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과 RPG의 절묘한 만남! PSP의 대표적인 아이디어 게임 <파타퐁 3>가 지난 4월 29일 국내에 정식으로 발매됐습니다. 19,800 원의 저렴한 가격에 한글화까지 된 파격적인 조건이었죠.
게임 내의 변화도 신선했습니다. RPG의 전직, 스킬을 통한 성장 방식을 도입했고 멀티플레이를 대폭 강화해 부족한 콘텐츠도 채웠습니다. 전작까지 리듬을 통한 전투라는 아이디어만으로 승부를 봤다면 <파타퐁 3>에서는 각종 시스템을 추가해 <파타퐁>을 ‘하나의 장르’로 굳힌 모양새입니다.
다만 마니아 층을 노린 탓일까요? 지나친 어려움과 반복플레이가 아쉬웠습니다. 한층 흥겨운 리듬과 함께 돌아온 ‘퐁’들을 디스이즈게임에서 만났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파타퐁>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리듬에 맞춰 움직이는 액션 RPG입니다. 게임을 시작한 후 스테이지를 고르고 나면 배경에 4박자 음악이 흐르는데요, 파타(ㅁ), 퐁(ㅇ), 챠카(△), 돈(X)의 네 가지 북을 리듬에 맞게 두드려 자신의 ‘퐁’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적을 물리치면 됩니다.
예를 들어 박자에 맞춰 파타, 파타, 파타, 퐁을 순서대로 입력하면 ‘퐁’들이 전진하고 퐁, 퐁, 파타, 퐁을 다음 박자에 입력하면 ‘퐁’들이 적에게 공격을 퍼붓습니다. 퐁, 퐁, 챠카, 챠카를 입력해 제자리에서 적을 기다리며 다음 공격을 두 배로 강화할 수도 있죠.
‘리듬’도 중요합니다. 박자를 정확히 맞춰서 커맨드를 입력해 주면 흥겨워진 퐁들이 ‘피버’ 상태에 들어가면서 더욱 강력한 공격과 방어를 선보입니다. 반대로 박자가 크게 어긋나면 리듬감을 잃은 퐁들이 그 자리에서 우왕좌왕하죠.
상황에 따른 전략과 박자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신선한 방식의 게임입니다. 참고로 개발사인 소니에서 밝힌 <파타퐁>의 장르는 무려 ‘커맨드 카니발’입니다. 게임을 즐겨보면 정말 ‘딱 맞는 장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 RPG 방식의 성장의 도입
전작 <파타퐁>과 <파타퐁 2>는 부대 단위의 전투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총 4부대로 구성된 퐁들을 조작해 대규모 전투를 벌이는 방식이었죠. 반면 <파타퐁 3>는 조작 가능한 퐁의 숫자를 넷으로 줄이고 대신 하나 하나의 퐁에 더 많은 정성을 쏟도록 유도했습니다.
바로 RPG의 성장과 강화의 도입입니다. 각 퐁은 전투에 나갈 때마다 경험치를 받고 성장합니다. 레벨을 올리고 나면 다른 직업으로 전직도 가능하죠. 다수의 특정 직업 레벨을 만족시켜야만 전직할 수 있는 직업도 있습니다.
직업별 스킬도 있고 스킬마다 습득 조건도 다릅니다. 레벨별로 자동으로 얻는 스킬이 있는 반면 특정 커맨드를 반복할 때마다 강화되는 스킬도 있죠. 각 퐁이 배운 스킬은 직업을 바꿔도 유지되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다양한 방법으로 퐁을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불에 약한 글렌부르르의 약점을 막기 위해 파이케론의 무쌍개구리 스킬을 사용하거나 야리퐁의 창스킬을 마스터해 챠리바사의 버프를 한층 강화하는 등 스킬 활용법도 다양합니다. 여기에 아이템 강화와 각종 상태이상이 더해지면서 ‘전략’도 한층 다양해졌습니다.
일반 RPG라면 큰 특징도 아닐 시스템이지만 <파타퐁>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다릅니다. 아이템과 스킬 하나 하나에 따라 전혀 다른 플레이 방식이 펼쳐지기 때문이죠.
특히 퐁의 직업마다 4박자 동안 입력하는 커맨드에 따라 취하는 행동도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커맨드를 ‘겹치게 만들지’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주로 사용한 전략은 모으기(퐁, 퐁, 챠카, 챠카) 공격으로 카운터를 사용하는 먀무사와 모으기로 회복기둥을 만드는 바우뭉크를 파티에 넣고 모으기 위주의 방어전을 펼치는 것이었습니다. 두 직업 모두 모으기 커맨드로 특수능력이 발동되는 걸 이용한 전략이죠.
