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 기자발표회에서 공개된 <베르카닉스> 첫 모습은 ‘혁신’이었다. 별도의 인터페이스창 없이 캐릭터 정보를 확인하고 버튼 하나로 다양한 스킬을 순차적으로 사용한다. 언리얼 엔진 3를 이용한 그래픽과 물리효과, 역동적인 전투는 기본. 유저들조차 ‘이게 구현이 가능하냐?’는 물음을 던질 정도였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이미 공개한 내용 중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생겼고, 포커스 그룹테스트 결과도 기대치를 채워 주지는 못했다. 결국 초이락게임즈는 1년 정도 테스트를 늦추며 <베르카닉스>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매진했다. 이른바 ‘대기만성’을 위해서다.
그 결과는 이번 1차 클로즈 베타테스트로 드러났다. 유저들 앞에 첫선을 보인 <베르카닉스>는 MMORPG의 기본인 전투의 재미를 강조하면서도 염색체 지도와 스킬의 아이템화 등 나름대로의 특징들을 충분히 보여줬다. 기자발표회의 첫인상에 비해 훨씬 담백하지만 현실적인 재미를 좇은, ‘고민의 흔적이 묻어난 모습’이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MMORPG에서 SF(공상과학)는 비주류 장르다(적어도 국내에서는). ‘캐릭터성이 부족하다’, ‘친숙하지 않다’, ‘너무 딱딱해서 정을 붙이기 어렵다’ 등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도 제각각이다. 그래서 <베르카닉스>는 순수 SF가 아닌, SFantasy라는 조금은 말장난 같은 세계관을 내세웠다.
<베르카닉스>의 무대가 되는 행성 루이엔은 웅장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며 물고기를 닮은 몬스터나 화려한 마법, 주술 등 기존의 MMORPG와 크게 다르지 않은 소재들이 등장한다. 겉으로만 봐서는 특별히 SF라는 느낌을 받기 어려운 수준이다.
겉만 봐서는 그냥 판타지와 다를 바가 없다.
반면 플레이어의 장비와 각종 인터페이스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모습을 갖추고 있다. 퀘스트는 PDA로 그 자리에서 바로 받거나 완료할 수 있고, 몸의 일부를 기계로 변형한 몬스터나 마법을 쓰려고 사용하는 증폭기 등 자세히 보면 판타지 속에 SF 설정을 추가한 소재들도 많다.
간단히 말해 판타지라는 배경 속에 <베르카닉스>가 내세우고 싶은 SF 콘텐츠를 섞은 셈이다. ‘미지의 행성에 도착한 미래의 인류’를 다룬 <베르카닉스>의 배경스토리도 두 가지 장르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돕는다.
기본적인 시스템도 비슷하기 때문에 <베르카닉스>는 기존의 판타지 MMORPG만 즐기던 유저도 ‘큰 위화감 없이’ 적응할 수 있다. 반대로 처음부터 뭔가 확실히 다른 SF 세계관을 바라는 유저라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무난하지만 식상하지는 않은 수준’ 정도다.
■ 거리에 따라 자동으로 달라지는 호쾌한 전투
<베르카닉스>의 모든 캐릭터는 거리에 따라 무기를 자동으로 교체하며 싸운다. 플레이어는 양손무기, 한손무기+방패, 지팡이의 3가지 근거리 무기와 양손총기, 한손총기, 증폭기의 3가지 원거리 무기 중 각각 하나씩 장비할 수 있다.
원거리·근거리 무기는 적과의 거리에 따라 자동으로 바뀌며, 무기에 따라 화면 아래의 스킬창도 달라진다. 전투 중에 스킬창이 자동으로 바뀌는 만큼 처음에는 적응하기 조금 어렵지만 일단 적응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근거리와 원거리를 오가며 전투를 벌일 수 있다.
거리에 따라 무기를 ‘알아서’ 바꿔 든다. 익숙해지면 편하다.
스킬 사용에 필요한 ‘영마력’이 여유롭기 때문에 전투는 철저히 스킬 위주로 진행된다. 일단 전투를 시작하고 나면 일반공격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스킬 중에는 일정한 확률로 연속기가 이어지는 것도 있어서 ‘계속해서 스킬과 연속기가 터지는’ 호쾌한 전투가 펼쳐진다.
