주 언어로 이용하는 사람은 영어와 엎치락뒤치락하며 1위와 2위를 오갔으나, <오공>의 성공 이후 급증해 1위로 올라섰다. 스팀 다운로드 트래픽 역시 크게 증가했는데 최근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스팀 트래픽의 23.5%가 중국에서 발생한다.
덕분인지 해외 인디게임이 '중국의 게임 수요'를 적극 노리고 성과를 거둔 사례도 있다. 2024년 3월 8일 스팀에 출시된 <백팩 배틀즈>는 한 독일의 커플이 개발한 인디게임이다. 이 게임은 출시 한 달만에 65만 장을 판매하는 성공을 거뒀는데, 중국의 인디게임 퍼블리셔 'IndieArk'가 배급을 맡아 적극적인 현지 마케팅을 펼친 것이 주요한 이유로 꼽힌다. 개발자에 따르면 판매량의 48%가 중국에서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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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개발된 인디게임 <백팩 배틀즈> 그러나 게임의 판매량 대부분은 중국과 일본에서 발생했다.
덕분인지 여러 중국 인디게임과 협력해 번들 판매를 진행하기도 했다.
스팀에 출시되는 중국 게임에는 주된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이미 성공한 게임을 적극 벤치마킹하고, 여기에 '다른 성공한 게임'의 요소를 섞거나 나름의 독자적 요소를 추가하는 식으로 게임을 개발한다는 점이다.
가령 텐센트의 <델타 포스>는 <배틀필드> 시리즈의 대규모 전투에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움직임을 섞은 게임이다. 게임의 무기 개조는 <타르코프>를 생각나게 한다. 넷이즈의 <원스 휴먼>은 스팀에서 여러 중소 개발자가 만들어 성공시켰던 '생존 시뮬레이션' 장르에, 여러 콘솔 게임의 콘셉트를 가져와 섞었다. 넷이즈의 <마블 라이벌즈>는 <오버워치>의 시스템에 3인칭이라는 점 그리고 <마블>의 공식 게임이란 점을 섞어냈다.
인디에서도 비슷하다. 스팀에서 4천여 개의 긍정 평가를 받은 중국 인디게임 <세일링 에라>는 스크린샷을 보자마자 <대항해시대>가 생각나게 하는 게임이다. 1천여 개의 긍정 평가를 받았던 <드레드 던>은 <프로젝트 좀보이드>와 상당히 비슷하다. 나아가 2021년 출시돼 스팀에서 250만 장 이상을 판매했을 정도로 흥행한 <건파이어 리본>은 <리스크 오브 레인>과 <보더랜드>, <데드 셀>을 섞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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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성공한 FPS를 짬뽕한 <델타 포스>
출시 시기 역시 <배틀필드> 시리즈가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기에 여러모로 노렸다는 느낌
출시 시기 역시 <배틀필드> 시리즈가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기에 여러모로 노렸다는 느낌
그리고 최근 스팀 상점에서 기자의 눈에 띄었던 게임으로 최근 스팀에 데모를 공개한 <이스케이프 프롬 덕코프>가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유명 익스트랙션 게임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를 패러디한 중국 게임인데, 이름만 봐서는 '표절'로 보일 수 있지만 게임을 파고들면 이외로 재미있는 포인트가 있다.
한 때 <타르코프>가 대성공하면서 익스트랙션 장르 게임이 여기저기서 선보여졌는데, 인디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인디 개발자들이 복잡한 시스템을 가진 1인칭 게임을 만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에 탑 뷰 방식의 게임으로 개발되곤 했다. <타르코프>에 큰 영향을 받아 성공한 대표적인 인디게임으로는 <제로 시버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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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케이프 프롬 덕코프>
겉으로면 보면 '짭' 게임인데, 해 보면 나름 괜찮은 구석이 있다.
그리고 이 <덕코프>는 <제로 시버트>를 생각나게 하면서도 여러 방식으로 해당 게임에서 문제시됐던 단점을 일부 극복한 게임이다. 보통 하드코어한 밀리터리 콘셉트를 가진 타 익스트랙션 게임과 달리 '오리'를 내세우면서 접근성이 좋은 캐주얼한 아트를 내세웠고, 완전한 2D였던 <제로 시버트>와 달리 탑 뷰일지라도 3D라는 점을 활용해 고저차를 구현하고 플레이어의 노력을 통해 개방할 수 있는 숏컷을 넣는 등 여러 색다른 시도가 엿보인다.
