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동갑내기 선수 '페이커' 이상혁과 '데프트' 김혁규가 데뷔 10주년을 맞았다.
10년. 절대 짧은 시간이 아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나와야 채워지는 숫자다. 매일 미디어의 노출, 솔로 랭크 연습, 스크림, 개인 방송, 성적 압박, 큰 경기가 주는 부담감 속에서 살아왔을 선수들에게는 더욱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런 인고의 시간 속에서도 페이커와 데프트가 여전히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엄격한 자기 관리' 정도로는 표현되지 않는 정신력과 끈기가 필요한 일이다.
LCK가 두 선수에게 헌정한 동영상, 그리고 이전 디스이즈게임의 기사를 통해 발자취를 간단하게나마 돌아본다.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본 콘텐츠는 디스이즈게임과 오피지지의 협업으로 제작됐습니다.
# 데프트의 10년
데프트의 첫 데뷔는 당시 '나이스게임TV'에서 진행하던 '배틀로얄'이라는 대회다. 일종의 초청전 형식으로, 패배할 때까지 계속해서 경기를 이어나가는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데프트는 2013년 2월 19일 열린 배틀로얄에서 'MVP 블루' 소속으로 첫 출전했다. 처음으로 사용한 아이디는 'Zebec PooP'이었다. 데프트의 상대는 'KT-B'팀이었고, MVP 블루는 당시 NLB 윈터 시즌에서 우승했던 'GSG'의 팀원을 대거 영입하며 리빌딩을 한 지 얼마 안 된 상태였기에 상대적 열세로 여겨졌다. '츄냥이'(現 하트) 이관형도 "오늘 경기는 진다는 생각으로 임했다"라고 언급할 정도였다.
그러나 MVP는 멋진 경기력으로 KT-B를 완파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데프트가 '이즈리얼'을 통해 선보인 하이퍼 캐리(동영상 0분 50초)가 주요했다. 경기를 지켜본 팬들은 "어디서 괴물이 한 마리 나왔다"라며 놀랐다. 데프트는 인터뷰에서 "처음이라 많이 떨렸는데 팀원들이 너무 잘해줘서 자신감 있게 플레이할 수 있었던 것 같다"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당시 리그디스 게시판에 올라온 반응
데뷔 초창기 시절의 데프트, 오른쪽 인물은 현재 코치로 활동중인 '하트' 이관형
이후 팀이 '삼성 블루'로 개편되고 데프트는 제대로 자신의 잠재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솔로 랭크에서 보여 주던 모습이 드디어 대회에서까지 등장했다는 평가였다. 데프트는 '2014 롤챔스 스프링' 결승전에서 코그모를 선택해 상대의 스킬을 이리저리 피하고 트리플 킬을 기록하며 우승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영상 1분 5초).
그러나 롤드컵와의 악연이 시작된 첫 해이기도 했다. 데프트는 첫 롤드컵인 '2014 월드 챔피언십'에서 비공식 펜타킬을 기록했지만 약간 기복 있는 모습을 보였다. 절치부심 끝에 4강까지 진출했으나, <롤>에서 시야 싸움 개념을 정립했다고 여겨질 정도로 당대 최강의 경기력을 뽐냈던 형제팀 '삼성 화이트'를 만나 패배했다. 데프트는 눈물을 흘리며 아쉬움을 삼켰다.
삼성은 2014년 최강이라고 불릴 만한 경기력을 선보였지만, 다양한 문제가 겹치며 2015년 팀이 해체됐다. 데프트는 '폰' 허원석과 함께 당시 떠오르고 있던 중국 리그 'LPL'로 향했다. EDG에 영입된 데프트는 폰과 함께 말 그대로 리그를 '씹어 먹으며' 절정의 기량을 뽐냈다(동영상 1분 12초). 모두가 인정하는 데프트의 전성기였다.
(출처: LCK)
2015 MSI에서는 SKT를 3:2로 꺾어내며 첫 국제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롤드컵에서는 라이벌로 평가받았던 '레클레스'가 소속된 프나틱에게 패배하며 8강에 그쳤다. 2016년에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기적을 써 내려가던 다크호스 'ROX 타이거즈'를 만나 8강에서 탈락했다.
2017년에는 '롤드컵 우승'을 위해 한국 복귀 후 당시 '슈퍼팀'이라고 불린 KT 롤스터에 합류했다. 첫 해에는 선발전에서 탈락하며 아쉬움을 보였지만, 18년에는 '스코어' 고동빈이 첫 우승을 차지한 '2018 롤챔스 스프링' 시즌을 우승하며 다시금 절정의 기량을 뽐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당해 롤드컵 우승팀 '인빅터스 게이밍'(iG)를 만나 8강에서 풀세트 접전 끝에 패배했다.
이후 데프트는 킹존 소속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케리아' 류민석과 호흡을 맞춘 2020년에는 당대 최강 팀 '담원 기아'를 만나 8강에서 분전 끝에 패배했다. 2021년에는 한화생명e스포츠 소속으로 스프링 시즌 8위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선발전을 승리하며 롤드컵에 진출했지만, 8강에서 T1를 만나 패배했다. 첫 진출한 롤드컵에서 4강에 진출한 이후로는 계속해서 8강이라는 벽을 넘지 못했던 것이다(2분 20초).
