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헌터 포터블> 시리즈는 PSP 최고의 킬러타이틀입니다. 2006년 <몬스터헌터 포터블>이후로 4개 시리즈가 나왔고, 총 판매량도 900만 장에 육박합니다. 국내에서도 신작이 나올 때마다 처음 며칠 동안 품절사태를 겪을 정도죠.
지난 12월 9일 나온 <몬스터헌터 포터블 3rd>도 발매 첫 주에만 2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인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대부분의 콘텐츠를 새롭게 바꾸고 시스템과 난이도까지 바꾸는 등 ‘많은 고민이 묻어난 변화’를 보여줬죠.
개인적인 점수는요…… 만점입니다. <몬스터헌터 포터블 3rd>는 다른 콘솔과 PC에서는 몰라도 PSP에서 만큼은 ‘독보적인 타이틀’입니다. PSP 유저의 꿈과 희망의 게임이랄까요? /(수렵 is my life)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 <몬스터헌터 포터블 3rd>는 <몬스터헌터 3(Tri)>를 기준으로 개발됐습니다. 하지만 <몬스터헌터 3>가 국내 발매가 안 된 관계로 여기서는 <몬스터헌터 포터블> 시리즈에만 초점을 맞췄습니다.
■ 레벨은 없다! 직업도 없다! 뻥이 많은데도 사실적인 게임
리뷰에 앞서 먼저 <몬스터헌터>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일본 캡콤에서 개발한 <몬스터헌터>는 ‘수렵 액션’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내세운 게임입니다. <몬스터헌터>의 몬스터는 말 그대로 ‘괴물’입니다. 덩치는 산처럼 거대하고 입에서는 불을 토하며 꼬리에서는 독을 뿜어내죠.
체급이 워낙 다르다 보니 플레이어는 몬스터의 발 끝에만 스쳐도 이리저리 굴러다닙니다. 행여나 휘두르는 꼬리에 맞거나 이빨에 물리면 바로 치명상을 입죠. 반면 몬스터를 처치하기 위해서는 수백, 수천 번을 공격해야 합니다.
이 말도 안 되는 격차를 메우기 위해 플레이어는 몬스터를 구덩이 속에 빠트리는 구멍함정이나 일시적으로 눈을 멀게 만드는 섬광탄 등 각종 도구를 이용합니다. 공격을 위해서는 최대한 약한 ‘부위’를 찾아서 거기만 찔러야 합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온갖 도구를 활용한 1인 레이드 게임’이라고나 할까요?
몬스터를 처치하면 내장, 비늘, 꼬리, 가죽 등의 재료를 받을 수 있고 이를 이용해서 다양한 효과를 가진 장비도 만들어 냅니다. <몬스터헌터> 시리즈에는 캐릭터의 레벨이 없기 때문에 장착한 장비 = 플레이어의 능력치가 되죠. ‘더 강한 장비를 갖추고 더 강한 몬스터를 처치한다’가 게임의 기본 골격입니다.
다만 아무리 좋은 장비를 챙겨도 사람은 사람, 몬스터는 몬스터입니다. 몬스터의 패턴과 약점, 성격(!), 주요 먹이 등을 파악하고 최대한 ‘빈틈만 노린 치사한 전투’를 유도하지 않으면 정말로 하찮은 몬스터를 만나서도 생을 마감할 수 있죠.
지나가는 마을사람 A보다 약해 보이는 몬스터를 퀘스트라는 이름 아래에 몇 십 마리씩 학살하고, ‘빠른 전투, 빠른 레벨 업’을 강조하는 요즘 게임에 비하면 지나치게 현실적이죠. 이런 사실성이 <몬스터헌터> 시리즈의 최고 매력입니다.
■ 더 이상 ‘재탕’은 없다! 새로운 몬스터와 무기
이제 본격적으로 <몬스터헌터 포터블 3rd> 리뷰를 시작해 보죠.
지금까지의 <몬스터헌터> 시리즈는 사실 ‘새로운 타이틀’이라고 부르기엔 부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새로운 시스템의 추가도 거의 없이 그저 전작의 콘텐츠에 몬스터 몇 마리와 더 강한 무기 몇 가지를 덧붙이는 방식이었거든요.
심지어 일부 인터페이스만 가리고 나면 어떤 시리즈를 플레이 중인지 알아보기도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삼국무쌍과 더불어 우려먹기의 양대 산맥’이라는 영광스럽지 않은 타이틀도 갖고 있죠.
하지만 <몬스터헌터 포터블 3rd>는 많은 부분을 바꿨습니다. 이게 우려먹기가 심한 그 <몬스터헌터>가 맞나 싶을 정도로요.
