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의 열기가 뜨겁습니다. 오픈 베타테스트에서는 동시 접속자 20만 명을 돌파하더니 상용화 이후에도 17만 명을 기록하며 기세를 이어 가고 있습니다. <아이온> 이후 명실상부한 최고의 흥행 성적입니다.
하지만 <테라>에 대한 유저들의 평가는 극단적으로 나뉩니다. 남다른 그래픽과 ‘플레이어가 직접 때리고 피하는 프리타겟팅 전투의 재미’에는 높은 점수를 주지만, 퀘스트와 던전, 동선, 직업·종족 밸런스 등 게임 내 콘텐츠에는 냉정한 평가를 내리고 있죠.
화려하고 세련된 겉모습과 달리 게임 속 콘텐츠가 지나치게 주먹구구식이기 때문인데요, 그래픽과 독창성은 ‘최고’ 수준이었지만, 운영과 콘텐츠의 ‘최선’이 아쉬운 <테라>를 디스이즈게임에서 살펴봤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 ‘끝내주는’ 최고의 그래픽
<테라>의 그래픽은 말 그대로 ‘환상적’입니다. 다른 말로 ‘끝내주죠’. 그래픽에도 엄연히 취향이라는 게 있는 법이지만 아무리 취향이 맞지 않는 유저라도 <테라>의 그래픽에 토를 달기는 어렵습니다.
하늘을 가릴 만큼 거대한 나무들로 가득한 숲을 빠져나가면 끝없이 펼쳐진 사막과 뜨거운 태양이 유저를 반깁니다. 거칠게 몰아치는 모래폭풍과 모래 속에 몸을 감춘 거대 도마뱀 무리 뒤편에는 보기만 해도 음습한 사교도의 신전이 보입니다.
스크린샷을 찍으면 월페이퍼를 보너스로 줍니다.
폭염의 산맥에서는 당장이라도 터질듯한 화산이 끓어오르고 설원에서는 짙은 눈보라가 눈앞을 가립니다. 화면에 넘치는 웅장한 자연경관이 이어지다가도 개구쟁이 마녀들의 성이나 개구리에 목숨을 거는 후카들의 보호구역처럼 긴장감을 풀어주는 장소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나 누군가 다가오면 재빠르게 도망치는 작은 동물, 유적을 밝히는 등에 적인 상형문자 등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세심한 부분에도 많은 신경을 기울인 티가 팍팍 납니다.
종족과 몬스터, 그리고 배경의 조화도 뛰어납니다. 배경과 캐릭터는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2등신의 귀여운 동물캐릭터 포포리, 8등신의 늘씬한 미녀 하이엘프, 몬스터와 분간이 쉽지 않을 만큼 터프한 아만 등 개성이 차고 넘치는 캐릭터들도 한데 모아 놓으면 위화감이 들지 않습니다.
거대한 몬스터가 땅을 구를 때 화면이 흔들리고 바닥의 흙과 모래가 사방으로 날리는 역동적인 연출도 일품입니다. 종족마다 모션을 따로 만드는 세심한 배려도 <테라>의 액션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죠.
주의: 온라인게임 그래픽입니다.
이외에도 지역이동이 빨라서 계속 변하는 주변경치를 감상할 수 있고, 지역과 지역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등 <테라>의 그래픽은 장점만 열거해도 끝이 없을 정도입니다. <테라>에 대한 그 많은 불만 중에서도 그래픽에 대한 불만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이유입니다.
온라인게임에서 ‘콘솔게임 수준의 그래픽’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요, 특정 몇몇 게임 빼면 어지간한 콘솔보다는 <테라>의 그래픽이 훨씬 나은 수준입니다. 게임 그래픽계의 ‘프랑켄슈타인’이라고나 할까요?
