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와 세기의 대결을 펼쳤던 이세돌 9단.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때를 기억하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AI)의 역사에 있어 '바둑'과 '체스'는 매우 중요한 전장 중 하나였다. 1997년 IBM의 딥 블루가 세계 체스 챔피언 개리 카스파로프를 상대로 이겼던 순간 또한 세기말의 분위기와 함께 역사 속 한 장면으로 남아 있지 않은가.
이젠 시대가 달라졌다. 2024년 현재 체스, 바둑 기사들은 AI의 수를 보고 전략을 학습하고 교정한다. AI가 둔 최강의 수에 몇 퍼센트 일치하느냐-가 곧 실력의 지표가 되곤 한다. 인류 최강자도 AI와의 대국에서 패배를 맛봐야 하는 상황. 그렇다면 AI는 체스판, 바둑판에서 인간에게 정답지의 역할만 해야 하는 것일까. 구글 랩스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구글 랩스가 11월 25일 무료 웹 앱으로 선보인 <젠 체스>(Gen Chess)는, 생성형 AI를 활용해 자신만의 체스 말을 만들 수 있게 도와준다. 킹, 퀸, 룩, 비숍, 나이트, 폰 여섯 종류의 기물을, 사용자가 제시하는 테마(단어 또는 어구)에 맞춰 AI가 커스텀 버전으로 만들어준다. 재밌는 점은 유명 게임 타이틀을 넣어도 그에 맞춰 체스 말을 만들어준다는 점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일단, 기자가 직접 생성해 본 예시를 먼저 보도록 하자.
자, 지금까진 내가 움직일 아군의 기물을 생성하는 과정을 보여드렸다. <젠 체스>에서는 아군 기물을 생성하고 나서 '상대 기물 생성하기' 버튼만 누르면, 아군 테마에 어울리는 또는 반대 급부에 있는 테마를 적의 기물로 알아서 자동 생성해준다. (이하 예시를 보면 느끼시겠지만, AI가 묶음으로 생각해주는 테마가 꽤 재밌다)
나와 상대의 기물까지 모두 생성했다면, 만들어진 기물로 컴퓨터와 1대1 체스 대결을 할 수 있다. 이지, 미디움, 하드 난이도 조절과 타이머 설정이 존재하고, 쿼터뷰, 탑뷰 등의 시점을 전환할 수 있다.
<젠 체스>는 플레이어가 원하는 테마로 체스 말을 만들어볼 수 있다는 측면에선 꽤 재밌는 장난감이지만, 기존 체스 앱들에 비해 편의성이 잘 갖춰진 편은 아니다. 앞서 놓은 수를 복기하거나, 어떤 조각이 잡아먹혔는지 보는 기능도 따로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구글 랩스는 왜 <젠 체스>라는 실험적인 웹 앱을 공개한 것일까?
일단, 싱가포르에서 11월 25일부터 12월 13일까지 진행되는 '2024 세계 체스 챔피언십'의 공식 후원사가 구글이기 때문이다. 서문에서 소개했듯, 구글은 인공지능의 역사에 있어서 '체스'를 중요한 소재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이번 <젠 체스>에 활용된 생성형 AI는 구글 제미나이 이마젠 3(Gemini Imagen 3)로, 앞서 여러 예시로 확인한 것처럼 텍스트 입력만으로도 매우 간단하게 이미지를 생성해내는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다.
세계체스연맹(FIDE)와 구글은 카글(Kaggle)에서 주최하는 'AI 체스 봇 만들기 코딩 챌린지'에서도 함께 협력하고 있다. 제한된 조건 안에서 작동하는 AI 체스 엔진을 만드는 대회다.
구글은 12월에 대형 언어 모델 AI 어시스턴트 제미나이(Gemini) 안에서 체스를 플레이하는 <체스 챔프>라는 기능을 소개할 예정이다. 제미나이와 대화를 하면서 체스를 두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이며, 제미나이 어드밴스드 구독자에게 영어로 제공되는 서비스다.
세계 체스 챔피언십의 라이브 스트리밍에선 제미나이를 활용해 <채팅 체스>라는 기능을 함께 제공하고 있다. 게임의 해설과 함께, 체스 퀴즈 등을 제시하며, 시청자가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의 플레이를 즐기는 방식을 다채롭게 하고 있다.
세계 체스 챔피언십 시작일인 11월 25일에 맞춰 <젠 체스>를 출시한 것은, 결국 이런 구글의 후원 및 기술력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던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AI가 발전하는 시대에, 체스와 같은 게임 및 스포츠에 AI가 어떤 새로운 방식으로 접목될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