그 자리를 진오우거, 아그나코톨, 기기네브라처럼 새로운 몬스터들이 채웠죠. ‘여전히 비슷한 외형을 지닌 몬스터’들이 많은 게 조금 아쉽지만 패턴은 많이 다릅니다. 전작과 비슷하게 생긴 몬스터라고 비슷하게 대하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입니다.
마을과 농장을 포함해서 맵도 모두 바뀌었습니다. 채집 포인트는 말할 것도 없죠. 슬래시액스라는 새로운 무기도 추가됐고, 기존의 무기에도 새로운 공격방식이 생겼습니다. 무기와 방어구의 생산 트리도 매우 달라졌죠.
■ 더욱 쉽고 편해진 수렵생활
수렵생활도 더욱 쉽고 편해졌습니다. 특히 ‘편의성’과 ‘접근성’에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우선 몬스터의 체력이 대폭 줄어들었습니다. 솔로 플레이를 목적으로 만든 ‘촌장 퀘스트’의 몬스터는 빠르면 5분, 오래 걸려도 20분이면 여유롭게 처치할 수 있습니다.
가장 높은 레벨인 집회소의 상위 몬스터도 일반적인 장비와 콘트롤이면 20~30분 안에 처치할 수 있습니다. 최악의 퀘스트인 3연속 토벌이나 이빌 죠 등의 숨겨진 몬스터가 난입하는 미션도 50분이면 충분합니다.
전작의 그라비모스처럼 플레이어의 손가락과 PSP의 버튼 내구도만 실컷 시험하다 결국 놓치고 마는 일은 <몬스터헌터 포터블 3rd>에서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듭니다. 후반으로 갈수록 지루한 수렵에 지친 유저라면 양손을 들고 환영할 일입니다.
손가락의 안녕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몬스터를 보내는 일은 더 이상 없습니다.
인터페이스도 편해졌습니다. 채집 장소 부근에 가면 알아서 마크를 띄워 주고, 채집도구를 찾을 것 없이 O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적당한 도구를 사용합니다. 일일이 채집장소를 확인하고 도구를 골랐던 전작과 비교되죠.
솔로 플레이에서 전투와 채집을 도와주는 아이루도 최대 25마리까지 영입할 수 있습니다. 아이루의 효율이 크게 좋아졌고, 동행할 수 있는 아이루도 최대 2마리로 늘어났기 때문에 그만큼 빠른 수렵과 채집이 가능합니다.
매번 번거롭게 재료를 챙겨야 했던 체력과 스테미너 버프도 온천과 드링크로 통일됐습니다. 온천과 드링크는 퀘스트만 클리어하면 자동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아무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죠.
덕분에 주요 토벌 퀘스트를 모두 깨는 데 60시간도 안 걸렸습니다.
전투가 끝날 때마다 다양한 재료를 얻을 수 있는 농장도 아이루를 이용한 주요시설은 입구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바뀌었습니다. 전반적으로 매우 빠르고 경쾌해진 기분입니다.
세트 아이템을 맞추기 위해 1% 확률의 희귀재료가 몇 개씩 들어가던 잔인한 방어구 생산도 대폭 완화됐습니다. 여전히 희귀재료는 있지만 필요한 양이 크게 줄어들었죠. 전체적으로 진행이 시원시원해진 느낌입니다.
■ 장점은 그대로, 더욱 흥미진진해진 전투
콘텐츠가 새롭게 달라졌지만, 재미는 그대로입니다. 몬스터와의 전투는 지나칠 정도로 사실적이고, 각종 정보를 자연스럽게 찾아 헤매게 만드는 공략의 재미도 여전합니다.
<몬스터헌터> 시리즈는 몬스터가 맞는 위치에 따라 대미지가 달라지는데요. 예를 들어 무식한 돌진과 급커브로 ‘이니셜 T’라는 별명을 가진 티거렉스의 경우 머리는 ‘베기’ 대미지에, 날개와 팔은 ‘타격’ 대미지에 약하죠.
몬스터의 반응도 확실해서 숙련자는 몬스터가 맞는 순간의 움직임만 봐도 어디가 약점인지를 즉시 알아낼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손맛도 확실합니다.
손맛은 여전합니다. 때리는 맛이 있는 게임입니다.
다만 몬스터의 행동 패턴이나 파괴할 수 있는 부분, 각종 맵의 지름길처럼 직접 실험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정보도 많기 때문에 유저들은 자연스레 정보를 공유하며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되죠. 실제로 게임에 적응하고 나면 플레이 시간과 정보를 찾는 시간이 비슷할 정도입니다.