인텔 i5 CPU에 램 4G, 지포스 250GT 그래픽 카드로 중간 옵션을 원활하게 즐길 수 있을 만큼 요구사양도 ‘예상보다’는 낮습니다. 중간 옵션이라고 해도 웬만한 게임의 최고급 옵션 이상의 그래픽을 보여주니까 큰 불만도 없죠.
다만 일부 지역에서 과도한 하드디스크 읽기로 캐릭터를 괴롭히거나, 캐릭터의 일부 모션이 어색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물론 이런 단점들을 다 고려해도 그냥 ‘최고의 그래픽’입니다. 더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없어요.
주의: 중간 옵션의 그래픽입니다.
■ ‘비슷한 게임’은 없다, <테라>만의 프리타겟팅 전투
<테라>의 프리타겟팅 전투도 확실히 신선합니다. ‘액션게임에서 흔히 보던 전투 방식’으로 치부해 버리는 유저도 많습니다만, 반대로 생각하면 MMORPG, 그것도 필드 방식의 심리스 MMO에서 액션게임에서나 보던 전투 방식을 채택했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시도입니다.
<테라>에서는 같은 장비로 같은 몬스터와 싸워도 유저의 콘트롤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로 달라집니다. 누구는 파티로도 처치하기 어려운 몬스터를 누구는 혼자서 1~2분 만에 끝내죠.
몬스터마다 일정한 패턴이 있어서 패턴을 모를 때는 손도 못 대던 몬스터가 패턴만 익숙해지면 거짓말처럼 약해진다는 것도 <테라>의 매력입니다. 유저 스스로가 배워 가는 전투방식이랄까요. <테라>에는 확실히 ‘유저가 익숙해지는 재미’가 있습니다.
전투도 매우 직관적입니다. W, A, S, D 키로 캐릭터를 움직이고 마우스 왼쪽 버튼으로 적을 공격합니다. 몬스터의 공격 모션을 보면서 캐릭터를 움직여 피하고 이리저리 도망치는 몬스터를 마우스로 조준해서 때립니다. 기본적으로 ‘공격 미스’가 없는 게임이기 때문에 때리면 때려지고 피하면 피해지죠.
초보자도 직관적으로 적응할 수 있습니다. 보이는 그대로 싸우면 되니까요.
일반 몬스터와의 전투가 ‘때리고 피하는’ 기본적인 조작에 치중했다면, 파티플레이는 ‘거대한 몬스터와의 박력 있는 전투’를 내세웠습니다.
유저 캐릭터의 10배는 족히 넘는 거대한 몬스터들은 화면이 떨릴 정도로 바닥을 내려치고 집채만한 무기를 휘두르거나 불덩어리를 던지죠. 한 방 한 방이 ‘스쳐도 황천길 익스프레스를 탈 수준’이기 때문에 계속 긴장해야 합니다. 전투도 짧게는 2~3분에서 길게는 10분 이상까지 이어지고 역할별 활약도 중요하죠.
대신 유저가 백날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것 같은 몬스터를 모두가 합심해서 쓰러트리는 기분은 최고입니다. 긴장감만큼 보상이 있다고나 할까요? 개인적으로 <테라> 최고의 재미라고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무서운 몬스터도 몇 번 싸우면 익숙해집니다.
■ 프리타겟팅을 받쳐 주는 적당한 보정
액션 방식의 전투를 도입햇다고 해서 <테라>가 기존의 액션게임처럼 ‘날카로운 콘트롤’을 요구하는 건 아닙니다. <테라>의 전투에는 다양한 보정이 더해졌습니다. 예를 들어 유저의 공격이 몬스터의 머리 위를 약간 지나쳐도 명중으로 취급되죠. 장거리 공격은 방향이 조금 틀어져도 알아서 적을 따라갑니다.
반대로 적의 공격은 약간 빠르거나 늦게 움직여도 피한 것으로 인정되죠. 적당히 때려도 맞고 적당히 피해도 피해지는 게임이랄까요? <테라>가 논타겟팅이 아닌 프리타겟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도 그때문입니다.