대검으로 높이 뛰어 적을 내려찍거나 양손에 든 총으로 적을 난사하는 등 스킬 모션도 화끈하며 적을 넘어뜨리거나 공중으로 띄운 다음에만 쓸 수 있는 스킬과 연속기도 있다. 장비에 특별한 착용 제한이 없기 때문에 언제든 입맛에 맞게 무기를 바꿔 가며 싸울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 직관적인 성장을 돕는 염색체 지도
<베르카닉스>에서는 염색체 지도와 캐릭터 성향 시스템을 이용해 유저가 스스로 직업을 만들어 나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캐릭터 성향은 플레이어가 가장 자주 사용한 무기를 보여주는 시스템이다. 플레이어가 전투할 때마다 사용하는 무기 조합에 따라 성향 수치가 올라가고, 그중에서 가장 높은 성향이 캐릭터의 대표성향이 된다.
캐릭터 성향은 플레이어가 주로 사용하는 무기에 따라 계속 달라지며, 특정 캐릭터 성향에서만 추가효과를 나타내는 스킬도 있다.
성향은 이처럼 6각형 그래프로 표시된다.
염색체 지도는 기존 게임의 ‘캐릭터 특성’을 보다 직관적으로 표현한 시스템이다. 각 염색체 지도는 수백 개의 염색체를 여러 개의 선으로 이은, 거대한 거미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중앙에는 지도의 시작점이 있으며, 플레이어는 레벨을 올릴 때마다 받는 포인트로 하나씩 염색체를 채워 나갈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시작지점 부근에 있는 염색체는 효과가 낮고, 지도 구석으로 나갈수록 더 좋은 효과를 가진 염색체를 얻을 수 있다. 같은 염색체라도 이어진 경로가 다양하기 때문에 자신의 입맛에 맞는 능력치만 얻으며 지도를 채워 나갈 수 있다.
염색체 지도의 종류도 다양하게 마련돼 있고, 최대 3개의 염색체 지도를 장착할 수 있는 만큼 이후에는 선택의 폭이 더욱 넓어질 듯하다.
염색체 지도 자체도 아이템이라는 점이 꽤 신선하다.
■ 힐러부터 전사까지, 자유자재로 변하는 직업
스킬 세팅도 자유롭다. <베르카닉스>에서는 스킬이 곧 아이템이다. 일종의 스킬스톤인 영마석을 자신의 무기나 방어구의 빈슬롯에 장착하면 해당 스킬이 바로 단축키창에 나타나는 방식이다. <베르카닉스>에는 캐릭터의 기본스킬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영마석의 종류가 곧 자신이 가진 스킬 숫자가 된다.
영마석은 퀘스트 보상, 전투 후 전리품, 상점 구입 등 다양한 경로로 입수할 수 있고, 다른 유저와 거래도 가능하다. 간단히 말해 스킬을 직접 들고 다니는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영마석 역시 레벨이나 직업 등의 착용제한이 없다.
새로운 장비를 얻으면 일단 영마석부터 갈아끼워야 한다.
장비와 스킬의 제한이 없는 만큼 플레이어는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캐릭터를 ‘완전히’ 바꿔 버릴 수도 있다. 예를 들어 100의 대미지를 주는 대검 스킬을 주로 사용하던 유저가 대미지 300의 양손총기 스킬을 얻어 무기를 바꾸거나, 파티에 힐러가 없을 때 다른 유저가 지팡이를 들고 힐러 역할을 맡는 식이다.
영마석은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장비에 끼우고 뺄 수 있으며, 확률적으로 파괴되는 일도 없다. 그만큼 상황에 맞는 자유로운 스킬 선택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반면 영마석을 끼울 수 있는 슬롯 수는 제한돼 있어 나중에는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에 맞춰 스킬 세팅을 고민하는 일도 생긴다. 캐릭터 성향이나 무기 종류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는 스킬도 있기 때문에 고민은 배가 된다.
염색체 지도나 캐릭터 성향과 함께 자신의 캐릭터를 입맛대로 꾸밀 수 있는 요소들이다.
