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은 기존의 가치관과 믿음을 깨뜨리고 새로운 화두를 던지는 것이다. 이미 내재화된 관념이 안팎으로 흔들리는 경험은 때로 삶을 송두리째 재고하게 할 만큼 강렬하다. 쿠앤틴 타란티노는 동료 감독 애드거 라이트와 진행했던 팟캐스트에서 영화 <조커>의 클라이맥스 장면을 들어 이 작용을 설명한다.
작중 코미디 스타 ‘머레이’의 토크쇼에 초대된 ‘조커’는 격앙된 대화를 이어가던 끝에 머레이를 총으로 쏜다. 타란티노에 따르면 이 장면에서 관객을 지배하는 건 단순 서스펜스 이상의 무엇이다. 이 순간만큼은 관객들 역시 머레이의 머리에 구멍이 뚫리기를 강하게 원한다. 평범한 이들을 악당처럼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영화는 ‘거대한 전복’에 성공했다고 타란티노는 말한다.
'여기서 머레이가 죽지 않길 바랐다면 거짓말'이라고 타란티노는 주장한다.
체험 미디어인 비디오게임은 전복의 시도가 더 쉽고, 또 잦을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하지만 게임은 일반적 인식보다는 훨씬 대중 지향적인 매체다. <GTA>와 같은 예외적 게임이 많은 주목을 받을 뿐, 다른 팝 컬처 콘텐츠들과 마찬가지로 보편적 도덕관념을 따르는 영웅 서사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심지어 자유도를 지상 가치로 내세우는 서양 RPG 씬에서도 ‘악인 루트’ 게임플레이는-마치 개발자가 권장하는 사항이 아닌 것처럼-깊이가 얕거나 다채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자주 나온다. 이것은 최근의 대작 <발더스 게이트 3>에서도 얼마간 반복됐던 평가다.
궁극적으로 이것은 악인 루트의 ‘인기’가 별로 없기 때문인데, 대작 RPG <매스 이펙트> 시리즈의 플레이어 통계를 하나의 극단적 예시로 살펴볼 만하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도덕적인 ‘파라곤’ 루트와 도발적인 ‘레니게이드’ 루트 중 하나를 매 순간 고를 수 있다. 그리고 개발자의 최근 발언에 따르면 전체 유저의 무려 92%가 파라곤 루트를 주로 선택한 것으로 드러났다.
<매스 이펙트> 유저들은 파라곤 루트를 월등히 많이 선택했다.
물론 모집단의 편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통계다. 샌드박스 성격이 강한 <GTA>나 <심즈> 유저를 상대로 '무고한 NPC를 해쳐 본 적 있는지' 조사하면 응답 비율은 뒤집힐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게임 속 인간관계와 사회 묘사가 현실적이고 선택의 인과가 뚜렷할수록 익숙한 도덕관념을 어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게이머들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전복 시도의 측면에서 폴란드 11비트 스튜디오의 포스트아포칼립스 도시 경영게임 <프로스트펑크>는 업계 내 드문 사례로 꼽을 만하다. 도덕적 인과에 대한 묘사를 희석하지 않으면서도, 유저가 인간성 희생을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고 이런 전복의 미학은 후속작 <프로스트펑크 2>에서 새로운 각도로 재현된 듯하다.
<프로스트펑크 2>는 많은 인기를 끌었던 전작으로부터 6년의 간격을 두고 나온 작품으로 기존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모았다. 이전 작품에서 30여 년이 지난 시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더 커진 게임 스케일이 눈에 띈다.
게임의 핵심 콘셉트는 전작에서 마련된 기틀을 많은 부분 계승했다. 모종의 이유로 기온이 극도로 낮아진 지구, 그 안에서도 영국을 배경으로 한 생존기를 다룬다. 작중의 과학 원리는 우리 세계와 조금 달라서 SF 판타지 장르로 분류할 만하며, 관련된 고유의 관념이나 이벤트들을 게임 안에서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다.
여느 시티 빌더와 유사하게, 지도자가 되어 도시의 인적, 물적 자원의 최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게임플레이의 주된 과제다. 이때 혹한의 환경이 끊임없이 도시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사실이 게임에 새로운 레이어를 덧댄다. 도시가 와해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과정에서 게임 속 모든 문제점은 파생하는데, 이는 생존 장르와 맥을 같이한다.
건물 단위로 관리가 이뤄지던 이전과 비교해 게임은 더 넓은 지역을 복합적으로 다룬다. 얼어붙은 빙원을 깨뜨려 거주, 채굴, 공업, 물류, 식량 등의 전담구역을 설정해 필수적인 생존 자원을 수집하고 순환시켜야 한다. 여기에 기술 연구를 통해 해금한 건물들을 건설, 약간의 부정적 효과를 감수하고 특정 자원의 생산량을 증대할 수 있다.