프레임 단위의 빈틈을 찾아내고 종이 한 장 차이의 회피를 원하는 유저들에게는 아쉬울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만, 장시간 전투가 이어지는 MMORPG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보정이 없었다면 최고 레벨 유저들은 전부 터널증후군을 앓고도 남았을 겁니다.
적당한 보정은 초심자의 적응도 돕습니다. 판단력만 있다면 반사신경이 ‘약간은’ 늦어도 되니까요.
대신 어디까지나 ‘보정’인 만큼 콘트롤이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매우 큽니다.
■ 약간은 독특한 성장과 캐릭터 특화
캐릭터 강화 방식도 좀 다릅니다. <테라>에서는 문장과 크리스털, 두 가지 방법으로 캐릭터를 강화할 수 있는데요, 먼저 문장은 직업별 스킬을 강화하는 역할입니다. 레벨 25부터 일정량의 문장 포인트를 받을 수 있고 여유 포인트 내에서 원하는 문장을 장착할 수 있죠. 물론 문장의 성능에 따라 필요한 포인트가 다릅니다. 변형된 특성 시스템이라고 보면 좋을 듯합니다.
크리스털은 아이템에 장착하는 일종의 보석 시스템인데요, 자유롭게 장비의 소켓에 끼우거나 뺄 수 있습니다. 주로 몬스터의 크기나 상태에 따라 대미지와 방어력을 높여주는 역할을 하죠. 중형 몬스터 상대로 대미지를 올려주거나 분노한 몬스터에게 맞을 때 보호막을 걸어주는 식입니다.
문장과 크리스털의 종류가 다양하고 독특한 효과를 가진 것들도 많기 때문에 세팅에 따라 캐릭터의 능력이 상당히 달라집니다. 문장 상인을 통해, 혹은 전투 중만 아니라면 쉽게 세팅을 바꿀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죠.
흥미로운 점은 문장과 크리스털 모두 <테라>의 프리타겟팅 방식의 전투와 긴밀하게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문장 중에는 특정 스킬을 이어서 사용하면 공격력을 올려주거나 스킬의 발동 속도를 올려주는 것들 것 많습니다.
이런 차이가 <테라>에서는 유저의 게임 플레이 패턴 자체를 바꿔 놓습니다. 0.1초의 딜레이로 공격을 피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정해지니까요.
크리스털 하나가 능력치를 좌우합니다.
■ 유저의 편의성을 생각한 인터페이스
인터페이스나 편의 시스템도 좋습니다. 주문서나 사냥터 이동관리인을 통해 맵 곳곳을 쉽게 옮겨 다닐 수 있고 파티 모집 시스템도 갖췄죠. 클릭만으로 쉽게 다른 유저를 초대하거나 파티에 지원하는 등 유저 편의를 위해 신경을 쓴 부분이 많이 보입니다.
깔끔한 인터페이스도 만족스럽습니다. 특히 <테라>의 인터페이스는 게임의 특징을 고려한 부분이 많이 보이는데요, 자질구레한 꾸밈을 없애서 인터페이스가 화면을 최대한 덜 가리게 만들었고 모든 인터페이스 창을 유저가 직접 옮겨서 다시 배치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전투 중에는 대부분의 메뉴가 사라지죠.
몬스터의 상태이상을 색깔로 표현한 부분도 인상적입니다. <테라>는 빠른 전투의 특성상 몬스터의 상태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운데요, 그래서 상태이상에 걸린 몬스터는 몸 전체의 색상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독에 걸리면 녹색으로, 스턴에 걸리면 알록달록한 흙색으로 몬스터의 피부색이 변하죠. 인터페이스 자체의 디자인도 세련됐습니다.
깔끔하고 보기에도 편합니다. 특히 상태이상 표시는 마음에 듭니다.