개발사 '팀 소다'가 2021년부터 2개의 게임을 출시해 오며 수천 개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등 인디게임 개발에 대한 여러 노하우를 쌓았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내 <타르코프> 전문 유튜버 '노잼망겜'은 <덕코프>의 체험판을 리뷰하며 "이런 생각이 든다. 그 나라는 활발하게 새로운 조합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이다. 다른 게임의 장점을 잘 베껴서 새로운 게임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리스크를 걱정하며 아무 것도 안 만들 것인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고 말했다. 중국 게임사는 '표절'이라는 리스크를 걱정하는 대신, 아예 성공한 게임을 빠르게 따라하고 조합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이야기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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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맨>과 <발로란트> 그리고 서브컬처 게임의 BM을 섞은 TPS <스트리노바>
이처럼 대다수의 중국 게임은 기존의 익숙한 요소를 배합해 새로운 재미를 창출하는 것에 집중하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특징이 하나 더 있다. 소규모 개발 단위의 중국 게임은 이미 성공한 장르를 가져와 '미형의 여성'의 주인공을 내세우거나 '서브컬처'를 섞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 미형의 주인공 혹은 서브컬처풍의 아트는 '일단 관심받는 것'이 중요한 스팀 게임 경쟁에서 상당한 이점을 가지고 있다.
가령 "테무산 바이오하자드"라는 별칭을 가진 인디게임 <더 킬링 앤티도트>가 있다. <바이오하자드>와 거의 비슷한 방식을 가진 게임인데, 주인공의 체형을 포함한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고 여러 코스튬을 게임 내 탐험으로 획득할 수 있는 것을 게임플레이에 대한 하나의 동기로 삼고 있다.
2021년 출시된 중국의 인디게임 <더 브라이트 메모리>도 비슷한 방식을 사용했는데, 여러 게임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스타일리시한 FPS 게임성에 미형의 주인공을 내세웠다. 2025년 3월 27일 출시 예정인 <AI LIMIT>은 정통 소울라이크 스타일에 애니메이션 풍의 주인공을 내세우고 있다.
이런 게임은 보통 게임성이 미묘하더라도, 예쁜 주인공이 나온다는 이유로 스팀 평가 자체는 긍정적으로 집계되는 경우가 많다. 애초에 소규모 개발 게임에 '높은 퀄리티'를 요구하기 어렵기도 하다. 그리고 스팀 평가는 게임의 첫 인상과 판매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섬네일이나 게임 스크린샷을 통한 자연스러운 커뮤니티 바이럴을 유도할 수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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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킬링 앤티도트>
최근 게임계에서 PC와 DEI에 대한 이슈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 게임은 이런 이슈를 건너뛸 수 있는 환경적인 강점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가령 서구권에서는 PC를 선호하는 층이 자국의 소비자로 분명 존재하고 있고, 이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는 가차 없는 공격이 쏟아지기에 게임사가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 이는 PC를 선호하지 않는 층에서도 동일하기에, 게임 개발자가 이러한 논란과 거리를 두고 게임을 개발하더라도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의도치 않게' 휩쓸리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중국 게임사들은 이런 점을 감안할 필요가 없다. 이들은 탄탄한 내수 시장에 기반하고 있고, 이 내수 시장의 소비자들은 그런 것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비록 중국 게임이 '정부의 규제'라는 환경적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오히려 환경적인 이점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서브컬처 쪽으로 확장하면 <마작>에다 서브컬처 요소를 더한 <작혼: 리치마작>이나 <마작 1번지>가 있다. 이 두 게임은 <마작>에 서브컬처 요소를 덧댐으로써 젊은 층을 유입시키는 것에 성공했다. 최근 출시된 인디게임으로 따지면 <끝없는 앨리스>라는 게임이 있는데, <리스크 오브 레인 2>와 같은 생존형 게임의 요소에 서브컬처 캐릭터를 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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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런 게임을 보면 드는 생각이 있다. 기존 성공한 게임에 캐릭터만 서브컬처로 바꿔 넣는 식으로
빠르게 개발해 박리다매식으로 판매하면 굉장히 쏠쏠하지 않을까 싶다. 몇몇 중국 개발사는 정말로 이걸 노린 느낌이다.
중국의 게임은 대형, 인디 가릴 것 없이 자국의 문화를 게임의 콘셉트로 삼는 경우가 많다. 게임이 중국과 관련이 적더라도, 자국의 게이머를 의식한 것인지 중국 테마의 이벤트를 꼭 개최하는 편이다.
