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MORPG 기대작 3인방 중 하나인 <드래곤네스트>가 지난 15일 드디어 첫 클로즈 베타테스트를 시작했다. 2007년 8월, 디스이즈게임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된 후 약 2년 만의 일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드래곤네스트>의 1차 CBT는 오랜 기다림만큼이나 뛰어난 퀄리티를 갖고 돌아왔다. 액션은 화려했고, 그래픽은 ‘캐주얼게임의 끝을 봤다’는 말이 나올 만큼 깔끔하고 화사했다. 최소한 이 두 가지에 한해서는 유저들의 기대를 조금도 배신하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우려되는 아쉬움도 적지 않았다. 화려한 그래픽과 이질감이 들 정도로 사운드가 부실했고, 캐릭터의 어색한 모션이 돋보이는 컷신과 뻔한 스토리 전개는 유저들의 몰입을 방해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지나치게 평타에 의존한 전투나 의미 없이 불편함을 초래하는 마을과 던전의 중간필드처럼 단순히 1차 CBT의 문제로 보고 넘어가기 어려운 것들도 있었다.
디스이즈게임에서 이제 막 1차 클로즈 베타테스트를 끝낸 <드래곤네스트>의 만족스러운 점과 우려가 되는 점들을 짚어 봤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만족] 캐주얼게임 그래픽의 끝을 보다
<드래곤네스트>의 그래픽은 ‘캐주얼게임의 끝’을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던전의 배경이나 각종 사물도 매우 섬세하게 디자인되어 있는 데다 캐릭터의 움직임 역시 점프 후의 공격이나 착지 동작이 다소 어색한 것을 빼면 흠잡을 곳 없이 부드럽고 경쾌하다.
말 보다는 스크린샷으로 직접 보자.
적의 피격 모션도 확실하고 오브젝트가 무너질 때의 연기나 폭발도 자연스럽다. 주변을 흐릿하게 표현해서 초점과 원근감을 강조하는 뎁스오브필드와 캐릭터의 빠른 움직임을 표현하는 모션블러 등의 효과도 적재적소에 녹아있다. 각종 인터페이스와 텍스트들도 깔끔하게 처리돼, 게임의 분위기를 해치는 일이 없다.
날씨와 시간에 따른 변화도 확실하다. 같은 던전이라도 안개가 끼고 비가 올 때와 맑고 화창할 때를 비교해서 보면 전혀 다른 장소라 해도 믿을 정도로 차이가 크다. 단순히 물줄기 몇 개 떨어뜨려 놓고 비가 온다고, 배경만 검게 하고 밤이 됐다고 우기는 몇몇 게임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과장된 스킬 이펙트는 덤이다.
여기에 5등신의 귀여운 캐릭터와 몬스터, 배경에 어울리는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겹쳐지면서 유저가 <드래곤네스트>를 하는 내내 한편의 동화 속에 들어와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비단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여성 유저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그래픽이다.
말이 필요 없다. 그야 말로 ‘동화 속 세상’이다.
[보통] 사운드가 아쉬운 타격감
그래픽이 만족스러운 만큼 기본적인 타격감도 좋다. 약간 오버에 가까운 피격모션을 통해 적이 맞았다는 표시를 확실히 해 주는 데다 대부분의 스킬이 적을 띄우기 때문에 쓰러진 적을 끊임없이 일으켜서 때리는 연타의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공격이 적중했을 때 적의 움직임을 잠깐 멈춰주는 ‘경직’ 효과를 전혀 쓰지 않아 더욱 자연스러운 연타가 가능한 것도 장점이다.
각 던전에서 일반 몬스터들을 처치하고 나면 진행하게 되는 보스전 역시 일품. 거대한 몸집과 다양한 패턴으로 다가오는 보스 몬스터들의 피하고 다시 공격을 이어가는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다른 게임에 비해 보스들의 빈틈이 크기 때문에 패턴을 파악해서 한두 대씩 때리고 빠지는 ‘정해진 방식의’ 전투보다 공격을 하다 순간순간의 본능에 충실해 피하는 전투가 가능하다.
보고 피하고 다시 때린다. 이 과정이 정말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다만 무기에 상관없이 일정한 소리는 내는 타격음은 다소 아쉬웠다. 게다가 캐릭터 스킬 발동 시의 사운드가 중복되는 바람에 음성이 어지럽게 겹치고, 배경음악의 수도 적었다. 이후의 테스트에서는 조금 더 발전된 효과·음성·배경음을 기대해 본다.
[우려] 기본에 충실하지만 쾌적하지는 않은 전투
1:1에서는 뛰어나던 타격감은 일대다수의 싸움이 되면 상황이 조금 달라진다. 우선 적이 공격을 맞을 때마다 지나치게 튕기는 탓에 원하는 만큼 적을 ‘몰아서 때리기’가 어렵다.
<드래곤네스트> 역시 MO의 특성 상 일대다수의 전투를 주로 펼치게 되는데 수 많은 몬스터를 몰아서 때려도 정작 연타의 끝자락에는 한 두 마리의 몬스터만 공격을 맞고 있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다수의 몬스터를 한 번에 몰아치는 쾌감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애매하게 높은 적의 인공지능 때문에 적을 한 곳에 몰기도 쉽지 않아서 일일이 적을 좇아 다니며 죽이는 일도 자주 벌어졌다. 5마리의 몬스터가 플레이어를 봤다면 3마리는 달려오고 한 마리는 플레이어의 뒤로 돌아가며 다른 한 마리는 일정 거리에서 천천히 거리를 좁히는 식이다.
