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세취호전>은 개발사 컴파일의 잡지였던 '디스크 스테이션'에 번들로 수록된 3.4MB 크기의 게임이었습니다. '폭소 RPG'를 지향하던 컴파일의 <환세> 시리즈 중 하나인데요.
<환세> 시리즈 첫 작품이었던 <환세희담>(1996, 일본에선 1995년 발매)은 유일하게 독립 패키지 게임으로 출시되었는데, 이를 훗날 컴파일 코리아를 만드는 KCT 미디어가 한국어화해 삼성전자가 발매했습니다. 시리즈의 인지도가 있었던 덕분일까요? 컴파일 코리아가 한국어화해 1997년 출시된 <환세취호전>은 유달리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당시 게임을 즐겼던 세대가 아니더라도 <환세취호전>은 알고 있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 방송이 대세가 되며 많은 인기 방송인들이 <환세취호전>을 플레이했고, 덕분에 <환세취호전>은 다시 한 번 주목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기자도 그 중 한 명인데요. 그래서 26년 만에 돌아온 <환세취호전 플러스>에도 눈길이 갔습니다. <환세취호전 플러스>는 어땠을까요? 직접 체험해 봤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안규현 기자
# <환세취호전 플러스>의 깔끔한 첫인상, 그리고...
"깔끔한데?"
<환세취호전 플러스>를 처음 실행하고 든 생각입니다. 원작 <환세취호전>은 게임을 실행하면 3명의 주인공 캐릭터 아타호, 린샹, 스마슈가 각각 기술을 사용하고 게임 로고가 조금씩 공개되는 장면이 교차로 나왔는데, <환세취호전 플러스> 역시 이 장면부터 시작합니다.
'굉장하다', '압도적이다' 등의 거창한 수식어는 붙일 수 없겠지만, <환세취호전 플러스>의 도트 그래픽은 충분히 만족스럽습니다. 해상도가 올라간 것은 물론, 전체적으로 색상이 뚜렷해졌습니다. 고해상도로 다시 만들어지며 화풍(?)의 변화가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환세취호전 플러스> 쪽이 더 마음에 듭니다. 색채 대비 때문에 아타호의 뱃살이 다소 강조된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요.
수련을 위해 진행하는 미니게임도,
변기를 요상하게 사용하는 스마슈도 고해상도 그래픽으로 되살아났습니다.
'폭소 RPG'다운 유머도 여전합니다. 26년 전 유머지만요.
기술 레벨 상승에 따라
변화하는 이펙트가 체감이 큽니다
게임성에 있어서는 사소한 변화가 있습니다. 우선 <환세취호전>은 기술을 사용할 때 일정 확률로 기술 레벨이 오르는데요. 기술 레벨 상승 확률이 고정되어 있던 원작과 달리, <환세취호전 플러스>에선 기술을 많이 사용할 수록 레벨 상승 확률이 오르도록 변경되었습니다. 덕분에 맘 먹고 반복 플레이를 시작하면 (생각보다) 금세 기술 레벨을 올릴 수 있습니다.
기술 레벨이 올라가면 타격 횟수가 늘고 이펙트가 화려해지기 때문에, 꼭 반복 플레이를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캐릭터의 성장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원작과 마찬가지로) <환세취호전 플러스>는 게임이 끝나면 마지막에 자신이 플레이한 세이브 파일에 대한 평가를 받는데, 최고 등급인 13단을 달성하기 위해선 아타호가 사용하는 모든 기술을 최고 레벨까지 올려야 하기 때문에 '13단 클리어'를 노리는 유저에게도 반가운 소식입니다.
2배속 전투 기능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쯤 되면 예상하셨겠지만, <환세취호전>과 <환세취호전 플러스> 간에 큰 차이는 없습니다.
진행에 있어 캐릭터와 캐릭터가 사용하는 기술 레벨을 올리기 위한 작업, 일명 '노가다'가 필수인 점은 여전합니다. 13단 클리어가 목적이 아니더라도, 스토리 진행 중에 만나는 상대가 급격히 강해지는 구간이 있어 일부 구간에선 필수적으로 반복 사냥을 해야 합니다.