이 점은 일종의 리스크가 되기도 한다. 특히 인디 씬에서 그렇다. 중국 인디게임협회의 창립자는 "최근 몇 년 동안 스팀에서 성공을 거둔 중국 인디게임들이 꽤 있다. 일부는 100만, 200만 장에 달하는 판매량을 올렸다. 문제는 이러한 판매량의 대부분이 중국 내부에서 발생했다. 중국 밖에서 성공을 거둔 게임은 적은 편"이라며 "중국 인디게임이 중국 내에서만 잘 팔리는 이유는 지역색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일단 중국의 인디 개발자는 자라온 환경에서 익숙한 요소들에 착안해 작품들을 만들고는 한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것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들은 생각이 하나 있다. 중국풍 게임이 비록 현재는 호불호가 갈리더라도 게임 완성도를 통해 지속적으로 게이머들에게 '소비시킬 수 있다면' 거부감은 분명 천천히 줄어들 수 있다. 최근 스팀 동시 접속자 차트에서 늘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마블 라이벌즈>의 춘절 이벤트를 보며 든 생각이다.
실제로 <오공> 이후 출시를 예고하고 있는 중국 게임 기대작들은 대부분 중국 문화를 게임의 콘셉트로 삼고 있다. 글로벌 시장 공략에 패널티로 여겨지건 말건 중국 개발사들은 계속해서 중국풍 게임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성공 사례가 지속적으로 쌓인다면 중국풍은 더 이상 리스크가 아닌, 자주 보이는 익숙한 콘셉트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거나, 나아가 글로벌 게이머들이 자발적으로 중국의 문화를 공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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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절 이벤트를 진행한 넷이즈의 <마블 라이벌즈>
이제 대형 게임에서 이런 중국풍 이벤트를 보는 것은 더 이상 어색한 일이 아니다.
인디로 눈을 돌리면, 2024년 <오공>에 이어 가장 많은 판매를 기록한 중국 패키지 게임 <굶주린 새끼양>의 사례를 볼 필요가 있다. 명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이 비주얼 노벨 게임은 출시 반 년 만에 100만 장을 팔았는데, 소수지만 영미권 게이머의 스팀 리뷰가 존재한다.
서구권 게이머는 무협을 모른다. 무협 소설이 동아시아만큼 유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협 장르 특유의 스토리 진행 방식이나 느낌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이 게임을 접하고, 소비하고, 자발적으로 스팀 리뷰까지 남겼다는 것은 인상적이다. 계속해서 전반적인 퀄리티를 향상시킬 수 있다면 중국풍이라는 단점을 극복하고 소비자층을 더욱 확장할 수 있음을 보인 셈이다. 이는 '서유기'를 모태로 삼았던 <오공>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이야기다.
사족을 붙이면 지역색이 없음에도 큰 성공을 거둔 중국 인디게임이 존재하기도 한다. 스팀에서 7만여 개의 긍정 평가를 받은 우주 시뮬레이션 게임 <다이슨 스피어 프로그램>은 중국의 개발자 다섯 명이 뭉쳐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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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시대를 다룬 <굶주린 새끼양>
한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오공> 다음으로 가장 잘 팔린 중국 패키지 게임이다.
그러나 스팀에 진출한 중국 게임이 항상 좋은 모습만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인디 씬에서는 중국 게임의 단점이 도드라지는 편이다. 스팀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 게임의 사례를 정리하면 대략 이런 문제점이 나온다.
먼저 외관에 비해 게임 내적인 완성도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이미 성공한 게임의 요소를 따 온 것은 좋지만, 덕분에 "익숙한 맛"의 느낌만을 낼 뿐 "새로운 맛"을 주지 못하고 단순한 '흉내내기'에 그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원본 게임의 단점까지 그대로 가져와 버리곤 한다.
