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자(engineer) 계열 주인공을 내세워 <하프라이프>와 함께 ‘역시 엔지니어는 건드리면 안된다’는 절대불변의 진리(?)를 거듭 확인시켜준 EA의 ‘사지절단 호러액션 게임’ <데드 스페이스>.
후속작 <데드 스페이스 2>가 지난 1월 말 PS3, Xbox360, PC용으로 국내에 발매됐습니다. 2편은 전작의 주요 특징을 그대로 물려받으면서도 더욱 파워업한 ‘공포’ 그리고 게임성으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디스이즈게임 필진 nodkane
전작을 뛰어넘는 공포의 향연
플레이어가 게임에서 느낄 수 있는 공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심리적’으로 사람을 옥죄어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스타일과 혐오스러운 괴물이 나와서 주인공을 고깃덩이로 바꿔 버리는 이른바 ‘슬래시&고어’ 스타일입니다.
그리고 <데드 스페이스 2>는 게임 내내 두 가지 공포를 아주 맛깔스럽게 버무려서 선보입니다.
새롭게 추가된 네크로모프들은 외모도 심히 기분 나쁘게 생겼습니다.
중간중간 플레이어를 놀라게 하는 이벤트와 사운드가 배치돼 있는 것은 기본입니다. 특히 ‘네크로모프’(주인공인 아이작을 공격하는 인간 형태의 외계인)는 전작보다 그 숫자가 늘어났고, 더욱 다양한 패턴으로 아이작을 압박해 오기 때문에 플레이어를 계속 긴장하게 만듭니다.
게다가 네크로모프에게 당하면, 아이작은 팔과 다리가 말 그대로 ‘분리’되면서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죽습니다. 개발진이 2편을 개발하면서 독특한 취향(?)에 눈을 떴는지, 그것도 상황에 따라 정말 엽기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죽습니다.
한마디로 끔찍하고 거침없죠. 궁금한 ‘성인’ 독자 분들은 유튜브 등 영상 사이트에서 <데드 스페이스 2>로 검색해 보시면 죽는 장면만 모아 놓은 영상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게임에서 등장하는 NPC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공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사운드도 완벽에 가깝습니다. 네크로모프의 기이하고 소름 돋는 효과음, 돌아다니다 보면 쾅쾅거리는 환풍구 소리, 기분 나쁘게 끼익하는 소리, 누군가 당하면서 지르는 비명 등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이 플레이어의 신경을 자극하죠.
만약 공포를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5.1 채널 스피커나 헤드폰 이용을 추천합니다.
산소가 없는 무중력 공간에서는 소리도 흐릿하게 들립니다. 타이머만 삑삑 소리를 내는 데 그 분위기가 참 괴기합니다.
물론 <데드 스페이스 2>는 ‘액션’ 장르의 게임이기 때문에, 새로운 장비를 얻거나 장비를 업그레이드하면 네크모로프를 비롯한 적들을 비교적 쉽게 제압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공포도 희석되는 감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단계까지 이르면 공포 대신 ‘저 녀석을 어떤 방법으로 (사지절단해서) 없앨까’ 하는 ‘공격적이면서도 전략적인 액션’이 중요해집니다. 이는 희석된 공포를 메우는 데 부족함이 없기 때문에 게임의 재미 자체는 크게 바뀌지 않습니다.
무기의 업그레이드는 게임에서 극히 소량만 구할 수 있는 ‘파워노드’로 가능합니다. 무기마다 업그레이드 순서가 다르기 때문에 계획적으로 실행해야 합니다.
몰입감이 뛰어난 게임 진행
<데드 스페이스 2> 싱글플레이 캠페인의 진행은 전작과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여전히 스산한 장소에서 한정된 무기로 적들을 물리치며, 정해진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직선 루트의 진행을 보여줍니다.
대신 미션의 짜임새와 연출 등은 전작보다 한층 더 진보하였기 때문에 보다 몰입해서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상황에 따라 화면에 표시되는 버튼을 타이밍에 맞춰 눌러야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액션’의 비중이 높아지고, 전작보다 연출이 대폭 업그레이드됐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인간이 네크로모프로 변화하는 과정을 눈앞에서 볼 수도 있고, 우주선에서 강하하는 장면 등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연출이 곳곳에 배치돼 있습니다.
