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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의 긴장감'은 '범죄 현장의 뒷처리'에서도 이어진다

시체 청소부 시뮬레이터, 그런데 힐링(?)을 곁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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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준(음주도치) 2024-04-15 18:57:35
음주도치 (김승준 기자) [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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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의 긴장감'은 '범죄 현장의 뒷처리'에서도 이어진다

시체 청소부 시뮬레이터, 그런데 힐링(?)을 곁들인

<존 윅> 시리즈를 비롯한 많은 킬러 영화에는 종종 이들의 뒤를 봐주는 '시체 청소부'들이 등장하곤 했다. 과묵하게 때론 유쾌하게, 그러나 프로페셔널하게 모든 흔적을 지우고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은, '킬러'들의 화려한 액션에 묻혀 주목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범행의 긴장감'이 '범행 현장의 뒷처리'에서도 이어진다면 믿으실 수 있겠는가? "멋진 시체 청소 게임", "나 사실 청소 좋아할지도", "내 방은 안 치우면서, 게임에선 이렇게 열심히 닦다니!" 프롤로그 챕터 무료 공개만으로도 '압도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은 <크라임 씬 클리너> 리뷰 중 일부다.

스팀 리뷰 1,825개 중 96%가 긍정적인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살인 범죄 현장의 뒷처리를 해야 한다. 딸의 목숨이 걸려 있기 때문에, 마피아들의 의뢰에 불평할 수 없는 상황.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 건에 15,000달러(약 2천만 원)로 보수는 두둑하게 챙겨주기에, 군말 없이 피투성이가 된 현장을 청소한다.


플레이어는 시체를 치우고, 쓰레기 봉투에 깨진 잔해와 탄피를 주워 담는다. 청소에는 밀대와 수세미, 세제는 기본이고 고압 세척기나 오존 세척기도 활용된다. 결정적인 증거를 인멸하고, CCTV 기록은 지우는 등, 모든 흔적을 없애야 한다. 


아니, 근데 이렇게 귀찮은 일들이 '힐링'이 된다고? 불멍 대신 청소멍이라고 하면 믿으시겠는가? '내가 저지르지 않은 범죄'의 흔적을 모두 찾아 지워야 하는 입장은 어째선지 경찰의 역할과도 닮았다. 동시에 경찰의 등장을 두려워하는 꼴이라니. <크라임 씬 클리너>에는 이런 아이러니한 재미가 있었다. 




게임명: 본편 <크라임 씬 클리너>/ 데모 <크라임 씬 클리너: 프롤로그>
장르: 1인칭, 범죄, 생활 시뮬레이션
출시일 및 플랫폼: 본편 2024년 2분기, 데모 2024년 4월 4일/ 스팀
개발사/배급사: 프레지던트 스튜디오 S.A.
가격: 본편 미정/ 데모 무료
한국어 지원: O


# 미묘한 긴장감과 성취감

<크라임 씬 클리너>의 플레이 경험은 공포 게임과 시뮬레이션 게임의 사이에 있다. 본편에서는 어느 정도로 디테일한 서사가 등장할지 모르겠으나, 데모에서는 플레이어가 '왜 범죄 현장 청소를 해야 하는지', '범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피해자들이 살아있을 때 어떤 인물이었는지' 등을 엿볼 수 있는 대화 및 아이템이 등장했다.


범죄 현장에서 청소 도구를 들고 시작하는 단순한 도입도 아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집 컴퓨터로 마피아의 의뢰를 받아, 범죄 현장으로 차를 운전해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도 집 안에 있는 강아지나 휴대폰, 컴퓨터, 차량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일종의 몸풀기를 하고 시작한다. 


도착한 곳은 수영장이 있는 저택. 집 입구부터 첫 번째 시체가 널부러져 있고, 수영장 물은 피로 물들어 있다. 참고로, 게임에서는 범죄 행위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는 등장하지 않지만, 시체와 피, 범행 도구와 같은 간접적인 묘사는 등장한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청소 시작이다.


이어질 청소에서도 그렇지만, 디테일한 상호작용이 많다.


딸을 지키기 위해, 마피아의 의뢰를 받고 범죄 현장의 뒷처리를 하러 떠나는 주인공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다.