인디 쪽에서도 서브컬처와 미형의 주인공을 내세워 '겉으로 보이는 때깔'은 좋아 보이지만 부족한 완성도로 혹평을 받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기억나는 사례 중 하나는 2024년 스팀에 출시된 <비트라이더>라는 사례가 있다. 대략 리듬 액션 게임이고 게임의 UI나 전체적인 일러스트 화풍은 일본 Elf의 게임 <도나 도나>를 그대로 가져온 듯한 느낌을 준다. 이 게임은 완성도가 그다지 좋지 않아 스팀에서 복합적인 평가를 받았는데 한 중국 유저의 한 맺힌 평가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중국 개발자들은 모바일게임이나 만들어라! 인디게임은 너희가 시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격투도 아니고 리듬도 아닌, 이 게임의 장르는 대체 뭐냐? 리듬에 맞춰서 공격하는 것을 요구해 놓고 BGM조차 안 넣었다. 아트 빼면 쓸모없는 게임이다. 내가 국산 게임에 가지는 기대감의 하한선을 새롭게 갱신할 셈이냐? 이미 바닥에 처박혀 있는데, 땅을 또 파야 하나?" - 한 중국 유저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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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스팀)
중국인디게임협회의 창립자도 이전 TIG와의 인터뷰에서 "2023년 스팀에 출시되는 중국 게임이 두 배로 늘어났다. 하지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경쟁이 아닌) 게임의 낮은 퀄리티다. 게임 컨퍼런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출품작을 보면) 중국 인디게임의 글로벌 시장 경쟁력이 약해졌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가지 추측해 볼 만한 내용이 있다. 이 관계자는 "중국의 게임 개발 역사가 그렇게 길지는 않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콘솔 게임기가 합법화된 것은 매우 최근의 일이다. 게임 디자인 업계의 역사 자체가 짧다"고 인터뷰에서 언급했다.
그리고 "중국 게임들의 경쟁력이 높아지려면, 젊은 개발자들이 게임플레이, 게임 디자인에 관한 지식을 최대한 많이 쌓고 이에 기초하여 새로운 것들을 생각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요즘 중국의 젊은 개발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일부 스마트폰 게임만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개발사의 신입 선발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지원자에게 '게임 플레이 경험이 있느냐'고 질문하면, 한 두 개, 혹은 서브컬처 게임만 플레이해 봤다고 답변한다. 이런 한정적 경험으로는 게임 디자인이 어렵다"고 했다.
좋은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많은 명작 게임을 접하고, 게임 디자인을 배우고 느끼는 것이 필수적이지만 중국에는 그런 개발자가 많지 않다는 이야기다. 이전부터 콘솔 게임을 접하기 힘들었고, 모바일이 주류인 특성 상 젊은 개발자들은 캐주얼 혹은 서브컬처 게임의 경험만을 가지고 업계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인력으로 '때깔'은 좋게 만들더라도, 세부적인 완성도에선 디테일이 떨어지는 단순한 '흉내내기'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로 해석된다.
중국 개발자들이 비교적 최신 게임을 자주 벤치마킹하는 이유도 어림짐작해볼 수 있다. 중국에서 콘솔 게임의 역사가 길지 않다면 이들이 접한 것들은 대부분 2010년대 이후의 게임일 것이다. 게임 디자인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이전의 '고전 명작'들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거나, 알았더라도 접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글로벌 퍼블리싱 노하우 부족은 중국 인디게임이 대표적으로 보이는 약점이다. 대표적으로 '번역 이슈'가 있다. 중국 인디게임이 스팀에 출시돼 호평을 받았음에도 불구, 유저 평가에서는 "게임은 괜찮은데 영문 번역이 엉망이다"는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많다. 영문 번역부터 이러니 '공식 한글화'는 바라기조차 힘들다. 스팀에서 성공한 중국 게임 대부분이 '유저 한글 패치'로 국내 현지화를 대체하고 있기도 하다.
사실, 이 점으로 스팀에서 '사실상 중국어만을 지원하는 게임'이 다수 존재하는 이유를 추측해 볼 수도 있다. 몇몇 중국 개발자에게 스팀은 자국의 까다로운 규제를 피해 '스팀을 사용하는 중국인'을 대상으로 게임을 출시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추측된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수익까지 생기면 좋고, 아니면 말고"라는 느낌이다. 한 중국 개발자는 2020년 경 해외 매체 EGM에 "1인 개발자가 판호를 발급받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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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스팀에 출시돼 호평받은 <난설>, 하지만 이 게임에 한국어가 정식으로 추가되기까진 3년이 걸렸다.
그래도 게임이 입소문을 타 국내에서도 잘 됐고, 유저 한글 패치가 정식으로 채택됐으니 <난설>은 긍정적인 사례다.
VPN을 사용해 스팀에 게임을 출시하는 것도 쉽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디 개발자들이 구매자와 소통을 위해 흔히 사용하는 디스코드조차 중국에서는 금지되어 있다. 해외 매체 EGM이 2020년 진행한 인터뷰에서 한 개발자는 "2년 전부터 VPN이 잘 되지 않았다. 스팀에 게임을 업로드할 수도 없는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해서 중국에서 대만으로 사업체를 이전해 버렸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났다"고 했다.
