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중순 시작된 <스타크래프트 2: 자유의 날개>의 베타테스트가 약 4개월 동안의 대장정을 마치고 지난 6월 7일 끝났습니다. 멀티플레이에 한정된 베타테스트임에도 불구하고 <스타크래프트 2>는 15번의 패치와 신규 시스템 도입 등 다양한 변화를 겪으며 보다 멋진 모습으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과연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RTS) 게임 <스타크래프트 2>는 전작에 비해서는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또 숱한 논란을 낳았던 현지화와 한층 진화된 배틀넷은 어떤 모습을 보여줬는지, <스타크래프트 2>의 베타테스트와 관련된 모든 내용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디스이즈게임 필진 나리나리
<스타크래프트 2>는 베타테스트 시작 전부터 음성은 물론 유닛과 건물의 이름까지 모두 번역한 완전 한글화를 추구해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충실한 현지화가 마음에 든다는 유저들이 있는가 하면, 건물과 유닛의 이름이 빠르게 와 닿아야 하는 RTS 게임에서 무리한 한글 번역은 게임의 재미를 반감시킬 거라는 의견도 있었죠.
4개월의 테스트를 거친 후, 지금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의 선례처럼 <스타크래프트 2>의 현지화는 뛰어났습니다.
<스타크래프트 2>는 지금까지 현지화 과정을 거친 그 어떤 해외 게임보다도 뛰어난 현지화 수준을 보여줬습니다. 유닛의 입모양까지 한국어 더빙과 맞추는 정성을 보여줬고, 녹음 수준은 북미 버전의 원음과 비교해 봐도 전혀 어색하거나 뒤떨어지지 않았죠.
<스타크래프트 2> 전투보고서를 시작으로, ‘스타2게더’, ‘베타 커뮤니티 토너먼트’, ‘스타2 인비테이셔널’ 등의 방송이 이어지면서 무리한 한글화가 게임의 흐름을 어색하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도 자연스럽게 사라졌죠. 이제는 오히려 “영어 명칭이 어색해졌다”는 반응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스타2게더에서 진행하는 해설에도 거의 거부감이 들지 않습니다.
적극적인 현지화와 유닛명, 건물명 완역은 방송 해설에 지장을 주지 않았고, 오히려 영어 원음보다 유닛의 이미지를 더욱 잘 살려 주는 번역도 많았습니다. 실제로 한글화에 가장 민감할 곰TV의 이현주 캐스터까지 사흘 만에 적응이 됐다는 답변을 남겼을 정도입니다. 공식 토론장에서도 완전 한글화에 대한 불만이 어느새 쏙 들어갔죠.
물론 현지화에도 아쉬운 점은 남아 있습니다. 무법차에서 이름을 바꾼 화염차나 공생충을 발사하는 대형괴수라는 이미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무리군주 등은 아직까지도 유저들 사이에서 어색하다거나 직관적이지 않은 번역이라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현지화 게시판을 통한 유저들과의 소통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고유명사를 사용하거나 한글이 지나치게 어울리지 않는 유닛들은 원래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 조작의 편의성을 대폭 강화
<스타크래프트 2>가 전작과 비교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 중에 하나는 조작의 편의성입니다. 조금 단호하게 말하자면 <스타크래프트 2>의 조작법과 인터페이스는 4개월 동안 베타테스트에 참가해 오면서 한 번도 불편함을 느낀 적이 없을 정도로 탁월했습니다.
전작 <스타크래프트>는 한번에 12기까지의 유닛만 선택할 수 있고, 그룹 선택 시 모든 유닛이 스킬을 중복해서 사용하는 등 조작의 한계가 있었습니다. 키보드 오른쪽에 위치한 단축키 덕분에 손을 이리 저리 움직여야 하는 경우도 많았죠.
물론, 이런 단점도 프로게이머들과 유저들의 실력 발전에 의해 자연스레 극복되었습니다만, 게임을 처음 접하는 초보자들에게는 분명 불편했던 부분들입니다.
