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야구>와 <마구마구>의 뒤를 이어 온라인 야구게임의 3파전을 만들어갈 <슬러거>가 19일부터 첫번째 클로즈베타테스트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가장 마지막에 공개되는 게임인 만큼, 또 이미 유료화에 들어가 승승장구하던 <신야구>가 자동모드와 아이템 밸런싱의 문제로 살짝 주춤하고 있는 시점인 만큼 <슬러거>에 대한 기대는 뜨겁기 그지없다.
그런데 의외로 <슬러거>는 기존의 두 게임과는 많이 다르다. 필자는 개발사 측에서 이 게임을 소개하면서 ‘캐주얼’이라는 단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에 의문을 품고 있었는데, 직접 게임을 플레이해본 후에야 그 의문을 풀 수 있었다. 그렇다. <슬러거>는 캐주얼게임이 아니었던 것이다!
타격, 무지하게 어렵다!
남민우 대표가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슬러거>는 야구를 어느 정도 알아야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게임이다. 이런 의도는 타격 모드에서 가장 여실히 드러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슬러거>에서는 상대 투수의 공을 맞추기가 다른 게임보다 2배 정도 더 어렵다.
우선 가장 기본이 되는 구질인 직구가 굉장히 빠르다. 스포츠게임들은 보통 유저층을 넓히기 위해서 난이도를 낮춰두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박찬호 선수의 직구가 실제로는 150km 정도 된다고 했을 때, 이것을 게임으로 구현할 때는 80~90km 정도로 속도를 늦춘다는 것이다. 이는 게이머가 훈련을 받은 야구 선수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며, 게임의 타깃층이 여성이나 어린이에게 맞춰져 있을수록 더욱 늦춰진다.
그런데 <슬러거>에서는 150km의 직구가 게임 속에서도 최소한 110km는 되도록 느껴진다. 때문에 이번 공이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를 코스를 보고 파악하기는 매우 어려운 법이다. 다른 게임들에서 투수와 타자 사이에 시선을 두고 공의 코스를 파악한 뒤에 타격키를 누르는데 비해, <슬러거>에서는 투수의 어깨에 시선을 두고 공이 던져지면 바로 이어서 타격키를 눌러야할 정도로 빠르다.
게다가 투수의 구질이 다양하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포심, 투심, 체인지업, 커브, 슬라이더, 역회전(스크류)볼, 포크볼 등 다양한 구질이 준비되어 있고, 변화구들의 낙차도 큰 편이기 때문에 타격하는 입장에서는 진땀이 날 지경이다. 그래서 이 게임에서는 실제 야구에서처럼 상대방의 투구 패턴과 타이밍을 읽어서 ‘이번엔 어떤 구질로, 어떤 코스로 공이 들어오겠다’는 예측을 해둬야 한다. 하지만 온라인게임이다보니 대부분 3회까지 플레이하게 되는데, 9번의 타석동안 상대투수의 패턴과 구질을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1차 클베에서는 아예 타격을 포기하고, 타격을 전부 번트만 노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제대로 된 타격을 할 수 없으니 상대의 실수라도 노려보자는 것이다.
차라리 번트를 대면 상대 실수라도 노릴 수 있거든.
밀어치기와 당겨치기
어렵기는 하지만 게임 제목이 무려 <슬러거>(=장타자, 강타자)이기 때문에(?), 타격의 재미는 충실한 편이다. 우선 일단 맞추기만 하면 홈런이나 3루타 등 장타가 나오기 쉽다. 또 타격한 공이 스트라이크가 아니라 볼이더라도 타이밍만 정확하면 안타가 나올 확률도 높다.
특히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밀어치기’와 ‘당겨치기’를 이용하면 더욱 쉽게 점수를 낼 수 있다. 오른손 타자로 설명해보자면, <→>키를 누르면서 타격하면 밀어치기가 되고 <←>키를 누르면서 타격하면 당겨치기가 된다. 다른 야구게임들에서는 밀어치기나 당겨치기가 아예 구현되지 않았거나, 구현됐더라도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은데 <슬러거>의 경우는 아주 확실하게 구현되어 있는 편이다. 바깥쪽 공이더라도 당겨치면 타이밍에 따라서 3루쪽으로 보낼 수 있고, 몸쪽 공이라도 밀어치면 1루수 방향으로 타구를 보낼 수 있다. 당연히 몸쪽 공을 당겨치거나, 바깥쪽 공을 밀어치면 장타가 나올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맞추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공에 배트를 갖다 대기만 하면, 또 밀어치기와 당겨치기를 적절히 이용하면 아주 화끈한 타격전이 펼쳐진다. 필자 같은 경우는 3회동안 5개의 홈런을 때려낸 적도 있고, 또 3연타석으로 홈런을 맞은 적도 있을 정도다.