■ 빠른 진행과 묘한 긴장감을 주는 PvP
<베르카닉스>의 진행속도는 빠르다. 새로운 지역에 도착하면 바로 PDA에서 퀘스트를 받고 완료도 PDA로 그 자리에서 끝낸다. 퀘스트 수락과 완료가 즉석에서 해결되는 만큼 동선이 꼬일 일도 없다. 퀘스트도 대부분 전투 위주라 시원시원하고, 길도 대부분 일직선이라 앞만 보고 달리는 ‘속 편한 플레이’를 즐기게 된다.
반면 조금은 밋밋한 게임진행이 될 수도 있는데, 그래서 <베르카닉스>에서 마련한 것이 PvP 활성화 장치다. PvP 활성화는 유저가 직접 선택할 수 있으며, 일단 활성화하고 나면 일정시간 동안 PvP 모드가 강제로 유지된다. PvP 모드를 활성화한 유저는 아이디가 붉게 표시되며 다른 유저에게 언제든지 공격을 받을 수 있다.
대신 PvP 모드에서는 평소의 150%에 달하는 경험치를 얻을 수 있으며, 발동이 끝나고 난 후에는 그동안의 전적에 따라 보너스 경험치도 제공된다. 일종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 셈이다.
앞서 말했듯 <베르카닉스>의 길은 일직선에 가까워서 일단 전투가 벌어지고 나면 도망갈 장소도 마땅치 않다. 게다가 PvP 모드는 발동하고 나면 무조건 10분 가량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짜릿한(?)’ 플레이를 체험할 수 있다.
대부분의 스킬(심지어 캐스팅 스킬까지)을 이동 중에도 사용할 수 있고, 적을 넘어트리거나 밀쳐내는 등 스킬의 효과도 다양해서 PvP 자체의 묘미도 쏠쏠한 편이다.
■ 무난하고 신선한 첫인상. 불친절은 아쉬워
<베르카닉스>의 첫인상은 ‘무난하면서도 신선한 게임’이다. <베르카닉스>의 콘텐츠는 기존의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새로운 지역에 가서 퀘스트를 받고 몬스터를 처치한다. 중간에 원하는 유저는 PvP를 할 수 있고, 자신만의 특성을 찍어 캐릭터를 강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스템을 찬찬히 훑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이템으로 장착되는 스킬, 거미줄 모습의 염색체 지도, 전사가 한순간에 힐러가 되는 ‘정말 자유로운’ 캐릭터 변환, 전적에 따라 보너스 경험치를 주는 PvP 모드 등 기존 콘텐츠를 ‘베르카닉스식(式)’으로 바꿔 놓았다.
판타지와 SF를 묘하게 조합한 설정이나 그래픽도 마찬가지. 덕분에 <베르카닉스>에서는 익숙한 콘텐츠를 조금은 색다른 맛으로 즐길 수 있다. 접근성과 새로움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이다.
PDA를 통해 동선을 최소화하고 자연스럽게 PvP를 유도하는 등 고민한 흔적도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아쉬운 점은 게임 전반에 걸쳐 나타난 ‘불친절함’이다. 시스템은 신선했지만 설명이 전혀 없고 그 흔한 튜토리얼도 마련되지 않은 탓에 시작지점부터 길을 헤매는 유저(테스터)가 속출했다. 심지어 PDA의 사용법을 몰라 첫 퀘스트에서 진행이 막힌 유저도 있었다.
특별한 스토리를 알려주지도 않고 일직선 방식으로 몬스터만 사냥하며 나가다 보니 정작 게임 세계관에 몰입하기 힘들었다. 퀘스트 설명도 단순하고 그나마도 목적지나 대상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헤매는 일도 있었다.
게임에 처음 접속할 때나 인스턴스 던전 진행에서 보여준 컷신을 더 자주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2차 CBT에서는 빠르고 단순한 진행도 좋지만, 최소한의 설명이나 게임 속 세계관에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은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별히 인상적인 NPC도 없다. 심지어 이름 없이 직업만 있는 NPC가 80% 이상이다.
중간 중간 멋진 컷신이 나오지만, 내용을 전달하기엔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