서문에서 '청소멍'이라고 표현했지만, <크라임 씬 클리너>의 청소는 꽤나 집중력을 요구했다. 화면 좌상단에는 현재 치워야 할 것들이 표시되는데, 피를 닦는 것부터 그리 쉽지 않다. 미묘한 지점에서 현실적인 제약들이 뒤따르는데, 밀대나 수세미를 많이 사용하면 빨아서 써야 하고, 고압 세척기의 물용량도 제한되어 있다. 물이 나오는 곳을 찾아, 양동이에 세제와 물을 채워 도구를 씻거나 세척기에 물을 담아야 한다.


물만 잘 채워가면서 진행하면 고압 세척기로 모두 쓸어버리면 되는 거 아니냐고? 다행히 각 공간마다 가까운 수도꼭지가 존재하긴 하지만, 유리잔이나 그릇 등 여러 물건이 깨지면 '쓰레기'로 카운트되기 때문에 말처럼 쉽진 않다. 쓰레기를 담은 쓰레기 봉투와 현장에서 없애야 할 시체는 정문 밖의 차량으로 직접 옮겨야 하니, 일이 늘어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이 귀찮은 과정이 묘하게 만족감을 준다. Q 버튼을 누르면 발동되는 '클리너 센스'는 지워야 할 피가 남은 부분에는 '루미놀 반응'처럼 형광 표시를 해주고, 치워야 할 물건이나, 원위치 시켜야 할 가구가 있는 곳에는 푸른색의 강조 표시를 해준다. 퍼센트 또는 개수로 표시되는 세부 목표는, 플레이어가 자연스럽게 다음 청소를 진행하게 만들어준다.


수영장의 물을 빼서 바닥을 닦거나, 전기를 차단해 디지털 도어락을 무력화시키고, 컴퓨터를 해킹해 CCTV 내역을 지우는 등 추리 게임스러운 면모도 등장한다.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내가 저지른 범죄가 아니기 때문에, 어디까지 치워야 하는지 알아가는 과정에서, (마치 자신이 경찰인 것처럼) 범죄의 흔적들을 모두 따라가고 진상을 파악한다. 동시에 멀리서 들리는 사이렌 소리 때문에, 언제 경찰이 올지 모른다는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점점 깨끗해져가는 현장과 촘촘한 목표 제시가 주는 성취감은 덤이다.


번거롭다 싶을 정도로 디테일한 청소 과정. 여러 개를 동시에 집어 봉투에 담는 것도 가능하지만 일의 양은 똑같다.

고압 세척기 등 다양한 청소 도구를 사용하는데, 천천히 목표를 달성해가는 과정이 묘한 성취감을 준다.


물 채우기, 도구 씻기, 시체나 쓰레기 봉투를 차 트렁크까지 옮기기 등 귀찮은 과정도 존재한다.


하지만 '내가 저지르지 않은 범죄'를 모두 파악해야 일이 끝난다는 점이 플레이어를 다음 목표로 끌어당긴다.


# 청소도 사실 즐거운 행위거든요

데모 버전에 한정된 스포일러를 하자면, 긴장감을 유발하던 경찰의 사이렌 소리는 사실 빈수레 쪽에 가까웠다. (본편에선 다를 수도 있겠지만) 타임어택 플레이 같은 걸 요구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주인공 혼자만 있는 이 시간을 '즐기라는' 분위기를 만들어줬다. (끝까지 가보고 나서야 알 수 있는 사실이긴 하다)


가령, 수영장 뒷편에 있는 농구장은 흩뿌려진 피도 부서진 잔해도 없는 깨끗한 공간이지만, 골대에 공을 던져 넣으면 일종의 업적이 표시된다. 카세트 테이프를 찾는 형태로 얻는 음악 수집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의 패드로 음악을 틀고 범죄 현장을 청소하는 모습이라니. 게임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심각하고 진지한 편인데, 소소한 놀이와 음악은 긴장감을 완화해주고 있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같은 느낌이랄까.


청소 도중 발견하는 금품을 훔치는 행위도 보물찾기를 하는 듯한 재미를 줬다. 반지, 목걸이 등 귀금속을 슬쩍하기도 하고, 지하실 안쪽 숨겨진 공간에서 돈다발을 찾아내기도 한다. 주인공이 금전적인 이유 때문에, 이 청소 의뢰를 받아들였던 것을 감안해보면 서사적으로도 설득력 있는 소일거리(?)다.