속편 <스타크래프트 2>에서는 이 모든 문제점이 개선됐습니다. 한 번에 콘트롤 할 수 있는 유닛이 255기로 늘어났고, 유닛의 통제 우선 순위를 둠으로써 복수의 유닛을 한 번에 선택했을 때에도 보다 쉽게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탭(Tab) 키를 활용해 선택한 유닛을 종류별로 골라 낼 수도 있죠. 블리자드의 또 다른 RTS 게임인 <워크래프트 3>에서 호평 받았던 인터페이스를 <스타크래프트 2>에서도 적극 활용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 통제 우선 순위: 중요한 마법이나 스킬을 가진 유닛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게 해 주는 기능. 예를 들어 광전사와 고위기사를 동시에 선택했을 때 스킬을 가진 고위기사의 콘트롤 패널이 먼저 인터페이스에 뜨는 식이다.
종류가 같은 유닛끼리 묶이고 종류별로 선택할 수도 있어서 매우 편합니다.
개별 콘트롤도 개선됐습니다. <스타크래프트 2>에서는 더 이상 부화장의 애벌레가 한 번에 같은 유닛으로 생성되거나 복수의 고위기사가 한꺼번에 사이오닉 폭풍을 사용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복수 유닛을 선택하더라도 상황에 맞춰, 알아서 한 기의 유닛만 움직이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개별 콘트롤이 가능한 고위기사의 위력을 낮추는 등, 조작이 편하다 보니 생기는 밸런스문제에도 많은 신경을 썼고, 조작 편의성을 위해 모든 단축키를 키보드의 왼쪽에 배치했습니다. 베타테스트 버전이었지만, 지금도 편의성에서는 만점을 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 유저가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전략성
유저들이 만들어 가는 ‘전략성’도 여전합니다. 독특한 능력을 가진 신규 유닛들이 추가되고, 상성을 통해 적의 작전을 미리 예측하면 이길 수 있는 ‘물고 물리는 전략’이 가능해지면서 전략의 폭이 한층 늘어났죠.
대표적인 예가 ‘공허 포격기의 활용’입니다. 공허 포격기는 목표물을 타격할수록 강해지는 프로토스 새로운 공중 유닛입니다. 그런데 한 유저가 이런 공허 포격기의 특징을 이용, 적 기지 근처에 수정탑을 건설한 다음 아군의 수정탑을 공격해 대미지를 축적하고 추가된 대미지를 적에게 뿜어 내는 전략을 사용했죠. 아마 블리자드도 생각하지 못 한 방법이었을 겁니다.
여기에 공허 포격기를 막기 위한 테란의 1병영, 1군수공장, 1우주공항 빌드오더가 생겨나고, 그것을 상쇄시키는 전략이 또 개발되면서 <스타크래프트 2>는 베타테스트 기간에도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전략들이 쏟아졌습니다. 무엇보다 전략성이 가장 중요한 RTS 게임에서 이처럼 독특한 활용이 가능한 유닛들은 게임의 전략성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죠.
또한 <스타크래프트 2>는 유닛마다 1~2개 정도의 특성만 부여해 게임이 지나치게 복잡해지는 것도 막고 있습니다. 2~3일만 연습해도 모든 유닛의 모든 능력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마치 가위바위보처럼 자연스럽게 상황에 맞는 전략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 유저들을 자연스럽게 이끄는 블리자드의 ‘적절한 패치’
유저들로부터 버림 받는 유닛을 없애려는 블리자드의 적절한 패치 방식도 다채로운 전략을 만드는 데 한몫합니다.
블리자드는 베타테스트 기간 동안 13번의 밸런스 패치를 진행하면서 유닛의 위력을 직접적으로 향상시킨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대신 유닛의 특징을 강화하면서 자연스레 유저들이 유닛의 사용법을 익히게 만들었죠. RTS 게임에서 이러한 패치 방식은 매우 바람직합니다. 유저가 유닛의 활용법 자체를 발굴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베타테스트 초기에는 ‘잉여차’, ‘준법차’ 등의 악질적인 별명을 모두 얻은 테란의 화염차는 활용법이 애매하고 위력도 낮은 탓에 거의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테스트가 진행되면서 지옥불 조기점화기를 통한 위력 업그레이드가 예상 외로 강력하다는 것을 알게 된 유저들이 화염차의 활용을 꾀하는 순간, 블리자드는 화염차의 사정거리를 1 늘리는 패치를 진행했습니다. 덕분에 화염차는 테란의 필수 생산 유닛으로 자리잡았죠.
공성전차 또한 공격 방식의 변화만으로 새로운 활용법이 생겨났습니다.
