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는 이번 게임스컴(17일~21일)에서 <배틀필드 3>의 PC버전 64인 멀티플레이를 공개했습니다. 한 번에 64명의 플레이어가 전투를 치르는 초대형 체험존을 통해 <배틀필드 3>의 진면목을 보여주겠다는 계획이었죠. 덕분에 <배틀필드 3> 부스에는 하루종일 ‘적어도 4시간 이상의 줄’이 이어졌습니다. 15분 플레이를 위한 4시간 이상의 기다림입니다.
19일(현지시간) 입장 시작 20분 후의 <배틀필드 3> 부스 앞 광경.
하지만 체험을 마치고 나온 관람객들의 얼굴에서는 시간이 아깝다거나 아쉬워하는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게임, 미쳤거든요. 건물 붕괴와 먼지, 그리고 폭발. 그동안 <배틀필드 3>가 자랑하던 프로스트바이트 2 엔진의 괴물 같은 효과들은 게임에 완전히 녹아들었습니다.
그래픽이랑 사운드는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동작은 자연스럽고 총알이 스칠 때면 소름이 돋습니다. 그럼에도 ‘게임의 재미를 위한 요소들을 챙기는 걸’ 잊지 않았습니다. 숨가쁜 15분, <배틀필드 3>의 멀티플레이 소감을 최대한 글로 옮겼습니다. /(인식표만 두 개째인)쾰른(독일)=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 게임스컴의 <배틀필드 3> 멀티플레이에 사용된 맵은 카스피안 보더입니다. 64인 플레이를 위한 대규모 맵으로 총 5개의 거점이 있습니다. 멀티플레이 체험은 15분 동안 진행됐고 전차와 전투기, 헬기, 지프 등의 다양한 탈것이 도처에 널려 있었습니다. 실제 모습은 <배틀필드 3> 게임스컴 2011 트레일러에 나와 있습니다. [원문보기] 체험에 앞선 게임 플레이 사전교육(?)에서는 각 병과의 역할과 무기별 커스터마이징, 차량 커스터마이징 기능 등이 소개됐습니다. 다만 실제 체험버전에서는 적용되지 않았더군요. |
■ 먼지부터 빛 반사까지, 시야 확보 전쟁
게임 플레이 도중 아군 전차가 지나간 자리에 뿌연 흙먼지가 날립니다. 흙먼지는 전차의 꽁무니를 따라 길게 퍼져 가고 건물 뒤로 지나치던 적군 전차가 아군 전차를 발견합니다.
두 전차 사이에 포격전이 시작되자 광장은 이내 한치 앞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매캐한 연기로 뒤덮입니다. 사방에서 파편이 튀고 연이은 폭발음에 귀 울림 효과가 멈추질 않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볼 수 없는 틈을 타서 누군가가 아군 전차에 C4 폭탄을 설치하고 사라집니다.
<배틀필드 3>에는 ‘시야’를 방해하는 요소가 굉장히 많습니다. 빛과 먼지, 연기 등의 효과가 전작에 비해 몇 단계는 더 강화됐기 때문이죠. 어두운 지역에서 밝은 지역으로 이동할 때 눈앞이 밝아지고, 고개를 들어 태양을 바라보거나 공병의 플래시를 눈앞에 들이대면 일순간 눈이 멀어 버립니다.
전차의 포격에서 일어난 먼지가 오히려 적 병사의 위치를 가려 주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비행기가 추락한 지점에서 피어오르는 시커먼 연기 속에 몸을 가린 병사가 아군을 한 명씩 쓰러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높은 곳에 자리를 잡은 스나이퍼는 ‘태양을 등지는 것’만으로도 생존율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죠. 눈치가 빠른 관람객들은 불이 붙은 잔해를 엄폐물로 활용하더군요. 지상은 물론 하늘에서 내려다 봐도 연기가 자욱해서 뭐가 있는지 식별이 불가능하거든요. <배틀필드 3>에서는 시야가 아주 중요한 전략적 요소입니다.
■ 날개를 잃은 비행기의 운명은? 극한의 사실성
프로스트바이트 2 엔진은 <배틀필드 3>에 극한의 사실성을 선물했습니다. <배틀필드 3>의 물리효과는 매우 사실적입니다. 지나칠 정도로 사실적인 효과들은 게임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요.
대검으로 철조망을 자르면 적진에 몰래 침투할 수 있고, 허리춤까지 오는 모든 물체는 손으로 짚고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달리던 중에 무릎쏴 자세를 취하면 속도를 줄이며 미끄러지듯 앉습니다. 반대로 포복 중에 일어서면 앞으로 몸을 기울이며 일어납니다. 방에서 실제로 따라 해 보면 얼마나 잘 만든 동작인지 알 수 있습니다.
