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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리뷰

[방구석게임] '검은 신화: 오공', 기대하긴 했지만 설마 이럴 줄이야

선택과 집중을 잘 한 수작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김가은(깐kkan) 2024-08-27 14:13:22

디스이즈게임이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방구석 게임 클럽'은 곳곳에서 활동 중인 게임 리뷰어·유튜버를 초청해 게임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입니다.


게임에 대한 리뷰가 될 수도 있고, 특정 주제에 대한 칼럼이 실릴 수도 있습니다. 디스이즈게임은 이 클럽이 장기적으로 함께 대화하는 담론장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방구석 게임 클럽'의 문은 활짝 열려있습니다.


저는 <드래곤볼>을 무척 좋아합니다. 어린 시절 TV에서 <날아라 슈퍼보드>를 보고 자라기도 했죠. 그렇다고 <서유기>의 팬은 아닙니다. 오래 전 요약본을 본 게 전부인 데다, 배경 지식은 얕은 상식 선에 그치고요.


그럼에도 발매 전 공개한 영상들의 품질이 너무나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다웠으며, 액션 장르를 좋아하다 보니 <검은 신화: 오공>에 기대를 걸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기대를 모으던 게임들이 정작 발매 버전은 엉망이어서 실망했던 경험과 개발사의 텅 빈 이력과 콘솔의 불모지로 여겨져 온 중국이라는 국적은 확실한 기대를 품지는 못하게 했습니다.

반신반의하며 시작한 <검은 신화: 오공>은 어마어마한 스케일과 화려한 연출로 오프닝에서부터 단숨에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발매 첫 날부터 나흘 동안 50시간의 플레이를 내리 달리며 진엔딩까지 봤고요. 1회차를 완료한 기준으로 81가지 보스 중 버그 등의 이유로 불가피하게 처치하지 못한 것을 제외하곤, 모든 전투를 마쳤고 숨겨진 요소들도 최대한 샅샅이 즐겨봤습니다. /작성=깐(게임 리뷰어), 편집=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게임명: 검은 신화: 오공 (Black Myth: Wukong)

장르: 액션, 어드벤처

플랫폼: PC / PS5 / (XSX 발매 예정)

개발사 / 배급사: 게임사이언스

출시일: 2024년 8월 20일

한국어 지원 여부: 자막 지원

플레이 타임: 50시간




# 고전을 훌륭히 담아낸 캐릭터와 스토리

<검은 신화: 오공>은 서유기를 바탕으로 하는 만큼 경박하지만 호방한 손오공의 캐릭터를 굉장히 잘 구현했습니다. 주변 인물들 역시 자연스러우면서 매력이 있습니다. 

맛깔난 중국어 더빙과 한자어와 예스러운 말투를 그대로 살린 번역도 몰입의 깊이를 더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손오공 본인이 아닌, 그의 후예 중 천명을 받든 '아무개'이기 때문에 대사도 없고 위엄이 있지도 않지만, 손오공의 길을 따라 가는 기분을 더 짙게 느낄 수 있어 스토리의 흐름에 더 적합한 느낌이었네요.

아군과 적군 할 것 없이 저마다 사연이 절절한 캐릭터들의 배경이 있어, 자세히 설명된 여행기(도감)를 읽어보는 재미도 좋았습니다. <검은 신화: 오공>은 서유기를 잘 몰라도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지만 서유기를 알수록 빠져들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최근 <쿠니츠가미>를 하면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자국의 고전과 문화를 정성스럽고 멋지게 표현한 게임이라 부럽기도 하네요.

원전이 방대한 에피소드를 담은 손오공의 여행 소설인 만큼 <검은 신화: 오공>은 기승전결이 딱 떨어지는 흡인력 있는 스토리텔링은 아닙니다. 

손오공의 여행기인 서유기를 얼마나 알고 있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세세한 면에서 흥미가 벌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진 엔딩을 기준으로 완성도 있게 원전을 재해석했고 상당한 여운을 남기기에 높게 평할 만합니다. 진중함과 해학이 깃든 분위기만 이해하며 플레이 해도 아쉬움이 없고요. 밝은 화면에서도 가독성이 떨어지지 않는 자막만 있었다면 더할 나위가 없었을 겁니다.

