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백 명의 병사가 동시에 싸우는 전장에서 <데빌 메이 크라이> 수준의 전투를 구현하겠다.” 2008년 초 <킹덤언더파이어 2>의 첫 인터뷰에서 블루사이드의 이상윤 PD가 한 말입니다. 대규모 부대 전투와 강력한 영웅 중심의 액션을 함께 선보이겠다는 도전적인 포부였죠.
3년 후, 모습을 드러낸 <킹덤언더파이어 2>는 그 말을 어느 정도 지켰습니다. 플레이어와 몬스터의 대규모 전투는 지금까지 경험하기 어려웠던 ‘웅장함’을 전해줬고, 공격과 버프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영웅의 전투는 (<데빌 메이 크라이>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호쾌한 액션성을 보여줬습니다.
기존 온라인게임에 익숙한 유저들에게는 신선한 경험인데요, 다만 그 신선함이 100% 재미로 연결되지는 않았습니다. 시도는 좋았지만 그만큼 많은 과제를 남긴 게임 <킹덤언더파이어 2>의 첫 영웅 테스트를 살펴봤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 수 백 명이 함께 움직이는 대규모 전장
거대한 오우거가 팔을 휘두르자 수 십 명의 병사가 하늘로 튕겨 오르고, 아군이 위기에 빠진 순간 등장한 기병대는 적진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활로를 뚫습니다. 사방에서는 칼이 부딪히는 쇳소리와 괴성이 들려오고 적을 쓰러트린 부대는 커다란 환성으로 승리를 알립니다.
<킹덤언더파이어 2>의 대규모 전투는 지금까지 나왔던 어떤 온라인게임보다도 ‘진짜 같은 전투’를 보여줍니다. 우선 전투에 참가하는 병사들의 숫자가 엄청납니다. 초반의 대표적인 전투지역 그린데일의 예를 들면 4명의 플레이어가 3부대씩 이끌고, 여기에 각각 3부대의 기병대와 포병대, 아군 NPC의 부대가 전투에 참가합니다. 모두 합치면 20부대가 넘어가죠.
적 역시 마지막 전투에서 20부대 이상이 참가합니다. 도합 40부대. 각 부대가 10~12명의 병사로 구성됐으니 전체 참여 병력은 최소 400명이 넘는 셈입니다. 전장을 꽉 메우고도 남을 숫자죠.
여기에 거대한 공성용 괴물들과 영웅들의 활약이 더해지면서 <킹덤언더파이어 2>의 전투는 정말 처절하고 웅장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전선 한복판에서는 보병과 기병대가 뒤엉켜 힘 싸움을 벌이고 하늘에서는 화살과 포탄들이 비처럼 쏟아집니다. 별다른 배경이 필요없을 정도입니다. 그 자체가 전장이죠.
■ 손색없이 뛰어난 그래픽과 연출
뛰어난 그래픽과 의도적으로 넣은 각종 연출도 전투의 맛을 더합니다. <킹덤언더파이어 2>의 그래픽은 어둡고 칙칙합니다. 잘 보이지 않는 배경의 움직임이나 병사의 모션 등에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죠. 대신 캐릭터의 질감과 복잡한 전투 중에도 눈에 띄는 화려한 이펙트에 집중했습니다.
대규모 전투를 고려한 포석으로 보이는데요, 덕분에 전장의 느낌은 한층 처절해지고 병사 하나하나가 진짜로 그 곳에 있는 느낌을 줍니다. 수 백 명이 한 화면에서 부대끼는 대규모 전투에서는 단점도 눈에 드러나지 않죠. 콘솔 개발사의 노하우를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전투의 연출에서도 블루사이드의 노하우를 엿볼 수 있습니다. 손쉽게 이겨 가던 전투에서 적의 보스가 나타나 아군을 쓸어버린다거나 후방에서 갑자기 뛰쳐나오는 적의 대규모 증원군, 위기의 순간에 나타난 기병대가 활로를 뚫는 모습 등 <킹덤언더파이어 2>의 대규모 전투에서는 유저를 위기에 빠트리거나, 반대로 위기의 순간에서 구해주는 상황들이 쉴 새 없이 이어집니다.
플레이어는 이처럼 주어진 상황에 맞춰 그때 그때 최선의 선택을 찾아나가면 되죠. 단순히 적만 쓰러트리면 되는 대규모 전투가 아니라 ‘각본에 따라 위기를 극복해내는 전투’입니다.
