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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12억짜리 '게임 과몰입 유전자 진단' 연구의 문제점 5가지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김승현(다미롱) 2020-02-28 18:01:14

얼마 전, '인터넷 게임 디톡스 사업'에 대한 특허 하나가 알려져 논란이 됐습니다. 혈액검사로 '게임 과몰입'(일명 게임중독)에 취약한 유전자를 캐치해 진단한다는 특허였는데요. 

 

12억 원이라는 사업비도 사업비지만, 아직 원인 규명도 제대로 안 된 건을 '유전자' 같이 민감한 테마로 연구하고 특허까지 받아 이슈였죠. 유저 대부분이 신뢰성에 의문을 표했고요.

 

직접 연구 보고서와 특허 신청서를 확인해보니, 문외한에게도 보이는 문제나 우려가 곳곳에 있었습니다. 보고서와 특허의 문제점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특허에 대해 쉽게 설명하면, 피 검사로 과몰입 일어날 가능성을 예측하거나 과몰입 여부를 진단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2014년 미래부가 연구용역한 '12억' 짜리 보고서의 결과입니다.

 

지난 2월 중순에 알려져 논란이 됐죠? 워낙 화제여서 저희도 보고서를 입수해 살펴봤는데요. 전문가가 아니어도 캐치할 수 있는 문제나 우려가 여럿 있었습니다.

 

정리하면 크게 5개 정도로 압축됩니다.

 

- 일단 사업목표부터 원인 규명보다 '사업화' 같은 잿밥에 더 관심 많았습니다.

- 주무부처와 연구자 모두 인터넷 과몰입과 게임 과몰입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 연구할 때 조사 대상을 모으고 묶는 과정도 구멍이 많아 보였습니다.

- 게임 과몰입을 조사한 다른 분야 연구 결과를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 표본 논란이 있는 연구가 특허를 받아 2차 피해까지 우려됩니다.

 

쉽게 설명하면 이렇게 비유할 수 있겠네요. 정부가 '김치의 효능을 분석해 장점을 알리자' -같은 사업을 추진합니다. '장점 알리는 것'이 목표니 효능 분석도 그렇게 왜곡되기 쉽겠죠.

 

보고서나 연구 자료엔 김치와 피클, 샐러드가 혼용돼, 뭘 조사하고 싶은 건지 확실하지도 않습니다. 연구하겠다고 모은 김치도 만들어진 날짜, 재료가 다 다르고, 피클 같은 것도 섞여 있어 객관적인 비교가 힘듭니다. 그런데 이 결과로 '김치 먹으면 말라리아가 예방된다' 같은 게 나와 국가에 인정받고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셈입니다.

 

조금 과장이 있긴 하지만, 이런 상황이라고 이해하시면 쉽겠네요.

 

 

# 사업목표의 문제점

 

사업 목표부터 얘기해보죠. 미래부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연구 목적은 이렇습니다.

 

"인터넷 게임 중독의 과학적 원인을 규명하고, 이를 토대로 예방/진단/치료 체계를 구축하고, 제도를 개선해 과몰입 문제를 해결한다." 원론적으론 이런데, 사업보고서를 자세히 보면 조금 이상합니다. 

 

원인 규명보다 '사업화'에 더 무게가 실려 있죠.

 

게임 과몰입 연구가 언제부터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최소 10년 전에도 이런 연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원인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고요. 이 정도 주제면 원인 규명 하나만 하기도 쉽지 않겠죠.

 

그런데 보고서를 보면 '원인 규명 + 치료 체계 구축 + 제도 개선' 3개가 '세트'로 묶여 있습니다. 원인을 찾아서, 그걸로 바로 치료도 하고, 제도까지 만들겠다는 건데…. 현실적이지 않은 목표죠.

 

원인 규명도 안 돼 결과가 어떨지 모르는 상황에서, 치료 방법이나 제도 개선까지 같이 연구하기는 힘드니까요.

 

더군다나 시행계획서를 보니까 게임 과몰입 관련 사업의 '6개'가 '실용화 연계' 분야로 구분돼 있습니다. 연구 분야도 근래 확인된 환경적 요인을 배제하고 뇌나 신경, 혈액같이 사업화하기 쉬운 영역에 집중돼 있고요. 아예 성과 목표는 '특허 출원'으로 돼 있네요. '인터넷 게임 디톡스 사업'이라는 사업의 부제목도 중독을 치료한다는 뜻이죠.

