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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의 불량일기

80년 5월 광주의 풍경-2

임상훈(시몬) 2013-05-08 23:02:17
시몬 (임상훈 기자) [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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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 광주의 풍경-2

당신은 특전사에 복무 중인 상병입니다.

특전사는 일당백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최정예 공수부대입니다.

적 후방에 침투하는 게 주요 임무로, 자부심과 군기가 매우 셉니다.


하지만, 지난 1년은 죽을 맛이었습니다.

나라에 큰 일이 많아 휴가도 못 가고, 비상의 연속이었습니다.

지난 가을에 대통령이 피살됐고, 겨울에는 서울 시내로 출동할 준비도 했습니다.


2월부터는 다른 훈련은 다 포기하고, 충정훈련만 줄곧 해왔습니다.

충정훈련은 원래 1주일에 4시간씩만 하던 도심 시위진압 훈련입니다.


이게 다 데모하는 대학생 놈들 때문입니다. 정말 밉습니다.

인이 박이도록 들었습니다. ‘맹목적 저항세력’.

당신은 이렇게 뺑이치는데, 배부른 그놈들은 맨날 데모질만 하고. 부화가 치밉니다.


며칠 전부터 이 녀석들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붑니다.

서울역을 가득 채우고 민주주의니 뭐니 외치는 게 가관이었습니다.

작년 10월 부산과 마산처럼 조금 맛만 보여줘도 숨어들어갈 녀석들이...


근질근질하던 차에 마침 작전이 시작됐습니다. ‘화려한 휴가’. 부대 밖으로 나가 본 게 얼마 만인지.

당신은 한 달 전 지급받은, 쇠처럼 단단한 새 진압봉을 챙깁니다.

수통에는 소주를 채워넣습니다.


새벽에 대학교부터 점령했습니다.

학교에 있거나 오는 놈들은 일단 무조건 패고, 체육관에 가둬 놓고 조졌습니다.

학생들이 시내 중심가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출동했습니다.


초전박살이 중요합니다. 일단 젊은 놈들은 머리부터 사정 없이 후려쳤습니다.

반항하는 놈들은 대검으로 찌르고, 군홧발로 묵사발을 만들어 놨습니다.

방해하거나 참견하는 놈들은 남녀노소 안 가리고 다 응징했습니다.


그래 놔야 합니다. 이렇게 처참하게 박살 나는 것을 보면 다들 겁을 먹을 테니까요.

당신의 목적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공포극장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폭력의 효과는 확실했습니다. 겁에 질려 모두 뿔뿔이 흩어지기 바쁩니다.

당신은 다시 대학교로 돌아갑니다.

 

 


다음날 아침, 시내에서 대학생들이 모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이 녀석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모양입니다.


다른 특전사 부대까지 내려 왔습니다. 걔들보다 잘해야 합니다.

월남에 다녀온 박 상사는 베트콩에게 했던 것처럼 확실히 밟아버려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김 상병과 이 일병은 예쁜 여자를 보면 달려들어서 그 곳만 칼로 찢습니다.


버스를 세우고, 그 안에 있는 젊은 놈들은 보이는 대로 머리를 팼습니다.

여관도 뒤지고, 식당도 뒤지고, 걸리는 놈들은 모조리 박살을 내고 있습니다.

때리고, 치고, 베고... 이 정도 했으면 이제 시내는 조용해져야 하는데...


어,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게 변해갑니다.


학생뿐이던 시위대에 시민이 합세합니다. 이제는 시민의 수가 훨씬 많아졌습니다.

함부로 쫓아 들어갔다가는 당신이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각목과 쇠파이프, 연탄집게를 들었습니다.

김 중위가 모이라고 합니다. 이제 각개전투는 안 됩니다.

이제 당신은 대대 단위로 모여서 시위대와 대치전을 해야 합니다.


당신은 도무지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1980년 5월 19일 저녁, 광주에 온 많은 공수부대원들은 살짝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si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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