강력한 유닛의 하향도 마찬가지입니다. 베타테스트 초반에 저그의 바퀴가 지나친 강세를 보이자 블리자드는 바퀴의 회복력을 줄이고 인구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사용량을 조절했습니다.
대신 잠복 이동 업그레이드와 기존 회복력 업그레이드를 통합, 유닛 자체를 강화했죠. 능력치를 올리는 대신 활용을 줄이는 방식이랄까요? 덕분에 지금의 바퀴는 ‘오직 바퀴만 뽑으면 끝나던 유닛’에서 전략에 따라 소규모로 운영하는 유닛으로 바뀌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스타크래프트 2>의 모든 전략은 블리자드가 아닌, 유저들의 손에 의해 발전하고 있습니다. 단지 블리자드는 거기에 ‘약간의 자극’을 전해줄 뿐이죠. 이러한 전략이야 말로 블리자드가 의도한 RTS 게임의 최고 시나리오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유저들이 스스로 매일 같이 전략을 만들어 낸다.’ RTS 개발사에게 이 이상의 시나리오는 없을 겁니다.
■ 간편하고 훌륭한 인터페이스, 배틀넷 2.0
<스타크래프트 2>에서는 본 게임만큼이나 배틀넷 2.0도 강조됐습니다. 블리자드가 야심 차게 선보인 배틀넷 2.0은 몇 번의 클릭만으로도 친구와 간편하게 대화할 수 있고, 등록된 친구의 현황, 게임의 접속 유무 등을 수시로 알려 주는 등 마치 메신저를 켜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캐릭터의 프로필을 관리한다거나 래더 점수, 랭킹, 새로운 소식 확인 등의 기본기능도 충실하죠. 배틀넷과 함께 선보인 업적 시스템도 깔끔하게 적용돼 있습니다. 다양한 조건을 만족시키면 그 자리에서 업적을 달성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초상화나 데칼을 보상으로 얻을 수 있죠.
단순한 승리 횟수부터 친구와 같이 게임 하기, 특정 종족으로 싸우기 등 업적의 조건도 다양하기 때문에 <스타크래프트 2>의 즐길거리를 늘려주는 또 하나의 요소로 자리잡을 듯합니다.
■ 옵저버와 리플레이, 중계를 위한 준비
경기 중계를 위해 사용되는 옵저버와 리플레이 기능도 좋아졌습니다.
전작의 옵저버는 말 그대로 경기 상황의 관전만 가능했고, 리플레이는 재생 속도를 조절하는 기능에 그쳤죠. 반면 <스타크래프트 2>에서는 옵저버와 리플레이를 통해 게임 전체를 손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옵저버 기능을 활용하면 각 플레이어의 유닛 생산과 건물 건설은 물론이고, 현재 존재하는 유닛, 자원 수입량, 분당 행동 수 등 그야말로 게임을 즐기고 있는 플레이어의 ‘모든 행동’이 실시간 수치로 표시됩니다.
또한 플레이어가 내린 이동 명령이나 공격 명령 등이 옵저버에게도 보이기 때문에 각 플레이어의 유닛 콘트롤 동선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죠.
리플레이에서는 해당 플레이어의 게임 진행 자체를 그대로 체험해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게임에서의 채팅까지 그대로 표시됩니다. 사소한 점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쓴 것이 눈에 띄죠. 이처럼 뛰어난 옵저버와 리플레이 기능은 e스포츠 중계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합니다.
유닛 현황, 자원상황, 현재 콘트롤 지점 등을 즉석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정통 RTS ‘왕의 귀환’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 2>를 공개하면서 RTS의 새로운 역사를 쓰겠다고 호언했습니다.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을 보여주듯 <스타크래프트 2>는 베타테스트 기간 동안 다수의 콘텐츠 추가와 지속적이고 꾸준한 패치, 뛰어난 게임 완성도 등을 보여주며 호평을 받았습니다. 아직 베타테스트 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개인적으로 <스타크래프트 2>의 베타테스트를 네 달 동안 꾸준히 즐기면서 특별한 단점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전작을 즐겨 본 유저든, 아닌 유저든 그만큼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게임이죠.
여기에 베타테스트 후반에 추가된 압도적인 스케일의 지도 제작기와 정식 발매로 공개될 싱글 플레이 캠페인까지 더해진다면 <스타크래프트 2>는 ‘왕의 귀환’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게임성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