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업계가 떠들썩하다. 국내 중견 광고대행사 디디비코리아가 외주 광고 업체들에 수백억 원의 대금을 지급하지 않아 피해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태는 온라인 쇼핑몰 '큐텐'이 대금을 지급하지 않아 수많은 판매자들이 피해를 입었던 사건과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어 '게임판 큐텐 사건'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중순 이후부터 디디비코리아가 외주 광고 업체에 지급해야 할 대금을 미루기 시작했다.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올해 초, 디디비코리아로부터 대금을 받지 못했다는 여러 광고 업체가 저마다 목소리를 내면서부터다.
디디비코리아는 국내 업력 30년이 넘는 중견 광고사로, 국내 1년 광고 취급액이 2000억원에 달하며, 연결 기준 연간 매출은 700억원이 넘는 기업이다. 더불어 세계적 광고 그룹 '옴니콤'의 계열사인 '디디비월드와이드'의 한국 지사로 알려져 있었다. 옴니콤그룹은 시가총액이 200억 달러에 육박하는 세계 2위 광고·마케팅 기업이다.
문제는 2023년 말 더욱 복잡해졌다. 미지급 사태가 수면 위로 불거지기 전인 2023년 12월 29일, 디디비 글로벌 본사는 디디비코리아의 지분 100%를 35억 원에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디디비코리아는 디디비 글로벌 본사 및 옴니콤그룹과 무관한 기업이 됐지만, 그동안 '디디비'라는 이름을 달고 영업을 계속해 피해 규모가 더욱 불어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실제로 지분 매각 사실을 몰랐던 다수의 광고대행사들이 디디비라는 이름만을 믿고 광고를 수주하거나 외주 계약을 진행했다. 이렇듯 많은 마케팅 대행업체들이 디디비코리아의 규모와 이름을 신용했다가 날벼락을 맞은 상황이다.


지난해 중순부터 바뀐 디디비코리아의 웹사이트. 이후로 업데이트가 멈췄다.
현재까지 드러난 피해 규모는 충격적이다. 디디비코리아로부터 돈을 받지 못한 광고 업체는 100여 개, 피해 액수는 4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많게는 60억 원의 돈이 묶인 제작사도 있다.
피해 양상도 다양하다. 광고 제작을 다 마쳤는데도 돈을 못 받은 제작사, "일단 먼저 돈을 내달라"는 요구에 응했지만 정산을 받지 못한 미디어랩, 심지어 모델비를 대신 내고 돌려받지 못한 영세 대행사 사례까지 있다.
한국디지털광고협회를 주축으로 '디디비코리아 피해자 모임'이 구성됐고, 이들이 파악한 피해 기업 사례만 40여 개에 이른다. 이미 견디지 못하고 파산한 업체도 더러 있다.
특히 게임업계의 피해가 더욱 심각하다. 게임 마케팅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던 디디비코리아의 미지급 사태로, 여러 게임 기업과 전문 마케팅 에이전시가 연쇄적 타격을 입었다.
게임 마케팅은 출시 전후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며, 일단 광고비를 선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인플루언서 마케팅, 플랫폼 광고비 등 다양한 경로로 자금이 흘러가는 구조다. 현재 다수의 광고나 유튜브 광고를 실제 진행한 상태에서 다수의 유튜버와 외주 대행사가 대금을 지급받지 못하면서 일부 게임 광고는 마케팅 전략 자체가 중간에서 무너진 상태다.
한 게임사의 마케팅 담당자는 "연간 마케팅 예산의 상당 부분을 디디비코리아 캠페인에 투자했는데, 실제 집행 여부조차 의심스러운 상황"이라며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마케팅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게임 서비스 자체가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한 모바일게임 개발사의 마케팅 책임자는 "출시 직후 유저 확보를 위한 핵심 시기에 광고를 제때 집행하지 못해 게임 초기 성과에 큰 타격을 입었다"고 말했다. 게임업계 특성상 출시 초기 마케팅이 게임의 성패를 좌우하는 만큼, 피해는 단순한 미수금을 넘어 기업의 생존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게임 마케팅 전문 광고사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게임사로부터 받을 미수금은 디디비코리아가 가로챘고, 이제는 금융권에서도 광고업에 대한 대출을 기피하고 있어 자금 조달이 더욱 어려워지면서 경영난이 불가피해졌다.
피해 사례는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글로벌 게임 업체의 경우 지사를 세우는 대신, 국내의 대행사를 내세워서 캠페인을 집행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한 중국의 개발사는 "광고비를 받지 못한 인플루언서로부터 차기작 캠페인 진행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이미 디디비코리아에 캠페인 비용을 지불한 상태에서, 대금 지급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난감하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게임 퍼블리셔는 "일부 매체의 경우엔 대행사를 패싱하고 직접 거래하길 원해, 캠페인 비용을 지급한 뒤 디디비코리아가 미집행된 마케팅 비용을 회수하려 했으나, 돌려받지 못했다"며, 게임 업계의 경우 피해자의 범주나 광고 업계를 넘어 업계 전체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사태가 단순한 유동성 위기를 넘어 조직적인 폰지 사기 행각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여럿 포착되고 있다는 점이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디디비코리아는 게임 관련 광고와 콘텐츠 제작을 위탁하면서 수급사업자 A사에게 정당한 사유 없이 52억8120만원을 요구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광고 계약을 빙자해 돈을 요구한 정황이다.
게임 마케팅 전문 제작사 D사는 지난해 디디비코리아로부터 한 유명 게임사의 신작 광고 제작을 의뢰받았다. 디디비코리아는 용역이행 보증금을 요구했고, D사는 이를 지급했다. 그리고 함께 콘텐츠 제작을 맡기로 한 다른 외주 업체에도 선수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해당 게임광고 캠페인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해당 게임사는 디디비코리아와 광고계약을 맺은 적이 없었다. 문제는 디디비코리아가 지정했던 외주 제작사들도 디디비코리아가 대급을 미지급한 업체들로 가짜 일감을 통해 타사로부터 돈을 지급하게 한 일종의 폰지사기에 가까운 행위라는 점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 공정위는 지난 4월 2일 디디비코리아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5억7600만원을 부과하고, 법인과 대표이사를 검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했다. 동시에 민·형사소송과 경찰 수사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피해 규모가 400억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5억7600만원의 과징금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현재 디디비코리아는 대표이사 1명 외엔 모든 임직원이 퇴사인 상태로 파악되고 있다.
피해 업체들은 이 모든 법적 절차가 끝난 후에도 실질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광고업계에 큰 교훈을 남겼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금까지 명성과 규모에 의존해 진행되던 업계 관행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며, 계약 시 철저한 검증과 단계별 대금 지급 방식 등 안전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피해 업체들은 이 모든 법적 절차가 끝난 후에도 실질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광고업계에 큰 교훈을 남겼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금까지 명성과 규모에 의존해 진행되던 업계 관행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며, 계약 시 철저한 검증과 단계별 대금 지급 방식 등 안전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디지털광고협회와 디디비코리아 피해자 모임은 “이번 사태가 게임 업계에도 큰 악영향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다“면서도 “게임 업계 피해 업체들도 소외되지 않도록 규합하여,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