건축, 연구 등 주민들의 생존에 필요한 유저의 거의 모든 활동에는 ‘열우표’라고 불리는 일종의 세금과 노동력이 공통으로 요구되며, 이는 다시 주민에게서 나온다. 한편 생존에 꼭 필요한 기본 자원은 석탄, 석유, 물품, 자재, 조립부품, 식량 등으로 다양하다. 가장 낮은 난도에서도 이중 무엇 하나는 반드시 부족을 겪게끔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열우표와 노동력의 선택적 배분 투자가 가장 중요한 고민거리가 된다.
결과적으로 플레이어는 시민들에게서 얻은 자원을 시민의 생존에 투자하면서, 그 과정에서 시민을 희생시키는 딜레마에 빠진다. 그 모순적 굴레를 최대한 인도적으로 해결해볼 것인지, 아니면 죽음을 당연한 징검다리 삼는 비정한 길을 걸을 것인지는 유저 선택이다.
이는 전편의 주제 의식을 그대로 계승하는 것이다. 하지만 더 다각화된 메카닉들을 통해 유저의 고통(?)을 키우는 한편, 이를 해결하거나 완화할 수 있는 수단들의 볼륨도 키워뒀다는 점에서 게임플레이적 풍성함이 만족스럽고, 그만큼 몰입감도 크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번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더 커진 스케일이다. 우선 도시의 규모가 수백 명 단위에서 수만 명 단위로 늘었다. 도시 밖의 사정에도 신경 써야 한다. 탐험대를 파견해 일시적, 혹은 지속적인 자원 습득을 계속해야만 시민들의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 ‘서브 도시’를 운영하면서 자원과 인력을 배분하는 선택지도 주어진다.
더 나아가, 확장된 공동체 규모에 어울리게도, 다양한 정치 세력들을 상대해야 한다. 신앙수호자, 영구동토인, 뉴런던인, 진화론자 등으로 나뉘는 이들 세력은 각자 추종하는 가치관이 다르며, 그에 따라 기술 연구 방향은 물론 각종 이벤트에서의 유저 선택, 더 나아가서는 도시의 미래를 결정할 만한 커다란 분기(석유 의존 vs 연료 복합 사용 등)에서도 호불호를 강하게 드러낸다.
새롭게 도입된 ‘의원회’는 각 세력을 두루 신경 써야 하는 대표적 이유가 된다. 새 정책의 도입은 유저가 독단적으로 선택할 수 없으며, 반드시 세력별 대표자들이 모인 의원회 표결에 따라 결정된다. 중립 입장의 세력을 설득해 찬성표를 끌어내려면, 원하는 공약(주로 신기술 연구다)을 내거는 방식으로 회유해야 한다. 평소 여러 세력에 걸쳐 두루 우호도를 쌓아놓지 않았다면, 혹은 우호도 높은 세력의 의석 수가 너무 적다면 원하는 대로 도시를 이끌 수 없다.
꼭 의회 시스템이 아니더라도 유저가 항상 세력들의 눈치를 봐야하는 이유는 더 있다. 가령 세력의 불만이 중첩될 경우 이들의 ‘열의’가 높아지면서 도시의 긴장(불안정성)도 함께 상승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세력들의 지지는 유저의 종합적인 ‘신뢰’ 수치에도 영향을 준다. 신뢰 수치는 시민 사망 등 심각한 상황에서 점차 감소하며, 0에 도달하면 게임 오버다.
커진 게임 규모와 세력 시스템의 융합이 유저에게 유발하는 독특한 심리 상태에 한 번쯤 주목할 만하다.
‘소수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만의 죽음은 통계’라던 스탈린의 말처럼, 인구 규모가 월등히 커진 이번 작품에서 시민들의 희생은 가까운 비극으로 와닿지 않는다. 그보다는 도시라는 생존 기계의 효율을 높이거나 낮추는 일종의 ‘현상’으로 읽히는 경향이 강하다.
시민들의 ‘탈인격화’를 한층 강화하는 것은 세력 간의 정치 알력이다. 다양한 의견과 요구사항 속에서, 유저는 각각이 시민들에게 미칠 영향, 혹은 내재하고 있는 철학보다는 산출될 수치적 가감에만 눈길을 둔 채 결정을 내리게 된다.
대의보다는 각자의 극단적 신념에 입각해 움직이는 세력들의 모습은 많은 현실 정치의 알레고리가 된다. 그리고 이들의 신념에 대한 동조 혹은 반대가 아닌, 각 집단이 차지한 의석수에 따라 탄압 혹은 지지를 선택하게 되는 대표자(플레이어)의 모습은 그런 알레고리를 더욱 실감 나게 만든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게임의 엔딩이다. 엔딩에서 제작진은 희생된 시민들의 목숨과 수족을 언급하며 ‘과연 최선을 다했는지’ 물어 온다. 극한의 환경 속 수만 명의 생사를 좌우하며 내부에서 부지불식간 전복됐던 인간 가치에 대한 관점이 강제로 원상으로 복구되는 순간에 느껴지는 아찔함은 <프로스트펑크 2>만이 선사할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