수비와 투구는 쉬운 편
이런 공식이 성립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타격이 어렵기 때문에 투구는 그만큼 쉬운 편이다. 무엇보다도 투수의 체력이라는 요소가 아직 구현되어 있지 않아서 뒷걱정 없이 마음껏 던져댈 수 있고, 체력이 떨어지지 않으니 컨트롤도 항상 100% 정확해서 원하는 곳에 원하는 공을 집어넣을 수 있다. 너무 서둘러서 가운데로만 계속 던져대지 않는다면 포심과 체인지업의 조합만으로도 스트라이크 아웃을 잡아낼 수 있을 정도. 게다가 타격과 마찬가지로 스트라이크존에 너무 까다롭지 않아서, 살짝 벗어난 것이라도 스트라이크로 판정하는 경우가 많다. 투수 입장에서는 스트라이크존에 살짝 걸쳐서 안쪽과 바깥쪽, 위와 아래로 흔들어주면 쉽게 타자를 요리할 수 있다.
- 이 기사를 작성하고 있었던 20일 현재, 개발사가 유저들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투수가 원하는 방향에 정확히 공을 던질 수 없도록 밸런싱이 수정되었다.
수비수는 자동과 수동이 적절히 혼합되어 있는 상태. 즉 타구가 날아가면 인공지능에 의해서 수비수가 타구의 방향으로 느리게 이동하고, 여기서 플레이어가 방향키를 눌러 조작하면 이동속도가 빨라지는 방식이다. 내야타구의 경우는 거의 조작을 하지 않아도 컴퓨터가 알아서 처리해줄 정도. 물론 아직은 미숙한 점이 많아서 플라이볼이 떴을 때 엉뚱한 시점이 잡힌다던가, 인공지능 수비수가 볼과 반대방향으로 달리는 등의 문제점이 보이지만 이는 다음 테스트에서 충분히 수정될 것으로 보인다.
버그와 아직 구현되지 않은 기능들
1차 클로즈베타테스트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버그가 꽤 많은 편이다. 가장 심각한 버그는 아무런 이유 없이 게임이 멈춰버리는 것(다운). 필자의 경험으로는 데드볼이 나오면 100% 멈추고, 점수가 많이 날수록, 또 회가 거듭될수록 멈출 확률이 높아지는 듯하다. <슬러거>는 디스커넥트를 곧장 패배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필자의 실제 전적은 10승 4무 2패이지만 공식적으로는 10승 4무 15패가 되어버렸다. 억울하다고!
또 타격시 상대투수의 공이 일시적으로 보이지 않는 버그, 스트라이크아웃인데 점수가 나는 버그, 공을 던지지도 않았는데 홈런이 나버리는 버그 등 다양한 종류의 벌레들이 활개를 치고 돌아다닌다.
이 경기에서는 필자가 볼을 던지자 갑자기 게임이 멈추더니, 타자가 2루로 달려갔다가 홈으로 돌아가면서 상대방 점수가 1점 올라갔다. 버그도 캐주얼하지 않다니!
하지만 버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꼭 필요한데도 아직 구현되지 않은 기능들이다. 우선 투구시간의 제한이 없어서 상대 투수가 공을 던지지 않으면 마냥 기다려야 하며, 선수교체(작전타임)를 요청하는 횟수도 제한이 없어서 비매너 플레이를 조장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투수의 체력이나, 시점의 변화, 수비수들이 빨리 뛰도록 연타할 수 있는 키의 부재도 아쉬운 부분이다.
홈런인가, 파울인가?
지금까지 온라인 스포츠게임은 ‘캐주얼’하게 개발하는 것이 정석처럼 여겨졌다. 사실적인 면을 부각해서 매니아층을 끌어들이는 것보다, 귀엽고 즐거운 플레이로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 훨씬 성공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물론 상업적인 면만 따져본 것이다). 실제로 가장 성공한 온라인 스포츠게임으로 평가되는 <팡야>와 <프리스타일>은 모두 캐주얼 게임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슬러거>는 그런 정석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중에 아이템과 선수의 성장개념이 등장하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또 밸런스를 맞춰가기 나름이지만), 최소한 1차 클로즈베타테스트 버전은 그래픽만 제외하고는 캐주얼한 요소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선수의 잔 동작 하나하나에 신경 쓴 부분이나, 투타의 밸런스 등은 시뮬레이션 게임에 가깝다.
과연 <슬러거>가 지금처럼 원래 스포츠를 재현하는데 집중해 시뮬레이션적인 성격을 지켜가면서도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 혹은 아예 더 많은 유저를 끌어들이기 위해 캐주얼할 요소를 추가할 지는 흥미롭게 지켜 볼만한 문제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슬러거>의 성공 여부뿐만 아니라 앞으로 개발될 스포츠게임들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