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역 덕국 전람회에서 <검은 신화: 오공>(이하 오공)을 견문했다. 이에 삼가 글월을 짓는다. /독일 쾰른= 디스이즈게임 김재석 기자
삼장에 달통한 고승 현장은 황제의 명을 받아 서역의 불전을 구하러 떠나게 되었으니 길벗 삼을 요괴들이 필요했다더라. 화과산 잔나비 요괴 손오공이 재치가 뛰어났으나 지은 죄가 많고 말썽이 잦아 옥황상제는 숨어들고 결국 석가여래가 신장(神掌)을 펼쳐 오공을 산에다 가두었다 한다. 도중에 오공을 알아본 현장이 그를 구출하였으니, 오공은 은혜를 갚고 죄를 씻으러 행자가 되어 서역만리를 앞장서서 짚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고금의 명저 <서유기>의 내용으로 동쪽 반도에서도 그 이야기의 명성이 태산과 같아서 오공이 구름 대신 보드 타는 만화도 만들고, 원숭이 이름을 딴 장난감 회사도 세웠다더라. 근래 대륙의 신생 기업 유희과학(游戏科学, Game Science)에서는 이 기설(奇說)을 새로 해석하는 게임을 짓고 있으니, 그 이름을 바로 <검은 신화: 오공>(이하 오공)이라 하더라.
경자년(2020년) 유희과학이 <오공>의 활동사진을 발표하면서 강호는 술렁거렸으나, 이들은 자신을 드러내기 보다는 은거하면서 근 삼년 스스로 무공을 다듬었다. 이후로도 이들은 열흘에 아흐레는 불출하고 하루는 잠시 영상을 내놓고 다시 연기처럼 사라졌던 터라 <오공>의 실체를 의심하는 자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유희과학은 이번 전람회에 비로소 45분 분량의 실물을 발표하였으니, 첫날부터 장사진이 들어섰다.
이들은 바깥에서는 그 모습을 훔쳐볼 수 없도록 흰 벽을 두르고 거센 필치의 그림을 그려 놨을 뿐이니, 움직이는 게임을 보려면 장사진에 합류해야 했다. 아, 선기리연을 이루려면 월광보합을 얼마나 많이 열어야 하는 것인가? 기자는 '반야바라밀'을 외치는 지존보처럼 돌고 돌아서 화면 앞에 섰다. 주어진 시간은 45분이었다.
게임스컴의 <우공> 부스. 밖에서는 게임을 볼 수 없는 구조였다.
오오 지금 합니다.
# 45분, 4개의 보스전
플레이어는 시간 내에 자유롭게 4개의 스테이지에 입장하여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 거미줄이 칭칭 감겨 있는 동굴, 꽁꽁 언 얼음 세계, 피로 가득 찬 호수 등의 언리얼엔진 5로 구현된 그래픽은 그 수준이 높아 눈길을 사로잡는다. 트레일러에서 본 바로 그 모습을 빌드에서 진짜로 확인할 수 있었다.
쉬운 순서대로 지네정괴, 적고마후, 호선봉, 공포의 절벽이었다. 게임의 여러 기믹을 간단하게 학습한 뒤, 바로 보스전으로 밀어 넣는 방식이었다. 게임은 대단히 어려웠고, 몇몇 사람들이 45분이 지나기 전에 오오완(오늘의 오공 완료) 인증샷을 남기고 사라졌다.
게임이 업이지만, 컨트롤이 분통 터지도록 나쁜 기자는 1개의 스테이지만 겨우 깼다. 솜씨 좋은 몇몇 사람들은 4개의 스테이지를 모두 완파하기도 했다. 바로 저런 사람들이 게임기자를 해야 하는 건데...
45분에 보스 4개를 깨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기자는 하나만 겨우 깼다.
그래도 9분 남겼다.
# 물약 먹고 보스 얼리기 있으면 쉬운 거 아닌가요? (일단 나는 아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니아들에게 <오공>은 '쉽다'고 느껴질 만한 보정 요소가 적지 않다.
