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에이지>는 ‘RPG의 명가’ 바이오웨어가 2004년부터 심혈을 기울여 개발해 온 RPG입니다. <발더스 게이트>와 <네버 윈터 나이츠> 등의 RPG로 유명한 바이오웨어는 신작 <드래곤 에이지>에 대해 ‘역대 최대 스케일과 최강의 액션’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을 정도죠.
이러한 <드래곤 에이지>가 지난 17일 서울 롯데월드에서 열린 Xbox360 인비테이셔널 2009에서 공개됐습니다. 저도 직접 체험해 봤는데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이오웨어의 자신감은 허풍이 아니었습니다. <드래곤 에이지>는 5년의 기다림이 ‘조금도’ 아깝지 않은 수준의 퀄리티를 보여줬습니다. /(올 겨울 바이오웨어의 노예가 확정된)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 이번 체험기는 Xbox360용 <드래곤 에이지>를 플레이한 후 작성한 것입니다. 발매 기종이나 개발 상황에 따라 게임의 내용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Xbox360 인비테이셔널 2009 시연대 플레이 영상
[[#movie news 2009/dragonage_invitational.wmv#]]
※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시작됩니다.
■ 보다 쉽고 친절해진 바이오웨어
<드래곤 에이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친절함’입니다. 퀘스트를 받으면 화면에 새로운 퀘스트를 받았다는 표시가 뜨고, 퀘스트의 목표지점이 자동으로 지도에 표시됩니다. 퀘스트가 여러 개일 경우 클릭 한 번이면 원하는 퀘스트의 위치만 골라서 표시할 수도 있습니다.
조사가 가능한 오브젝트는 반짝거리는 효과를 통해 한 눈에 구분할 수 있고, A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주변의 오브젝트를 조사합니다. 퀘스트를 갖고 있는 NPC는 머리 위에 친절하게 느낌표를 띄워 주고 전투 후의 아이템 획득도 버튼 하나로 가능하죠.
게임 내의 주요 이벤트 역시 NPC나 오브젝트를 조사하지 않더라도 근처에 가면 자동으로 컷신이 나오더군요.
과거 바이오웨어의 게임을 즐겨 본 유저들이라면 의아할 정도의 친절함입니다. 오죽하면 시연대에서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이 플레이하기 위해 모든 대화나 이벤트를 스킵(Skip)했는데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길을 잃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캐릭터들의 대화도 충분한 리액션이 나오기 때문에 기초적인 영어듣기 실력 정도만 있다면 일단 게임을 진행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습니다.
■ 액션으로 거듭난 전투, 전략은 여전히 살아 있다
액션성을 강조하도록 설정된 조작 방식도 매력적입니다.
<드래곤 에이지>는 조작 중인 캐릭터를 등 뒤에서 보는 3인칭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왼쪽 아날로그 스틱으로 캐릭터를, 오른쪽 아날로그 스틱으로 시점을 조작하고 A 버튼으로 말을 걸거나 오브젝트를 조사할 수 있죠. 전형적인 3D RPG의 조작방식입니다.
전투 역시 플레이어가 한 명의 캐릭터를 조작하면 나머지는 자동으로 전투에 참가합니다. 패드의 LB와 RB 버튼을 이용해서 언제든지 조작하는 캐릭터를 바꿀 수 있고, 원한다면 상당히 세부적인 스킬/상황에 따른 인공지능을 설정할 수도 있습니다.
한 명의 캐릭터를 조작해 A 버튼으로 적을 공격하고 퀵슬롯에 등록한 스킬을 버튼 하나로 바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액션 게임과 비슷한 느낌으로 전투를 진행하게 됩니다.
활을 장전하는 적을 방패로 밀쳐내며 공격을 멈추고 도망가는 적을 일일이 따라가서 등에 칼을 꽂다 보면 이게 액션 게임인지 RPG인지 헷갈릴 정도더군요.
물론 바이오웨어의 전작 <발더스 게이트>나 <네버 윈터 나이츠>처럼 화면을 멈춘 후 순서대로 조작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인공지능이 뛰어난 덕분인지 화면을 멈출 일은 거의 생기지 않더군요. 초반의 보스전 역시 조작 캐릭터의 변경 정도로 충분했습니다.
범위 마법을 사용하면 잠깐 화면이 멈추면서 사용범위를 정하는 화면이 나타납니다.
스킬을 쓰는 방식도 보다 액션에 가까워졌습니다. 워리어나 로그는 공격할 때마다 모이는 게이지를 활용해서 스킬을 쓸 수 있고, 메이지는 시간에 따라 자동으로 마나가 충전됩니다. 번거로운 메모라이즈나 마법 횟수 제한 같은 건 사라졌죠.
덕분에 게임을 진행하는 내내 마음껏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게임의 초반부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회복 포션이 넉넉히 나오기 때문에 한 번의 전투에도 전력을 다할 수 있더군요.
물론 게임의 난이도 역시 스킬과 포션을 꾸준히 사용한다는 조건에 맞춰져 있습니다. 스킬과 아이템을 남발한다고 너무 쉬운 게임이 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죠.
<발더스 게이트>나 <네버 윈터 나이츠>에서 보여줬던 전략성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멀리서 활을 쏘거나 캐스팅하는 적을 그대로 뒀다가는 순식간에 파티원이 주검으로 변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전투가 시작되면 최우선으로 제거할 대상을 찾아야 하고 각종 효과를 지닌 마법과 스킬을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해야 하는 점도 바이오웨어의 전작들과 비슷합니다.
