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반다이남코게임즈에서 만든 <아이돌 마스터>라는 육성 어드벤처 게임이 있다. 뭐, 사실 냉정하게 따지자면 육성이나 어드벤처보다 ‘귀여운’ 캐릭터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감상하는 비중이 더 큰 게임이다.
어쨌든 <아이돌 마스터>는 일본 오타쿠 시장을 철저하게 노리고 들어간 게임성과 기획·마케팅. 그리고 ‘카툰 렌더링의 매력을 십분 끌어 올린 3D 그래픽’으로 뜨거운 인기를 얻는 데 성공했다.
난데없이 왜 바다 건너 섬나라 게임 이야기를 하냐면, 최근 프리 오픈 베타테스트를 진행한 <필 온라인>(Feel Online)이 국산 온라인 게임 중에선 <아이돌 마스터>와 가장 비슷한 그래픽 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오해할까 봐 미리 말하지만 <아이돌 마스터>와 동급의 그래픽이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카툰렌더링을 사용한 그래픽은 비슷할지 몰라도 <필 온라인>은 <아이돌 마스터>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게임이다. <아이돌 마스터>가 대놓고 오타쿠 시장을 노렸다면, <필 온라인>은 노골적으로 ‘온라인에서 연애를 하고 싶은 남녀’를 겨냥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필자는 지금도 이 게임을 과연 ‘정상적인 온라인 게임’의 범주에 넣어야 하는지 헷갈리고 있다. /디스이즈게임 필진 BStorm
게임의 홈페이지. 사실 가운데 문구 하나로 이 게임의 성격은 99.99% 파악이 끝났다.
온라인에서 즐기는 연애 게임
<필 온라인>은 공식적으로 ‘로맨틱 커뮤니티 게임’이라는 장르를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이 게임은 형식 면에서는 PC 패키지/콘솔용 ‘연애 어드벤처 게임’과 다를 게 전혀 없다.
실제로 게임의 구성이나 방식, 연애를 풀어 나가는 요소를 보면 거의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한 가지 다른 점은 유저가 공략해야 하는 대상이 인공지능(AI)이나 가상의 캐릭터가 아닌,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사실 뿐이다.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고, 데이트와 이벤트를 즐기고, 호감을 얻고 서로를 알아 간다. …인터페이스부터 시작해 전형적인 PC 패키지용 연애 게임 방식을 그대로 온라인에 옮겨 왔다.
<필 온라인>의 기본적인 게임 흐름은 다음과 같다.
[1]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고 광장에서 다른 유저들과 수다를 떤다. [2] 그러다 마음에 드는 이성 유저를 발견하면 친구 신청을 한다. [3] 서로 승낙해서 친구가 되면, 게임이 준비한 다양한 데이트, 혹은 이벤트 중 하나를 즐길 수 있다. [4] 데이트를 즐긴다. [5] 데이트가 끝나면 상대방을 평가한다. 서로 좋은 평가를 주면 애정도가 상승하고, 운이 좋다면 상대방의 ‘실명’이나 ‘출신학교’ 같은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6] 친구가 되면 이후 서로 자유롭게 데이트를 신청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데이트를 반복해서 서로를 알아간다. [7] (게임 속에) 엔딩 같은 건 없다.
친구 신청이 오면 간단하게 서로의 취향을 맞춰보고 승낙/거절을 결정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데이트는 게임이 마련해 놓은 시나리오를 그냥 보고 즐기는 수준이지만, 중간중간 플레이어 간에 대화도 할 수 있다.
중간 중간 이런 선택문이 뜨기도 하며, 서로의 선택이 일치하면 무드 게이지가 오르기도 한다. …그런데 저 선택 인터페이스가 모 게임과 많이 유사하다고 느낀 것은 필자 뿐일까?
데이트 마지막에는 상대방을 평가할 수 있다. 결과가 좋으면 상대방에게 실제 현실 속 프로필을 요청할 수도 있다.
모든 데이트가 끝난 다음에는 상대방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를 남길 수 있으며, 마음에 안 들었다면 가차 없이 차단을 걸 수도 있다.
다양한 종류의 데이트
연애 게임의 룰을 따른다고는 해도, 위에 정리한 흐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필 온라인>은 근본적으로 ‘연애 게임의 형식을 빌린 (노골적인) 만남 주선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온라인 게임보다 ‘세이클럽’ 같은 채팅 커뮤니티 쪽에 더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필 온라인>은 다양한 데이트 콘텐츠를 마련하고 있으며, 이들이 제법 흥미롭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온라인 게임’으로서의 즐길거리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미리 준비된 데이트 시나리오에 따라 남자는 남자 캐릭터를, 여자는 여자 캐릭터의 역할을 수행하는 ‘에피소드 데이트’. 다른 의미로는 역할수행게임(RPG)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필 온라인>에 준비된 데이트는 크게 ‘에피소드 데이트’(정해진 시나리오를 플레이), ‘퀴즈 데이트’(퀴즈대회 형식), ‘심리 데이트’(제시되는 문제를 풀면서 서로의 심리 파악), ‘토크 데이트’(정해진 주제에 따라 자유롭게 대화)의 네 가지가 있다.
