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게임인데 범인의 정체나 트릭에 놀라는 것보다, 로봇의 입을 통해 듣는 진술에 감동을 받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
크래프톤 산하 12개 스튜디오 중 "딥러닝과 게임의 융합"을 비전으로 하고 있는 렐루게임즈는 GPT를 활용해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을 개발 중이다. 기자는 이 게임이 잇치 아이오에 알파 데모로 올라왔을 때부터 체험기와 개발자 인터뷰를 작성한 바 있다. 반년 사이 시간은 흘러, 스팀 플랫폼에서도 AI를 활용한 게임 출시가 허용됐고, 기술은 빠르게 발전해 GPT-4o(포오)가 혁신을 선보이고 있다.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은 6월 24일 스팀 정식 출시를 앞두고, 오늘(28일) 스팀 데모를 새롭게 공개했다. 이전에 공개했던 데모와 완전히 다른 에피소드였기에, 바로 직접 플레이해봤다. 지난 '연구소' 에피소드에서 받았던 신선한 충격은 이번 '맨션' 에피소드에서도 여전했다. 사건과 상황도 충분히 흥미로웠다. 그런데 기자의 호기심과 심장을 자극한 건 GPT와의 대화에서 한 번씩 등장한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은 기존 추리게임들과는 플레이 방식 자체부터 다르다. 각종 힌트를 꼼꼼히 체크하며, 범인과 트릭을 찾아간다는 측면에서는 비슷하지만,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목격자 또는 용의자로 등장하는 대상은 '로봇'이다. GPT를 활용하는 게임답게 이 '로봇'에게 질문을 직접 타이핑하고, 답변을 들으며 사건의 진상에 가까워진다.
지난 11월 잇치 아이오 알파 데모에선 '연구소' 에피소드를 선보였는데, 그 때는 '로봇' 용의자들에게 정보를 수집하며 '최 박사' 죽음의 진상을 밝혀내야 했다. 처음엔 드러나지 않던 지하 실험실로 공간이 확장되면서, 인간의 의식을 로봇에게 이식하는 실험의 이면까지 다가가는 구조였다. 4명의 안드로이드 모두 말투도 달랐고, 거짓말까지 했기 때문에 몰입감이 매우 뛰어났다.
당시 기자는 '텍스트 오픈월드'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명작으로 불리는 <역전재판>, <단간론파> 시리즈도 스토리를 따라가며 선택지를 고르는 형태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이 게임은 눈 앞의 대상에게 원하는 질문을 모두 자유롭게 해볼 수 있다. 사건과 무관한 이야기까지도 말이다.
이번 스팀 데모 '맨션' 에피소드는 이전의 플레이 스타일과 매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공간과 인원의 규모를 줄였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더욱 직관적이고, 로봇의 거짓말에 방향을 잃고 헤매는 과정이 줄어들었다.
다만, 추리게임 마니아인 기자의 취향에는 앞선 '연구소' 에피소드 정도의 난이도가 더 좋았고, 이번 '맨션' 에피소드는 추리의 깊이 측면에서 다소 싱겁다는 감상을 받았다. 개발팀은 캐주얼 유저를 고려해 워밍업 구간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정식 출시 버전에선 첫 번째 케이스가 맨션 에피소드로, 두 번째 케이스가 연구소 에피소드로 등장할 예정이며, 다섯 번째 케이스까지 그 깊이를 더해갈 예정이니, 실망할 필요는 없다.
지난 알파 데모 때도 그랬지만,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의 이번 '맨션' 에피소드에서도 상황과 사건을 제시하는 구간부터 매우 흥미롭게 전개됐다.
'스탠리'와 '린다'는 '케빈'이라는 아들을 매우 아끼며 키워왔다. '케빈'은 어린 나이에 사망했고, 로봇 '에코'는 '케빈'의 기억을 학습해 '케빈'처럼 행동한다. 그러던 어느 날 탐정인 플레이어에게 의뢰가 들어온다. '스탠리'가 약물 과다 투여로 인해 사망했다는 것. 사건 전후로 '스탠리'의 병실에 드나들었던 인물은 부인 '린다'와 로봇 '에코' 뿐이다. 증거를 수집하며 로봇 '에코'에게서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야 한다.