지능적인 몬스터와 싸우는 것은 좋지만 이처럼 멀찍이 떨어져서 서성거리는 다수의 적을 하나씩 처치하다 보면 오히려 게임의 진행이 더디고 지루해지기 십상이다. 특정한 중간보스나 보스급 몬스터가 아니라면 쾌적한 진행을 위해 적당히 ‘몰려와서 맞아주는’ 친절함도 필요하지 않을까?
따로 놀고 있으니 몰아서 치기도 애매하고, 하나씩 잡기도 애매하다.
스킬의 쿨타임(재사용 대기시간)이 길고, 종류도 적은 탓에 일반공격의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았다는 점도 전투를 지루하게 만드는 요인 중에 하나다. 스킬을 쏟아 붓는 재미보다 적의 공격을 피하고 다음 공격 전까지 알차게(?) 공격을 가하는 액션게임의 기본에 충실한 탓이다.
때문에 <드래곤네스트>의 전투는 화려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투박한 느낌’을 줬다. 물론 유저에 따라 호/불호가 나누어질 수 있는 사안이겠지만 최근의 MORPG들이 보여준 각종 스킬과 이펙트가 난무하는 자극적인 전투에는 적응된 유저라면 다소 심심하게 느낄 가능성도 있다.
[만족] 확실히 즐거운 파티플레이
파티플레이는 확실히 즐거웠다. 파티원들의 연타와 연타가 이어지는 데다 각 직업별로 쓰러진 적을 다시 공중으로 띄우는 스킬이 다양해 끊임 없이 ‘몰매를 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원거리와 근거리가 확실히 구분되어 있어 적을 유인하는 역할과 실질적인 대미지를 입히는 역할이 자연스럽게 나누어진다는 것도 특징 중 하나.
<드래곤네스트>의 모든 공격이 크로스헤어를 중심으로 가해지는 만큼 조금만 연습하면 워리어가 임팩트 펀치로 띄운 적에게 아쳐가 트윈 샷을 맞추고 또 다시 떨어지는 적을 소서리스가 차지 미사일로 날리는 등 흡사 ‘비치발리볼’에 가까운 플레이도 즐길 수 있었다.
다양한 연계가 가능하다.
마을에서 자동으로 파티 리스트를 검색/가입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번거로운 소개글을 올리지 않아도 쉽게 파티원을 모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효율은 물론 연타의 쾌감도 상당해서 1차 테스트 동안 대부분의 유저가 파티를 이룬 채 게임을 진행했을 정도다.
참고로 <드래곤네스트>에서는 맵의 양쪽 끝에서 몬스터를 잡거나 여러 곳의 스위치를 순서대로 누르는 등 애당초 파티플레이를 염두에 두고 개발한 부분이 상당수 존재한다.
[우려] 커뮤니티를 가로막는 필드
<드래곤네스트>는 MO치고는 특이하게도 MMO 공간인 마을을 벗어나 우선 ‘필드’로 이동하고 여기서 다시 ‘인스턴스 던전’으로 들어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MMO처럼 던전과 마을 사이에 ‘필드’라는 중간 지역을 넣은 것이다. 물론 ‘필드’에는 몬스터가 등장하지 않으며 유저의 피로도도 소모되지 않는다. 다만 필드 곳곳에 서 있는 NPC에게 퀘스트를 받고, 던전까지 이동하는 데 사실적인 느낌을 주는 공간 정도로 활용되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이 ‘필드’ 역시 인스턴스 지역이라는 데 있다. 결국 파티를 마을에서 모은 후 파티원을 이끌고 ‘몬스터와 사람 하나 없는’ 필드를 지나 던전에 가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드 자체가 넓지 않은 만큼 큰 무리는 없지만 굳이 아무런 필요성도 없는 필드를 꼭 거쳐가게 만들어야만 했을까?
만약 몇 안 되는 퀘스트 NPC를 위해 필드를 넣은 것이라면 차라리 NPC를 마을로 옮기고 마을에서 벗어날 때 직접 던전을 선택하는 방식이 훨씬 쉽고 편하다. 혹은 필드까지 공통지역으로 사용했다면 각 던전에 갈 사람을 입구에서 모으거나 같은 길을 가는 유저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커뮤니티의 장소’로라도 사용할 수 있다.
불편함은 불편함대로 쌓이는 ‘필드’. 하지만 아직까지 필요성을 모르겠다.
특히 <드래곤네스트>에서는 던전 클리어 후 같은 던전을 반복할 경우 주로 던전 앞 귀환을 택하게 된다. 그런데 이 경우 던전 앞 필드가 공통지역이라면 혼자서 솔로잉을 즐기다 어느 정도 유저가 모이면 파티를 맺는 등의 ‘썸씽’이 일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필드 방식으로는 던전을 아무리 돌아도 가끔 마을에 들르기 전까지는 사람을 아예 볼 수 없거나 같은 파티원만 내내 보는 ‘격리된 플레이’를 진행하게 된다. 가뜩이나 커뮤니티가 약점인 MO에서 굳이 폐쇄적인 필드까지 구현했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총평] 충분한 즐거움과 남겨진 숙제
이러니 저러니 해도 <드래곤네스트>의 1차 클로즈 베타테스트는 확실히 재미있었다. 위에서 열거한 문제점들과 아직은 조금 더 보강이 필요한 컨텐츠를 제외한다면 다른 기초적인 부분은 ‘이미 완성된 게임’이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 뛰어난 퀄리티를 보여줬다. 특유의 동화와 같은 분위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드래곤네스트>를 즐길 충분한 이유를 만들어 주었다.
반면 이번 테스트를 통해 <드래곤네스트>는 생각보다 단조롭게 느껴지는 스토리 전개와 평타 의존률이 높은 전투 방식, MO의 고질적인 커뮤니티 고민 등 오픈 베타테스트 전까지 풀어야 할 ‘숙제’도 떠안게 됐다. 하나 같이 만만치 않은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