중국 내부에서 선호하는 게임과 글로벌 시장에서 선호하는 게임의 트렌드가 달라, 인디 개발자가 글로벌 시장에서 먹히는 게임을 만들기 어려워하는 점도 있다. 한 개발자는 2020년 EGM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중국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매우 독특한 특성이 많이 있는데, 이 특성은 '현지화'가 되지 않는다. 중국 내에서 매우 인기가 있지만, 중국 밖에서는 인기가 없는 매우 독특한 장르나 트렌드가 있다"고 했다.
현재 중국 게임은 <원신>을 시작으로 '서브컬처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게임의 흥행과 매출 규모를 떠나, 서브컬처 게임에 중요하게 여겨지는 '캐릭터의 모델링'이나 '스토리 연출', '그래픽 퀄리티'면에서 평균적으로 가장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이제 서브컬처 게임 소비자들은 중국 게임을 접할 때 가장 먼저 '퀄리티'를 기대한다. 중국 게임은 일반적으로 퀄리티가 높다는 인식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 또한 <니케>나 <블루 아카이브>와 같은 흥행작을 보유하고 있지만, 아직 퀄리티가 중요한 3D 서브컬처 게임 분야에서는 아직은 발전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많다. '서브컬처의 원류'로 여겨지는 일본은 '사이게임즈' 외에는 수많은 개발비와 기술력을 투자해 가며 3D 서브컬처 게임을 개발하는 게임사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10년 전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자. 10년 전의 게이머에게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앞으로 10년 뒤 중국이 서브컬처 게임 시장의 절대강자가 될 것"이라고 말하면 믿었을까?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다. <원신>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조 단위의 매출을 기록한 '호요버스'는 2011년 창립 당시만 하더라도 대학생 4명이 모인 영세한 '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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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나라의 서브컬처 게임이 경쟁하는 가운데, 중국 서브컬처 게임의 가장 큰 강점은 '퀄리티'다.
특히 모델링은 정말 중국이 절대적 강자라고 느껴진다. 10년 전에 이렇게 될 것이라 이야기했다면 누가 믿었을까?
그러나 서브컬처 시장 분야에서 중국 업계는 꾸준한 시도를 이어가며 현재의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비록 성장기에는 일본에서 유행한 '코레류' 장르를 적극 벤치마킹하거나,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의 콘셉트를 그대로 따 오거나, <원신>과 <야생의 숨결>과의 유사성 논란 등이 있었지만 계속해서 배우고 시도했기에 현재의 모습까지 다다르고, 계속해서 발전의 여지를 보여주고 있다.
기자는 최근 중국의 콘솔, 인디게임이 이 서브컬처 게임의 발전과 비슷한 과정을 밟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 내에서도 개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여러 단체가 움직이고 있기도 하다. 게임잼, 글로벌 인디 게임 시상식과 같은 행사가 지속적으로 개최되고 있으며, 게임 전시회 위플레이 엑스포에 한국의 인디 게임 행사 BIC의 수상작이 초청받기도 했다.
중국 정부도 게임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오공>의 성공 덕분에 분위기까지 뒤바뀐 모양새다. 2021년 정부의 규제에 발맞춰 게임을 "전자 마약"이라고 표현했던 중국의 신화통신은 <오공>의 성공 이후 연일 호평 기사를 쏟아내며 장편의 인터뷰까지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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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공>의 성공 이후 게임에 대한 중국 국영 언론의 시선은 달라진 듯하다. (출처: 신화통신)
정리하자면, 중국 게임이 최근 PC, 콘솔, 인디 분야에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미 성공한 게임을 적극 벤치마킹하는 것을 반복하고, 독립 개발자의 디자인에 대한 노하우 부족, 소규모 게임에 대한 글로벌 퍼블리싱 노하우 부족 등의 문제점을 보이고 있지만, 지속적인 시도 끝에 경험치를 쌓고 전반적인 퀄리티를 상승시키며 스팀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중이다.
중국의 이런 시도가 지속적이고 장기적으로 이루어져 '숙련된 게임 개발자'를 계속해서 키워낸다면 언젠가는 중국의 PC, 콘솔 게임 퀄리티와 창의성이 서구권에 준하는 수준으로 발전할 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에 중국 당국까지 합류해 게임을 하나의 유망 사업으로 적극 지원한다면 시너지 효과는 무시무시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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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게임이 여전히 시행착오를 거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이 시행착오는 계속해서 경험치로 축적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