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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리뷰

‘더 챈트’ 리뷰… 소재가 아까운 서바이벌 호러

1970년대 컬트 문화에 영감 받은 인디 신작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방승언(톤톤) 2022-11-04 16:14:27

외부에서 관찰한 사이비 종교의 공포는 꽤 실존적이다. 보편 상식에 어긋난 교리를 기꺼이 내면화하는 신자들에게서 우리는 인간 정신의 와해를 본다. 극단적 믿음을 위해 그룹 안팎의 사람을 해치는 모습에서는 자기보존의 감각을 위협받는다.

 

11월 3일 출시한 <더 챈트>는 1960~1970년대 미국에 실재했던 광신도 집단(컬트) 문화에 영감을 받은 호러 타이틀이다. 소설, 영화, 게임 등 매체를 넘나들며 다각도로 고찰되고 각색되어 온 컬트 문화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었는지 궁금해 직접 플레이해봤다.

 

뛰어난 비주얼 퀄리티, 다양한 전투 콘텐츠, 자연스러운 성우 연기는 장르에 기대하는 기초적 즐거움을 안기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동시에 소재의 활용, 내러티브적 완성도, 시스템의 깊이 등 여러 측면에서 아쉬움도 남는다.

 

 

 

# 병원에 가셨어야죠

 

주인공 제스는 친동생의 죽음에 관련된 죄책감과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여성이다. 모종의 계기로 트라우마 극복을 마음먹게 된 제스는 친구 킴벌리를 찾아 ‘글로리 섬’에 위치한 ‘프리즘 수련원’으로 향한다.

 

막상 수련원에 도착한 제스는 그러나 여러 미심쩍은 모습들을 보며 수련원의 정체에 즉각 의심을 느낀다. 하지만 킴의 권유를 차마 뿌리치지 못한 채 그룹의 우두머리 ‘타일러’가 주관하는 미지의 의식 준비를 돕게 된다.

 

 

의식 준비 과정에서 유저는 프리즘 수련원의 내막을 짐작할 기록물을 몇 개 입수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타일러와 그 동료 ‘소니’는 1970년대 실존했던 ‘프리즘 컬트’의 종교 시설을 이용해 수련원 사업을 벌이고자 하는 ‘업자’들일 뿐이다. 그중 타일러는 모친을 통해 실제 프리즘 컬트의 교리 일체를 배워 익혔고, 이를 사업에도 활용하고 있지만 실제로 신봉하지는 않는 듯하다.

 

이윽고 시작된 의식에서 킴은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정해진 위치를 벗어나 도망치고 만다. 이로 인해 프리즘 컬트가 신봉했던 미지의 힘이 글로리 섬에 현현한다. 그 결과 다른 차원의 괴물들이 여기저기 출몰하고, 구성원들은 광기에 사로잡혀 모습을 감춘다. 제시는 흩어진 구성원들을 찾아내고 괴현상을 바로잡기 위해 괴물에 맞서 글로리 섬 탐험을 시작한다

 

 

 

 

# ‘가짜 같은’ 글로리 섬

 

도입부에 해당하는 여기까지의 전개에서 <더 챈트>는 몇몇 중요한 단점을 드러낸다.

 

제작진은 주인공 제스의 숨겨진 과거, 글로리 섬에서만 채굴되는 희귀 광물 ‘프리즘’, 컬트의 정체, 환상의 차원 ‘글룸’ 등 나름 흥미로운 (그러나 꽤 진부한) 소재들을 빠르게 소개하는 데에는 성공한다. 문제는 유저가 여기에 온전히 이입할 정서적, 시간적 틈을 전혀 내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제스의 ‘트라우마’에 관한 묘사는 조깅하던 제스가 동생의 환각을 보는 지극히 짧은 컷씬으로 스쳐 지나간다. 제스가 (킴을 제외하면) 전부 초면에 불과한 수련원 멤버들을 위해 자연스럽게 목숨을 걸고 나서는 전개도 좀처럼 와 닿지 않는다. 갑자기 쏟아져 나오는 각종 괴물과 초자연 현상에 일말의 의문조차 제기하지 않은 채 그저 당면 문제에만 집중하는 인물들의 모습 역시 지나치게 이질적이다.

 

모든 창작물이 항상 개연성을 지켜야 한다는 견해는 말 그대로 견해일 뿐이다. 하지만 생존 본능을 자극해 공포를 유발하는 서바이벌 호러의 일반적 작법을 고려하면, 최소한의 현실감 조성마저 방해하는 이런 전개는 분명 방해가 된다. <더 챈트>의 내러티브 전달 방식은, 게임 속 세계를 믿기 어려운 것, 실존하지 않는 것으로 느끼게 한다.

 

섬에 펼쳐진 기현상에 대한 제스의 반응은 이 한 장면으로 축약된다.

 

이는 ‘개인의 어두운 일면과 극복’이라는 게임의 테마와도 심각한 불협화음을 낸다. 프리즘(혹은 글룸)의 힘에 사로잡힌 NPC들은 계속 자신의 개인적 트라우마 혹은 욕망을 언급하지만, 이들과 정서적으로 가까워질 기회가 없던 유저로서는 어떤 종류의 감흥도 느끼기 힘들다. 자연히 심리적 자극을 유발하기가 어려워지면서, 게임은 시청각 요소에 주로 의존해 호러를 연출하는 경향을 보인다. 적어도 그 퀄리티가 높다는 점은 다행스럽다.

 

주요 장면에서의 감정 이입이 매우 어렵다.