여기에 적을 쓰러트릴 때마다 들리는 함성과 전투 내내 외치는 적과 아군의 고함, 명령 등이 어우러지면서 <킹덤언더파이어 2>의 전투는 하나하나가 (잘 풀릴 경우)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본 듯한 재미와 감동을 줍니다.
대규모 전투의 구현과 진짜 전쟁의 느낌만 따진다면 단연 최고입니다.
■ 대규모 전투에 맞춘 독특한 버프와 전투
전투 시스템도 영웅과 부대를 동시 사용하는 전투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킹덤언더파이어 2>의 영웅은 기존의 <마비노기 영웅전>이나 <진·삼국무쌍> 방식으로 싸웁니다. 마우스 왼쪽 버튼으로 기본공격을, 마우스 오른쪽 버튼으로 강공격을 사용하고, 둘을 섞어서 다양한 연속기를 만들 수 있죠.
재미있는 점은 버프 방식인데요, 강공격을 사용할 때마다 콤보에 맞춰 다양한 버프 효과가 발동됩니다. 예를 들어 광전사로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두 번 누르면 적을 띄운 후 칼을 휘둘러 멀리 날려 버리는데요, 적을 띄울 때 방어력 증가버프가, 적을 날리면서 체력회복 버프가 발동됩니다.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죠. 덕분에 따로 스킬을 쓰지 않아도 공격과 함께 다양한 특수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게임도 보다 공격적으로 진행할 수 있죠. 자신만의 버프 및 콤보 스타일을 만드는 재미도 있습니다.
영웅과 부대의 전투는 교묘하게 이어지는데요, 일단 영웅이 기본공격으로 적을 때릴 때마다 AP가 쌓이고 이를 이용해 각종 콤보나 영웅 스킬을 발동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웅이 적 부대를 쓰러트리면 SP가 채워지고 각종 부대 스킬을 사용할 수 있죠.
자연스럽게 기본공격으로 AP를 모아서 적을 쓰러트리고 거기서 나온 SP로 부대 스킬을 사용해 다음 부대를 약화시키고 처치해 다시 SP를 쌓는 일종의 순환이 이어집니다. 반대로 AP나 SP, 영웅의 체력 중 하나만 부족해도 전투가 계속 꼬이죠.
체력을 회복하려면 AP를 써야 하는데, AP를 모으자니 영웅의 체력이 적어 부담이 심하고, 그렇다고 부대 스킬을 쓰자니 먼저 적을 쓰러트려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랄까요? 게임이 후반으로 갈수록 적의 공격력이 강력하고 부대 스킬에 의존할 일도 많아지기 때문에 관리의 중요성도 커지죠.
■ 용병과 영웅의 동시성장, 무난한 진행
전투가 워낙 독특하다 보니 게임의 진행과 시스템에 대한 궁금증도 많았는데요, <킹덤언더파이어 2>의 진행 방식은 의외로(?) 무난합니다. 마을에서 퀘스트를 받거나 용병과 영웅의 스킬 및 아이템을 관리하고 나면 전투 지역으로 이동해 적과 싸우고 퀘스트를 마무리하는 방식이죠.
전투 지역은 부대와 함께 싸우는 부대임무 지역과 부대 없이 영웅만으로 싸우는 영웅임무 지역으로 나뉩니다. 지역에 맞춰 2개의 굵직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요, 부대임무에서는 해당 지역의 전황과 관련된 이야기가, 영웅임무에서는 <킹덤언더파이어 2>의 주요인물들과 관련된 이야기가 펼쳐지죠.
참고로 1차 CBT에서는 레벨 10까지 영웅임무 지역만 나오고 그 후로는 약 1:1 비율로 영웅과 부대 지역이 번갈아 공개됐습니다. 시나리오를 강조한 일부 지역에서는 솔로플레이만 가능했고요.
캐릭터의 성장은 영웅과 용병을 따로 키우는 방식입니다. 용병은 레벨 10에 첫 번째, 레벨 15에 두 번째 슬롯이 열리며 레벨마다 모집할 수 있는 부대가 정해져 있습니다. 용병도 플레이어처럼 경험치를 얻으며 레벨에 따라 새로운 스킬을 배울 수도 있죠.
