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되게 깐깐하네."
몇 주 전, 살짝 짜증이 났습니다. 담당자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한 독일회사와 했던 계약 때문이었죠. 하기로 했으면 팍팍 믿고 가면 좋은데, 하나하나 따지는 게 좀 그랬습니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이해도 됐습니다. 얼토당토않은 요구도 아니고, 인풋과 아웃풋을 엄격히 하자는 것이었으니까요. 괜히 '기계 강국' 독일이 아니었습니다.
"독일이 제일 좋아요!"
미국에서 렌더링과 IDC(인터넷데이터센터) 사업을 하는 후배가 했던 이야기입니다. 이유는 간단하더군요. 매너도 있고 입금을 한번도 안 어겼다는 거죠. 특정 국가에 대한 선입견을 피하기 위해 다른 나라들은 거명하지 않겠습니다. 국제적인 사업을 많이 하는 이 후배는 몇몇 나라에 대해서는 이를 박박 갈더군요. 할인을 조금 해주면 계속 더 해달라고 하고, 정작 입금은 안 하면서 다른 요청을 하는 등, 고약한 일이 많더군요. 그래서일 겁니다. 독일에 대한 우호적인 선입견을 가지게 된 것은요.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겠다."
저도 최근 독일이 좀 좋아졌습니다. 원자력발전소를 폐기하기로 한 것 때문이었죠. 그 결정보다는 그 과정이 멋있어서요. 메르켈 총리는 17명으로 구성된 윤리위원회를 구성했고, 이들이 장기간의 공개토론과 전문가 청문회 등 숙의 과정을 거쳐 원전 폐기를 결정했던 거죠. 이 위원회에는 한 명의 원자력 관계 전문가도 없었고, 그 위원장은 마르켈 총리의 정적(政適)이었다고 하더군요. '원전이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면 그것의 수용 여부는 시민이 결정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킨 게 멋있었습니다.
"고리 1호가 12분간 멈췄어요."
부산 고리원전은 국내 원전사고의 20%를 차지할 만큼 사고가 잦은 곳입니다. 설계수명 30년으로 지어진 곳인데, 35년째 가동 중이서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이 곳은 지난 2월 전원공급이 중단돼 냉각기능이 12분간 멈추는 대형사고가 났습니다. 잘못하면 핵폭발이 일어날 수 있었던 상황이었죠. 그런데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한 달 동안 이 사실을 숨겼습니다. 비슷한 시기, 고리 원전 간부에게 뇌물을 상납하고 엉터리 부품을 납품한 업자가 구속된 일도 있었죠. 그런데도, 한수원은 별다른 문제가 없다며 지난 4일부터 고리 1호를 재가동하기 시작했습니다.
"IAEA를 불러 안전점검을 맡기겠다."
사고 이후 여론의 비판이 높자, 우리 원전 당국은 IAEA(국제원자력기구)를 불러 안전점검을 맡겼습니다. IAEA는 국제적인 권위가 있는 곳으로 믿어지니까요. 이 기구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확산하기 위해 세워진 곳입니다. 기본적으로 원자력발전소 옹호파죠. [관련 칼럼] (당연히) 문제 없다고 했겠죠. '짜고치는 고스톱' 또는 '가재는 게 편' 느낌이 들더군요. TV에서 원전 사고가 났을 때 원자력공학과 교수를 불러서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하더군요. 기술적인 내용은 잘 말할 수 있겠지만, 폐쇄하자는 이야기는 하기는 어렵죠. 원자력은 그 분들의 밥벌이인데. 독일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싶더군요.
"2030년까지 현재 21기의 원전을 40기로 늘리겠다."
현재 우리 정부의 입장입니다. 잘은 모르지만, 반대하고 싶더군요. 전세계적 추세와 역행하는 위험한 도박을 하는 것 같아서요. 그렇다고 제가 독일처럼 우리나라의 원전을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닙니다. 독일은 지난해 원전 의존도가 17.7% 정도였고, 대체재생에너지 발전량이 20%쯤 되지만, 우리나라는 원전 의존도가 35%나 되니까요. 그래도, 고리 1호기처럼 노후하거나 문제 있는 원전은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재생에너지 개발에 더 박차를 가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거죠. 그리고 모든 시민의 생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이런 일은 정부 관료나 원자력 전문가들이 아닌 시민들이 모여서 결정했으면 좋겠고요. 원전사고가 난 일본과 멀리 떨어진 독일도 그러는데, 우리는 바로 옆이잖아요.
독일 프랑크푸르트 이야기
뢰머광장의 구 시청사. 격자 무늬의 목재 골조를 건축물 외벽에 노출시키는 파흐베르크 양식으로 지어진 곳으로 '독일의 경제적 수도' 프랑크푸르트에서 제일 유명한 건물 중 하나죠.
매년 쾰른의 게임스컴을 가면서, 프랑크푸르트를 거쳤습니다. 독일 직항은 거기뿐이니까요. 프랑크푸르트의 가장 유명한 관광코스 중 하나는 뢰머광장입니다. 런던(론도니움)처럼 로마인들이 개척한 곳이어서 그렇게 이름이 지어졌죠. 이 곳에는 무척 유명한 건물이 있습니다. 중세시대 파흐베르크(Fachwerk) 양식의 건물 3채가 붙어있는 구(舊) 시청사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들이 대관식 후 연회를 이 곳에서 벌였고, 제국 황제들의 52명의 실물 크기 초상화도 걸려있습니다.
뢰머광장 중앙에 우뚝 선 유스티티아(Justitia). 유스티티아는 정의와 법을 담당하는 로마의 여신으로, 정의를 뜻하는 영어 단어(Justice)는 그녀의 이름에서 비롯됐다고 하네요.
구 시청사 앞에는 1543년 세워진 정의의 여신상(Justitia)이 분수대 위에 서있습니다. 유스티티아의 왼손은 법 앞의 평등과 형평성을 상징하는 저울을 들고, 오른손은 정의집행의 엄정함을 뜻하는 칼을 쥐고 있죠. 법치를 상징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 여신상이 똑바로 바라보는 곳은 구 시청사였습니다. 법치주의는 '백성이 법을 지켜라'라는 뜻이 아니라, '법에 따라 공정히 통치하라'는 뜻인 거죠. 그래서 유스티티아는 52명 황제가 있는 곳을 지켜보며 칼과 저울을 들고 서있습니다.
황제들이 있던 건물을 마주보고 서있는 유스티티아. 저 발코니는 매우 유명한 사람만 설 수 있는 곳입니다. 차범근 선수가 FC 프랑크푸르트 시절 UEFA컵을 우승하고, 동양인 최초로 섰다고 하더군요.
독일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애플 와인 마시며 헤맸던 프랑크푸르트 밤거리도 생각났습니다. sim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