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가 종종 이야기하는 ‘게임만의 스토리텔링’이란 과연 무얼까? 여러 개발자, 평론가, 언론인, 일부 게이머까지 ‘게임은 다른 스토리 미디어와 다르다’고 힘주어 말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시원하게 설명해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되려 많은 게임이 영화, 소설, 만화의 내러티브 전달법을 별 고민없이 답습해 비판받는다. ‘컷신이 너무 많아 영화인 줄 알았다’거나, ‘모든 스토리를 텍스트로 풀어놓아 지루하다’는 평가를 듣는 작품이라면 이런 경우일 때가 많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2인용 코옵 액션 어드벤처 게임 <잇 테이크 투>의 개발자 조지프 파레스가 외신 헐리우드리포터 인터뷰에서 ‘게임만의 스토리텔링’에 대한 자신만의 원칙과 소신을 밝혔다.
개발사 ‘헤이즈라이트’ 대표이기도 한 파레스는 “아무도 하지 않았던 시도를 해야만 게임이라는 매체를 진일보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생각하는 ‘게임이 나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간략히 살펴봤다.
파레스는 6개 영화를 연출한 경력의 영화감독 출신이다. 그런데 2017년 더 게임 어워드에서는 중지를 치켜들며 “오스카는 X이나 먹어라, 이 시상식이 진짜다”는 발언으로 주목받기도 했다(해당 발언은 <잇 테이크 투>에 이스터에그로 삽입돼있다).
파레스가 영화에 반감을 지닌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게임의 가치를 다소 ‘격하게’ 확신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 당시에 그렇게 발언한 이유에 대해 파레스는 “오스카에 개인적인 감정은 없지만 이제 (영화가 아닌) 게임을 기려야 할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파레스는 게임에는 기존의 ‘수동적’ 미디어에 없는, 인터렉티브 미디어로서의 특별한 잠재력이 있다고 굳게 믿는다. 따라서 게임 개발자들은 이를 반드시 활용해야 한다. 그는 “(영화와 같은) 수동적 매체들이 스토리에 대해 가지는 통제력(control)과 게임이 스토리에 대해 가지는 통제력은 다르다”고 설명한다.
이전에도 <브라더스: 어 테일 오브 투 선즈>, <더 웨이 아웃> 등을 제작하며 상대적으로 ‘비주류’ 장르인 2인 코옵 개발에 열중해왔던 파레스의 목표는 업계에서 아무도 하지 않던 시도를 하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사명감’ 때문이다. 파레스는 도전과 혁신이야말로 게임업계가 한발 더 나아갈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그는 “그 방법밖에는 없다. 새로운 무언가를 배워서 게임이라는 미디어를 전진시키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하고 모험을 해야 한다”고 전했다.
특히 그가 몸담은 ‘스토리 게임’ 분야에서 그렇다. 비록 업계가 내러티브 측면에서 진전을 이루고는 있지만, 아직 충분치 않다는 것이 파레스의 생각이다. 게임 미디어의 특성에 맞는 스토리텔링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사례가 아직 많다.
심지어 일부 게임은 스토리 작가와 게임 디자이너가 별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한 뒤 나중에서야 하나로 합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렇게 만들어진 게임은 게임플레이와 스토리 파트가 완전히 ‘따로 놀게’ 된다. 스토리텔링에 있어 상호작용이라는 게임 고유의 장점이 빛을 잃는 셈이다.
그는 “그저 다음 컷신으로 넘어가 스토리를 확인하기 위해서 플레이하게 되는 게임들이 있다. (반면) 우리는 스토리와 게임 디자인을 최대한 하나로 합치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한다”고 전했다.
파레스가 말하는 ‘스토리와 게임 디자인의 결합’은 이혼 위기 부부가 주인공인 <잇 테이크 투>에서 실제로 자주 체감할 수 있다. 부부가 지닌 각자의 성격적 결함은 게임 스토리와 플레이 메카닉에 직접 반영된다. 덕분에 이를 직접 체험하는 유저들에게 부부의 우화는 다른 매체의 메타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강렬한 현장감으로 다가온다.
예를 들어 게임 중반, 아내 메이로부터 평소 ‘시간관념이 없다’는 비판을 듣는 남편 코디는 시간 조절 능력을 얻는다. 한편 가정 소홀에 대해 늘 ‘내가 분신을 만들 수는 없지 않냐’는 말로 변명해온 메이에게는 정말 분신 능력이 생긴다. 플레이어는 부부가 서로에게 요구했던 바로 그 능력을 이용해 난관을 함께 헤쳐나가는 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파레스는 게임이라는 매체에 대해 전망이 밝다. 그는 “게임 산업이 스토리텔링 분야에서 향후 더 거대해지고, 임팩트를 가지게 될 잠재력이 있다고 믿는다”라고 전했다.
파레스가 증거로 내세운 것은 영화라는 ‘선배’ 미디어의 전례다. 영화가 기법이나 작법에서 현재와 같은 완성도를 지니게 되기까지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즉, ‘후배’ 미디어인 게임은 그만큼 앞으로 갈 길도 멀지만, 그만큼 가능성도 많이 열린 상태인 셈이다.
파래스는 “게임은 아직 겉핥기 수준에 머물러있다. 나와 헤이즈라이트는 게임을 진일보시키는 움직임의 일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게임의 진일보’는 금방 찾아올 현상이다. ‘음지 문화’였던 게임이 이제 지하를 벗어나 인정받고 더 자주 주류 무대에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레스의 눈에 게임은 이미 ‘예술’이며, 여기에는 이론의 여지조차 없다. 그는 “나는 ‘게임은 예술이 아니다’고 주장하는 사람과는 말도 섞지 않는다. 의문을 제기할 거리조차 아니다”고 말한다. 이런 시각이 주류로 자리 잡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지만, 파레스가 강조한 혁신의 시도는 그 시기를 앞당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