용병은 일반 아이템 대신 휘장이라는 별도의 아이템을 장착할 수 있는데요, 1차 CBT에서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용병의 종류도 4종류에 그치고, 1차 CBT에서는 맛보기로만 나온 부분인 만큼 이에 대한 체험과 평가는 다음 테스트를 기다려 봐야 할 듯합니다.
■ 정신 없는 전투와 불편한 인터페이스
문제는 지나치게 정신 없는 전투와 불편한 인터페이스입니다. <킹덤언더파이어 2>의 전투는 정신이 없습니다. 많으면 수 백 명이 함께 싸우고 사방에서 함성과 비명이 울려 퍼지는 전장에서 상황판단이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죠. 그런데 <킹덤언더파이어 2>는 그 정도가 지나칩니다.
일단 <킹덤언더파이어 2>의 병사는 굉장히 용감합니다. 비슷한 대규모 전투가 등장하는 <진·삼국무쌍> 시리즈처럼 ‘멀뚱멀뚱 플레이어를 바라보며 주변만 도는’ 병사는 없습니다. 모두가 적극적으로 적에게 달려들고 공격을 퍼붓죠.
그러다 보니 플레이어가 위치하게 되는 전투의 중심은 난전을 넘어 아수라장 수준의 화면을 보여줍니다. 생각해 보세요. 수 백 명의 적과 아군이 서로 한 대라도 더 때리겠다고 달라붙어 있는 장면을요. 거기에 충돌 판정까지 갖고 있다 보니 일단 전투에 들어가고 나면 빠져 나오기도 쉽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색감이 전반적으로 어둡다 보니 오우거나 스콜피온처럼 거대한 몬스터를 제외하면 누가 누구인지 구분조차 어렵습니다. ‘으악! 어디를 먼저 공격해야 하나!’라고 외치는 적의 울부짖음에 공감이 갈 정도입니다. 심할 때는 바로 옆의 적을 두고도 아군인줄 알고 지나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습니다.
반면 인터페이스는 대규모 전투를 따라오지 못합니다. 화살표로 적과 아군을 구분한 미니맵은 대규모 전투에서는 큰 도움이 안 되고, 적의 머리 위에 일일이 화살표를 띄워 주지만 정작 화살표 아래에 적과 아군이 뭉쳐 있으니 소용이 없습니다.
부대전투는 더 심각합니다. 부대의 중심위치에 아이콘을 띄워주는데 몇 개의 부대가 비슷한 장소에 있을 때는 아이콘을 리스트로 보여주다 보니 원하는 부대를 선택하려면 일일이 아이콘을 눌러봐야 합니다.
불편한 조작도 한몫합니다. <킹덤언더파이어 2>에서는 부대를 조작할 때 탭(Tab) 버튼을 눌러 부대조작모드를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부대조작 모드에서는 시야가 멀리 확대되고 적과 아군부대의 아이콘을 확인할 수 있죠.
하지만 정작 부대를 고를 때마다 시점이 멋대로 움직이다 보니 상황을 빠르게 파악할 수 없습니다. 미니맵처럼 북쪽으로 고정된 것도 아니고 부대조작 모드를 켠 채로 선택한 부대만 바꿔도 시점이 달라지죠. <스타크래프트>에서 유닛을 클릭할 때마다 맵이 회전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문제: 위의 아이콘 중 전방의 스콜피온을 찾아 클릭하시오.
참고로 부대조작 모드를 진행하는 도중에는 영웅이 기본공격을 반복합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게임 후반에는 조작을 2~3초만 쉬어도 영웅이 죽기 십상입니다. 부대를 천천히 조작할 틈이 없다는 뜻이죠. 결국 대부분의 유저가 부대는 자동전투로 맞춰 놓고 영웅모드에서만 플레이하더군요.
마을에서 전투 지역으로 이동할 때 필드를 거쳐야 한다는 것도 불편합니다. 1차 CBT에서 필드의 역할은 전체지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몬스터도 없고 이동도 마우스 클릭으로 간단히 이뤄지죠. 갈 수 있는 던전과 지역 이외에는 표시조차 안 됩니다.
로딩이 짧은 게임도 아닌데 굳이 로딩을 한 번 더 거치며 필드에서 해당 지역을 클릭해서 이동해야 한다는 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더군요.
