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3>(이하 모던 워페어 3)가 출시 된 후로 <배틀필드 3>와 자주 비교되고 있습니다. 사실 장르가 FPS라는 점만 제외하면 두 개의 게임은 별개로 봐도 무방합니다.
분대 단위의 전투냐, 소수정예 특수임무냐를 따지기 전에 게임을 즐기는 방법 자체가 다릅니다. 그런데 <모던 워페어 3>는 경쟁 게임이 아닌 전작과 비교되면서 적지않은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게임성이나 그래픽, 시스템 면에서 발전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멀티플레이의 총기와 맵 밸런스는 전작보다 못하다며 불만이 많습니다. 전작을 능가하는 후속작은 역시 나오기 힘든 걸까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모던 워페어 3>를 플레이해 봤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정우철 기자
■ 옴니버스로 구성된 한 편의 게임 드라마
<모던 워페어 3>는 엄밀하게 말해서 기존 게임들의 넘버링 타이틀과는 다소 다른 개념입니다.
게임에서 넘버링이 붙는 시리즈는 전혀 다른 이야기와 주인공을 내세우는 경우도 많습니다. <파이널 판타지>나 <드래곤 퀘스트>가 전혀 다른 주인공과 이야기를 가진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반면 같은 주인공이지만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젤다의 전설> 시리즈도 있습니다. 그리고 <모던 워페어 3>는 같은 주인공들이 이전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게임입니다.
미국 드라마로 따지면 시즌1에서 일단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시즌2를 이어가는 방식이라고 할까요? <모던 워페어 2>에서 수수께끼로 남았던 이야기, 복선으로 깔려 있던 내용이 <모던 워페어 3>에서 바로 이어집니다. 실제 게임 플레이도 바로 전작의 마지막 장면에서 시작하더군요.
<모던 워페어 2>의 마지막 장면에서 <모던 워페어 3>가 이어집니다.
이번 3편에는 시리즈 전반에 걸친 주요인물이 모두 등장합니다. ‘소프’라고 불리는 존 맥타비쉬, ‘가격대위’라는 애칭(?)을 가진 존 프라이스 대위, 전편에서 러시아 미국 침공의 불씨가 된 공공의 적 블라디미르 마카로프가 나오죠.
유저가 플레이하는 인물은 국가별, 특수부대별로 다양해지고, 해당 임무를 맡은 주인공의 특성에 맞게 저격, 침투, 야전, 인질구출 등의 다양한 임무를 받습니다. 그리고 치열한 전투 속에서 이야기가 교차되며 하나의 스토리를 마무리하는 <모던 워페어> 시리즈 특유의 문법은 여전합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모던 워페어 3>는 처음부터 시스템의 혁신이나 개선보다 스토리를 중심으로 개발을 진행했다는 점입니다. <모던 워페어>와 <모던 워페어 2>를 플레이하면서 맞춰지지 않았던 스토리의 퍼즐이 3편에서 하나씩 풀립니다.
델타포스를 비롯한 테스크포스 141의 연합작전, 그리고 새로운 인물의 이야기.
■ 스펙터클한 연출은 한층 업그레이드
그렇다고 <모던 워페어 3>가 전편에 비해 아무런 시스템의 발전이나 그래픽의 향상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얼핏 보면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표현이 조금 더 디테일해졌다고 할까요?
모래폭풍이 몰아치는 장면이나, 물속, 비가 오는 배경에서의 효과는 뛰어납니다. 전편과 비교해 보면 달라진 게 없어 보일 뿐이죠. 대신 연출의 기법은 더욱 대담해졌습니다. 방대한 이야기를 위해 세계대전을 끌어들인 만큼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보겠다는 의도가 느껴집니다.
각 나라의 상징은 초토화됩니다. 미국의 맨하탄은 러시아의 침공으로 붕괴됐고, 제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조차 아름다운 도시를 폭격할 수 없다며 남겨둔 파리를 <모던 워페어 3>에서는 과감히 날려보냅니다. 에펠탑이 무너지는 장면을 보는 순간에는 ‘아무리 게임이지만 이래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말이죠.
이런 배경 연출 외에도 실제 플레이와 연계되는 연출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아군이 탈출을 위해 부른 헬기가 격추될 때도 멍하니 있다가는 추락한 헬기의 잔해에 맞아 죽습니다. 건물이 폭파되면서 떨어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도 쉽지는 않은 대리체험입니다. 그것도 1인칭 시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에펠탑도 막 넘어가고….
스토리 진행에서 다양한 인물을 오가는 연출도 볼 만합니다. 인물의 변경에 다라 주어진 임무가 달라지니까요. 대표적인 예가 ‘철의 여인’ 미션입니다. 델타포스의 탈출을 위해 공중지원을 하는 AC-130 스펙터의 플레이는 전작에서도 하나의 에피소드로 선보인 바 있습니다.
