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소음이 있어야 공부가 잘 된다니까요.", "코딩하는 사람들의 노동요는 로우파이입니다."
음악을 들어야 업무 효율이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다. 아, 물론 그렇다고 항상 양쪽 귀를 이어폰으로 틀어 막고 있으면 그건 좀 곤란하겠지만, 상대적으로 편안한 환경에서 집중할 때는 '음악'이 잡념을 잊게 해주곤 한다. 만약 당신이 공부, 업무 시작 전에 습관적으로 음악을 트는 타입이라면, 이 게임이 잘 맞을지도 모르겠다.
4월 8일에 출시된 <스피릿 시티: 로우파이 세션>은 로우파이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일과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임이다. 게임 안에 포함된 곡도 많지만, 인게임에서 유튜브 창을 띄워 원하는 음악을 재생할 수도 있다. 사무용 다이어리처럼 요일, 주제별로 정리할 수 있는 체크 리스트도 있고, 집중과 휴식을 반복하는 '포모도로' 공부법을 실현할 수 있는 타이머도 있다.
이쯤 되면 게임이 아니라 사무보조 음악 감상 앱이 아닌가 싶지만, 게임스러운 면모도 갖추고 있다. 조건 달성 시 획득할 수 있는 귀여운 펫 '스피릿'도 여럿 있고, 캐릭터와 펫의 외형 그리고 실내 인테리어를 자유롭게 꾸밀 수도 있다. 가벼운 게임이지만 언리얼 엔진 5로 만들어졌다. 구성은 복잡하지 않은데, 디테일은 살아 있달까. 숙제가 많고, 밀린 업무가 많으신가? 이 게임으로 능률을 한 번 올려보시라.
게임명: <스피릿 시티: 로우파이 세션>
장르: 생활 시뮬레이션, 캐주얼
개발사, 배급사: 문큐브 게임즈
플랫폼/출시일: 스팀/ 2024년 4월 8일
가격: 12,000원
한국어 지원: O
사람마다 루틴이라는 게 있다. 기자의 경우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잠>의 여주인공이 책을 읽을 때 초콜릿을 먹던 습관에서 영향을 받아, 텍스트를 많이 읽거나 쓸 때, 단 음식을 곁에 두곤 한다. 음악을 들으며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본다. 심신의 안정에 도움이 되고, 이제 제대로 집중을 시작한다는 암시를 스스로에게 걸어준다.
<스피릿 시티>는 '노동요'의 본질을 잘 꿰고 있다. 집중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 '가사가 없는', '포근한' 로우파이 곡들을 준비했다. 곡들의 수도 많고, 분위기가 산만하지 않아서 좋았다. 인게임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들을 수 있는 곡들은 'Homework Radio'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제공 받은 곡이다. 인디 음악 레이블 기반이고 51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가진 채널이니 이미 검증된 음악들이라고 볼 수 있다.
로우파이 음악도 좋지만, 원하는 노래를 찾아서 듣고 싶으신가? 게임 안에서 유튜브 검색 창을 띄울 수 있는 '웹 음악 브라우저' 탭이 있다. 기자는 <포켓몬스터> 댄스 챌린지 곡인 '포켓댄스'에 꽂혀 있어, 이 노래를 반복재생해뒀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게임은 여러 종류의 배경 소음(?)을 제공한다. 빗소리, 바람소리, 천둥소리, 벽난로에서 장작이 타는 소리, 벌레 우는 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키보드 타이핑하는 소리, LP판 돌아가는 소음, 고기 굽는(?) 소리까지 다양하다. 이중에서 절반 이상은 야외 환경까지 시각적으로 변해 더욱 몰임갑을 키워줬다. 창밖으로 비가 내리고, 번개가 치거나,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식이다.
게임은 다이어리 겸 타이머로서의 기능도 꽤 충실히 한다. '일지'에서는 새로운 탭을 생성해 텍스트로 제목과 내용을 채워 메모를 할 수 있고, '행동'(인게임 번역은 '습관')에서는 특정 행동에 대해 어떤 요일에 실행했는지 체크할 수 있는 표가 제공된다. '과제'에서는 해야 할 일을 적어두고 하나씩 해치울 수 있다.
가장 유용했던 '포모도로' 타이머는 일정 시간의 업무와 휴식을 반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기능이다. 몇 분씩 일하고, 몇 분씩 쉴지, 얼마나 반복할지 등을 지정할 수 있다.