빠져들 만큼 멋진 연출이면서도 진행이 어렵진 않습니다.
이런 것들은 특별한 조작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방향키로 피하기, 또는 특정 키 연타 정도로 해결되기 때문에 접근성도 좋은 편입니다. 물론 실패하면 아이작은 비명과 함께 사지절단….
더불어 2편은 1편에서 맨 얼굴을 고작 2번만 보여줄 정도로 이벤트 연출에서의 비중이 낮았던 아이작이 보다 다양한 액션과 연기(?)를 보여줍니다. 그런 모습을 감상하는 것도 재미있더군요.
전작과 다르게 2편에서는 아이작의 맨 얼굴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데드 스페이스 2>는 아쉽게도 국내에서 영문판으로 출시됐습니다. 호러액션이면서 스토리와 세계관 설정도 탄탄한 게임인데 아쉬운 부분입니다.
특히 주요 NPC와 PC(아이작)의 대화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진행되고(주로 급박한 대화가 많죠), 플레이 도중 얻는 텍스트/오디오 기록을 열어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대체 왜 <데드 스페이스>의 비극이 시작됐는지, 2편에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래도 오프라인 패키지를 구입하면 한글 공략집(대사집)을 같이 줍니다. 다소 불편하긴 하지만, 상황과 대사를 이해하면서 플레이하면 확실히 더 재미있습니다. 몰입감도 더 생기고요.
광활한 데드 스페이스 월드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를 살펴보면 코믹북에서 시작해서 애니메이션, PC·콘솔 게임, 아이폰 게임이 모두 시나리오로 연결돼 있습니다. 각각 다른 이야기를 전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데드 스페이스> 세계관에 모두 연결되는 형태죠. 연계성도 탄탄해서 관련 콘텐츠를 모두 찾아본 플레이어라면 그만큼 <데드 스페이스 2>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게임을 진행하는 데 문제는 없지만, 게임을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니까 2편을 할 생각이라면 한번쯤 관심을 가져 볼 것을 추천합니다.
실제로 게임 1편과 2편을 이어주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2편의 바로 전 이야기인 아이폰용 <데드 스페이스>를 즐긴 후 2편을 시작하면, 게임 중간중간에 나오는 것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어 몰입감도 더해집니다.
2편 전의 이야기를 다룬 아이폰용 <데드 스페이스>의 스크린샷. |
두 번 이상 즐기기는 힘들다
<데드 스페이스 2>는 서둘러 진행하면 엔딩까지 6시간, 약간 느긋하게 플레이하면 8시간 정도의 플레이 타임을 보여줍니다.
보통 이런 스타일의 게임은 길을 찾는 데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지만,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을 표시해주는 가이드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길을 헤매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2편에서는 ‘게임 진행을 위한 길’과 ‘세이브 하는 곳으로 가는 길’과 ‘상점, 업그레이드 장소로 가는 길’을 구분해서 찾아주기 때문에 한층 편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시스템은 숨겨진 길이나 아이템을 찾을 수 있는 길은 알려주지 않아서 너무 의존하면 업그레이드의 필수품 ‘파워 노드’를 구하기 힘들어집니다. 가끔은 모험도 즐겨야 하죠.
버튼 하나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데드 스페이스 2>는 특별한 분기 없는 일직선 진행이고, 가이드 시스템까지 친절하게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네크로모프가 나오는 지점들도 사실상 정해져 있습니다(어느 지점에 숨겨진 트리거를 건드리면 나오는지 감이 오죠). 따라서 일단 엔딩을 보면, 그 이상 재미를 느끼기 힘듭니다.
자신이 원하는 챕터를 골라서 플레이할 수도 없기 때문에, 인상 깊었던 부분을 다시 해 보고 싶어도 처음부터 다시 즐겨야만 합니다.
