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RPG를 좋아하시는가? <원피스>나 <페어리테일>같은 소년 만화는? 둘 다 당신의 취향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이 게임은 취향을 뛰어넘는 완성도를 가지고 있으니까.
사보타주 스튜디오의 <씨 오브 스타즈>가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출시 첫날 10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한 것은 물론, 메타크리틱 머스트 플레이를 획득하며 기대 이상의 호평을 받았다. 이미 익숙한 맛인 <크로노 트리거>, <마리오 RPG> 등 1990년대 고전 게임의 시스템을 계승했고, 캐나다 인디 개발사에서 만든 JRPG임에도 대작 풍년인 2023년에 머스트 플레이 반열에 오른 것만 봐도 평범한 흥행은 아니다.
그렇다면 옛 감성, 검증된 시스템을 잘 재해석한 것이 <씨 오브 스타즈>의 핵심 매력이었을까? 결론부터 먼저 말하면 <씨 오브 스타즈>의 게임플레이는 익숙한 스타일임에도 뻔하지 않았고 오히려 흥미진진했다.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 맵을 다채롭게 활용하는 상호작용 시스템, 긴장감 있는 전투 그리고 이 모든 걸 잘 전달하기 위한 의도적인 레벨 디자인까지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좋은 인상이 도입부부터 강렬하게 전달된 것은 아니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게임을 켜면 키 설정부터 확인하는 것은 기자 혼자만이 아니리라. 행여나 놓치고 가는 시스템이 있을까 싶어 새로운 게임을 시작할 때 설정부터 꼼꼼히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됐다. 그런데 <씨 오브 스타즈>의 설정에는 이동과 기본 공격 이외에는 물음표가 가득했다. 의도적으로 나중에 얻게 될 능력들을 숨겨둔 것이었다. 특수 능력 1과 같은 표기도 아닌 말 그대로의 물음표는 오히려 게임에 대한 기대감을 키워줬다.
<씨 오브 스타즈>는 극점의 전사 '자일'과 '발레리'가 세상을 구하기 위한 수련과 전투를 이어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에 태어나 태양의 힘을 다루는 자일, 동지에 태어나 달의 힘을 활용하는 발레리는 골육술사와 잠식자를 쓰러트리기 위해 아카데미의 학장인 모레인, 선대 극점의 전사 에릴리나와 브루가브즈 밑에서 10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친 수련을 한다.
지극히 평범한 시작이었으나, 눈치 빠른 플레이어라면 도입부부터 미묘한 위화감을 느낄 것이다. 의도된 의심의 씨앗이 곳곳에 있어, 누가 선역이고 누가 악역인지 도입부의 대화만으로는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동네에서 항상 같이 놀았던 '가를'은 호기심 많은 말썽꾸러기 친구인데, 자일과 발레리의 마법의 힘을 활용해 봉인된 동굴의 문을 함께 열고 들어갔다가 가를이 한 쪽 눈을 크게 다치고 만다. 10년 전 사건 이후 가를을 다시 만날 수 없었다는 회상에서 시작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가를이 아무렇지 않다는듯 너무 해맑게 등장했을 때 플레이어는 의심의 눈초리로 유심히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모레인 학장 또한 마찬가지다. 자일과 발레리가 선택 받은 극점의 전사라고는 하지만, 어린 소년, 소녀에게 버거운 시련을 계속 부여한다. 도입부에서는 세계가 직면한 위기보다는 자일과 발레리의 성장기가 먼저 다뤄지기 때문에, 모레인 학장의 과한 단호함이 이상하게 보인다. 흑막이 존재할 것만 같은 분위기가 기저에 깔린 가운데, 기묘한 긴장감 사이에서 영웅담이 펼쳐진다.
평범하게 보였던 도입부와는 달리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몰입감과 재미가 커지는 구조를 가진 게임이었다.
자일과 발레리는 골육술사와 비통의 잠식자를 막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 가를을 비롯한 매력적인 동료들이 합류하고, 여러 기술들을 습득하며 위기를 타파할 힘을 키워간다.
<씨 오브 스타즈>의 전투는 JRPG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시스템을 계승하고 있으나, 공격 타이밍에 맞춰 키를 누르는 것으로 추가 공격을 가하는 시스템 등으로 액션성을 가미했다. 일반 공격은 한 번의 추가 공격만 가능하지만 주문 중에는 빨라지는 타이밍 안에서 계속 공격할 수 있는 기술도 있다. 가드 또한 같은 방식으로 어드밴티지를 적용해주기 때문에 턴제 전투 안에서도 손이 심심할 틈은 없다.
게임이 진행되면서 기술의 폭도 다양해진다. 일반 공격, 주문, 콤보 기술 외에도 일반 공격 이후 적의 주변에 떨어지는 마나를 모아 마력 공격을 가할 수도 있다. 게임의 중반부 이후부터는 컷씬을 동반한 개별 캐릭터의 궁극기도 하나씩 등장하기 시작한다.