반대로 공격(퐁, 퐁, 파타, 퐁)으로 최고의 효율을 내는 직업을 갖춘 후 빠르게 게임을 진행하거나 불태우기 속성의 창을 들고 절대 불이 붙지 않는 투구를 장착한 기마퐁을 적진 한 가운데 보내 불바다를 만드는 등의 대담한 전략도 가능합니다.
퐁마다 9가지 직업을 갖고 있고 아이템의 속성도 14가지나 됩니다. 여기에 8가지 커맨드와 모으기 공격, 9개의 히어로 스킬, 50종이 넘는 특수 장비 등이 있어 정말 각양각색의 전략을 구상할 수 있습니다.
■ 여전한 유치한 스토리와 개그
<파타퐁 3>의 스토리는 ‘막장’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사랑했던 여성이 알고 보니 어머니의 숨겨둔 자식의 사돈의 팔촌인데 점 하나를 찍고 다시 돌아왔다거나 하는 건 아니고요. 그냥 진지함 따위는 병아리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싸우던 악마와 갑자기 사랑에 빠지거나 적이 불쌍하다며 퇴각하는 등 세상의 운명을 이런 애들한테 맡겨도 될까 싶을 정도로 당황스러운 내용이 펼쳐집니다. 요즘 어린이 동화책에도 나오지 않을 법한 유치한 캐릭터와 이야기 전개죠.
개그도 정말 썰렁합니다. 혼자 보기 억울해서 적의 대사 하나를 그대로 옮겨 봅니다. “핫바지? 내가 핫바지로 보이냐? 아니 잠깐, 핫바지 그거 혹시 레어템인거야?” …네, 이런 수준입니다.
그런데 이런 무참한 스토리와 개그가 퐁들의 귀여운 외모와 더해져 묘한 몰입감을 안겨줍니다. 유치한 만큼 이야기는 직관적이지만 하도 통통 튀는 캐릭터들을 모아 놓다 보니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는 상황이랄까요?
대놓고 유치하게 만들다 보니 정작 촌티가 팍팍 나는 대사도 크게 거슬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리즈가 3편 정도 이어지니까 유치함도 하나의 특색이 돼 버렸습니다. 진지하면 더 이상할 수준이에요.
■ 스릴 넘치고 다양한 전투
전투도 스릴이 넘칩니다. 개발팀에서 많이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는 부분인데요, <파타퐁 3>에서는 플레이어의 순간적인 판단력을 요구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살라맨더의 경우 체력이 다하는 순간 폭발하기 때문에 재빠르게 도망(퐁, 파타, 퐁, 파타)쳐야 하고, 펜릴의 넘어트리기 공격은 핑그렉의 얼음벽으로만 막을 수 있죠. 드래곤의 브레스처럼 미리 눈치채고 2턴에 걸쳐 모아서 막아야 하는 스킬이 있는가 하면, 점프를 통해 무조건 하늘로 뛰어야 하는 공격도 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파타퐁 3>의 모든 전투는 4박자가 기본입니다. 4박자 커맨드를 입력하고 나면 다음 4박자에 걸쳐 행동을 취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한 박자 먼저 보스 몬스터의 공격을 파악하고 움직여야 하죠. 심지어 커맨드를 일부러 틀린 후 엇박자로 커맨드를 다시 입력해 위기를 벗어나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열심히 주변 상황을 판단하고, 박자를 놓치지 않도록 커맨드를 입력하다 보면 나중에는 거의 ‘무아지경’에 빠진 플레이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몰입감도 높죠.
멀티플레이를 염두에 둔 VS(대전) 방식의 전투도 한몫을 거듭니다. <파타퐁 3>에서는 라이벌인 다크히어로들과 결투를 벌여서 승리해야 합니다. 다크히어로의 숫자는 총 7명, 결투를 위한 스테이지도 7곳이 등장하죠.
스테이지마다 방식과 승리 조건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장 먼저 만나는 용기의 고전장은 맵에 있는 타워를 최대한 오랜 시간 점령한 팀이 승리합니다. 일종의 거점 점령전이죠.
두 번째 만나는 순결의 경주장에서는 상대방보다 먼저 장애물을 부수고 전진하는 팀이 이깁니다. 이외에도 미사일로 상대방의 기지를 먼저 파괴하는 발사장과 2명 이상의 플레이어가 합심해서 즐기는 멀티플레이 전용 던전도 있습니다.
게다가 리듬을 타야 하는 <파타퐁 3>의 특성상 뻔한 콘텐츠도 상당히 독특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파타퐁> 시리즈의 최대 장점이죠.