적들이 갑자기 강해지는 구간이 있습니다. 스토리 중 잠시 다투게 되는 린샹도 적이 되면 강해집니다.
<환세취호전 플러스>에 새로 추가된 콘텐츠도 있지만, 원작의 테두리 내에서 만들어진 탓에 별다른 인상은 주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조연 캐릭터 페톰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9장, 그리고 아타호를 조작해 수련의 탑에 오르는 도전 콘텐츠 10장이 추가됐는데요. 9장은 약 10분 분량이고, 10장은 그동안 등장했던 몬스터들이 대부분 다시 등장합니다.
페톰이 등장하는 9장은 굉장히 짧습니다.
<환세> 시리즈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에필로그(?)는 원래 대사만 출력됐지만, <환세취호전 플러스>에선 캐릭터들이 모두 등장합니다.
# "주의하세요" 치명적 버그가 존재하는 초기 버전
4장 주점 버그는 치명적입니다. (스크린샷은 정상적으로 진행된 모습입니다)
<환세취호전 플러스>를 플레이하기에 앞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바로 저장을 꾸준히 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발생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게임 진행이 불가능한 수준의 버그가 발생한 사례가 발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4장에서 주점 NPC들이 사라지는 버그입니다. 4장 진행 중에 주점의 NPC와 대화를 수행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특정 조건에서 주점 NPC가 모두 사라져서 게임을 진행할 수 없게 됩니다. <환세취호전 플러스>는 자동 저장을 지원하지 않는데요. 초반부 스토리는 빠르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5장 '진 호혈 지하 3층' 맵에서 13단 클리어에 필요한 아이템 '나찰의 돌'을 얻을 수 없는 버그입니다. 해당 맵은 아타호 일행 주변을 제외한 맵이 어둠에 가려져 있어서 공략을 참고하지 않으면 진행이 꽤나 까다로운 편인데요. 맵을 밝히는 스위치 3개를 건드리지 않고 보물상자를 열어서 아이템을 얻어야 하는데, 스위치를 한 번이라도 건드렸다면 스위치를 끄고 상자를 열어도 나찰의 돌을 주지 않습니다. 참고로, 이 버그는 기자도 당했습니다.
이외에도 여러 버그가 보고되었는데요. 비록 초기 버전이지만, 진행이 불가능한 정도의 버그가 발생하는 것은 굉장히 아쉬운 상황입니다. 조속히 수정되기를 바라 봅니다.
퍼펙트 클리어 불가 정도면 몰라도, 진행이 막히는 버그는 치명적입니다.
# 추억은 추억 그대로일 때 아름다운 법인가
원작 <환세취호전>은 볼륨이 작은 게임입니다. 추가 도전 과제를 모두 달성하는 퍼펙트 클리어 기준으로 10시간 정도가 소요되고, 빠르게 엔딩을 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면 3시간 정도면 게임을 끝낼 수 있습니다.
상술한 것처럼 레벨 업을 위한 반복 플레이가 필수적이다 보니 실제로 스토리를 전개하는 부분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이는 <환세취호전 플러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빠르면 2시간에서 3시간 정도면 엔딩을 볼 수 있고, 9장과 10장도 클리어하는 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죠.
2023년 연말, 아타호의 기술 레벨을 올리기 위해 몬스터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문득 발매 전에 봤던 한 댓글이 기억났습니다. "이게 컴퓨터실에서 할 때나 재밌지..."라는 댓글이었습니다.
아쉽게도 기자에게도 <환세취호전 플러스>는 "컴퓨터실에서 했으면 재밌었겠다" 싶은 게임이었습니다. <환세취호전>은 턴제 SRPG로서 뛰어난 전략성으로 인해 인기를 끌었던 게임이 아니고, <환세취호전 플러스>는 원작의 감성을 다시금 느낄 수 있도록 재현하는 것에 집중한 게임이니까요. 퍼펙트 클리어를 위해 6시간을 더 투자하기엔, 지금은 다른 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환세취호전>을 플레이한 추억이 있는 게이머라면 <환세취호전 플러스>를 통해 그 감각을 다시 느껴볼 수 있겠지만, '추억'을 갖고 있지 않은 유저에게 '팔기'는... 어렵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