다수의 캐릭터가 맞붙어도 조작에 무리가 따르지 않습니다.
각종 오브젝트가 겹치는 일도 없어서 몸으로 적의 길을 막을 수 있고, 가까이에 있는 적을 칼로 베면 주변의 모든 캐릭터가 피를 뒤집어쓰는 등 사실적인 효과와 연출도 인상적입니다. 심지어 컷신에서도 묻은 피가 사라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모션이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캐릭터의 움직임이 조금 미끄러지는 모습을 보이는 게 조금 아쉽습니다만 크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닙니다. 조작과 전투는 충분히 만족스러웠습니다.
■ 끝없이 이어지는 사건과 이야기
대사 분량만으로 압도한다는 바이오웨어는 <드래곤 에이지>에서도 특유의 수다를 충분히 드러냈습니다. 오프닝이 끝난 후 캐릭터를 조작하기 전까지만 5분 이상이 걸릴 정도죠.
본격적으로 게임에 들어가면 대사량은 몇 배로 늘어납니다. 인간 워리어를 골라서 플레이를 진행할 경우 첫 전투까지 15번 이상의 선택지가 나옵니다. 그것도 ‘이벤트만 따라서 갈 경우’입니다. 마을의 모든 NPC들에게 말을 걸고 다닐 경우 대사량은 몇 배로 늘어납니다.
놀라운 점은 이 모든 대사가 ‘음성’이라는 것입니다. 플레이어의 선택지를 제외하면 게임에는 아예 자막조차 나오지 않아요. 대부분의 질문마다 5개의 답변이 준비돼 있고 거기서 선택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3~4번씩 진행되는 걸 감안할 때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가를 알 수 있을 듯합니다.
참고로 바이오웨어에서 밝힌 <드래곤 에이지>의 플레이 시간은 약 80시간입니다. 물론 모든 것을 보는 시간이 아닌 순수 플레이 시간 기준이죠.
게다가 <드래곤 에이지>에서는 다양한 사건과 이야기가 플레이 내내 쉴 틈 없이 이어집니다. 실제로 ‘퀘스트 1개를 깨러 갔는데 돌아오니 퀘스트가 5개로 늘어나 있었다’는 상황을 예사로 반복했을 정도입니다. 나중에는 떠밀려 오는 이야기에 묻혀서 내가 어떤 퀘스트를 진행하던 중이었는지 잊어버릴 때도 있었습니다.
퀘스트에 따라 다양한 선택지도 마련돼 있습니다. 시연대에서는 시간관계상 경험해 보지 못 했지만 선택에 따라 차후의 이야기 진행에 큰 영향을 줄법한 이야기도 몇 가지 보이더군요.
■ 익숙하면서도 색다른 롤플레잉 게임
<드래곤 에이지>의 큰 틀은 <발더스 게이트>나 <네버윈터 나이츠>와 매우 비슷합니다. 캐릭터의 능력치 설정이나 스킬, 특성 선택 방식 등이 약간씩 변하긴 했지만 기존의 D&D 류의 게임을 즐긴 유저라면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퀘스트와 이야기도 여전히 끝없이 이어집니다. 특히 배신과 음모가 당연한 것처럼 펼쳐지는 이야기 전개는 <드래곤 에이지>의 백미입니다. <드래곤 에이지>에서는 3개의 종족과 3개의 기본직업이 제공되는데요, 대부분의 종족과 직업이 ‘배신 당하는 것’으로 시작되더군요. -_-;
반면 일부 게이머들이 우려했던 액션 방식의 전투는 매우 신선했습니다. <발더스 게이트>의 1인칭 모드를 즐기는 기분이랄까요? 근접 캐릭터들은 액티브 스킬이 대거 추가된 덕분에 마치 ‘액션 게임’과 같은 전투가 가능했고, 반대로 장거리 캐릭터들은 마법이나 화살을 이용한 일종의 ‘장거리 슈팅’을 즐길 수 있었죠.
그러면서도 자동 공격과 어시스트 기능, NPC 인공지능 설정 등을 통해 기존의 D&D류 게임에서 보여준 전략성을 그대로 갖고 왔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입니다.
다만 한글화 예정이 없다는 사실이 매우 아쉽습니다. 모든 기종에 300 페이지 분량의 한글 공략집에 동봉되고 친절한 시스템 덕분에 텍스트를 읽지 않고서도(!) 게임을 진행할 수 있긴 합니다만, 이야기가 절반이 넘는 게임에서 공략집만으로 재미를 느끼기란 어려운 법이니까요.
영어자막도 없는 탓에 시연대에서도 대부분의 유저가 1~2분 정도 대화만 누르다가 자리를 뜨더군요. 텍스트의 분량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겠지만 아쉬운 것도 어쩔 수 없죠. 동봉되는 공략집이 충실하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드래곤 에이지>는 오는 11월 17일 PC, Xbox360, PS3 버전으로 국내에서 발매됩니다. 18세 이상 이용가의 영문판이며, 한글 공략집이 모든 패키지에 동봉되죠. 만약 기본적인 영어 듣기가 가능하고 D&D 류의 RPG에 관심이 있다면, 혹은 바이오웨어의 암울한 세계관이 어떤 것인지 구경하고 싶다면 구매를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