RPG 방식의 성장 시스템을 적용하고 멀티플레이용 콘텐츠도 대폭 강화한 만큼 즐길거리도 많습니다. <파타퐁 3>에서 엔딩을 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30 시간 내외입니다.
반면 멀티플레이에 쏟는 시간은 무궁무진하죠. 엔딩을 본 이후 도전해도 버거운 던전들이 시작부터 이어집니다. 차원이 다른 아이템도 쏟아지죠. 플레이어끼리의 결투도 가능하기 때문에 묘한 경쟁의식도 불러옵니다.
■ 지옥의 난이도와 끔찍한 ‘노가다’
문제는 끔찍한 난이도와 온라인게임 뺨치는 반복 플레이, 이른바 ‘노가다’입니다. <파타퐁 3>는 정말 어렵습니다.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물론 전작을 모두 즐긴 사람도 툭하면 공략 실패화면을 봐야 합니다.
초반부터 10여 번에 걸쳐 실패를 각오하고 공략을 알아내야 하는 스테이지가 있는가 하면, 특정직업이 없으면 공략이 거의 불가능한 던전도 수시로 등장합니다. 보스 몬스터의 공격력도 엄청나서 20분 이상 잘 진행하다 버튼 하나 잘못 눌러서 전멸하는 일도 허다하죠. 요즘 콘솔게임에서는 정말 보기 드문 난이도입니다.
성장이 자유로운 만큼 반복 플레이도 심합니다. 특히 스킬 훈련이 압권인데요, 직업마다 5개의 클래스 스킬이 마련돼 있고 각 스킬은 특정한 조건을 맞춰야만 훈련치가 쌓입니다.
방패를 든 타테라제의 경우 방어스킬(챠카, 챠카, 파타, 퐁)을 사용해야만 스킬을 훈련할 수 있죠. 문제는 스킬을 하나씩 배울 때마다 수련치가 거의 2배로 늘어난다는 점입니다. 수련치에 비해 레벨도 빨리 오르기 때문에 뭐 하나 배울 만하면 전직하고 배울 만하면 다시 전직하는 악순환도 반복됩니다.
결국 던전을 도저히 클리어할 수 없을 때, 혹은 아예 엔딩을 본 이후에 본격적인 스킬 훈련을 시작하게 되는데요, 마지막 5단계 스킬은 작정하고 시작해도 3~4시간은 우습게 걸립니다. 그걸 4캐릭터의 9가지 직업을 돌아가며 반복할 생각을 하면 끔찍하죠.
필요한 것만 모두 배우더라도 엔딩까지 걸린 시간과 스킬 훈련 시간이 비슷해질 정도입니다. 비어있는 스킬 슬롯 정도는 우습게 보고 지나칠 수 있다면 상관없겠지만 ‘모든 슬롯을 꽉꽉 채워야 안심이 된다면 재앙 수준입니다. 여기에 각종 아이템 획득과 강화가 겹치면 어지간한 MMORPG와 맞먹는 노가다가 가능해집니다.
귀여운 겉모습과 달리 어려움과 노가다가 겹치다 보니 불만도 많습니다. 솔직히 콘솔게임에 이 정도로 ‘무의미한 반복 훈련’이 필요할까 싶을 정도입니다. 밸런스 조절이 많이 아쉬워요. 센스와 운만 좋다면 심각한 노가다 없이도 엔딩을 볼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 아이디어 게임을 넘어 하나의 장르를 개척하다
<파타퐁>이 처음 공개됐을 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짝하고 말’ 아이디어 게임으로 치부했습니다. 재미는 있지만 후속작을 만들기 애매해 보이는 그런 게임들 있잖아요. 리듬에 맞춰 전략을 입력한다는 건 엄청났지만 그걸 뒷받침해 줄 콘텐츠가 많이 부족했죠.
하지만 3편까지 꿋꿋이 변화를 거듭하면서 <파타퐁>은 ‘리듬액션 RPG’라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시리즈마다 콘텐츠의 양이 대폭 늘어났고, 시스템 완성도 역시 높아졌죠. 처음에는 황당하기만 하던 말장난과 유치한 이야기도 이제는 게임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참신한 리듬액션 게임을 원하는 유저, 뭔가 독특한 게임을 찾는 유저에게 추천합니다. 어렵고 반복이 심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리듬에 맞춰 흥겹게 움직이는 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대부분 웃어넘길 수 있으니까요.
한 시간 플레이만으로도 아무 생각 없이 ‘파타 파타 파타 퐁’을 따라 읊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더불어 19,800 원이라는 ‘초’ 개념가격에 이 기도 안찬 문장을 번역까지 한 소니의 훈훈한 인심에도 점수를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