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영국에서 <페이블>과 <블랙앤화이트> 시리즈 등을 만들어 온 세 명의 젊은이가 의기투합했습니다. 매튜 위긴스, 마크 로즈, 알 하딩은 회사를 나와 원더랜드(Wonderland) 소프트웨어를 설립했고, 그들의 이상이 담긴 첫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이야기를 돌려서, 아이폰 유저치고 <위 룰>(We Rule)이라는 게임 이름을 안 들어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엔지모코(ngmoco)에서 출시한 <위 룰>은 실시간으로 자신의 땅을 가꾸는 웹게임 방식의 성장 시스템과 휴대폰이라는 ‘언제나 들고 다니는 도구’를 결합시킴으로써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죠.
그 엔지모코에서 원더랜드의 세 젊은이가 만든 아이폰·아이팟터치용 신작 <갓핑거>(Godfinger)를 출시했습니다. 개발사는 다르지만, <위 룰>의 차기작(?) 같은 느낌이랄까요. <갓핑거>는 <위 룰>의 단점이던 부족한 조작감과 느린 진행 속도를 해소했습니다. 무대를 ‘행성’으로 옮기면서 게임의 스케일도 한층 커졌죠.
다만, 새로운 조작 방식과 진행 속도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정작 게임의 목적성이 흐려져 버렸습니다. 콘텐츠의 양도 너무 적어서 아쉽더군요. 그래도 <블랙앤화이트>를 만들었던 개발진의 새로운 갓(God) 게임은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 아이폰에서 만나는 갓(GOD) 게임
<갓핑거>의 목적은 자신의 행성을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게임 속에서 모든 플레이어는 자신의 행성을 갖습니다. 행성에는 주민인 팔로우(Follow)들이 살고 있죠. 플레이어는 이들을 이끌며 자신의 행성을 보다 ‘크고 아름답게’ 가꿔 나가야 합니다.
게임의 진행 방식은 매우 간단합니다. 생산 건물을 지은 후 팔로우(주민)를 모아 일을 시키고 건물에 필요한 기적을 내려 줍니다. 농장에는 비를 내리고, 곳간에는 햇빛을 쪼여 줍니다. 건물마다 지정된 작업 시간이 끝나면 ‘골드’가 들어오고, 팔로우는 일을 멈춥니다.
플레이어는 다시 기적을 일으켜 건물에 비와 햇빛을 충전(?)해 주고 그 동안 모은 골드로 새 건물을 구입합니다. 건물이 늘어날수록 행성에 사는 팔로우의 숫자도 늘어나죠. 일을 하다 지친 팔로우가 있다면 휴식 건물을 이용하거나 강가에서 낚시를 시켜서 체력을 회복해 주면 됩니다.
머리 위에 팔로우가 필요로 하는 기적을 내려 주면 됩니다. 참 쉽죠?
■ ‘실제 생활’에 맞춰서 즐기는 게임
<갓핑거>에서 플레이어가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 팔로우에게 명령을 내리고, ▲ 건물이나 조형물을 설치하고, ▲ 비나 번개 같은 기적을 부릴 수 있죠. 물론 모든 능력에는 제약이 있습니다. 팔로우는 하루 정도 일하면 체력이 바닥나고, 건물 설치에는 골드가 듭니다. 기적을 내리려면 마나(Mana)가 필요하죠.
여기서 효율과 전략이 생겨 납니다. 예를 들어 2분에 10골드를 버는 농장과 4시간에 300골드를 버는 대장간이 있습니다. 간단히 생각하면 농장의 효율이 3배 이상 좋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황에 따라 효율이 다릅니다. 기적에 필요한 마나와 조작의 편의성 때문입니다.
건물을 한 번 가동시키기 위해서는 비나 햇빛 등의 기적이 필요합니다. 농장은 2분에 한 번씩 기적을 필요로 하죠. 반면 대장간은 한 번의 기적으로 3시간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만큼 마나를 아낄 수 있고 손도 덜 갑니다.