사실상 메인이라고 할 수 있고, 프리 오픈을 기준으로 약 10가지 시나리오를 선보인 ‘에피소드 데이트’는 제법 다양한 종류와 단단한 구성의 상황설정을 만들어 놓아 유저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남/녀 데이트’라는 상황 설정 자체에 알레르기가 있다고 해도 이 악물고 하면 그래도 어느 정도 즐길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할까.
에피소드 데이트 외의 퀴즈 데이트나 심리 데이트 역시 전반적인 구성은 튼실하고, 하나하나가 할 만한 미니게임 수준은 보장된다.
흡사 탐정 추리극 같은 긴장을 주는 시나리오부터 머리를 써야 하는 시나리오까지. 흥미로운 것들이 준비되어 있다.
온라인 퀴즈 게임을 연상하게 만드는 퀴즈 데이트.
눈에 거슬리는 요소들 |
전반적으로 <필 온라인>은 ‘온라인 연애 게임’이나, ‘만남주선 커뮤니티’ 어느 쪽으로 보아도 괜찮은 구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신경 쓰이는 부분 역시 제법 많다.
일단 이런 종류의 커뮤니티가 나오면 늘 문제가 되는 소위 ‘사회적인 부작용’은 논외로 치더라도, 순수하게 ‘게임’으로만 봐도 아쉽고 애매한 부분이 있다.
제법 많은 데이트 콘텐츠를 제공하지만 그렇게 많은 볼륨은 아니다.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콘텐츠의 공급 문제. 다양한 데이트를 준비한다고는 하지만 현재 <필 온라인>의 데이트 콘텐츠는 마음 먹고 즐기면 하루 이틀에 동나는 분량이다.
‘에피소드 데이트’의 경우 분기점을 둬서 매번 플레이할 때마다 조금씩 다른 진행을 보인다고는 하지만, 그 볼륨이나 분기의 양 등이 그렇게 많지 않고 “너무나도 뻔하다”는 문제가 있다. 두 번 이상 플레이할 의미를 찾기 힘들다고 할까?
특히 이 문제는 향후 게임이 오픈 베타테스트를 시작하고 유저들 사이에서 공략 정보가 활발하게 공유되기 시작하면 금새 한계를 드러낼 수 있기 때문에 개발사의 대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뭐 어찌 보면 당연한 거지만, 이 게임도 여자는 귀하다. (-_-)
그리고 이런 종류의 게임에서 늘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인 ‘남녀 성비’의 불균형 문제에 대해서 어떠한 대책도 내세우지 못 한다는 점이나, 소위 ‘사회적 부작용’에 대한 안전장치로 ‘차단’과 ‘신고’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도 아쉬웠다.
더불어 데이트나 이벤트에 나오는 지문(텍스트)이 심각할 정도로 과도한 이모티콘과 은어로 구성되어 있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손발이 오그라드는 지문은… 동인 게임에서도 본 기억이 없다.
프리 오픈 베타테스트 기준으로 남녀 성비는 약 3:1. 하지만 실제 여성이 얼마나 되는지는 증명할 방법이 없다. 더불어 이번 테스트 기간을 기준으로 전반적으로 보면 10대 초반~후반 유저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보수적으로 봤을 때 ‘12세 이용가’답지 않은 과도한 대화나 이벤트 수위도 살짝 거슬리는 요소. ‘변태성 테스트’ 라니… 게다가 수위는 친밀도가 높아질수록 계속해서 높아진다.
결론적으로 <필 온라인>은 ‘온라인 연애 게임 겸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아무리 그래도 체질적으로 온라인에서 얼굴도 모르는 다른 유저들과 연애놀이를 하는 데 거부감이 있는 사람, 더불어 ‘넷카마’(주1)에 대한 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이 게임을 할 시간에 실제 연애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으로 보인다.
(주1) ‘네트워크’와 ‘여장남자’의 뜻을 가진 일본어 ‘오카마’의 합성어. 한마디로 인터넷에서 여자인척 하지만 실제로는 남자인 유저들을 일컫는 말.
마지막으로 이 체험기는 “<아이돌 마스터> 같은 게임이다”라며 필자를 낚아 기어이 글을 쓰게 만든 디스이즈게임의 깨쓰통 기자에게 바치는 바다. 오래 살아라. 이 문장 편집하기만 해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