총이나 폭탄으로는 각종 벽과 구조물을 부술 수 있고, 차량이 공격을 받았을 때는 탑승 위치에 따라 받는 대미지가 다릅니다. 플레이어가 죽지 않았다면 파괴된 차량에 불이 붙기 전에 무사히 탈출할 수도 있죠. 전작처럼 체력이 얼마 남지 않은 전차가 벽을 들이받았다고 내부 탑승인원이 전멸하는 일은 없습니다.
심지어 전투기에 탔을 때는 파손 부위에 따라 기체 조작 난이도가 올라갑니다. 예를 들어 전투기 하부를 공격 당하면 애프터버너(비행기 등의 재가속장치)를 사용할 수 없고 날개를 맞으면 조종간이 심하게 흔들립니다. 이후의 착륙과정은 상상에 맡깁니다. 미안했어요, 24번 플레이어(함께 체험했던 64명의 관람객 중 한 명).
그만큼 플레이어의 선택지도 대폭 늘어났습니다. 자신이 탑승한 차량이 파괴되는 순간을 예로 들어 보죠. 그대로 폭발할 때까지 차량의 화기를 이용해 적을 쓰러트리면서 차량과 함께 죽을지, 빠르게 도망쳐 나올지, 아니면 차량의 폭발 후 나오는 연기를 이용해 게릴라 전술을 펼칠지 등 많은 방법이 있으니까요.
실제 플레이에서도 전차를 모는 한 유저가 철조망과 방호벽을 다 밟고 지나가고 났더니 일반 보병이 쉽게 적진에 잠입할 수 있더군요. 적이 숨어든 참호를 통째로 부수기 위해 연달아 포를 쏘다가 반대로 폭발 연기 속에 숨은 적에게 C4를 설치 당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 스태미너 삭제, 체력 자동회복! 신속해진 전투
전투의 진행 속도는 매우 빨라졌습니다. <배틀필드 3>에는 스태미너 개념이 없어서 무제한으로 맵을 달릴 수 있고, 화면에는 각 거점의 위치와 거리, 상황 등이 간단하게 표시됩니다. 시야 내에 노출된 적이나 각종 차량의 머리 위에는 작은 표시가 나타나고요.
더 이상 맵을 볼 줄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길을 잃고 하염없이 헤매다가 똑같이 길을 잃은 누군가에게 발견돼 영문도 모르고 죽을 확률은 거의 없다는 뜻입니다. 화면에 표시된 곳만 따라가도 최소한 싸워 볼 수는 있으니까요.
플레이어의 체력도 빠르게 회복되기 때문에 전선에 다시 투입되는 시간도 짧습니다. 64인용 대형 맵에서 달랑 15분의 체험시간을 줬는데도 대부분 소 2~3명의 적은 처리하더군요. 많게는 12명을 처치하고 3번 죽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 뛰어난 물리엔진, 그보다 더 뛰어난 선택과 집중
<배틀필드 3>의 개발사인 디지털일루젼(이하 DICE)는 첫 공개 때부터 프로스트바이트 2 엔진 자랑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최초의 발표 트레일러에서는 충격에 의한 건물이나 벽 등의 오브젝트 파괴를, GDC에서는 물체에 따른 대규모 빛의 반사를, E3를 앞둔 데모 영상에서는 자연스러운 캐릭터 애니메이션과 피격에 따른 먼지 효과 등을 자랑했죠.
DICE가 자랑한 엔진의 효과는 <배틀필드 3> 안에 완벽하게 녹아 있습니다. 그것도 단순한 그래픽 자랑만이 아니라, 실제 플레이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말이죠.
사실 <배틀필드 3>가 전작과 달라진 점 중 대부분이 프로스트바이트 2 엔진의 효과입니다. 뛰어난 물리엔진과 그래픽 효과가 게임의 재미와 플레이까지 바꿔 놓은 모양새죠.
DICE는 엔진 성능을 결코 ‘과용’하지 않았습니다. 게임의 재미에 필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에서는 극한의 사실성을 추구한 반면, 게임의 재미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한 부분에서는 사실성을 과감하게 포기했죠. 선택과 집중입니다.
덕분에 <배틀필드 3>는 사실성과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습니다. 오히려 사실성이 재미로 이어지는 긍정적인 효과를 이뤄냈죠. 이야기가 길었는데요, 간단히 줄이겠습니다. 정말 재미있습니다. ‘한 번에 64명씩 플레이 하는데도 불구하고’ 아침에 게임스컴 입장 시작 20분 만에 4시간이 넘는 대기 줄이 생긴 건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미친 회사에서 만든 미친 게임’ 64인 멀티플레이 체험을 마치고 나서 직감적으로 떠오른, 개인적으로 <배틀필드 3>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호칭입니다. <배틀필드 3>는 전문심사위원 만장일치로 게임스컴 2011 어워드 대상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