'에코'와 나누는 대화 안에서 꽤 재밌는 설정들이 잔뜩 튀어나온다. 일단, '린다'는 '케빈'의 친모가 아니고, 법적인 어머니일 뿐이다. '스탠리'는 친부가 맞으며, 외도를 한 것이냐는 질문을 하면 로봇 '에코'가 "추리에 도움이 될 순 있지만 사생활은 알려드릴 수 없다"며 대답하길 거절한다.
했던 질문을 반복적으로 하거나, 너무 뻔히 보이는 내용을 물어보면 로봇 '에코'는 "눈이 있으면 볼 수 있지. 달력 못 보세요?" 등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말투를 사용한다. 그런데 '케빈'은 매우 착한 아이였다고 한다. '케빈'을 학습한 로봇 '에코'가 싸가지가 없는 게 말이 되냐는 질문에는 "케빈의 기억 일부만 학습했기 때문에 말투는 완벽하지 않다"는 방어 논리를 펼친다. 영악한 로봇이다...
결국 (케빈의 기억을 가진) '에코'의 입장에선 '아버지'가 죽은 것과 다름없다. 누가, 왜, 어떻게 '스탠리'를 죽였는가? 여기서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이 가진 또 하나의 특징이 등장한다. 핵심 질문은 처음부터 주어지지만, 정보에는 순차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며, 최종적으로는 '주관식 답변'을 채워 넣어야 한다. 과연 당신은 정답을 맞힐 수 있을까?
서문에 언급했듯, 렐루게임즈는 AI 기술을 활용해 실험적인 게임을 만드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GPT 기반의 자유로운 대화로 추리게임의 폭을 넓힌 것은 기본이고, 게임 곳곳에 AI를 활용한 것이 눈에 띈다.
'스탠리'의 사망 이후 유산이 누구에게 상속되느냐 또한 이번 에피소드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로 등장하는데, 병실에는 녹음기가 하나 놓여져 있다. "케빈에게 유산을 물려준다"는 내용인데, 누가 들어도 TTS(텍스트 투 스피치) 기계 음성이다. 게임에선 이를 재치 있게 설정으로 풀어냈다. '딥보이스'라는 기술을 사용해 '에코'가 타인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다는 설정을 넣어둔 것이다.
대부분의 추리물은 범인이 확정되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거나, 후회하는 구도를 주로 그려왔다. 그러나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은 조금 다르다. 범인과 트릭을 알고 난 후에도, 다시 게임을 플레이하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사건 이면의 내용에 대해서도 다시 파고들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자유도가, 플레이어가 직접 만드는 후일담으로까지 이어지리라 상상하진 못했다. 이번 기회에 적잖은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예를 들어, 기자는 (죽은 아들 케빈의 기억을 학습한) 로봇 에코와 이런 문답을 주고받았다.
기자: 스탠리(아버지)도 죽었는데 네 역할은 끝난 거 아니야?
에코: 아니, 내 역할은 계속돼. 기억은 소중하니까.
기자: 케빈이 죽어서, 가족들에게 그 기억을 남기려고 널 데려온 거잖아. 이젠 스탠리도 죽었고. 누구에게 케빈과 스탠리의 기억을 남길 건데? 누구에게 소중한 기억인데?
에코: 나한테 맡겨둬, 기억이 필요한 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자: 기억이 필요한 자가 나타날 때까지라... 철학적이네.
에코: 기억은 언제나 누군가에게 소중해. 날 믿어줘.
앞서 소개했듯, 착했던 케빈과 달리 싸가지 없던 로봇 '에코' 맞다. 그런 로봇이 이런 대화를 할 땐 갑자기 뭉클한 말을 하는 것이다. GPT 주제에 말이다. (한두 번 잘못 튀어나온 답변이 아닌 일관된 답변이기에 더욱 의미가 남달랐다)
만약 당신이 추리게임을 좋아하거나, AI 기술을 활용해 만든 신기한 게임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의 6월 24일 스팀 정식 출시를 기다려보길 추천한다.
기자 또한 이번 스팀 데모에서 새롭게 공개된 에피소드를 플레이하면서, 정식 출시 때 공개될 에피소드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특히 세 번째 케이스 '갤러리' 에피소드는 앞서 공개된 사건들과는 전혀 다른 소재와 양상을 띌 것 같아 더욱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