■ 솔로잉은 가라? 파티퀘스트 천국, 아니 지옥
자, 칭찬은 충분히 했으니 이제부터 <테라>의 단점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테라>의 도처에는 유저에 대한 배려는 우주 저편으로 날려버린 듯한 콘텐츠들이 널려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레벨업 방식입니다. <테라>는 초반부터 다량의 퀘스트를 통해 유저에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이후 교본으로 자리잡은 방식이죠.
문제는 게임 중반 이후 대부분의 퀘스트가 파티플레이에 집중돼 있다는 점입니다. 혼자서 게임을 즐기는 유저라면 레벨 20 후반부터는 게임 진행 자체가 막막해지기 십상입니다. 솔로퀘스트가 중간에 끊기기 때문이죠.
어렵사리 레벨을 올려서 새로운 지역에 가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이후에는 솔로퀘스트와 파티퀘스트의 비중이 8:2 정도로 분포돼 있거든요. 모든 솔로퀘스트를 마쳐도 레벨이 오르지 않기 때문에 유저는 결국 ‘마지못해 파티플레이를 하거나’, ‘반복퀘스트를 통해 수 백 마리의 같은 몬스터를 처치하며’ 레벨을 올려야 합니다.
나중에는 솔로퀘스트 지역만 보면 ‘심봤다~’고 외치고 싶어질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파티플레이가 매끄럽지도 않습니다. 앞서 말했듯 <테라>의 파티형 몬스터는 매우 강력한 공격력과 높은 방어력을 갖고 있습니다. 탱커, 딜러, 힐러로 구성된 ‘완벽한 파티’를 맺지 않으면 처치할 수 없는 몬스터가 대부분이죠.
결국 유저는 파티를 모으기 위해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됩니다. 레벨과 직업이 맞고 같은 파티퀘스트를 갖고 있는 유저 5명을 모아야 하니까요. 보통 최고 레벨 이후 시작되는 ‘파티 구직난’을 <테라>에서는 레벨 30부터 경험할 수 있습니다.
파티를 구하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파티퀘스트에 걸리는 시간도 상당하죠. 생각해 보세요. 1시간 동안 파티를 모았는데 퀘스트 달랑 1개 클리어하고 헤어질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유저들은 ‘파티를 모은 김에’ 해당 지역의 파티퀘스트를 몰아서 완료하게 됩니다.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합니다. 만약 파티가 중간에 깨지거나 유저 사이에 퀘스트가 엇갈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정답은 해당 지역 퀘스트를 포기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시작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레벨과 직업이 맞는데다 남은 퀘스트와 진행순서까지 맞는 유저 5명을 모으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거기에 <테라>에서는 퀘스트의 단계를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같은 퀘스트를 갖고 있더라도 어디까지 퀘스트를 진행했는지 따로 확인해 봐야 합니다.
정리해 봅시다. 유저가 원활한 플레이를 즐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적절한 레벨과 직업을 갖고, 같은 지역에서, 같은 퀘스트 진행단계를 갖고 있으며, 충분한 플레이 시간이 있는 5명의 유저입니다. 참 쉽죠?
그래서 자주 보게 되는 상황이 바로 이겁니다. 반복 퀘스트죠.
상황이 이러니 유저가 굳이 파티퀘스트를 찾아서 할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선택하는 게 특정 몬스터의 반복사냥, 또는 반복퀘스트’입니다. 파티가 됐든 솔로플레이가 됐든 솔로퀘스트를 마친 후 남은 경험치를 패턴이 단순하고 경험치가 좋은 몬스터를 반복해서 처치해 올리는 거죠.
대표적인 희생양이 레벨 30 후반부터 잡게 되는 성역의 파수꾼(통칭 쿠마스)과 마녀의 성 광대, 레벨 45 이후 만나는 거인과 아간티 전사(통칭 꽃게) 등입니다.