 

보고서 면면이 원인 규명보다 '사업화'에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아직 인과가 명확하지 않아 다방면에서 연구 중인 건을, 특정 분야로 타깃을 한정하고, 사업화까지 염두에 두고 연구 용역을 하면, 과연 용역 받은 곳이 제대로 연구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원인 규명이 아니라, 치료나 실용화 같은 쪽에 무게를 둔 것이 아닐까 의심됩니다.

 

원인 규명조차 제대로 안 된 분야에선 위험할 수 있는 접근이죠.

 

 

# 연구 대상 정의의 문제점

 

연구 보고서에도 곳곳에 이해하기 힘든 포인트가 있습니다. 게임과 인터넷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보고서를 보면 '인터넷 과몰입'과 '게임 과몰입'을 혼용합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입니다. "'인터넷/게임 중독'은 정동장애, 불안장애 및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등과 연관성이 보고되고 있으며, 한국에서의 '인터넷 중독' 위험군은 7%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됨" 아무렇지 않게 '게임 과몰입'과 '인터넷 과몰입'을 똑같이 취급하죠? 이런 게 보고서에 곳곳에 있습니다.

 

이 문구를 한 번 볼까요? "최근 연구에서 인터넷/게임 중독이 환경적 요인보다 유전적 요인에 기인한다는 보고는 인터넷/게임 중독에서 유전체 연구의 중요성을 뒷받침함"

 

그런데 여기 인용된 논문도 게임 과몰입이 아니라, '문제적 인터넷 사용'에 대한 연구입니다. 어쩌면 연구진에겐 인터넷과 게임이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연구의 기본은 '내가 뭘 연구할 것인가'를 확실히 정의하는 것입니다. 이게 확실하지 않으면 엉뚱한 것을 연구하니까요. 그런데 게임 과몰입의 원인과 진단법을 연구한다는 곳에서 근거로 인터넷 관련 자료를 쓴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사실 이런 오류는 의학계에서 게임 과몰입을 연구할 때마다 꾸준히 나옵니다. 게임계에선 나올 때마다 이를 지적하고 일부 의학계 인사들도 이런 행태를 비판합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이건 기존의 연구, 아니 오류를 별 고민 없이 답습한 겁니다. 그것도 나랏돈 12억 들어간 보고서에, 유전자같이 민감한 소재에서 원인을 찾겠다는 팀이요.

 

 

# 인터넷 = 게임? 이해하기 힘든 표본 분류

 

연구를 위해 표본을 찾고 분류한 것도 이해하기 힘든 것 투성이였습니다. 그러니까 게임 과몰입 증상을 보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뽑고 나누고 비교하는 과정이오. 

 

대표적인 사례가 게임 과몰입 위험군을 분류하는 방법입니다. 특허청에 제출된 보고서를 보면, 연구진은 과몰입 그룹을 구분하기 위해 KS 척도라는 설문을 사용했습니다. 근데 이 척도는 게임하고 상관없는 '인터넷 과몰입' 체크용 설문지입니다.

 

이런 질문들이 있죠. "인터넷 사용으로 건강이 이전보다 나빠진 것 같다", "인터넷 하느라 피곤해 수업시간에 잠을 자기도 한다" 

 

이걸로 표본을 구분했다는 것은 게임 과몰입이 아니라, 인터넷 과몰입을 연구했다는 것과 같습니다.

 

더 재밌는 것은 이렇게 뽑은 과몰입 위험군의 평균 점수가 '37점'이라는 것입니다. 이 척도는 결과를 크게 일반/잠재 위험/고위험 3단계로 구분하는데요. 이중 2번째 단계인 잠재 위험 기준이 41점 이상입니다.

 

즉, 평균 점수가 정상인 그룹을 게임 과몰입 위험군으로 놓고 연구했다는 얘기죠.

 

참고로 이 그룹의 1주일 평균 게임 플레이 시간은 18시간에 불과합니다. 하루에 3시간도 게임 안한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친구들을 게임 과몰입으로 분류해 연구하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습니다.