이를테면 오공은 게임 중간 중간 호리병에 든 술을 마시면서 체력을 채울 수 있고 상대 보스를 잠시 얼리거나, 자신을 잠시 무적 상태로 만드는 스킬을 쓸 수 있다. 시연 빌드에서 주어진 무기는 여의봉 하나였지만, 여의봉을 늘이거나 여의봉 위에 서는 등의 변형이 가능했고, 그 외에 다른 요괴로 변신하는 등의 술법을 쓸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오공을 쫓아오는 구체가 맵 전 방향에서 다가올 때면, 일반적인 점프로는 도저히 피할 수 없으므로 여의봉을 세워서 구체를 피해야 한다. 보스가 지쳤을 때나 이상 행동을 취할 때 상황에 맞는 자세를 취해서 딜을 최대화한다. 게임에는 찌르기, 세우기, 부수기 3종의 자세가 있으며 다른 상황에 쓰일 수 있다.
간단한 예를 들면 <세키로>의 하단 베기에는 점프, 잡기에는 회피와 같은 액션 상성이 아닌 <고스트 오브 쓰시마>의 자세 시스템과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첫 번쨰 보스를 마주하는 모습. 다가올 때 당황하지 않고 앞으로 구르는 것이 포인트였다.
# 술법과 자세의 조합으로 자신만의 공략을
보스전에서는 일반 공격으로는 큰 재미를 볼 수 없었다. '다크소울' 시리즈처럼 상대의 패턴을 빠르게 습득하고 파훼하는 동작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르기의 시전 쿨타임이 없기 때문에 스태미나 게이지가 허락하는 한 거의 무한으로 회피 각을 잴 수 있었다. 강공격은 기세를 모아서 대미지를 키워야 제대로 딜이 들어가는데, 이 기세는 총 5단까지 마련되어 있다. 물론 기를 모으다 보스에게 '끔살' 당하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였지만.
다양한 술법을 키우는 것이 성장의 핵심이 될 것으로 예측한다.
액션의 템포는 진짜 손오공을 조작하는 듯이 경쾌했지만, 때로는 묵직하게 딜이 들어가는 느낌이 부족하기도 했다. 이펙트는 대단히 화려해서 눈길을 끌었지만, 패턴이 읽히기까지 화려하게 다가오고, 그 뒤에는 피지컬+뇌지컬이 요구되는 수싸움이 이루어진다. 여의봉을 휘두르는 기능이 있었는데 이것이 패링에 해당하는 커맨드인지는 (기자가 게임을 잘 못해서) 파악하지 못했다.
게임의 극적인 변수를 주는 것은 '술법' 체계였다.
오공은 상대방을 아예 묶어버리거나, 특정 구역에 보스가 들어오지 못하게 마법진을 치거나, 분신을 만들 수 있다. 언월도를 휘두르는 거대 늑대 적조로 변신하면 HP가 다 닳을 때까지 변신 상태로 싸울 수 있다. 서너 개의 술법밖에 체험하지 못했지만, 진척에 따라서 더 강한 술법을 익히면서 성장하는 요소가 포함될 것으로 추정한다.
이 술법은 자세와 달리 일반적인 전투 상황에서는 바꿀 수 없고, 여러 소울라이크에서 채택하는 세이브 포인트인 '사당'에서 교체할 수 있다. 오공이 사당에서 향을 피우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세이브 포인트로 추정된다. 이 행동은 '운기조식'으로 표기된다.
체크포인트 역할을 할 것으로 추정되는 사당.
# 45분은 너무 짧소, 450분으로 합시다
45분의 <오공>에서 아쉬운 점은 없었다.
딱 하나 굳이 뽑자면, 한국어를 '한국인'으로 표기한다는 것. 또 게임을 즐기는 데 무리는 없었으나 게임의 문학적 분위기가 곧이 전해지지는 않는 번역이어서 중문 고전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면 좋겠다.
기자에게는 45분이 너무 짧았다. 450분 정도는 놀고 싶었다. 지금도 <오공> 부스의 줄을 한 번 더 서야 할지 고민이다. <오공>은 2024년 여름에 PC와 콘솔로(정확한 지원 기기는 미정) 출시된다. 기자는 오늘 대륙의 기세에 완전히 압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