 

 

# 탐험과 생존

 

탐험 시스템은 전반적으로 고전 서바이벌 호러의 방식을 얼마간 답습했다. 맵을 구석구석 탐방하면서 숨겨진 공간, 아이템, 열쇠를 찾은 뒤 다음 장소로 향하는 방식이다. 각각의 탐색 과정을 되도록 다양하게 설계해 반복성을 줄이면서 모험의 흥미를 적절히 유지한 점은 높이 살 만하다.

 

반면 호러 서바이벌에 흔히 기용되는 퍼즐 요소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유저에 따라서는 단점이 될 수 있다. 특히 10시간 안에 끝을 볼 수 있을 만큼 게임이 길지 않다는 점을 생각할 때, 퍼즐 도입이 게임 분량과 추가적 재미를 모두 챙기는 해법이 되어줬으리란 아쉬움도 남는다.

 

 

한편 섬에서 발견되는 기록들에 따르면 프리즘은 ‘글룸’의 생명체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힘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매개다. 여기서 ‘생명체’란 결국 다종다양한 괴물들을 말한다. 프리즘 컬트의 최초 구성원들은 이 괴물들을 이미 상대해본(혹은 숭배해온) 것인지 그 습성을 자세히 적어 뒀다. 유저는 이를 참고해 적절한 무기와 전략으로 괴물들에 맞서면 된다.

 

맵에서 입수하는 여러 식물과 오일 등을 조합해 근접 무기와 투척물, 함정을 만들 수 있다. 여기에 더해 NPC들이 목걸이 형태로 지니고 있던 여러 색상의 프리즘 광석을 입수할 때마다 새로운 ‘프리즘 스킬’도 얻을 수 있다.

 

 

주인공에게는 정신, 영혼, 육체 게이지가 있고, 각각에 맞는 식물을 섭취해 게이지를 보충할 수 있다. 정신 게이지는 어두운 장소나 글룸 영역에 있을 때, 혹은 정신 공격을 받을 때 줄어든다. 완전히 고갈되면 ‘공황 발작’(panic attack)이 오는데, (어감을 고려한 것인지 ‘패닉 공격’으로 번역되어 있다) 이 상태에서는 적을 공격할 수 없기 때문에 상황을 일단 벗어나 회복해야 한다.

 

E를 오래 눌러 ‘명상’을 발동해 언제든 영혼 게이지를 정신 게이지로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영혼 게이지는 강력한 ‘프리즘’ 스킬에 사용되는 자원이기 때문에 적절히 관리해야 한다. 프리즘 스킬은 시간을 느리게 하거나, 적을 밀어내거나, 바닥에서 가시를 돋게 하는 등의 초능력으로 묘사된다. 육체 게이지는 0이 되면 사망하며, 공격받지 않고 있으면 일정 수준까지 회복된다.

 


 

# 선택지 많지만 답답한 전투

 

제스가 상대하는 괴물들은 모두 긴 사전동작을 취한 다음 매번 동일한 박자로 공격한다. 더 나아가 강력한 공격에 앞서서는 온 몸을 빛내며 경고해주기 때문에 회피가 어렵지 않다. 회피는 전후좌우 모든 방향으로 가능하며, 판정도 너그럽다. 여기에 더해 ‘밀치기’와 프리즘 스킬, 바닥에 그리는 주술적 ‘함정’까지 더하면 적을 더욱더 여유롭게 상대할 수 있다.

 

전투 시스템의 최대 단점은 무기의 다양성 결여, 그리고 불편한 카메라워크다. 무기는 대부분 짧은 근접 무기로 공격법과 리치가 동일해 지루해지기 쉽다. 몬스터별 약점을 고려해 맞는 속성의 무기를 꺼내 드는 재미는 있지만 그 한계가 명확하다.

 

 

더 큰 문제는 소프트 락온 시스템이다. 적에게 무기를 휘두르면 자동으로 카메라 앵글과 캐릭터 이동 방향이 적을 향해 고정되는데, 이것이 직관적이지 않은 데다 별도 UI가 없어 난해하고 답답한 느낌을 준다. 하나의 개체를 공격하는 동안 주변의 다른 적을 돌아보지 못하도록 강제함으로써 억지로 난도를 상승시킨다는 의심까지 들게 한다.

 

한편 몬스터들은 형태, 습성, 약점 등이 모두 다르고 종류가 비교적 많아 알맞게 공략하는 재미가 있다. 특히 ‘미니 보스’에 해당하는 강한 괴물들의 경우 주변 환경과 보조 몬스터까지 두루 고려해 자원과 스킬을 알맞게 써야만 공략할 수 있다. (최고 난도 기준)

 

 

 

# 아쉽고 아까운 게임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더 챈트>는 불만보다 더 큰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는 타이틀이다.

 

인디 개발사의 첫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막힘 없는 플레이와 조작감, 직관적 공포를 부여하기에 충분한 완성도 높은 비주얼 및 음향, 짧지만 풍성하게 채운 게임 볼륨, 프로페셔널한 성우 연기 등 전반적 프로덕션 퀄리티는 좋은 인상을 남긴다.


더 나아가 마니아들의 호의적 반응을 끌어낼 만한 장르적 아이디어와 시도 역시 많다. 그러나 유저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할만한 설득력을 갖추기에는 그 깊이와 마감이 아쉽다.

 

마지막으로, 컬트 코드가 초자연 현상에 개연성을 부여하는 플롯 장치로만 활용된 뒤 배경 수준으로 전락하는 점은 기회의 낭비로 다가온다. 개인의 나약함과 어두움을 공략한다는 점에서 작중 주요 위협인 ‘글룸’과 공통분모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컬트는 은유와 직설 둘 중 무엇으로도 충분히 다뤄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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