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리뷰에서 기자는 <조선메타실록>의 개발사 ‘행복한 다람쥐단’이 부지런한 업데이트를 유지해 한국판 <노 맨즈 스카이>의 기적을 이루길 바란다고 적었습니다.
마음 한편에 묻어 뒀던 <조선메타실록>을 다시 들여다보기로 마음먹은 것은 스팀의 ‘새로운 업데이트’ 탭에 이 게임이 꾸준히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게임을 실제로 설치해 확인하기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는데, 지난 경험이 여러모로 험난했던 탓입니다.
하지만 패치노트를 가득 수놓은 온갖 자극적(?) 문구들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세상에, 성과 포졸, 범죄 시스템과 현상금, 다양한 NPC, 그리고 말(馬)이라니요. 게임이 벌써 환골탈태에 성공하고, 궤도에 오른 걸까요? 아니면 이 모든 항목은 그저 겉치레에 불과한 걸까요?
이번에도 <조선메타실록>은 시작부터 충격을 안겨줬는데, 이유는 저번과 전혀 다릅니다. 지난 플레이에선 인트로 하나 없이 야생에 곧장 주인공을 풀어놓는 급진적 전개 때문이었다면, 이번엔 무려 ‘컷씬’과 ‘튜토리얼’이 유저를 반겨주기 때문입니다.
짧고 굵은-닭 두마리가 3초 동안 모이를 쪼는-컷씬이 끝나면 주인공인 노비 ‘돌쇠’가 탈주를 감행한 이유를 알게 됩니다. 짧은 튜토리얼 내용을 더 짧게 축약하면, 돌쇠는 ‘일을 잘했더니 더 많은 일감이 생기는’ 처우에 불만을 품고 야반도주했습니다. 요즘 기준으로도 진취적인 인권의식과 노동감수성을 지닌 인물입니다.
‘있어야 할’ 내용이 뒤늦게 더해진 것에 가깝지만, 어쨌든 새로 추가된 시스템과 콘텐츠들은 분량 면에서 인상적입니다.
이제 제대로 된 대화 시스템이 생겨 NPC들과 대화하며 정보를 얻거나, 주인공을 향한 태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태도’는 주인공과의 관계에 따라 달라지는데, 관계는 선물을 하거나 관련 퀘스트를 완수함으로써 쌓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퀘스트 시스템이 생겼습니다. 말인즉 퀘스트를 줄 만한 NPC들도 많아졌다는 의미인데, 이들은 심지어 저마다의 기능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대장장이에게서는 장비를 수리하거나 재료를 살 수 있고, 주막에 가서는 음식을 사거나 숙박을 할 수 있습니다.
사냥꾼들은 짐승과 범죄자들을 모두 사냥하고, 심마니는 삼을 캐러 다니며, 나무꾼은 묵묵히(정말로 말을 걸 수 없습니다) 나무를 합니다. 포졸은 범죄를 목격하면 추격해 벌금을 요구하고, 낼 수 없다면 공격해 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생존과 건축 외에 별다른 할 일이 없었던 지난번과 비교해 이번엔 뚜렷한 지향점이 생겼는데, 다름 아닌 탐험 요소가 강화됐습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모티브를 얻은 것인지, 격자로 나뉜 한반도 지도를 한 번에 한 칸씩 기록해 나가는 새로운 콘텐츠가 추가됐습니다.
‘빈 지도’ 아이템과 ‘나침반’ 아이템을 소지한 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지역으로 가서 지도 아이템을 활성화하면, 별도 인터페이스가 출력되면서 해당 지역의 지형이 드러나는 방식입니다. M 키를 눌러 전국 지도 화면에 돌입하면, 자신이 밝힌 지역과 그러지 못한 지역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역 지도를 켜보면 해당 지역 내의 유의미한 장소들, 이를테면 NPC들의 위치나 우물, 지하 동굴 등이 아이콘으로 표시됩니다. 이들 장소에 직접 도달해 NPC와 상호작용하거나 잘 꾸며진 건물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은 이전엔 찾아볼 수 없었던 재미입니다.
한편, <조선메타실록>이 유명해진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방대한 스케일이었는데요. 단순 수치로 따지면 <GTA 5>의 60배에 가깝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물론, 초기에는 이 드넓은 지역이 그저 수풀과 산으로만 우거져 있어서 감탄보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현재도 콘텐츠의 밀도가 대단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도성과 NPC, 기타 탐험 요소를 마련해 놓은 만큼 기존보다 탐험의 욕구가 샘솟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넓은 공간을 모두 주인공의 다리로만 누빈다면 피로도가 매우 클 텐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승마 시스템이 추가되었습니다.