2편은 실시간 로딩을 채택해 진행 중간에 특별한 로딩이 없습니다.
다만 한 번 클리어하면 전에 선택할 수 없었던 어려운 모드 ‘하드코어’ 난이도를 고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도전욕구’가 있다면 2번 이상 즐기는 게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하드코어 난이도는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3번만 세이브할 수 있고, 죽으면 오직 세이브 포인트에서만 부활할 수 있다는 제약이 걸립니다. 총알 또한 극소량만 나오기 때문에 자신 있는 용자라면 도전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하드코어 난이도에서는 총알이 귀하기 때문에 주위 사물을 던져서 공격하는 텔레키네시스 공격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콘텐츠가 빈약한 멀티플레이
싱글 캠페인은 2번 이상 즐기기 힘들지만, <데드 스페이스 2>는 전작에 없었던 ‘멀티플레이’를 제공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아쉬움을 달랠 수 있습니다.
멀티플레이에서 플레이어들은 인간과 네크로모프, 두 진영으로 나뉘어서 전쟁을 벌입니다. 인간은 마커 파괴, 오브젝트 작동 등의 미션을 수행해야 하고, 네크로모프는 그것을 저지해야만 합니다.
네크로모프는 캠페인에서 그랬던 것처럼 환기구나 벽을 뚫고 리스폰합니다.
특히 멀티플레이는 싱글에서는 조작해 볼 기회가 없는 네크로모프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꽤나 신선한 느낌을 줍니다.
네크로모프는 마치 <배틀필드> 시리즈의 클래스처럼 여러 종류가 준비돼 있습니다. 다만 강한 네크로모프일수록 리스폰 타임이 길게 잡혀 있기 때문에 만약 급한 상황이라면 빨리 리스폰되는 네크로모프를 선택해서 달려드는 식으로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멀티플레이에서는 적을 죽이거나 목표를 달성하면 일정량의 포인트를 받고, 이를 통해 레벨을 올릴 수 있습니다. 레벨업을 하면 네크로모프의 공격력이 강해지거나, 인간의 장비를 바꿀 수 있는 식의 ‘캐릭터 성장 및 커스터마이징’ 요소도 있습니다.
원하는 네크로모프를 고르고, 나올 곳을 지정하면 등장합니다.
전반적으로 보면 <데드 스페이스 2>의 멀티플레이는 기존의 싱글플레이와는 색다른 느낌을 준다는 데서 가치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걸로 끝이라는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콘텐츠가 빈약합니다. 딱 ‘팬들을 위한 서비스’ 수준의 콘텐츠 볼륨이라고 할까요? 레벨 올리기도 힘들고, 자신만의 캐릭터를 꾸민다는 커스터마이징 요소는 빈약합니다. 멀티플레이를 오랫동안 즐겨야 할 동기를 찾기 힘듭니다.
일례로 인간 진영에서 새로운 수트를 얻으려면 레벨을 4까지 올려야 합니다. 하지만 이는 처음 지급되는 수트에 색만 다를 뿐…. 게다가 다음 레벨업까지는 굉장히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공포게임의 왕좌를 다시 접수하다
멀티플레이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데드 스페이스 2>는 전작에 비해 수준 높은 연출과 적당한 플레이 시간, 몰입감을 주는 시나리오를 갖추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현존하는 게임 중 단연 최고 수준의 공포를 선사합니다.
<데드 스페이스>는 3부작으로 발매될 예정이라고 하니 자연스럽게 마지막 3편이 기다려집니다.
아이작, 다음 편에서 또 봐요~.
이후에 싱글 캠페인이나 멀티플레이에서 새로운 모드가 업데이트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패키지 게임인 만큼 10~20시간 정도 ‘아, 재미있게 즐겼다’고 깔끔하게 끝맺을 수 있는 명작입니다.
‘공포 게임이니 여름에 나왔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도 있지만, 솔직히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블록버스터 대작 게임, 또는 품격 높은 공포 게임을 즐기고 싶다면 그냥 구입하고, 아이작이 되어 플라즈마 건 방아쇠를 당기면 그걸로 ‘만사 OK’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