이처럼, 2022년에 드디어 롤드컵 우승컵을 들어 올린 데프트에게 모두의 이목이 집중됐던 이유는 10년 간 쌓아 온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첫 롤드컵 4강전에서는 패배의 눈물을 삼켰지만, 2022년 롤드컵 4강에서는 승리의 눈물을 흘렸다는 점을 생각하면 멋진 대비를 이루기도 한다. 다사다난한 선수 생활 속에서 보여준 꺾이지 않은 마음이 데프트의 10년을 만들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저뿐만 아니라, 팬 분들에게도 엄청나게 긴 시간이었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 시간 동안 제가 쓰러지지 않도록 버텨 주셔서 이 자리에 온 것 같습니다" - 2022 롤드컵 우승 인터뷰 中
2014년 롤드컵 4강에선 패배의 아쉬움으로 눈물을 흘렸지만
2022년 롤드컵 4강에선 승리의 기쁨으로 눈물을 흘렸다. (출처: LCK)
# 페이커의 10년
페이커는 2013년 'SKT T1-2' 소속으로 첫 데뷔했다(영상 55초). 선수에서 은퇴하고 코치로 전향했던 '꼬마' 김정균 감독이 직접 테스트를 보고 영입한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었다.
데뷔전에서 미드 니달리를 선택한 페이커는(당시에는 강력한 포킹 능력을 뽐내던 미드 니달리가 정석이었다) '엠비션' 강찬용을 솔로 킬하며 모든 e스포츠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어서 해외에서도 큰 화제가 됐던 11킬 르블랑이나 '류또죽'이라는 단어로 유명한 제드 플레이를 선보이며 슈퍼 스타의 위치까지 올랐다.
첫 롤드컵이었던 2013년에는 제드의 카운터로 미드 리븐을 적극 사용해, 롤드컵에서 미드 리븐이 나왔던 당일에만 솔로 랭크 픽률이 5% 가까이 오르는 영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데뷔하자마자 전성기를 맞이했던 페이커의 활약은 너무나 많아 열거하기 어렵다. 기억나는 몇 가지를 꼽아 보자면 '의자 씬'을 통해 지금도 가장 멋진 결승전 오프닝을 보여줬다고 평가받고 있는 '2013-2014 롤챔스 윈터'에서 상대를 라인전부터 압도하며 역대급 캐리를 선보인 것이 있다. 페이커만을 대상으로 한 저격 3밴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평가였다.
2014 올스타전에서는 조합을 포기하고 팬들에게 멋진 경기를 선보이고자 모두가 SKT 스킨을 착용한 챔피언을 선택하고, 페이커의 제드가 바론을 스틸해 내며 이기는 명경기를 보여 줬다. 서머 시즌에는 8강에서 탈락해 2부 리그였던 NLB로 떨어지기도 했으나, 결승전에서 '쿠로' 이서행을 상대로 역대급 야스오 일기토를 보여 주며 우승했다.
자신들에게 헌정된 스킨으로 조합을 꾸렸던 2014 올스타전
AD, AP 밸런스가 나빠 좋은 조합은 아니기에 경기 내내 어려움이 많았다. 그럼에도 승리했다. (출처: OGN)
2015년은 페이커의 시그니처 픽 '라이즈'가 무적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뽐내던 시기였다. 지금도 '역대급 다전제'라고 평가받고 있는 2015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SKT가 '쿠 타이거즈'를 쓰러트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페이커의 라이즈였다(1분 23초). 상대 픽으로 나온 카사딘을 압도함과 동시에, 갱킹을 온 렉사이를 역으로 쓰러트리는 모습을 보여 주며 쿠 타이거즈의 노림수를 모두 무위로 만들었다. 페이커는 15년과 16년 롤드컵을 연달아 우승하며 3회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써 냈다.
여담으로 슈퍼스타의 위치에 오른 이 시기의 페이커는 여러 광고를 촬영하기도 했는데, 날카로운 이미지를 가진 지금과 달리 풋풋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페이커에게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2분 10초 ~ 2분 40초). 2017년에는 4회 우승이라는 역대급 위업을 앞두고 롤드컵 결승전에서 패배했다. 18년과 20년에는 선발전 탈락했고, 19년에는 4강에서 G2를 만나 패배했다. 2021년에는 전년도 우승팀인 담원 기아를, 2022년에는 우승 직전까지 갔으나 '미라클 런'을 써내려가고 있던 DRX를 상대로 풀세트 접전 끝에 패배했다.
그러나, 10년 간 성장한 페이커는 담담했다. 눈 앞에서 기회를 놓쳤음에도 무너지지 않은 페이커는 인터뷰에서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라며 다음을 기약했고, 2023년 스프링 시즌 T1은 이견 없는 '1황'의 모습을 보여 주며 결승전과 2023 MSI 진출을 확정했다. '에이징 커브'가 왔다는 몇몇 사람의 평가도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플레이메이킹'을 통해 불식시켰다. 돌고 돌아, 결국에는 페이커였다.
수 년 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저 자신에게 증명하고 싶습니다. 다시 한번 최정상에 설 수 있다는 것을. - 2022 월드 챔피언십 4강 티저 영상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