■ 다시 하기 싫을 정도로 지루한 진행
수 백 명이 부대끼는 전투가 길게 반복되다 보니 게임의 지루함과 피로도도 심합니다. 전투의 길이와 난이도가 가장 문제인데요, <킹덤언더파이어 2>의 부대임무 지역은 짧게는 30분, 길게는 2시간 이상이 걸립니다. 어지간한 MMORPG의 던전보다 긴 수준이죠.
난이도도 높아서 잠깐만 방심해도 전멸하기 십상이고, 부대와 영웅을 함께 신경 써야 하다 보니 피곤함이 배가 됩니다.
앞서 장점으로 내세웠던 연출도 지나치게 자주 사용됩니다. 후반 지역에서는 컷신만 10회 가량 나오는 곳도 있을 정도죠. 플레이 타임이 2시간에 가까운 지역을 10개의 컷신을 보고 매번 비슷한 전투를 견디며 진행했다가 높은 난이도의 보스 몬스터를 만나 클리어에 실패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각 지역의 디자인도 그린데일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단순히 적의 숫자를 늘려놓은 수준에 불과합니다. 일 대 다수의 전투가 그렇듯 적의 인공지능에도 한계가 있고, 일부 거대 몬스터를 제외하면 패턴도 비슷비슷하죠.
특히 달랑 4~5가지 패턴을 가진 보스 몬스터와 1시간 이상 싸워야 하는 케링턴 폐허나 몬스터의 공격력과 체력만 대폭 올려놓은 잊혀진 자의 계곡 등은 ‘이걸 왜 플레이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지루하고 피곤했습니다. 온라인게임의 (어쩔 수 없는) 특징인 반복 플레이를 고려하지 않은 듯하더군요.
대규모 전투를 위주로 게임을 만들다 보니 영웅임무 모드가 식상한 것도 아쉬웠습니다. 적을 때려야 AP가 모이고 스킬을 쓰는데, 적이 한두 마리씩 나오다 보니 AP는 안 쌓이고, 스킬도 못 쓰는 답답한 플레이가 반복되더군요. 대대적인 공식의 변화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 새로움과 재미의 균형잡기, 블루사이드의 도전
1차 CBT를 앞두고 블루사이드의 지용찬 디렉터는 인터뷰에서 “콘솔게임 개발사의 마인드를 가진 블루사이드에 온라인게임에 필요한 생각을 불어넣고 있다”고 밝혔는데요, 그의 말처럼 <킹덤언더파이어 2>의 1차 CBT는 아직까지 온라인게임보다는 콘솔게임에 가깝습니다.
웅장한 전투와 화려한 연출 등의 장점과 (PC로 즐겼을 때) 불편한 조작과 인터페이스, 어려움 등은 전형적인 콘솔게임의 특징이죠. 지루한 진행도 플레이 타임을 억지로 늘린 과정에서 나온 것처럼 생각될 정도입니다. 만약 20시간 정도의 콘솔게임으로 알차게 나온다면 위의 단점도 크게 불편하지 않을 겁니다.
플레이시간을 1/3로 줄이고 콘솔로 나왔다면 칭찬받고 남을 게임입니다.
문제는 <킹덤언더파이어 2>가 일단은 PC버전으로 개발 중인 온라인게임이라는 점입니다. 콘솔게임 개발사의 장점을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온라인게임으로서 필수불가결한 반복과 편의성을 어떻게 극복할지도 고민해야 하죠. 아직까지는 이 부분에 대한 해답이 딱히 보이진 않았고요.
<킹덤언더파이어 2>는 동영상이 공개될 때마다 ‘저런 전투가 정말로 가능할까’라는 궁금증을 낳았습니다. 1차 CBT에서 그 우려는 사라졌고 영상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했죠. 전투 방식은 신선했고, 콘솔게임 개발사다운 연출과 장치들도 보여줬습니다.
다만, 새로움이 꼭 재미로 연결되는 건 아닙니다. 자신이 보이지도 않을 만큼 대규모로 치러지는 전투에서 오는 지루함과 반복 플레이의 재미, 새로운 방식의 전투에 어울리는 인터페이스는 과제로 남았습니다. 국내의 몇 안 되는 콘솔게임 개발사인 블루사이드가 온라인게임에서도 그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 2차 CBT를 기다려 봅니다.