사형! 자막이 안 보인다오!


# 점점 진가가 드러나는, 잽싸게 몰아치는 액션 

훌륭한 서유기의 묘사는 재빠르고 날렵한 원숭이의 액션에서도 돋보입니다. 전투 스타일은 보스들의 패턴과 일부 전투 난이도에서 소울류를 생각나게 하지만, 리드미컬한 패턴 사이사이에 빠르게 연속 공격을 몰아쳐야 하는 액션이라 거리가 조금 있습니다.

기다란 곤봉을 돌리고 찌르고 내려치며 6식까지 이을 수 있는 가벼운 콤보는 잽싼 원숭이 그 자체인 데다, 무거운 방망이로 가하는 강력한 공격은 묵직합니다.

이 게임의 액션 손맛과 타격감은 초반에 느끼기 어렵습니다. 기본 공격은 곤봉으로 두들기는 둔탁함 때문에 시원하고 강한 느낌이 덜하고, 선딜이 있고 차징이 필요한 봉술들은 조작이 답답한 데다 콤보의 타이밍을 익히는 데 경험이 필요하거든요.

하지만 이 약공의 6식 콤보를 시작으로 회피와 강공 및 법술을 강화하고 연계하며 봉술마다 다른 고유 액션을 펼칠 수 있게 되면 무척 속도감 있고 쾌감이 있는 액션을 즐길 수 있게 됩니다. 특히 법술과 봉술은 개별 기술로도 성능이 좋고 전부 특색 있어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재미도 큰데요. 법술은 손오공이 쓰는 요술들로 그 중 변신술은 보스 중 일부 캐릭터로 변신해 무기와 공격을 써 볼 수 있습니다. 


콘셉트를 살리느라 제한한 주인공의 공격을 상쇄하는 부분이죠. 또 봉술은 세 가지 자세로 간파를 하거나 봉에 매달리거나, 후퇴했다 돌진하는 등 취향은 물론 필요한 전투 방식에 맞게 선택해 구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곤봉치를 쌓아가며 봉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부터 재미가 급상승합니다. 이 밖에도 유용한 추가 기술을 쓰고 소지 효과를 얻는 '혼백'과 '법보'도 전투를 밋밋하지 않게 만들어 주는 요소였습니다.

이 게임의 전투 경험에 있어 장점이자 단점으로는 공격의 단계에 따라 사운드와 진동을 세분화 해 타격감의 저점과 고점의 차이가 크다는 점입니다. 오프닝 전투에서 고점을 경험할 수 있게는 해 주지만 숙련도가 필요한 조작법을 전달하지는 못해 오히려 고점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으니까요.


# 다채로운 보스전이 된 손오공의 난

이런 전투의 대부분은 보스전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진행 방식이 보스 러시에 가깝기 때문인데요. 서유기에 등장하는 81개의 고난에서 따 왔을 81명의 요괴와 신선들은 그 수가 워낙 많으니 대부분 색깔 놀이겠거니 싶지만, 챕터마다 하나씩 있는 개구리와 돌덩이 몇 개를 제외하면 외양부터 패턴까지 굉장히 다채로운 디자인을 보여줍니다. 페이즈가 나뉘거나 힘을 합쳐 덤비거나 도망쳤다 다시 등장하기도 하며, 갑작스레 다른 보스로 이어지거나 기믹으로 처치해야 하는 식으로요.

저는 보스 전투를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버그를 제외하곤 전부 처치했는데, 그 동기는 보스마다 볼 수 있는 사연에 있었습니다. 여타의 게임들에서는 소수의 메인 보스에만 컷씬이 등장하거나 특별한 대화가 나오는데, 오공에는 상당히 많은 보스들에게 컷씬이 할당되어 있고 등장부터 퇴장까지 인상적인 대화를 들려주곤 했거든요. 

보스들이 길목에 하나씩 놓여 있는 건가 싶게 배치도 촘촘하며 단조로움을 찾아볼 수 없는 연출이 있어, 마치 보스들을 놀이기구 타듯 만나는 '테마 파크' 같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장의 한 보스가 만들어야 할 걸 생략해버린 것처럼 단서도 부족하고 기믹을 파악하기가 어려워 불쾌하기는 했는데, 워낙 가짓수가 많으니 다양성으로 받아들일 만하더라고요.



