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전생>과 <페르소나> 시리즈로 국내에도 팬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 개발사 아틀라스(ATLUS). 그들이 만든 첫 번째 PS3·Xbox360 타이틀로 주목을 받았던 <캐서린>(CATHERINE)이 지난 24일 PS3용 한글판으로 국내에 발매되었다.
이 게임은 무엇보다 아틀라스 개발진이 ‘작정하고 만든’ 성인 취향의 게임이라는 점에서 발매 전부터 시선을 끌었다. 공개된 스크린샷이나 시놉시스 등을 보면 ‘어른들 게임’, ‘야한 게임’이라는 느낌을 노골적으로 주면서 동시에 <페르소나> 시리즈보다 한 발 더 앞서 나간 ‘괴기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과연 <캐서린>이라는 게임의 실체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게임을 안 해 본)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야한 게임’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의미로 ‘성인들을 위한’ 게임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디스이즈게임 현남일 기자
Q1. 뭐 하는 게임인가요?
스크린샷만 보면 액션 게임이나 액션 어드벤처 게임으로 착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캐서린>은 ‘퍼즐’ 장르의 게임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스토리 감상을 주요 목적으로 하는 ‘비주얼 노블’ 기반 위에 ‘퍼즐’ 장르를 섞은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의 흐름을 보면 크게 비주얼 노블 형태의 ‘일상’ 파트와, 퍼즐 장르의 ‘악몽’ 파트 두 가지가 반복된다.
먼저 일상 파트는 32살의 주인공 빈센트가 9일 동안 겪는 질풍노도 같은 ‘어른들의 이야기’가 한 편의 애니메이션처럼 펼쳐진다. (일부 장면에서는 진짜로 2D 애니메이션이 사용된다) 이 파트는 사실상 일직선 진행이며, 플레이어가 스토리에 개입할 여지도 극히 적기 때문에 ‘게임’이라기보다 드라마 한 편 본다 생각하고 편하게 감상하면 된다.
드라마를 본다 생각하고 편하게 이야기를 감상하면 되는 ‘일상’ 파트.
빈센트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들면, 이제 본격적으로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악몽(Nightmare) 파트가 시작된다.
악몽 파트는 스테이지 클리어 방식의 퍼즐 게임이다. 스테이지는 다양한 특징을 가진 블록들로 가득 차 있는데, 정해진 시간 안에 이들을 조작해 길을 만들고, 발판 삼아 정상에 오르면 클리어되는 규칙이다. 이런 식으로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다 보면 빈센트는 악몽에서 깨어나 다시 ‘일상’ 파트로 넘어가게 된다.
(잠자던 복장 그대로) 팬티 차림인 빈센트를 조종해 정상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악몽’ 파트.
Q2. 야한 게임인가요?
‘야하다’의 기준이 ‘야한 장면’이 많이 나오는 것이라면 <캐서린>은 ‘야한 게임’이 결코 아니다.
당장 남자 주인공부터 아무리 꿈속이라고 해도 팬티는 꼭꼭 챙겨 입고 다닌다. 여자 주인공은 전라로 나오더라도 가릴 것은 다 가린다. 야한 ‘상황’은 있을지 몰라도 야한 ‘장면’ 같은 건 없다. 혹시라도 그런 걸 기대했다면, 차라리 다른 대안을 찾길 바란다.
다만, <캐서린>이 ‘성인용 게임’인 것은 확실하다.
다루고 있는 주제부터 ‘결혼’이다. 그것도 소년·소녀들이 꿈꾸는 달콤한 환상 속의 결혼이 아닌, 나이 찬 어른이라면 대부분 한번 고민하게 되는 현실 속의 결혼 이야기를 정면에서 다룬다.
이 때문에 성인이 아니라면 게임이 하려는 이야기에 당최 공감할 수 없을뿐더러, 재미를 느끼기도 힘들다. 주인공이 왜 고뇌하는지 이해하기 힘들 테니까.
Q3. 스토리는 재미있나요?