이제 주인공은 근처에서 말을 발견하면 친밀도를 올려 길들인 뒤, 안장을 얹어 타고 다닐 수 있습니다. 말을 묶어두는 말뚝이나 구유 등의 아이템도 추가되면서, 말을 동료 삼는 기분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트레일러에서부터 홍보했던 ‘신분’ 시스템도 구현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실제 신분은 올릴 수 없는 대신 남들에게 인식되는 신분은 바꿀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주인공은 고급 옷감을 구해 높으신 양반들의 복색을 따라 갖춰야 합니다. 그러면 실제 신분과 상관 없이 ‘남들이 보는 신분’ 단계를 별도로 올릴 수 있습니다.
이는 흥미로운 게임플레이 동기가 되어줍니다. 기존에도 아이템의 가짓수만큼은 많았던 <조선메타실록>이지만, 대부분 생존과 직결되거나 반대로 꾸미는 역할을 하는 데 그쳤는데요, 옷을 통한 (겉보기) 신분 상승은 유저에게 새로운 파밍 목표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조선메타실록>은 기존과 비교할 수 없는 게임이 된 것 같습니다. 실제로 게임의 볼륨과 전반적 흥미도는 이전에 비할 데가 아닌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조선메타실록>이 탄탄한 게임성을 갖췄다고 말하기는 힘든데, 콘텐츠가 뚜렷한 얼개로 엮여 있지 못한 채 그저 ‘적층’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제작진은 스스로도 이 게임에서 유저들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 정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생존’에 우선 방점을 찍었다면 생활 기반을 단계별로 마련해 나가는 과정을 조금 더 치밀도 높게 구현했을 법합니다.
그러나 <조선메타실록>의 생존은 랜덤에 기대는 바가 지나치게 큽니다. 마, 목화, 쌀, 나무 등 중요하게 요구되는 자원의 생산과 수확을 유저가 통제할 방법이 거의 없기에, 그저 산과 들로 나돌면서 필요한 자원을 수집해 오는 방법뿐입니다. 이는 장르 내 얼마간 통용되는 요소지만, <조선메타실록>의 경우 우연에 기대야 하는 자원의 종류가 너무 많습니다.
장비와 도구를 만들어 이를 통해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재료를 얻고, 다시 이 재료를 통해 기존보다 발전된 생활 기반을 만들어 나가는 능동적 콘텐츠 사이클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다른 콘텐츠로의 연계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고급 의류를 만들어 신분을 올릴 때 필요한 누에고치, 지도 제작에 필요한 말총 등의 아이템들은 그 희귀가 매우 높은 반면, 수급 과정 거의 우연에 가까워, 목표를 향하면서도 즐거움보다는 지루함을 느끼기 알맞습니다.
그 외 기본 게임 시스템에서 비합리적인 요소들이 아직 많이 포착된다는 점 또한, 현재 제작진이 게임플레이 경험 개선보다는 콘텐츠 추가에 더 몰두한 상태라는 것을 짐작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대처할 수단이 마땅치 않은 호랑이, 곰 등 강력한 야생동물이 랜덤하게 출몰한다는 점, 건축시 아직 구조물의 방향을 돌릴 수 없다는 점, 개념상 엽전이 존재하지만, 이것을 획득할 방법이 없으며, 물물교환으로만 거래를 할 수 있다는 점(상평통보가 있지만 엽전과 다릅니다), 퀘스트를 한 번에 하나씩만 수주할 수 있다는 점, 드래그를 통해서만 아이템을 보관함과 인벤토리로 옮길 수 있다는 점, 그래서 자동 스택이 되지 않는다는 점, 신규 획득 아이템은 반드시 퀵슬롯으로 입수되어 인벤토리 정리에 불편을 준다는 점 등이 있습니다.
콘텐츠 종류와 가짓수 측면에서 기존대비 ‘몸집’을 키운 만큼, 이제는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게임플레이에서 유저가 목표의식과 작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도록 콘텐츠를 잘 엮는 노력이 더해진다면, 더 빠르게 ‘할 만한’ 게임이 될 가능성이 엿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