지루한 반복 작업엔 음악이 필요하다.

빚이 있는 주인공에겐 돈이 필요했다. 
행동만 모아 놓고 보면 싸이코 같을 수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의뢰를 수행하고 있다는 설정이다.


유튜브나 릴스에서 목공 또는 금속 공예를 하는 사람들이 요철이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두 조각을 연결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감각을 이 게임에서도 소소하게 느낄 수 있다. 여기저기 흐트러진 가구나 물건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때, 단순히 그 위치에 두는 게 아닌, 원래 놓여있던 방향까지 맞춰줘야 하는데, 이 과정 또한 소소한 성취감을 준다.


시체 다섯 구와 각각의 범죄 현장을 모두 정리하고, 저택에서 무사히 철수하면 진척도에 따라 점수를 매겨준다. 현장에서 훔친 금액과 보수로 받은 금액을 합산한 정산도 진행된다. 


한 유저는 "집안에 핏자국, 유리 조각 하나 안 남기고 바닥을 뽀득뽀득 닦고, 증거물에 현금과 보석까지 알뜰하게 챙겨, 결과창 100% 보고 만족하다가,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방 청소도 안 하는 내가 청소 게임을 하는 게 얼마나 웃겨 보이는지 깨달음"이라는 해학적인 리뷰를 남기기도 했다. 


2분기에 출시될 본편에서는 스킬 트리를 해금하면서 더 다양한 청소 도구와 기술을 선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어 번역 상태는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영어 더빙 및 스크립트 퀄리티는 준수했기 때문에, 다른 에피소드에서 어떤 비밀과 연출, 대사가 등장할지 또한 기대된다.


번거로운 작업은 있었지만, 어렵지는 않았던 100% 달성


데모에선 쓸 일이 없었던 스킬 트리는, 본편에서의 적극적인 활용을 기대해 본다.

# 청소하기 vs 더럽히기... 그리고 의미 찾기

<크라임 씬 클리너>는 어떻게 프롤로그 데모부터 '압긍'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까? 이 게임 고유의 재미도 분명히 있었지만, 유사한 게임에서의 긍정적 경험들이 <크라임 씬 클리너>의 이미지 형성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예시가 스퀘어 에닉스가 배급한 '압긍' 게임 <파워 워시 시뮬레이터>와 룬스톰이 개발한 '매우 긍정적' 게임 <비세라 클린업 디테일>이다. 특히 <비세라 클린업 디테일>은 멀티 요소를 제외하면 <크라임 씬 클리너>와 매우 유사하다. 외계인의 침입을 막은 사투 현장을 처리하는 과정, 탄피까지 줍는 디테일 등은 '성취감'의 누적이라는 측면에서 '청소'의 재미를 확실하게 전달했던 게임이다.


<파워 워시 시뮬레이터>
<비세라 클린업 디테일>

정반대의 과정을 담은 게임도 최근 스팀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포메라니안이 진흙과 잉크로 집안을 더럽히는 게임 <도론코 완코>가 그 주인공이다. 귀여운 강아지가 온갖 방법으로 집안을 더럽히는 비교적 단순한 게임이지만, 3월 26일 출시 이후 단기간에 '압긍' 평가를 받았다.


청소하기와 더럽히기가 같은 시기에, 같은 플랫폼에서 흥행하는 게 다소 아이러니해 보일 수도 있다. 활용하는 '행위'는 정반대지만, 이 게임들이 내세우는 재미는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모르던 세계를 알아가고, 그 세계와 상호작용하며 이전과 다른 상태를 만들어내는 '어드벤처' 장르의 본질을 잘 꿰뚫은 게임들이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에는 기온이 28도까지 올라 매우 덥더니, 평일이 시작되자 한여름 소나기처럼 비가 쏟아졌다. 조금 이르지만 벌써 공포 게임에 준하는 수준의 긴장감이 필요한 계절이다. 만약 당신이 평범한 청소가 아닌 스릴 있는 청소를 찾아 헤매고 있다면, 범죄자와 경찰의 역할 사이 미묘한 지점에서 사건의 전말을 알아가는 청소부의 세상이 궁금하다면, 성큼 다가온 여름 같은 게임 <크라임 씬 클리너>를 추천한다.


<크라임 씬 클리너> 본편은 2024년 2분기 출시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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