 

 

# 표본 간 생활 수준 차이 문제

 

표본과 관련해 또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는데요. 바로 위험군과 일반군의 생활 수준 차이, 그리고 이걸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보고서를 보면 위험군의 월 평균 가계 수익은 300만 원 수준, 일반군은 500만 원입니다. 약 200만 원, 70%가량 차이 나죠. 참고로 서울시 3인 가정의 월 평균 생활비가 355만 원입니다. 4인 가정은 465만 원이고요.

 

이걸 보면 위험군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평균보다 생활수준이 낮은 경향을 보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게 왜 문제냐면 경제적인 어려움은 심리 발달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슬픈 얘기지만, 교육이나 아동심리 쪽에서 여러 연구가 있죠. 과몰입과 관련해서도, 상담사들의 말에 따르면 어려운 가정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이 찾아온다고 하고요. 이것과 100% 같은 연구는 아니지만, 스트레스나 부모와의 관계 같은 '환경적 요인'이 과몰입 증상에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무언가를 비교할 땐, 비교하는 것 외에 다른 요건은 최대한 동일하게 맞추는 게 기본입니다.

 

그런데 보고서처럼 표본을 나누면 발견한 차이점이 '유전적 요인' 때문인지, '환경적인 요인' 때문인지 어떻게 구분할까요?

 

물론 보고서에 쓰인 유의 확률을 보면 가계 수익 차이가 통계적으로 의미 없다곤 말합니다. 아마 이 항목 자체가 연구와 직접적인 관련 없거나,편차가 너무 커서 평균값이 의미 없다는 말로 보입니다.

 

둘 중 어떤 뜻이건 간에, 게임 과몰입에 대한 다른 요인, 다른 연구를 무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전적 요소가 과몰입에 영향을 주는지 연구하고 싶었다면, 그 외 요소, 특히 가계 수익같이 과몰입에 영향 줄 수 있는 '환경적 요인'은 엄격하게 통제했어야겠죠.

 

 

# 특허에 대한 문제와 우려

 

마지막으로 특허 승인과 관련 문제입니다. 저희 기자가 특허청과 통화를 해봤는데요. 심사관도 표본에 대한 우려를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특허가 나온 것은 연구진이 미국정신의학협회 매뉴얼에 따라 과몰입 위험군을 선별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미국정신의학협회의 스탠스입니다. 이곳은 WHO와 달리, 게임 과몰입을 질병으로 규정하는 것에 부정적인 곳입니다. 인터넷 게임 장애라는 분류를 처음 도입한 곳이지만, "아직 연구가 필요하다", "함부로 질병화 했다간 엉뚱한 사람에게 낙인을 찍을 수 있다" 가 협회의 입장입니다.

 

만약 특허받은 연구가 순수하게  게임 과몰입의 원인을 찾는 목적이라면 연구가 필요하다는 협회 기준 따르는 것도 상관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연구는 한 단계 더 나가서 진단 기술을 특허받아 상용화까지 연계하는 게 목표였죠. 또 민감하고 조심해야 할 '유전자' 관련 연구였고요. 그리고 연구진은 스스로 "현재 객관적인 진단/평가 도구가 없다"며 과몰입 관련 유전자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표본을 선별할 땐 부족하고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미국정신의학협회 기준을 사용했습니다. 자가당착이죠.

 

이런 목적으로 시작된 연구라면, 특히 유전자같이 민감한 테마의 연구라면, 더 엄격하고 치밀한 기준으로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이 특허의 진짜 위험은 이런 기술이 특허받았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대중이 게임 과몰입 원인을 단정하고 적절하지 않은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특허의 존재 자체가 학부모들에게 "우리 애는 그런 체질이다"라고 생각하게 할 위험이오.

 

만에 하나 이 연구가 맞아서 쉽게 과몰입하는 체질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 과몰입은 다른 정신적 질환의 여파나, 혹은 학업 스트레스 같은 환경적 요인으로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증상입니다. 

 

이렇게 다른 접근이 필요한 사람들을 보호자가 막연히 '유전자 때문이야'라고 생각한다면 이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될까요?

 

물론 대중이 생각하는 것처럼 특허가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의학적인 부분을 검증해 주는 것도 아니고, 특허받았다가 취소되는 사례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논파된 게임 뇌, 짐승 뇌 발언이 학부모들에게 어떤 인식을 남겼나 생각해보세요. 특허라는 단어가 가진 파급력을 생각한다면 이 연구, 이 특허의 진짜 위험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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