마나가 여유롭고, 집에서 집중적으로 게임을 즐길 때는 농장을 여럿 돌리는 게 좋겠지만 다수의 건물을 한꺼번에 운영하거나, 회사 업무 혹은 데이트 중(…)처럼 계속해서 조작해 줄 수 없는 때라면 오히려 대장간이 효율적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건물을 선택할 것인지는 당신의 자유입니다.
게다가 <갓핑거>의 세계는 플레이어가 게임을 끈 상태에서도 쉬지 않고 움직입니다. 잠자기 전에 농장과 대장간 중 어느 쪽을 켜 두는 것이 유리한 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죠.
간단한 이해를 위해 2개의 건물만 소개했지만 <갓핑거>에는 작업 시간과 효율, 필요한 팔로우 숫자가 각기 다른 10여 개의 작업 건물이 있습니다. 팔로우의 체력을 채우기 위한 휴식 건물도 15개가 있죠. 제한 시간이 있거나, 기적이 필요한 대신 빠르게 체력을 회복시켜 주거나, 조건이 없는 대신 회복이 느린 식입니다.
덕분에 <갓핑거>에서 플레이어는 다양한 건물 중 자신의 일정에 맞는 건물을 골라 지으며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게임 스케줄을 짜게 됩니다. ‘당분간 회사 일이 바쁠 것 같으니 최대한 작업시간이 긴 건물을 짓자’라거나 ‘한가한 점심시간에 짧고 굵게 돈을 벌 농장을 만들자’처럼 말이죠.
특히 언제나 소지하고 다니는 아이폰에서 <갓핑거>의 이런 장점은 배가 됩니다.
매일 지하철에서 50분 정도를 보내는 저에게 잘 맞는 건물입니다. 전철에 탈 때 한 번, 내리기 전에 한 번 체크해 주면 되죠.
■ 게임의 맛을 살리는 손끝 조작
<갓핑거>의 모든 조작은 플레이어의 손끝(터치)으로 이뤄집니다. 말 그대로 ‘손끝에서 시작되는 기적’인 셈이죠. 게임의 이름이 괜히 갓’핑거’가 아닙니다.
구름을 꾹 누르고 있으면 비를 내릴 수 있고, 땅을 꾹 누르고 있으면 지형을 바꿀 수 있죠. 건물 옮기기나 팔로우 끌어다 놓기도 모두 손가락 하나로 가능합니다. 방법도 매우 직관적입니다. 구름을 짧게 누르면 비가 오지만 오래 누르고 있으면 홍수가 쏟아지는 식이죠. 플레이어는 별도의 노력 없이도 자신의 별을 쉽게 가꿔 나갈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직접 조작하다 보니 약간의 액션도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팔로우를 끌어다가 빠르게 던지면 별 반대편으로 날아가는 팔로우를 볼 수 있죠.
비나 햇빛 등의 기적도 ‘건물 하나를 활성화하고 약간 남을 정도’로 주어지기 때문에 손을 빨리 움직이면 3개의 기적으로 4개의 건물을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일종의 컨트롤을 통한 잔재미랄까요. ‘일을 시키고 바라만 보면 되는’ 지루하기 쉬운 게임 구조도 덕분에 살짝 덜 지루해집니다.
하늘에 떠 있는 팔로우가 지금 손가락으로 옮기는 중인 팔로우입니다. <갓핑거>에서는 플레이어가 모든 것을 직접 조작해 줘야 합니다.
다만 기적의 제한적인 활용은 조금 아쉽습니다. <갓핑거>에서 플레이어의 능력은 정말 다양합니다. 레벨이 오르면서 비와 햇빛 외에도 홍수나 벼락, 화염폭풍, 번개폭풍 등을 사용할 수 있죠. 지면도 점점 다양한 방식으로 주무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기적들 중에서 제대로 사용되는 것은 작업 건물을 위한 비와 햇빛 정도입니다. 나머지는 맨 처음 기적을 익혔을 때 ‘퀘스트’를 위해 한 번 사용해 보는 것이 전부죠.