<테라>에서는 파티퀘스트와 반복퀘스트의 경험치 차이가 거의 없고 반복퀘스트를 최대 20회까지 몰아서 완료할 수도 있으며, 반복퀘스트를 완료할 때마다 아이템으로 교환할 수 있는 인장도 줍니다. 복잡한 퀘스트 단계를 맞출 필요도 없습니다. 처치할 몬스터가 몇 마리 남았는지, 반복퀘스트는 받아왔는지 두 가지만 확인하면 되니까요.
게다가 몬스터도 약합니다. 이거 일석 몇 조인가요?
덕분에 <테라>는 유저들 사이에서 <쿠마스 온라인>, <원양어선 온라인> 등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각각 반복 퀘스트 대표 몬스터인 쿠마스와 꽃게의 이름을 딴 애칭(?)이죠.
다른 게임들이 퀘스트를 위한 파티 자동매칭을 만들거나 파티퀘스트의 비중을 최대한 줄여 유저 편의성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하는 이 때, <테라>는 시대를 거꾸로 달리고 있습니다. 특히 유저가 부족한 비주류 서버의 초반 지역에서는 저녁 시간 때 게임 플레이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도 왕왕 벌어질 정도입니다.
솔로퀘스트를 수를 늘리거나 파티퀘스트 난이도를 낮추고 수를 줄여서 유저들이 더 가벼운 마음으로 파티를 맺게 만들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차라리 퀘스트 하나 하나가 길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럼 파티원 퀘스트를 일일이 맞출 필요라도 없으니까요.
■ 퀄리티는 좋지만… 꿈에서도 나올 정도의 반복
맛있는 음식도 계속 먹으면 질리는 법입니다. 하물며 지겹게 처치해야 하는 몬스터가 이름만 바꾸고 반복해서 나온다면 결과는 말할 것도 없죠.
<테라>의 몬스터 디자인은 뛰어납니다.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만나는 길리두는 비록 느리지만 맞으면 아플 것 같은 거대한 주먹을 역동적으로 휘두릅니다. 레벨 20 정도에 처음 만나는 중형 몬스터 바실리스크는 지축이 흔들리는 강력한 점프 공격을 보여줍니다. 화끈하죠.
하지만 레벨 20에 이름과 능력치만 바뀐 길리두를 만나고, 레벨 35에 이름과 능력치만 또 바뀐 길리두를 만나고, 레벨 45에 이름과 능력치만 또, 또 바뀐 길리두를 만난다면 이야기는 좀 달라집니다. 바실리스크나 쿠마스 등의 중형 몬스터도 재탕, 삼탕은 마찬가지입니다.
쿠마스, 어게인.
다른 몬스터도 상황은 다르지 않아요. 레벨 30 이후에는 사실상 새로운 몬스터를 거의 못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최소한 색이나 약간의 패턴이라도 추가되면 좋았을 텐데, 그런 배려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테라>의 가장 큰 즐거움은 몬스터의 패턴을 익히고 거기에 대응해 나가는 묘미입니다. 하지만 매번 같은 패턴의 몬스터가 공격력과 방어력만 달라져서 나오면 김이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최고 레벨 던전인 ‘황금의 미궁’에서도 약간씩 달라진 쿠마스와 볼카누스, 지옥불괴수, 거인이 보스로 등장합니다. 새로운 패턴은 조금씩 추가됐고 그에 따른 공략도 재미있지만 ‘보기에 식상한 건’ 어쩔 수 없죠.
바라코스, 너마저…….
■ 대체 왜 배신을? 스토리 전달의 부재
스토리 전달 과정도 빈약합니다. <테라>의 스토리 전달 방식은 다량의 퀘스트에 텍스트를 집어넣고 중요 미션에서 컷신을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역시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이후의 전형적인 문법이죠.
