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진행된 ‘일러스타콘’에서 인디 게임 <체이싱 라이트>의 개발자인 배상현 디렉터가 강단 위에 섰다. 위 문장은 그가 뽑은 강연의 '캐치프레이즈'다.
배상현 디렉터는 “표현이 다소 과하다고 생각될 수 있으나, 이것 외에 적절한 비유를 찾지 못했다”며 표현의 이유를 설명했다. 그에게 있어 게임은 종합 예술이며 모든 예술적 창작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행위다. 마치 신이 천지를 창조했듯, 창작자는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주체이기에 창작자를 신으로 빗대었다는 것이다.
그는 창작자를 꿈꾸며 컨퍼런스에 참석한 이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전수했다. 아래는 그의 강연을 정리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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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단 앞에 선 <체이싱 라이트> 개발자 배상현 디렉터
강연의 문을 연 것은 “예술은 어떻게 탄생했는가?”라는 다소 철학적인 질문이었다. 인류 최초의 예술로 알려진 라스코 동굴의 벽화에는 많이 잡아서 많이 먹고 싶다는 주술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구석기 시대의 또 다른 예술 작품인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 역시 다산을 기원하는 주술적 숭배의 대상이었다. 즉, 인류의 예술은 주술로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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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벽화인 라스코 동굴 벽화에는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전 강연에서 밝혔듯, <동방 프로젝트>는 창작자의 망상과 도피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됐다. 굳이 주술이라는 거창한 말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보고 싶고,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욕망에서 시작되는 게 예술이다.
배상현 디렉터는 이러한 예술이 근본적으로 오이디푸스의 운명과 맞닿아 있다고 말한다. 상업적인 성공을 목표로 한 경우를 제외하면, 예술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오이디푸스처럼 자신이 태어날 수 있게 한 기존의 질서를 깨면서 탄생하고 또 발전한다는 뜻이다.
파블로 피카소는 “모든 어린이는 예술가이다”라고 말하며, 스스로도 어린아이처럼 그림을 그리기 위해 평생을 노력했다. 그가 보기에 아이들은 사회적인 관습에 휘둘리지 않으며, 원하는 바를 원하는 대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자라면서 사회화의 과정을 거친다. 사회화란 곧 사회의 관습에 맞게 인간을 깎고 다듬는 것이다. 무릇 창작자는 창작의 순간만큼은 사회로부터 해방되어 오롯이 홀로 서야 한다. 마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스타차일드’처럼 우리 사는 지구로부터 멀찍이 떨어져서 태아처럼 순수한 상태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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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스타차일드'
우리는 대개 문어의 눈 위에 달린 둥근 기관을 머리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것은 문어의 배에 가까우며, 따지자면 문어의 머리는 눈과 입이 달린 부분이다. 우리, 그러니까 인간의 경험이 모든 사물을 인간에 빗대어 보도록 만들기에 발생하는 착각이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선 이 같은 인식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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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상과 다르게 문어의 머리는 다리 바로 위에 있다. 만물을 인간에 빗대어 해석하는 프레임에서 비롯된 착각이다.
물론 대뜸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 위해 배상현 디렉터는 내용, 형식, 그리고 행위라는 세 가지 뿌리에서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내용은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 형식은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 행위는 이 과정에서 수행하게 되는 활동이다. 이 세 가지를 살짝만 비틀어도 전에 없던 새로운 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캡틴 아메리카’처럼 선하고 정의로운 '미국적인' 히어로를 비틀면 ‘홈랜더’가 되고, 몬스터를 잡고 경험치를 얻으며 성장한다는 고전 JRPG의 문법을 비틀면 <언더테일>이 된다. 2001년 PS2로 출시된 <모기>는 플레이어가 모기를 잡는 게 아니라 직접 모기가 되어 피를 빨게 만든다. 사소한 변주가 새롭다는 인상을 남긴 좋은 사례들이다.
이처럼 비틀 수 있는 것은 끝이 없다. ‘이미 나올 건 다 나왔다’고 생각하기엔 아직도 이르다. 그러니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하라. 크고 작은 변주로 만들어진 새로운 요소들을 하나둘씩 쌓아가다 보면 결국은 거대한 자신만의 세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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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둘러싼 인간적인 프레임을 벗어나고 싶다면 이를 해체해야 한다.
아사이 료의 소설 <정욕>이 대표적인 사례다.
아사이 료의 소설 <정욕>이 대표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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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가 모기를 된다는 독특한 아이디어로 당시 16만 장 이상 판매된 <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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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이싱 라이트> 역시 이런 끊임없는 비틀기를 통해 만들어졌다고 그는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