주인공 빈센트는 적당한 직장에 다니고, 5년째 사귀는 여자친구도 있는 평범한 청년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몇 가지 문제가 있는데, 하나는 그의 나이가 결혼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32살이라는 사실이고, 또 하나는 그녀의 여자친구 ‘캐서린’(Katherine)이 임신했다며 결혼을 거의 기정사실화한다는 사실이다. 결혼하면 자신이 그동안 누리던 자유가 사라지고, 무거운 책임감을 떠안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빈센트는 괴로워한다. 그러던 중에 그는 술김에 실수로 자신의 앞에 나타난 의문의 여인 ‘캐서린’(Catherine)과 하룻밤을 보내고 만다. 결국 팔자에 없던 바람피우고 ‘양다리’를 걸치게 된 빈센트는 이후로 ‘자유’(연애)와 ‘책임’(결혼)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며 갈팡질팡하게 된다.
위의 시놉시스는 성인 게이머, 그중에서도 ‘결혼’에 대해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비교적 공감하면서 흥미롭게 즐길 수 있다. ‘현실적인 연애’를 다루는 다소 심각한 영화나 드라마, 혹은 아침 드라마가 취향이라는 사람들 역시 비교적 재미있게 <캐서린>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말하면, 이런 주제를 별로 좋아하지 않거나 공감할 수 없는 유저들, 특히 성인이라고 해도 결혼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에게는 ‘굉장히 재미없는’ 스토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게다가 전반적으로 시나리오 진행 속도가 느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보는 사람이 다 우울해질 정도로 ‘우중충한’ 분위기를 풍긴다. 딱히 긴장감 넘치는 이벤트 같은 것도 없고, 뒤통수를 치는 기막힌 반전도 없다.
다시 말해 ‘밝고 가벼운 이야기’, 또는 ‘긴장감 넘치고 속도감 있는 시나리오 전개’를 원하던 게이머들 역시 지루하고 재미없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결국 <캐서린>의 스토리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호불호가 극명하게 엇갈린다’고 정리할 수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게임의 시나리오를 보고 마음 한쪽이 아프거나, 주인공의 입장이 너무나도 공감된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어른이다.
두 명의 캐서린을 두고 답답하게 방황하는 주인공을 보고 있자면 한 대 때리고 싶은 생각이 드는 유저도 분명 있을 것이다.
Q4. 퍼즐 난이도가 높다던대? |
결론부터 말하자면 ‘겁나 높은 것’ 맞다.
“소싯적에 <소코반> 좀 했지” 하면서 의기양양하게 <캐서린>의 퍼즐 난이도를 ‘하드’로 설정한다면, 튜토리얼부터 순간적인 상황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폭력적으로 변해 패드를 집어던질 정도로 정말 피눈물 나게 난이도가 높다.
그나마 ‘이지’ 난이도를 선택하면 초보자도 “어느 정도 플레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난이도가 떨어지기는 한다. 하지만 아무리 난이도가 떨어진다고 해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라서, 중반 이후 일부 스테이지에서는 (공략이 없는 한) 스테이지 하나에 최소 1시간 이상은 머리 쓸 각오를 하는 게 좋다.
‘이지’ 난이도를 선택하면 사실상 무제한으로 재도전할 수 있고, ‘Undo’(한 칸 되돌리기) 기능까지 사용할 수 있어서 난이도가 대폭 낮아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퍼즐 풀이’라는 것이 어려운 것은 둘째치고, ‘재미’ 자체만 놓고 보면 굉장히 재미있고 완성도도 높다는 사실이다. 잘 만든 퍼즐 게임이 다 그렇지만, <캐서린>에서 막혀 있던 퍼즐 풀이에 성공했을 때 맛보게 되는 카타르시스는 짜릿하다.
‘A에서 B까지 이동한다’ 같은 간단한 행위만 해도 플레이어의 풀이에 따라서 최대 수십 가지 이상의 다양한 해법이 나올 수 있다. 또 ‘한 칸 이상 이동하면 미끄러지는 블록’, ‘밟으면 폭발하는 블록’ 등 다양한 종류의 블록이 등장하기 때문에 퍼즐 풀이가 매번 똑같거나 단순하지도 않다.