# 쉽게 성장하고 자유롭게 바꾸는 전략

난이도에 있어서는 대부분 딜 타이밍이 여유롭고 판정도 너그러워 쉬운 편입니다. 사망 페널티가 없어 플레이 하는 내내 꾸준히 성장할 수 있고요. 

각 챕터의 마지막 보스와 일부 히든 보스는 상대적으로 어려워, 주요 보스만 보고 빠르게 진행했다면 난이도가 높은 게임으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레벨 뿐 아니라 장비와 기술이 부족해 효율적인 전투를 하기에는 힘들 테고요. 조작 또한 쉽지 않기 때문에 숙련도에 따라서 체감 난이도가 달라질 겁니다. 

그러나 필드에서 탐험과 파밍을 하며 가벼운 보스전을 치르고 각 장의 마지막에서는 적당한 성장을 유도하는 식으로 밸런스가 잡혀 있어, 콘텐츠를 구석구석 챙기며 플레이 한다면 결코 불합리하게 어려운 게임은 아닙니다.

파밍이 난이도를 낮추는 결정적인 이유는 유저 친화적인 강화 초기화에 있습니다. 성장 전략을 취향껏 잡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부담 없이 전략을 바꿔서 시도해 볼 수 있거든요. 

무기와 장비를 제외한 모든 강화 특성을 언제든 아무 비용 없이 초기화하고 바꿀 수 있어, 전투가 어렵게 느껴질 때 다른 전략을 여러 가지로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힘들게 느껴지는 전투가 전략을 바꾸니 치트 수준으로 쉽게 해결 되는 경우도 종종 겪었고요.

단, 여러 전략을 쓸 수 있는 액션 게임을 해 본 분들이라면 전략 변경이 생각보다 귀찮고 부담스럽다는 데에도 공감하실 겁니다. <검은 신화: 오공>은 이런 심리를 감안한 듯 아이템 및 기술의 입수 시점과 전투의 스타일의 배치를 유기적으로 설계해 자연스럽게 새로운 전략을 써 보게끔 합니다. 

예를 들어 다수의 적을 멈출 수 있는 기술이 해금되면 무리를 지은 적들이 등장한다거나, 착곤 봉술에 이점이 있는 강한 무기를 얻게 되면 멀지 않은 곳에서 착곤에 효과적인 장신구를 얻는 식으로 말이죠. 이렇게 하나씩 새로운 공격을 익혀가다 보면 점차 유의미한 선택지가 늘어나게 되는 걸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멈추고 단체로 때리는 정지술과 분신술의 살벌한 시너지


# 보스전 사이를 알차게 메우는 탐험

전투와 탐험의 전반적인 경험 디자인도 좋지만 비중의 분배도 적절합니다.

보스만 주구장창 만나는 게임이라고 예상하기 쉽지만 맵을 꼼꼼히 탐험해 나가는 맛이 뛰어나거든요. 지도나 나침반이 전혀 없어 난감하게 느껴지고 갈라지고 다시 갈라지는 갈림길들은 정말 자연에서 길을 잃은 기분을 주기도 하지만, 구역이 크지 않고 진행 방식이 선형적이어서 의외로 길찾기는 쉬웠습니다. 같은 곳에 다시 도착했다면 벽과 바닥을 꼼꼼히 보며 한 바퀴만 더 돌면 언제나 놓친 길이 있더라고요.

정작 지도가 없는 것보다는 길의 가시성과 보이지 않는 벽들이 문제였는데, 대신 미관이 아주 아름답고 사실적이기 때문에 여행하듯 즐기기에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알아채기도 쉽고 보기에도 좋았으면 싶지만, 숨겨진 것들을 찾는 데 재미를 붙이고 나서는 탐험하는 즐거움에 아쉬움이 잊혔습니다.

이와 관련해 최종장은 맵의 밀도를 낮추고 원작의 핵심을 살린 맵 디자인을 보여주는데 게임 진행상으로는 피날레 느낌이 들고 전개가 늘어지지 않아 괜찮았지만, 구석구석 핥는 탐험을 즐기던 참이라 실망이 들기도 했습니다.