적이 강력한 공격을 시전할 때는 속성과 무기 타일이 함께 띄워지는데, 이에 맞춰 공격하면 적이 시전하는 공격의 위력을 줄이거나 공격 자체를 캔슬할 수도 있다. 초반에는 추가 공격을 잘 활용하면 적의 공격을 캔슬할 수 있지만, 중후반부로 갈수록 파티 캐릭터 교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플레이를 요구한다. 타일 파훼 외에도 속성 내성 등이 등장하는 시점부터는 전투의 전략성이 더욱 깊어진다.
<씨 오브 스타즈>은 정말 다양한 필드 상호작용을 활용하고 있다. 탑 뷰 방식임에도 필드를 입체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외줄 타기, 절벽에 붙어서 이동, 사다리 및 넝쿨 등을 타고 오르내리는 방식은 기본이고, 바람을 만들어 물체를 옮기고, 그래플러로 먼 거리를 뛰어넘고, 물살을 이용해 원래는 갈 수 없는 곳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그래플러 하나만 봐도 그 활용도가 무궁무진한데, 통나무나 사다리 등에 찍어서 이동하는 것 외에도 건너편의 적에게 날려서 이동할 수도 있고, 전투 진입 전에 적을 미리 공격하는 용도로도 사용된다. 캐릭터가 이동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닌 물체나 발판을 당겨오기도 하는 등 액션이 다양하다.
극점의 전사라는 설정 또한 놓치지 않고 있다. 자일과 발레리는 시간을 조종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서, 이를 활용해 빛이 내리쬐는 방향을 조정해 기믹을 발동시키기도 하고, 밤과 낮에만 열리고 닫히는 문이나 발판을 활용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특정 패널 위에서만 시간 조종이 가능해서, 패널이 망가진 필드에서는 기술을 활용하지 못하지만, 제약 없이 시간 조종을 하게 된 이후부터 필드 상호작용의 폭이 더 넓어진다.
스포일러를 하지 않는 선에서 설명하자면, 게임의 스토리는 큼직한 전투들을 여러 차례 치르면서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다. 믿었던 존재가 배신을 하기도 하고, 전혀 만나지 않을 것 같던 인물들이 한 곳에 모이기도 한다. 뻔하게 보이는 반전도 있으나, 예측하기 어려운 반전도 다수 있었다.
이런 반전이 힘을 가진 데에는 주인공 자일과 발레리의 성격이 한몫을 했다. 극점의 전사가 짊어져야 할 필연적인 희생이 아니더라도 영웅적인 면모가 강한 올곧은 심성을 가지고 있기에, 다른 반동 인물들이 더욱 극명하게 대비되어 보인다.
같은 맥락에서 가를의 유쾌함과 친화력, 세라이의 단호함과 침착함, 약간의 츤데레 기질까지도 자일과 발레리의 성격과 다르기 때문에 더욱 빛났다. 바꿔 말하면 <씨 오브 스타즈>에서는 매우 매력적인 캐릭터였던 가를과 세라이가 다른 게임 환경에 등장했다면 이 정도의 매력 발산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덜 자극적인 <씨 오브 스타즈>의 톤 앤 매너 안에서는 충분히 그 매력을 다 보여줬다.
<씨 오브 스타즈>는 새로운 세계의 탐험이라는 측면도 놓치지 않았다. 잠자는 용이 있는 섬, 유령에게 빼앗긴 해적선, 거대한 석상이 품고 있는 힘과 비밀 외에도 여러 이야기가 탐험을 이끌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달하는 역사가 '틱스'도 전통적인 RPG의 등장인물들처럼 적당한 흥미와 떡밥을 던져준다.
일식의 순간에 강해지는 마법으로 적들을 제압해야 한다는 자일과 발레리의 사명과 여정은 적들의 위협이 커지면서 더더욱 위험한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특정 맵은 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처럼 뒤틀린 세계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그로테스크했으며, 게임 초반엔 상상하지 못했던 위기 국면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매끄러운 한국어 번역 또한 장점 중 하나였다. '골육술사', '극점의 전사' 등 특유의 고유명사가 많음에도 문장 안에서 잘 읽히게 서술하고 있었으며, "이것에 실패하면, 내 성을 갈겠어"와 같이 조연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확실한 말투와 성격을 보여줘 몰입감을 높였다.
자일과 발레리 그리고 동료들의 여정이 궁금하신가? 괜히 '머스트 플레이'를 받은 게 아니다. 후회 없는 소비가 될 테니 24~30시간 정도 되는 플레이타임을 즐길 여유만 있다면 꼭 한 번 즐겨보시길 추천한다. 취향은 다를지언정 게임의 완성도에는 분명 만족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