이왕이면 말 안 듣는 팔로우에게 벼락으로 천벌을 내리고, 꾸준히 자라나는 담쟁이를 불로 태우거나, 무너진 협곡을 메우는 등 조금 더 적극적인 플레이가 가능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 간단한 소셜 네트워크와 새로운 방식의 광고
이 게임 안에서는 유저 간의 네트워크도 활발합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활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갓핑거>는 인챈트를 통해 소셜 네트워크 활동을 유도하거든요.
<갓핑거>는 친구의 별에 들러서 거기에 있는 팔로우 중 하나를 ‘선택’해 줄 수 있습니다. 신의 손가락에 선택된 팔로우는 인챈트 버프를 받고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인챈트를 한 유저와 인챈트를 받은 유저 모두에게 50~100골드를 제공하죠.
재미난 점은 플레이어마다 오직 한 명의 팔로우에게만 인챈트를 걸어 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양쪽 플레이어가 모두 인챈트 승낙을 해야 하죠. 결국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비슷한 시간대에 인챈트 허락을 꼬박꼬박 해 주는 유저를 찾아 암묵적인 1:1 인챈트 동맹(?)을 맺게 됩니다.
새로운 방식의 광고도 인상적입니다. <갓핑거>에는 매 시간마다 골드와 마나를 주는 광고용 행성이 있는데요, 이곳에 들러서 광고를 보면 곧바로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수익수단이죠.
■ 아직은 부족한 콘텐츠가 아쉬워
문제는 부족한 콘텐츠입니다. <갓핑거>는 약 일주일만 투자하면 끝을 볼 수 있을 만큼 간단합니다. 그나마 팔로우가 자동으로 일을 하는 시간을 빼면 플레이어가 직접 게임을 즐기는 시간은 더 줄어듭니다. 제 경우 일주일 동안 실제 플레이 시간은 세 시간이 안 걸렸을 정도입니다.
건물의 기본 성능도 돈을 벌고, 마나를 채우고, 체력을 회복하는 세 종류로만 나뉘기 때문에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에 맞춘 건물을 모두 세운 20~30레벨 이후에는 골드와 경험치에도 무감각해집니다. 자연히 게임에도 흥미를 잃을 수밖에 없죠. 개발진이 꾸준한 업데이트로 건물과 퀘스트를 추가해 주고 있지만, 기본 방식은 비슷하다 보니 크게 와 닿지 않습니다.
행성을 꾸미는 맛도 아직 부족합니다. 다양한 장식물이 있지만 퀘스트를 제외하면 굳이 설치할 의미가 없죠. 끝을 워낙 빨리 볼 수 있는 탓에 기껏 친해진 친구도 어느새 접속이 뜸해지는 쓸쓸한 상황을 자주 겪게 됩니다. SNS 게임으로는 치명적인 단점이죠.
만약 ‘오랫동안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게임’을 원한다면 <갓핑거>가 아닌 <위 룰>이나 <팜빌> 등의 다른 게임을 추천합니다.
다만, 건물을 하나 세우고 적게는 몇 시간에서 많게는 며칠까지 기다려야 했던 기존의 웹게임과 SNS 게임에 질린 유저라면 <갓핑거>를 적극 추천합니다. 빠르게 성장하는 자신의 별과 기적을 통한 새로운 시스템을 접하면서 초반 며칠 동안 아이폰을 손에서 놓지 못 하는 극심한 중독성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새로운 도전은 좋았지만 마무리가 아쉬웠던 <갓핑거>. 하지만 ‘가격 대비 성능’이 월등히 뛰어난 무료 게임이라는 점에서 +1점을 더하면서 이만 리뷰를 마칩니다. 앞으로 업데이트를 통해 더욱 완성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