탐험의 재미는 퀘스트와 비밀을 푸는 데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꼭꼭 숨겨진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프롬 소프트웨어의 방식과 많이 유사합니다. 다행히 프롬보다는 직관적이긴 하지만, 프롬 게임들에 경험이 없는 분들에게는 공략 없이 찾기에는 힘들 것 같네요.

그는 왜 딸랑이를 떨궜을까


# 수려하고 기품 있게 그려진 자연과 문화

파밍의 성취감도 좋고 비밀 찾기도 재밌지만 탐험을 즐긴 가장 큰 이유는 넋 놓고 감상하게 되는 섬세하고 멋진 그래픽 표현과 연출에 있었습니다. 제 선입견이기는 하지만, 솔직히 '중국풍 디자인' 하면 인위적이고 촌스러운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데, 오공의 배경과 사물들은 동아시아와 불교의 아이덴티티를 한국과 일본의 것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특징을 살려 기품 있게 표현했습니다.

고유한 산새와 다양한 식생의 구현은 현실의 절경을 그대로 옮긴 듯 자연스러우면서 고즈넉했고, 각 장의 좌선 지점들은 비경을 찾아낸 듯한 만족감을 줬습니다. 엇비슷해 보이는 사찰과 동굴도 벽면과 장식 등의 디테일이 죄다 달라 허투루 넘겨 볼 게 없었고요. 

챕터마다 주제에 따라 다른 분위기로 전환되는 환경과 세부 디자인도 매번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느낌이 들어 좋았습니다. 챕터가 넘어갈 때 나오는 애니메이션도 대단한 볼거리거였고요. 이런 분위기에 심취할 수 있게 강약 조절이 절묘하고 적재적소에 흐르는 배경 음악과 환경음, 그리고 여기에 덧입혀지는 전투의 적절한 효과음까지 그야말로 눈과 귀가 호사를 누리는 게임이었습니다.

뛰어난 그래픽 표현에도 PC 기준으로 최적화에 특별한 문제가 없었고요. 참고로 저는 FHD 환경에서 4천 번대 그래픽카드를 사용하고 있으며, 레이트레이싱은 끄고 프레임 생성 옵션은 킨 상태에서 텍스처와 빛 조명만 울트라로 높이고 전부 매우 높음 설정으로 플레이 했습니다. 방송과 녹화를 한 대의 컴퓨터에서 병행하기 때문에 리소스를 많이 쓰는 편이지만, 제가 제한한 120 프레임에서 내려오거나 스터터링이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챕터마다 생김새가 달라지는 휴식처


# 취향에 맞는다면 인생 게임도 될 만하다

<검은 신화: 오공>은 상대적으로 힘이 빠진 최종장과 서브 콘텐츠의 진행 불가 버그로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인생 게임에 등극할 정도로 만족도가 높은 게임입니다. 게임 구성과 플레이 스타일, 그리고 그래픽과 연출에서 이 게임만의 차별성을 느꼈고 운이 좋게도 제 취향에 꼭 맞았거든요.

플레이 하는 동안 많이 들었던 생각 중 하나는 선택과 집중을 잘 한 게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콘텐츠를 추가하는 대신 보스 전투에 집중해 확실한 강점을 둔 점, 맵이 크지도 않고 지도도 없지만 감탄하며 둘러볼 만큼 정성을 들였다는 점, 원작의 설정에 묶여 무기는 사실상 하나지만 다양한 봉술과 법술로 심도 있는 액션을 펼칠 수 있게 한 점 등 두드러지는 장점이 단점을 덮어내곤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왕 시작하신다면 진 엔딩까지 즐겨보시기를 권합니다. 그 과정에는 일반 루트만 진행할 때 볼 수 없는 아름다운 비밀 지역들과 아주 재밌는 보스 전투들이 기다리고 있고, 압도적인 일련의 마지막 전투와 감동적인 최종 애니메이션 그리고 그 뒤에 남는 여운이 보상으로 주어지거든요.



김가은(깐) - 게임 리뷰어


폭 넓은 장르의 게임에서 다양한 경험을 찾고자 합니다. 새로운 게임을 찾는 분들에게 제 경험담이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과 영상을 남겨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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