책상, 침대, 창가, 난로 앞 등 캐릭터가 있을 위치를 선택하는데, 이때 캐릭터가 취하는 행동도 '집중'과 '휴식'이라는 테마로 구분이 가능하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거나, 태블릿으로 그림을 그린다. 쉬면서 뜨개질을 하거나, 엎드려서 웹 서칭을 하고, 누워서 잠을 청하는 등 플레이어의 '집중'을 돕기 위해 만든 게임이라는 의도가 보이는 행동 구성이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이 게임의 매력은 깔끔하고 귀여운 비주얼에서 왔다. 일단, 게임의 제목에도 있는 펫 '스피릿'이 너무 귀엽다. 마법 고양이, 불꽃 고슴도치, 빛나는 슬라임, 실타래 거미 등 그 종류도 다양하고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레벨 업을 하면 얻는 인게임 재화로 펫의 색상, 테마를 바꿔줄 수도 있다.
펫을 획득하는 방식은 '특정 조건'을 달성해야 한다. 콘셉트에서 어느 정도 연상이 가능하겠지만, 불꽃 고슴도치를 얻으려면 벽난로 앞에서 일정 시간 이상 있어야 하고, 실타래 거미를 만나려면 뜨개질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하는 식이다. 다음 펫을 얻을 수 있는 '힌트'는 레벨 업을 할 때마다 조금씩 해금된다. 조건이 맞으면 '스피릿덱스' 탭이 빛을 내주니, 그 상태로 펫을 만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방 안을 꾸미거나, 캐릭터의 외형을 바꾸는 커스터마이징 기능도 준수했다. 인게임 재화로 구매해야 하는 의상이나 데코 외에도,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선택지도 적은 편은 아니었고, 무엇보다 그 조합으로 눈에 보여지는 비주얼의 태가 좋은 편이었다. 다만, 최근 AAA급 게임에서 제공하던 커스터마이징 선택폭을 기대하면 다소 실망할 수 있다.
<스피릿 시티>는 출시 이후 하루 동안 300개의 스팀 리뷰 중 98%에게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출시 기념으로 정가 12,000원에서 20% 할인된 9,600원에 판매되고 있다곤 하지만, 게임의 구성에 비해 가성비가 좋은 가격은 절대 아니다. 기자의 플레이 소감 또한 깔끔하고 귀여운 동시에 유용해서 좋았지만, 이걸 재밌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일부 편의성 측면에서도 아쉬움이 있었다. 예쁜 커스터마이징 기능에도 불구하고, 상점에 있는 인게임 재화로 구매 가능한 의상을 미리 입어보는 기능이나, 프리셋 제공 기능도 없었고, 만들어둔 조합을 저장하는 기능도 없었다. 다이어리 기능도 같은 가격의 실물 다이어리를 사는 편이 낫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98%나 되는 사람들이 이 게임에 긍정 평가를 줬을까? 로우파이 음악을 좋아해서 그럴까? 일할 때 옆에 틀어두고, 다마고치처럼 가끔씩 볼 수 있는 게임을 원했던 것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2022년 여름을 강타했던 '러버 덕' 게임 <플래시드 플라스틱 덕 시뮬레이터>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봐야 한다.
2022년 7월에 출시되어 스팀 리뷰 11,877개 중 98%에게 긍정 평가를 받은 '압긍' 게임 <플래시드 플라스틱 덕 시뮬레이터>는 정말 단순한 게임이었다. 수영장에 떠다니는 '러버 덕'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면, 다양한 콘셉트의 새로운 러버 덕이 가끔씩 등장하는 게임이다. 이렇다 할 조작도 특별한 상호작용도 없다. 살아 있는 오리도 아닌 고무 오리를 쳐다보는 게임이라니. 참고로 이 게임의 정가는 2,200원이었다.
그러나 여름이라는 계절에 등장한 '수영장' 배경, 이리 봐도 저리 봐도 귀여운 '러버 덕' 때문일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게임에 열광했다. "한낱 데이터 쪼가리가 아니다, 그들에겐 자아가 있다", "세기의 갓겜", "아무 것도 없는 게임에서 왠지 모르게 오리들의 이름을 지어주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등의 반응이 줄을 이었다. "이 돈 내고 왜 멀미를 견뎌야 하는지", "이게 게임?" 같은 반응도 어째선지 모두 긍정 평가다.
이 게임의 진가는 플레이타임에서 온다. <젤다>나 <발더스 게이트 3>가 100시간부터 시작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이 '러버 덕' 게임에는 1,000시간 이상의 플레이타임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적잖게 있다. 순수 플레이타임으로만 7,999시간(333일)이 넘는 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현상이 가능했던 이유는, 유저들이 '러버 덕' 게임을 사이드에 띄워두고 다른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다시 질문해보자. 게임은 몰입할 수 있는 콘텐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구성을 갖춰야만 하는가? 일반적으론 통용되는 말이지만, '러버 덕' 게임 같은 이레귤러도 분명 존재한다. 로우파이 음악과 타이머, 다이어리 기능으로 편안함과 실용성을 챙기고, 귀여운 펫과 커스터마이징 기능으로 보는 맛을 잡은 <스피릿 시티>라고 그런 예외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