몬스터의 움직임도 한층 자연스러워졌습니다. 몬스터의 패턴과 패턴 사이의 간격이 줄어들고 인공지능이 ‘약간은’ 좋아지면서 노골적인 빈틈이 많이 사라졌죠.
또한 몬스터에게도 일종의 스태미너가 생기면서 지친 몬스터는 제풀에 못 이겨 바닥에 쓰러지거나 부족한 체력을 보충하려고 초식동물을 사냥하러 가는 등 훨씬 ‘사실적인 행동’을 보여줍니다. 단순히 패턴에 의존한 전투보다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는 전투가 중요해졌다고나 할까요.
빈틈은 전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다음 동작을 예측하는 건 조금 까다로워졌습니다.
■ 더욱 풍부해진 커스터마이징과 무기 활용
호석의 등장으로 아이템 체계도 확 바뀌었습니다. 호석은 방어구 이외에 착용할 수 있는 일종의 액세서리입니다.
참고로 <몬스터헌터>의 스킬은 최소 10포인트를 모아야 효과가 발동되는 독특한 구조입니다. 만약 자신이 입은 방어구에 공격 11포인트와 수속성저항 9포인트가 붙어 있다면 실제로 적용되는 건 공격 10포인트뿐이죠. 10포인트를 채우지 못한 수속성저항 9포인트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10포인트를 넘어 버린 공격 1포인트도 마찬가지죠.
덕분에 <몬스터헌터>에서는 자신만의 방어구 조합(커스터마이징)이 매우 중요합니다. ‘랜덤으로 특정 스킬 포인트 5~10’이 붙은 호석이 등장하면서 커스터마이징의 폭이 늘어났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입을 수 있는 장비가 다양해졌죠.
대신 새롭게 호석 노가다가 생겨났다는 비극도 있습니다만(…).
무기마다 새롭게 생긴 공격 패턴도 재미를 더합니다. 대표적으로 대검에는 2단 모아치기와 칼날치기가, 랜스에는 카운터와 가로베기가, 궁에는 곡사가 생겼는데요, 해당 무기의 단점을 보완해 주거나 장점을 더욱 강조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대검은 2단 모아치기로 기회가 있을 때 더욱 확실한 공격(혹은 동귀어진)이 가능해졌고, 궁은 곡사 덕분에 이제 장거리에서도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죠(지금까지 몬스터헌터에서 궁은 중거리 무기였습니다). 그만큼 무기별 몬스터 공략에도 큰 변화가 생겼죠.
그동안 각 무기를 사용하는 유저가 ‘목말라하던 부분’을 잘 짚은 듯합니다.
■ 재미를 위한 장인정신이 묻어나는 게임
이 밖에도 달라진 점은 수두룩합니다. 필요한 아이템 조합이 단순해졌고, 괜히 복잡하게 꼬아 놨던 대미지나 속성공격 공식도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풀었습니다. 불속성 공격을 받으면 몸에 불이 붙고 지속적으로 대미지를 입지만 물에 빠지거나 바닥에서 구르면 불이 꺼지는 등의 재미있는 연출도 있죠.
지루하기로 악명이 높았던 거대 몬스터와의 전투도 20분 내로 승부를 보도록 짧아졌습니다. 발리스타와 대포, 징, 용격창 등의 대형무기도 꾸준히 사용할 수 있어서 ‘싸우는 맛’이 납니다. 전투 자체가 엄청 빨라졌죠.
반면, 전작까지 이어진 장점은 더욱 강조했습니다. 앞서 말한 타격감과 몬스터 공략은 물론 특정 조건을 만족해야 등장하는 몬스터나 숨겨진 호석처럼 파고들 만한 부분도 여전합니다. 지금까지는 ‘있는 줄도 몰랐던’ 스토리도 이제 ‘약간씩’ 보여줍니다. 중간에 마을사람들을 위협하는 진오우거를 물리치면 짧은 엔딩도 볼 수 있죠.
몇 안 되는 단점이라면 골수 팬들에게는 난이도가 조금 낮았다는 것과 후속작(으로 나올 게 뻔 한) <몬스터헌터 포터블 3rd G>를 염두에 둔 듯한 몬스터의 등장, Wii용 <몬스터헌터 3>를 했던 유저는 조금 식상할 수 있었다는 것 정도일까요.
시리즈의 단점과 발전 방향을 오랫동안 고민한 티가 팍팍 묻어나는 게임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바람직한 일본 개발자다운 콘솔 게임’을 본 기분이 들 정도입니다.
PSP를 갖고 있고 <몬스터헌터> 시리즈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무조건 구매를 추천합니다. 관심이 없더라도 ‘난 액션이 끔찍하게 싫다’는 유저만 아니라면 강력히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