솔직히 <테라>의 세계관은 알고 보면 재미난 편입니다. 신들의 싸움부터 힘을 잃게 된 현실적인 이유가 나오고 나무에서 자라는(혹은 땅에서 캐는) 포포리나 책에 반쯤 미쳐 있는 바라카 등 종족마다 독특한 설정도 있죠.
반전이 있는 스토리도 조금 상투적이지만 나쁘진 않습니다. 오히려 미션마다 맺고 끊음이 확실해서 하나의 이야기를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요 이야기와 상관이 없는 퀘스트가 너무 많고, 파티 위주로 퀘스트를 진행해야 하다 보니 오히려 텍스트를 읽지 않게 되는 역효과가 생깁니다. 새로운 마을에 찾아갈 때마다 10개 안팎의 느낌표가 반겨주는데 내용을 읽을 시간이 있을 리가 없죠.
중요한 컷신도 주로 중반 이후 나오기 때문에 그때쯤이면 이미 스토리에 흥미를 잃은 유저가 대부분입니다. 심지어 가장 큰 반전에서도 ‘얘가 누군데?’ 하는 유저들도 있더군요.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는 없었는지 아쉬운 부분입니다.
5명이 모여있는 와중에 한가롭게 영상 볼 틈도 없습니다.
■ 가랑비에 옷 젖는다, 산재한 문제들
직업별 밸런스는 대부분의 온라인게임이 겪는 일이니 차치하더라도 종족별 밸런스는 게임에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여도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현재 <테라>에서는 종족별로 공격 모션이 다 다릅니다. 단순히 보이는 모션만 다르다면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으니 상관없는데요, 모션에 따라 공격 범위나 속도가 다르다는 게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같은 ‘후려치기’ 스킬을 쓰더라도 포포리 무사는 세로로 칼을 휘두르는 반면, 휴먼 무사는 자신의 주변 한 바퀴에 칼을 휘두르죠. 물론 공격력 등의 효과는 같습니다.
몬스터가 점프를 뛰지 않는 게임에서 약 30도의 공격범위를 가진 종베기가 좋을지 300도 이상의 공격범위를 가진 횡베기가 좋을지는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특히 0.1초가 생사를 가르는 <테라>의 프리타겟팅 전투 방식에서는 치명적인 문제죠.
종족별 차이를 묻는 질문이 많습니다만, 긍정적인 의견은 거의 없습니다.
특별한 이유나 설명도 없이 특정 종족의 능력치가 낮거나 힐량이 적고, 스킬 쿨타임이 긴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 종족 문제 중 대부분은 이미 클로즈 베타테스트부터 유저들이 지적해 온 것들입니다.
중형 몬스터의 발에 공격 판정을 넣은 탓에 근접 캐릭터들은 몬스터의 공격에 맞아 죽는 일보다 그냥 걸어가는 몬스터에 밟혀 죽는 일이 더 많다거나, 특정 퀘스트를 제대로 진행할 수 없는 점, 몬스터의 체력이 다시 차는 위치 버그 등 문제는 많습니다.
다행히(?) 오픈 베타테스트 때처럼 특정 아이템을 쉽게 얻거나 경험치를 대량으로 얻는 일은 사라졌지만, 잦은 문제들도 쌓이면 게임 자체의 완성도를 낮아 보이게 만듭니다.
공격보다 이동이 더 무서운 몬스터도 많습니다.
■ 기본기는 좋지만, 시대를 역행하는 ‘고리타분함’이 아쉽다
<테라>는 간단히 말하자면 ‘최고’는 맞지만 ‘최선’은 아닌 게임입니다. 우선 <테라>의 그래픽과 독창성은 최고입니다. MMORPG + 프리타겟팅 액션 + 뛰어난 그래픽이라는 독특한 조합은 일단 <테라>에 맛들인 유저들이 쉽게 게임을 떠날 수 없도록 만듭니다.