이번에도 비슷한 미션이 있습니다. 하지만 AC-130 승무원의 시점에서 플레이하다가 다시 델타포스 대원의 시점으로 바뀌는 등 같은 임무라도 인물을 교차하면서 극적인 연출을 강화하고 있더군요. 이외에도 전작의 회상 장면을 다른 인물의 시점에서 보는 장면은 약간 소름이 끼칠 정도였습니다.
■ 한글화 안 된 <모던 워페어 3>
<모던 워페어 3>를 플레이 하면서 남는 아쉬움은 한글화입니다. FPS에서 무슨 한글화를 따지냐고 하면 상관 없지만 드라마를 강조하는 특성상 언어적 불편함은 감수하기에는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임무에 돌입하기 전 인터미션에서의 대화, 임무에 돌입한 이후의 교신 내용, 분대원 간의 대화는 모두 게임에서 중요한 맥락을 짚어줍니다. 극단적인 비유를 하자면, 자막 없이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본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게임에서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전작에서 수배자 리스트에 오른 프라이스 대위가 본부에 교신을 걸어 옵니다. 주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죠. 그때 자신의 이름은 숨기고 $라는 표시를 사용합니다.
프라이스라는 이름이 가격을 나타내는 뜻이므로 미국 달러 표시인 $를 사용 한 것이죠. 사실 이 정도면 나름 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소프 맥타비쉬를 ‘비누병장’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으니까요.
하지만 전체적인 임무의 내용 전달과 “왜?”라는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모던 워페어 3>는 단순히 멋들어진 연출로 총을 쏘면서 끝내는 느와르에 불과합니다. 특히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긴박한 교신 내용은 게임의 긴장감을 높여주는 또 하나의 장치입니다.
멋진 연출은 만족스럽지만, 왜 이런 상황에 몰렸는지는 답답할 수 있죠.
공중지원이 급박한 상황에서 “연료를 보급하러 갈 테니 3분만 기다려~ 다른 팀이 올 거야~” 같은 말을 들을 때의 느낌은 조금 섬뜩하기도 합니다. 물론 교신 내용을 알아듣지 못하면 단순히 ‘공중지원에 쿨타임이 있네?’ 정도로 느끼겠죠.
실제로 친구 중 한 명은 저격 미션에서 스코프로 프라이스 대위를 살펴보라는 지시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게임 진행이 안 된다면서 투덜거리고, 옥상의 적을 먼저 없애라는 말을 못 알아 들어서 재도전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 스폐셜 옵스와 멀티플레이어 확장
패키지게임에서 중심이 되는 콘텐츠는 싱글플레이 캠페인이라는 말은 이제 무조건 통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모던 워페어 3>도 8~10시간 내외의 캠페인 미션을 준비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플레이해 보면 4~5시간 내외로 엔딩을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멀티플레이의 ‘스폐셜 옵스’는 일종의 도전 모드라고 할 수 있죠. 이번에는 미션과 서바이벌 모드로 나눠지면서 또 다른 재미를 줍니다. 미션 모드는 전작에도 있었으니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겠죠. 중요한 것은 이번에 추가된 서바이벌 모드입니다.
서바이벌 모드는 조금 과장을 보태서 <기어스 오브 워 3>의 호드 모드와 타워 디펜스를 합쳐 놓은 듯한 게임 방식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처음에는 권총 하나만으로 적을 상대하면서 레벨과 돈을 모으고 이를 이용해 무기를 강화합니다. 물론 적들도 점점 강해지죠.
<모던 워페어 3>는 크게 세 가지 모드로 구분됩니다.
이쯤 되면 총만 쏘는 게임이 아니라 모든 돈을 어떻게 투자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탄창을 구입할지, 아니면 더 좋은 무기로 교체할지 선택해야 하죠. 멀티플레이는 <모던 워페어 3>의 핵심이라고 봐도 됩니다.
그런데 미묘합니다. 멀티플레이의 만족도에 대해서 이번 3편만큼 개인차가 나는 것은 처음이라고 볼 정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부분은 멀티플레이의 맵 규모가 작아졌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대치 상황을 인위적으로 증가하게 만들어 이른바 ‘닥치고 돌격하는’ 패턴이 많아졌다는 거죠.
반면에 맵은 작아졌지만 우회로와 이동로의 교차지점이 많아지면서 나름 빠른 플레이가 가능하다고 좋아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멀티플레이는 솔직히 말해서 호불호가 엇갈릴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모던 워페어 3>의 멀티플레이는 총기와 맵이 추가된 <모던 워페어 2>의 확장팩 정도로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너무나 많은 고수들 덕분에 저 같은 양민 유저는 멀티플레이의 재미를 맛보기 쉽지 않았습니다.
<모던 워페어 3>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를 하자면 ‘드라마 시즌1을 너무 재미있게 봐서 다시 챙겨보는 시즌2’라고 하고 싶습니다.
사실, 플레이를 시작하기 전에도 새로운 시스템이나 그래픽의 변화를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덕분인지 실망보다는 개운한 기분으로 엔딩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