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에게는 오랜 병이 있다. 이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적지 않은 편으로 알고 있다. 무엇이냐면, '됌'이나 '역활'처럼 틀린 말을 보면 고쳐야만 속이 풀리는 병이다.
이것이 병인 이유는 2가지다. 틀린 말이 고쳐지지 않았을 때마다 이루 말할 길 없이 답답하다. 지적당한 사람도 그 나름대로 기분이 나빠진다. 병도 이런 병이 없다. 글을 다룰 때라면 이 버릇은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 일상 대화에서 꼬치꼬치 교정욕을 발하다가 얼굴을 붉힌 적도 몇 번 있다.
'할께요'는 '할게요'가 되어야 하고, '제작년'은 '재작년'이 되어야 한다. 그게 올바른 표현이고, 나의 마음도 편하다. 그런데 이런 기자 앞에서 '말이 통하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니냐'라는 상대방의 반응이 나오면,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 든다.
일상 대화에서 꼬치꼬치 교정욕을 발하다가 얼굴을 붉힌 적도 있다. (출처: 이라스토야)
# 맞춤법에 너무 민감해서 주변의 빈축만 사던 내가 이세계에서는 용사라고?
이런 병을 소재로 한 게임이 출시되었다고 하길래 해봤다. 사흘 전 공개된 <맞춤법 용사: 맞춤법에 너무 민감해서 주변의 빈축만 사던 내가 이세계에서는 용사라고?>(이하 부제 생략).
사사건건 여자친구의 맞춤법을 지적하다가 헤어진 주인공이 트럭에 치여 이세계로 순간이동해 '맞춤법사'로 활약하는 내용을 그린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주인공 캐릭터를 조작해 '맞춤법 배틀'을 펼치며 메치린데 왕국과 메디리오 왕국 사이에서 일어난 갈등을 해결해 나간다. 만화가 마사토끼가 '알만툴'로 제작한 이 게임은, 현재 홈페이지에서 무료 배포 중이다.
스탯 등의 성장 요소는 거의 없고, 작가 특유의 개그를 보면서 어려움 없이 비주얼 노벨처럼 플레이할 수 있다. 선택 분기가 존재하지만, 게임에 미치는 영향은 웃긴 경우의 수를 보여주는 것 이외에는 없고, 사실상 단선적인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리스크가 대단히 적기 때문에 가능한 모든 선택지를 골라보면서, 작가가 심어 놓은 개그를 감상하길 추천한다. 1시간 안팎으로 엔딩을 볼 수 있다.
게임의 핵심인 '맞춤법 배틀'은 NPC가 제시한 예문을 읽고 예문 속의 말이 옳은 지 그른 지를 고르는 것으로, 배틀에서 패배하면 게임이 종료된다. 배틀 시작 전 시스템에서 저장할 것인지 여부를 묻기 때문에 맞춤법을 틀려도 재도전할 수 있다. 맞춤법의 취약한 사람이라면 게임 속 반복 학습을 통해 '궁시렁'이 아니라 '구시렁'이 맞는 표현이라는 것을 깨칠 수 있다. 전개에 따라 꾸짖을 갈(喝)과 같은 한자를 익히는 학습만화의 문법이 떠오른다.
# 언어는 언중의 것이 맞을까요?
<맞춤법 용사>의 주인공은 부엌에 들어가 '양념의 어원이 약념(藥念)'이라고 독백하거나 '[가로등]처럼 표기와 발음이 일치하는 단어를 보면 기분이 좋다'고 말하는 등 변태적으로 맞춤법에 집착하는 인물이다. 그는 가장 가까운 연인에게 틀린 표현을 지적하다가 혼자가 된다.
그런 그가 도달한 이세계에서는 두 왕국이 '며칠'과 '몇 일'을 놓고 싸운다. 주인공은 규정에 따라서, 며칠이 맞다고 주장하는 메치린데 왕국의 손을 들어주고, 메디리오 왕국으로부터 승리한다. 경쟁자가 사라진 메치린데 왕은 자신의 맞춤법을 지적하는 주인공의 작위를 '공작'에서 '고자'로 만들어 버리는 등 자기 입맛대로 맞춤법을 개정하기에 이른다.
고지식했던 주인공은 글자를 만든 세죠른데 왕의 무덤에 찾아가 맞춤법은 언제나 변하는 것이며 "중요한 것은 자신만이 옳다는 생각을 버리고 겸허하게 세상의 변화를 주시하는 자세"라는 교훈을 깨닫고, 두 왕국 사이의 갈등을 조정한다. 이후 그는 자신이 속했던 돌아가 여자친구와 화해한다.
게임 속 주인공이 얻은 교훈은, 흔히 우리가 쓰는 '언어는 언중(言衆)의 것'이라는 금언과 연결되는 듯하다. 언어는 사용자들의 것으로, 일종의 사회적인 약속이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변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려운 순간들이 많았다.
우선 변화의 속도가 매우 느리다. 당장 '짜장면'이 표준어가 되는 데에도 수십년 이상 걸렸다. 정부 산하 어문기관인 국립국어원은 공식적으로 바른 말과 틀린 말을 정하는데, 이들은 최근까지 알파벳 [R]을 '아르'로만 써야 한다고 안내했다. '알'이 인정된 것은 올해 초 이야기다.
언어를 사용하는 언중의 모습이 실망스러운 순간들도 많다. 온라인 공간에서 점철되는 날 선 혐오의 단어들을 보면 특별히 더 그렇다. '누칼협'과 '알빠노'는 이런 어두운 흐름을 관통하는 신조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변이 없는 한 죽는 날까지 언어를 다루며 살아야 한다. 이 게임의 엔딩을 본 뒤, 자신이 정답을 안다는 오만에 빠져 상대방의 오류를 찌르다가 정작 소중한 것을 잃고 있지 않은 지 되돌아본다. 언어의 본질적인 기능은 소통인데, 우린 그걸 너무 잊고 사는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