특히 프리타겟팅 방식의 조작은 식상한 콘텐츠도 신선하게 바꿔주는 힘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똑같이 보스가 특정 지역에 이동할 수 없는 장애물을 설치하더라도 타겟팅 게임에서 이동공간이 제한되는 것과 논타겟팅 게임에서 이동공간이 제한되는 건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직접 치고 피하는 프리타겟팅의 특성상 PvP 콘텐츠도 재미있습니다. 기존의 게임과 비슷한 콘텐츠만 따라 만들어도 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는 건 온라인게임에서 엄청난 장점이죠.
실제로 최고 레벨 이후의 던전인 황금의 미궁과 아카샤의 은신처는 기존에 나오던 몬스터를 다시 등장시키고 다른 MMORPG에서도 흔히 나오던 몬스터 패턴 몇 가지를 추가했을 뿐인데도 색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액션의 힘이랄까요?
졸개를 소환해 이동공간을 제한하는 사령술 연구소. 흔한 패턴이지만 <테라>에서 직접 접해 보면 느낌이 많이 다릅니다.
현재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테라>와 비슷한 방식의 게임이 거의 없다는 것도 <테라>의 흥행에 한몫합니다. 여기에 오픈 베타테스트에서 선보인 전장과 레벨 60까지의 콘텐츠, 전장 이후 공개될 정치 시스템 등 준비 중인 콘텐츠도 많습니다.
던전의 쿨타임이 6시간이나 되는데 반해 그 사이에 놀 거리가 없다는 게 아쉽긴 합니다만, 전장만 추가돼도 어느 정도 메울 수 있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오픈 베타테스트에서 잠깐 선보인 전장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운영과 콘텐츠의 ‘최선’은 부족합니다. 특히 파티플레이를 하기 싫거나, 여건상 할 수 없다면 꾸역꾸역 ‘반복사냥’을 해야 하는 레벨업 방식은 아무리 좋게 봐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테라>는 이미 클로즈 베타테스트 때도 초반부터 파티를 해야만 게임을 진행할 수 있는 고난이도(?) 레벨업을 선보였다가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요, 오픈 베타테스트 이후에는 그 시점이 조금 뒤로 미뤄졌을 뿐입니다. 개발팀에서 유저 피드백에 무관심했거나, 결국 고집을 꺾지 않았다는 이야기로 보입니다.
마지막까지 재탕을 거듭하는 몬스터나 쓸데없이 많은 퀘스트, 어려운 던전 난이도에 비해 낮은 아이템 드랍률 등도 아쉬웠습니다. ‘우리 게임은 이렇게 즐겨야 한다’는 개발사의 고집이 보인다고 할까요?
그나마 레벨업 자체는 빠른 편이라는 게 다행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테라>가 겪는 대부분의 문제는 개발사에서 몇 개의 캐릭터만 키워 봐도 알 수 있는 것들입니다. 레벨업 동선, 종족 밸런스, 낮은 아이템 드랍률, 특정 직업의 의미 없는 스킬, 던전의 난이도까지 모두 말이죠.
덕분에 개발사에서는 많은 콘텐츠를 준비했을지 몰라도 유저들은 그걸 느끼지 못합니다. 앞서 말했듯 기껏 만든 파티퀘스트가 레벨업을 돕고 게임에 몰두하게 만들어 주는 긍정적인 영향은 커녕 이걸 깨야지만 레벨을 올릴 수 있다는 부담으로 다가올 정도니까요.
<테라>가 상용화 후에도 17만 명이라는 동시접속자 수를 기록하면서도 유저들에게는 온갖 비판을 듣는 이유 역시 그 때문입니다. 유저와 개발사 사이의 온도 차이가 너무 심해요.
기본기에 충실했고, 덕분에 엄청난 유저를 끌어모은 것도 사실이지만, <테라>가 앞으로도 자신만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 유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다만 단점이 엄청나더라도 워낙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고, 최근 MMORPG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조작 방식의) 참신함과 그래픽을 지녔다는 점에서 8점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