여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발밑에서 침식해 오는 어둠, 플레이어를 수시로 공격해 오는 거대한 보스 등으로 인한 긴장감도 탁월하다. 앞서 ‘일상’ 파트는 갑갑하고 지루할 수 있다고 했는데, 퍼즐 파트는 그렇지 않다. 일부 스테이지는 “이게 퍼즐 게임인지, 아니면 액션 게임인지” 헷갈릴 정도로 박진감이 넘치기도 한다.
일부 스테이지에서는 거대한 괴물이 밑에서 공격해 오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도망가야 한다. 이때의 긴장감은 여느 액션 게임 못지않다.
퍼즐 자체의 완성도는 높은 편인데, 카메라와 캐릭터 조작은 영 완성도가 떨어진다. 급박한 순간에 캐릭터가 생각대로 안 움직여서 필자는 정말 패드를 내팽개칠 뻔한 적도 있다.
아, 그리고 <캐서린>은 ‘정말 정말 퍼즐 게임을 못하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장치를 한 가지 마련해 두고 있다. 숨겨진 게임 모드(라고 해봐야 매뉴얼에 보면 다 나와 있다)로 이른바 ‘슈퍼 이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슈퍼 이지 모드는 사실상 반칙에 가까운 아이템을 무한정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플레이어가 문제없이 엔딩까지 갈 수 있다. 다만 이는 정말 반칙(치트)에 가까운 게임 모드이기 때문에 가급적 선택하지 않을 것을 추천한다.
Q5. 호러 게임인가요? |
<캐서린>은 곳곳에 ‘아틀라스 게임다운’ 괴기한(?) 센스가 넘쳐흐른다. 얼핏 잘못 보면 호러 게임으로 오해 받을 수 있을 정도다.
가령 주인공 빈센트는 매일 밤 펼쳐지는 악몽의 마지막에서 ‘거대한 적’과 조우하게 된다. 그런데 그 적이라는 것이…. 그날 낮에 여자친구가 자신에게 “결혼하자”라고 했다면 웨딩드레스를 입은 흉측하게 생긴 악마가 주인공을 ‘포크로 찍어 죽이려고’ 덤비는 식이다.
어떤 날은 여자친구가 “임신한 것 같아” 라고 했다는 이유만으로 보기에도 흉측한 거대한 아기가 “피 묻은 전기톱”을 들고 빈센트를 죽이려고 덤벼들기도 한다.
이 밖에도 곳곳에서 괴기한 연출이 많이 나온다. 성인 게임답게 ‘피’에 대한 연출 또한 거침이 없다. 물론 제대로 된 고어 게임이나 호러 게임 수준까지는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혐오감’에 다소 민감한 유저라면 불쾌감을 느낄 수 있는 수준이기는 하니, 참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대체 결혼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런 괴물이 꿈에서 다 나오는 걸까…(-_-).
결론: PS3를 가진 성인 유저라면 즐길 만한 게임 |
결론적으로 <캐서린>은 퍼즐 게임에 거부감이 없으면서(혹은 퍼즐 게임을 좋아하면서), PS3를 가진 ‘성인’ 유저라면 한번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퍼즐 자체가 어렵긴 하지만 아예 도전 못할 수준은 아니고, 최후의 수단으로 ‘슈퍼 이지 모드’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텍스트가 100% 한글로 나오기 때문에 누구나 스토리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한글화 타이틀에 목말랐던 PS3 유저라면 <캐서린>을 사더라도 최소한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설명했듯 게임의 스토리가 아주 박진감 넘치거나 흡입력이 뛰어나지는 않기 때문에, 일부 유저들은 다수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스크린샷만 보고 평범한 연애시뮬레이션이나 미소녀 게임으로 오해하고 있다면 역시 주의해야 한다.
여기에 ‘게임을 하는 데 대체 왜 머리를 써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갖고 있거나, 결혼을 눈앞에 둔 사람들(;;) 역시 비추천이다. 합법적으로는 이 게임을 즐길 수 없는 청소년 이하 어린이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해 봤자 재미도 없을 것이다).
빈센트는 게임 내내 자신의 ‘가치관’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여기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게임 진행과 결말의 내용이 크게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